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신출귀몰한 용사 일행 (1)
데시무스는 싸늘한 눈으로 노바스크 백작과 마리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작 데시무스라는 걸 눈치챈 마리엘은 입을 다문 채 눈치를 보던 중이었다.
노바스크 백작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데시무스를 바라봤다.
“자, 자네가 어떻게 여기에……. 분명 마계에서 노예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 투기장에서 우승했다고 했잖아요. 그 공으로 풀려났나 봐요.”
“아, 그래? 데시무스, 난 항상 자네가 뛰어나다고 여겼었지. 그래도 옛정을 잊지 않고 도와주러 왔나 보군. 정말 고맙네.”
“그래요. 저희 다시 잘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앞으로 잘할게요.”
노바스크 백작과 마리엘은 마치 데시무스와 화해라도 한 것처럼 살갑게 굴었다.
그 모습을 잠자코 노려보던 데시무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둘 다 정신이라도 나갔나?”
“허허, 그런 소리 하지 말게.”
“맞아, 괜히 무섭잖아요. 그보다 오늘 밤 기대하셔도 좋아요. 저를 구해 준 은혜는 제대로 갚을 테니까.”
마리엘이 요염한 눈빛으로 데시무스를 바라봤다.
그러나 데시무스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내가 너희를 구한 건, 내 손으로 너희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억울하게 죽은 내 동료들과 고향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테니까.”
말만으로 그치지 않고 데시무스가 검을 들어 올리자 노바스크 백작과 마리엘이 화들짝 놀라면서 매달렸다.
“제, 제발 진정하게.”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살려 줘, 응?”
그러나 데시무스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
성 밖으로 나온 데시무스는 아르칸이 기다리며 서 있는 걸 보고 고개를 숙였다.
“다 끝냈습니다.”
“그래, 가자.”
성안은 이미 언데드 몬스터에 의해 점령된 상황. 데시무스는 용아병과 함께 길을 뚫고 그 안으로 들어간 거였다.
아르칸은 여기는 내버려 두고 바로 뒤에 있는 성으로 간 뒤, 거기서부터 언데드 군단을 막아 낼 예정이었다.
‘그러고 있으면 용사가 도착하겠지.’
한참 말이 없던 데시무스가 대뜸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후련하지는 않네요.”
“그래?”
“네. 아르칸 님이 구해 주신 뒤로 이날만은 꿈꿨지만……. 상상했던 것과 다르네요. 죄송합니다, 기껏 여러 가지로 애써 주셨는데.”
“괜찮아. 네 사정을 듣고 안 도와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아르칸의 말에 데시무스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이 마왕은 가끔 마왕답지 않은 소리를 한단 말이지.’
반면 아르칸은 데시무스가 걱정됐다.
처음 봤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는 삶에 대한 의지라고는 조금도 없이 죽어 있던 눈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눈빛이 어두운 게, 이대로 두면 그때 모습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복수가 허무하다더니 그 모습을 데시무스가 여실히 보여 주는군.’
고민하던 아르칸이 말했다.
“네 고향 사람들도 해쳤다며? 노바스크 백작가도 친인척들 많을 거 아니야?”
“그 친인척들이랑 대부분 사이가 나쁩니다. 해쳐 봐야 노바스크 백작만 좋아할 겁니다.”
데시무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노바스크 백작의 부탁으로 용병단을 움직여 공격했던 사람 중에는 노바스크 백작의 친인척도 다수 있었기에 잘 알았다.
“그, 그래. 그러면 동료들의 가족들은 어때? 들은 게 있을 거 아니야.”
“아.”
아르칸의 말에 데시무스가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로디가 수도에 사는 여동생에 대해 말한 게 기억나네요. 사이가 나쁘긴 해도 늘 보고 싶다고 했었지요. 참, 솔레어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한번 찾아가 봐야 할 텐데 말이죠. 절친인 밀리한테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돌봐 달라고 했었는데, 둘 다 죽었으니 저라도 돌봐 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베로니카 녀석의 부모님께도 인사드려야겠어요. 고향 마을에 들렀을 때, 테드 녀석이 저희 부모님께 멋진 선물을 해 줬었거든요. 그리고…….”
한참을 중얼거리는 데시무스를 보니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찾아낸 듯했다.
아르칸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그거 다 챙기려면 바쁘겠다?”
“돈도 많이 필요하고요. 앞으로도 충성을 다 바쳐 열심히 일할 테니 많이 도와주십쇼.”
“그래야지.”
아르칸은 한층 밝아진 데시무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
아르칸이 언데드 군단을 발견했을 때, 언데드 군단은 베네트 백작 성을 공격하기 위해 천천히 진군해 오는 중이었다.
이 속도면 밤이 되기도 전에 끔찍한 지옥이 열릴 게 분명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으니까 이것부터 처리해야지.’
아르칸은 생명의 마석을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냈다.
용아병들이 이교도의 은신처에서 찾아온 생명의 마석.
이교도의 은신처가 워낙에 크고 넓어서 찾는 데 시간이 걸린 거였다.
거기다가 피용이 쓴 게 단순한 원소계 드래곤 브레스가 아니었어서, 정령이 수색하는 데 도움을 주기 어렵기도 했다.
‘가서 찾고 드래곤 브레스를 쏘라고 할 걸 그랬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찾았으니 문제없지만.’
붉은빛을 띠는 생명의 마석은 심장처럼 뛰고 있었는데, 그걸 쥐고 있는 것만으로 전신의 활력이 도는 것만 같았다.
아르칸은 입을 열어 자신의 충실한 신하인 바람의 중급 정령을 불렀다.
“제피로스.”
“네, 부르셨습니까.”
“여기 생명의 마석이 있다. 사용법은 네가 알지?”
“물론입니다. 그냥 제 안으로 넣어서 흡수시키면 됩니다.”
제피로스는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하며 생명의 마석에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을 불과 물의 상급 정령 이그니스와 나이어드가 바라보고 있었다.
“엄청난 생명력이 담긴 마석이로군.”
“제피로스 녀석, 안 그래도 아르칸 님의 영향으로 성장이 빠르던데, 저 정도면 단번에 상급 정령으로 올라올 수 있겠어.”
“이후 얻을 생명의 마석도 제피로스가 받을 테니 우리 중 가장 빨리 정령왕이 되겠군.”
“쩝. 나도 저 정도 생명의 마석을 몇 개만 구하면 정령왕이 될 수 있을 텐데.”
두 상급 정령이 떠드는 사이 제피로스는 생명의 마석을 자신의 몸 안에 받아들였다.
제피로스의 중심으로 소용돌이가 치더니 존재감이 한층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걸 느낀 이그니스가 탄성을 내질렀다.
“갓 상급 정령이 된 것보다 훨씬 강하군. 그 안에 생명력이 예상보다 많았나 봐.”
“치, 그래도 아직 나보다는 약해.”
질투심이 일어난 나이어드가 투덜댔다.
소용돌이가 가라앉았을 때, 제피로스는 상급 정령이 되어 있었다.
“축하한다, 제피로스.”
외형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지만, 정령 친화력이 높은 아르칸은 제피로스의 힘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게 다 아르칸 님 덕분입니다.”
이그니스와 나이어드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제피로스, 상급 정령이 된 걸 축하한다.”
“맞아. 정말 축하해. 진심이야.”
그 소리에 아르칸이 웃으며 말했다.
“들어 보니 질투하는 거 같더니만.”
“헤헤, 그래도 좋은 일이니까요.”
“나이어드 말처럼 무릇 정령은 다른 정령이 강해지는 걸 축하하는 게 옳습니다. 정령이 강해진다는 건 이 세계의 생명력의 총량이 늘어난다는 뜻. 그 영향에 저희의 힘도 조금이나마 강해지니까요.”
“그렇군.”
처음 들은 사실이었다.
그때 나이어드가 넌지시 물었다.
“혹시 골드 드래곤이 가진 것 말고 또 다른 생명의 마석은 없어요?”
“찾아야 하지만 없진 않지. 다만 한 개로는 이 정도 효과는 못 낼 거야.”
“상관없어요. 다음번에는 저 주세요.”
“허어, 그건 어디까지나 아르칸 님이 결정하실 일이지. 안 그렇습니까?”
나이어드의 억지를 달랜 이그니스가 물었다.
“당연히 앞으로 하는 거 봐서 결정할 거야. 그럼 다들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할게.”
“맡겨만 주십시오.”
“열심히 할 거예요.”
그때 제피로스가 말했다.
“저도 빼놓으시면 안 됩니다.”
“너도 끼게?”
“물론이죠.”
제피로스의 대답에 다른 상급 정령들이 반응했다.
“훗, 재밌겠군요.”
“누가 질 줄 알아? 선배 정령으로서 실력을 보여 주지.”
티격태격거리는 정령들을 보며 아르칸이 미소를 지었다.
이들이 이 정도로 의욕을 보인다는 건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재앙이 펼쳐진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
본앰브로스의 제자, 아브렉스는 통신구를 손에 들었다.
스승에게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들고 있는 통신구는, 편리해 보여도 제약이 많아 널리 쓰이진 않는다. 하급 마석을 소모할 뿐만 아니라 작동하는 구간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통신이 원활하려면 언데드 몬스터들이 은연중에 내뿜는 죽음의 마기가 끊이질 않아야 했다.
사실상 일자로 진군 중인 이런 전시 상황이 아니고서야 쓰기 어려웠다.
아브렉스는 통신구에 마력을 보내며 말했다.
“스승님, 아브렉스입니다.”
-그래, 전황은 어떠냐.
“아주 순조롭습니다. 일부 저항하는 인간족 때문에 피해가 있긴 하지만, 병력은 계속해서 증가 중입니다. 이대라면 일주일 내로 수도까지 점령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방심하면 안 된다. 인간족이 전성기에 비해 약하다고 해도 저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신용사나 성녀도 죽지 않았습니까? 거기다가 골드 드래곤도 아르칸 님이 막는다면서요. 제가 반드시 악마족 녀석들보다 먼저 수도를 함락시키겠습니다!”
아브렉스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이번에 공을 세우면 본앰브로스에게서 마정석을 받아 마왕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 부하들이 달려와 보고했다.
“정령들이 공격해 옵니다!”
“뭐? 겨우 정령들로 호들갑이냐?”
아브렉스가 비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데드 몬스터들이 내뿜는 죽음의 마기와 정령들이 좋아하는 생명력은 상극.
이럴 경우, 그 힘이 강한 쪽이 유리하다.
그리고 지금 언데드 군단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세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하찮은 정령들 따위야 굳이 보고할 필요 없이 그대로 쓸어버리도록.”
“그게 아닙니다. 저희가 밀리고 있습니다.”
“뭐라고??”
부하의 말에 깜짝 놀란 아브렉스가 되물었다.
“실체가 있는 정령들이 나타나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가지 속성이 아니라 세 가지나 됩니다.”
실체가 있다는 건, 단순한 정령이 아니라 최소 하급 정령이라는 소리. 단순히 죽음의 마기만으로 내쫓기는 어려웠다.
“그것부터 말했어야지!”
“죄송합니다.”
아브렉스가 부하를 나무라고 있을 때, 본앰브로스가 물었다.
-문제가 생긴 거 같은데, 괜찮나?
“괜찮습니다. 이 정도쯤은 곧바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브렉스는 통신구를 집어넣었다.
하급 정령들이 강하다고 해 봐야 마왕급은 안 된다. 셋 정도는 단번에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아니야, 방심하면 안 되지. 정령이 셋이나 나타났다면, 하나는 중급 정령일지도 몰라.’
그러면 혼자서 상대하긴 버겁긴 했지만, 부하들과 언데드 몬스터까지 총동원하면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한창 전투 중인 현장으로 달려가던 아브렉스의 발걸음이 어느덧 멈췄다.
“이, 이런, 말도 안 돼.”
저 앞의 정령들은 각자 속성인 불과 물, 바람을 일으켜 언데드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한번 정령의 기운이 몰아칠 때마다 수십에서 수백의 언데드 몬스터가 소멸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언데드 군단이 전멸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아브렉스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저 정도면 상급 정령……. 근데 상급 정령이 셋이나 나타났다고? 이게 말이 돼?”
저것들을 상대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절망한 아브렉스는 뒷걸음질 쳤지만, 그를 눈치채기라도 한 듯 거대한 소용돌이가 쫓아오더니 순식간에 아브렉스를 집어삼켰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본앰브로스의 안광이 흔들렸다.
통신구가 박살 난 거였다.
그 말인즉, 해당 통신구와 짝이었던 통신구도 박살 났다는 의미였다.
금방까지 연락을 주고받던 제자 아브렉스에게 큰일이 생긴 게 분명했나.
“쯧, 결국 정령에게 당했나. 방심하지 말라고 했거늘.”
본앰브로스는 혀를 차면서 손을 뻗었다.
거기에는 수백 개의 통신구가 늘어져 있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