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신출귀몰한 용사 일행 (3)
대륙 남서부는 대부분이 산지인 덕분에, 산과 절벽을 끼고 지어진 천혜의 요새 같은 곳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지형도 날개 달린 악마족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크하하핫! 끝까지 저항해라, 저항해! 그래야 비명이 끊이질 않지.”
“살아남는 녀석이 없도록 꼼꼼하게 해치워 주마.”
“이히히히히힛.”
악마족들은 끔찍하게 웃고 떠들 정도로 여유롭게 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하늘 위를 어지러이 날아다니면서 창을 휘두를 때마다 병사가 하나둘 쓰러졌다.
활을 쏘아서 쫓아내려고 해도 날개를 퍼덕이면 화살이 힘을 잃어 위협이 못 됐다.
게다가 이미 성벽 위로 내려와서 휩쓸고 다니는 악마족도 있었다.
붉은 근육질의 그 악마족은 그 덩치에 걸맞은 커다란 전투 해머를 무기로 썼는데, 어찌나 괴력인지 병사들은 그 악마족이 휘두른 전투 해머를 막지도 못하고 박살이 났다.
그걸 보며 사색이 된 경비조장이 외쳤다.
“기, 기사님은 아직이야? 저건 볼트 경이 아니면 못 막아!”
“볼트 경이라면 금방 오셨다가 곧바로 가슴을 얻어맞고 성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만.”
“크윽, 그랬지.”
끔찍한 상황에 정신마저 혼미해진 탓에 깜빡한 거였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대로 피신해 봐야 성 밖으로 나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 끔찍한 건 이 무서운 악마족들이 성안의 병력을 꺾고 나면, 마인족들이 와서 완전히 함락시킨다는 거였다.
‘동부는 예전 용사님이 나타나 활약한 덕분에 살았다던데……. 여기에 오시는 건 무리겠지.’
거리상으로도 아주 먼 데다 성까지 올라오는 길도 험했다.
그 전에 누군가 오고 있었다면 위에서 발견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누군가 오고 있다는 소식은 일체 없었다.
‘이대로 끝인가. 그래도 부끄럽지 않게 최후를 맞이해야지.’
경비 조장은 허탈한 마음을 억누르며 부하들을 전투 해머로 박살 내는 악마족을 쳐다봤다.
저렇게 강한 녀석을 막아서다 죽는 거라면 먼저 간 부모님이나 친구 동료들에게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리 내놔 봐.”
경비 조장은 벌벌 떨고 있는 신입의 손에서 창을 뺏어다가, 악마족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뒤통수에 명중하긴 했지만, 악마족은 순간 멈칫했을 뿐 생채기도 나지 않은 듯했다.
대신에 기분이 나쁜지 인상을 쓰며 자신을 쳐다봤다.
경비 조장으로서도 바라던 바였다.
“그래, 이쪽이다! 나랑 붙자. 나한테 덤벼!”
“조장! 미쳤어요?”
“너희는 도망가.”
“에이씨, 이놈의 감옥 같은 성에서 도망칠 데가 어딨다고. 그냥 끝까지 같이 싸웁시다.”
“녀석들.”
경비조장은 당차게 나서는 부하들을 보며 감동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악마족이 쳐들어오는 현실을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악마족이 전투 해머를 휘두를 때마다 부하들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이 자식, 나랑 붙자니까!”
경비조장이 검을 휘두르며 악마족에게 달려갔다.
악마족은 그런 경비조장을 보며 비웃었다.
“흐흐. 곧 죽을 녀석이 성미 급하기는.”
그때 매서운 바람이 경비조장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바람은 뭐지?’
순간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악마족이 전투 해머를 들어 올렸다.
커다란 그림자가 경비조장의 머리 위로 생겼다.
“젠장, 이판사판이다.”
경비조장도 이를 악물며 악마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억?”
순간 악마족이 놀란 얼굴을 한 채로 굳었다.
‘응? 어떻게 된 거지?’
경비조장이 의아해하는데, 악마족의 중앙에 금이 생기더니 그대로 좌우로 갈라지는 게 아닌가?
‘설마 내 공격이 통했나?’
놀란 경비대장이 주변의 부하를 보며 소리쳤다.
“어이! 이것 좀 봐! 내가…….”
“용사 님이다! 용사 님!”
자랑하려던 경비대장의 말을 병사가 소리치며 끊었다.
“용사 님이라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경비대장은 인상을 쓰며 병사가 쳐다보는 곳을 따라 하늘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 용사 님?”
예전에 용사 님이 이곳에 왔을 때 본 적이 있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용사가 하늘에 떠 있었다.
용사는 그 후로도 자신에게 날아드는 악마족들에게 검을 휘둘러 해치웠다.
어찌나 간단하게 해치우는지 그간 느꼈던 공포나 절망이 거짓말인 것만 같았다.
“조심하세요!”
여인의 목소리가 경고하는 것과 동시에 경비조장과 병사들 앞에 빛나는 방패가 만들어졌다.
그 방패는 한 악마족이 꼬리 끝에서 가느다란 가시를 흩뿌리는 걸 막아 냈다.
그 악마는 곧바로 용사가 해치웠다.
한편 빛나는 방패를 만든 여인은 빛무리에 휘감긴 채 천천히 내려오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성스러운지 마치 여신과 같았다.
“괜찮으세요?”
“아, 네.”
여인의 물음에 경비 조장이 얼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다행이네요. 다친 분들은 이리로 모셔 주세요. 제가 치유의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치, 치유의 기도? 혹시 성녀님이신가요?”
“네, 성녀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요.”
성녀 엘리시아가 쑥스러운 듯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마저도 어찌나 아름다운지 경비조장은 엘리시아에게서 눈을 못 뗐다.
한편 나타난 건 용사와 성녀만이 아니었다.
“좋아. 다 쓸어버리자.”
“이미 용사가 반 넘게 해치웠는데요?”
“젠장.”
어느새 성벽 위에 나타난 긴 금발의 검사와 회색 머리칼의 마법사가 대화를 나눴다.
그러더니 금발의 검사가 남은 악마족을 향해 달려가서 냅다 검을 휘둘렀다.
어찌나 빠르고 예리한지 악마족은 막거나 피하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악마족을 해치우는 걸 본 병사들이 환호성을 외쳤다.
“우와!”
“저 검사님도 강하잖아.”
“저 멋진 분은 누구시지?”
“훗.”
병사들의 감탄에 아우리오스는 으스댔다.
멋진 모습을 더 보여 주고 싶었지만, 이미 악마족들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놈들은 몇 안 되어서 감질난단 말이야.”
아우리오스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한편 용사 일행이 나타나 악마족을 모조리 해치웠다는 사실은 금세 온 성안으로 퍼졌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용사님 만세!”
“용사님 만세! 만세!”
“성녀님 만세!”
“동료분들도 고맙습니다!”
성내 주민들은 성이 떠나갈 정도의 환호성으로 보답했다.
용사는 익숙했는지 무덤덤했고, 엘리시아는 아직 창피한지 고개를 숙였다.
반면에 아우리오스는 투덜댔다.
“뭐야, 나도 동료로 퉁치는 거야?”
“칭찬 들으려고 하신 건 아니잖아요.”
“그보다 넌 싸우지도 않았는데, 왜 옆에서 고맙다는 말을 들어?”
“정령들을 써서 용사와 성녀를 바로 성 위로 올렸잖아요.”
“흠, 그런가.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다음에는 내가 더 많이 해치울 테니까, 용사더러 자제하라고 해.”
“네, 네.”
아르칸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한동안 같이 다닌 탓에 아우리오스와 편하게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됐다.
그사이 용사는 성주인 페드리크 백작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용사 님, 구해 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역시나……. 식사를 준비하라 했습니다. 차린 건 부족하겠지만 드시고 푹 쉬시지요.”
“아닙니다. 이곳 외에 공격받은 곳이 많으니 바로 가 봐야겠습니다.”
“아, 그렇지요. 이거 약소하지만, 저희 성의입니다.”
백작이 금화 주머니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괜찮…….”
“어이쿠, 잘 쓰겠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아르칸이 냉큼 금화 주머니를 챙기고는 용사에게 쏘아붙였다.
“너 이제 혼자 입도 아닌데 왜 마음대로 거절하고 그래.”
“맞다. 목숨을 구해 준 보답을 받는 건 당연하다.”
아우리오스까지 거들자 용사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페드리크 백작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필요한 곳에 쓰겠습니다.”
용사의 예의 바른 인사를 끝으로, 용사 일행은 악마족의 팀에 의해 공격받는 다른 성으로 향했다.
악마족의 팀은 많아야 십여 명 남짓, 강하다고 해도 용사와 아우리오스의 일격도 버티지 못했다.
도착하기만 하면 모두 해치우는 데 10분도 안 걸렸다.
오히려 악마족 팀에게 달려가는 시간이 더 걸릴 정도였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에 하루 사이에 무려 네 팀을 제거할 수 있었다.
그 기세에 놀랐는지 악마족 팀들은 공격을 멈추고 후퇴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아우리오스가 투덜거렸다.
“이거 제대로 활약하기도 전에 끝나니 내 대단함을 알리기가 힘들구나. ”
보통 드래곤 하면 고고하고 오만하다, 인간족들을 얕본다고 하지만, 아우리오스는 수호룡으로 인간족들에게 추앙받고 산 지 오래다 보니 인간들의 인정이 목마른 모양이었다.
“역시 본모습을 드러내면…….”
“저런 약한 녀석들을 상대로 본모습을 드러내 봐야 오히려 위대함이 빛바랠 겁니다.”
“그런가…… 그러면 어떻게 하지.”
아우리오스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제피로스가 다가와서 아르칸에게 보고했다.
악마족 팀들이 한곳에 모이고 있다는 거였다.
“대책 회의를 하는 건가? 어쨌든 잘됐어.”
악마족 팀들이 모이고 있다는 소리에 아르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참 아오리우스 님,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생각났는데요.”
“뭔데? 어서 말해 봐.”
아우리오스는 눈빛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
아르칸이 파악한 대로 인간계 서부를 공략 중이던 악마족들은 용사가 나타났다는 소리에 후방으로 물러나 대책 회의 중이었다.
악마족들은 모이자마자 구시렁대기 바빴다.
“용사 녀석, 동부에 있는 거 아니었나? 대체 언제 나타난 거야?”
“신용사를 제거했더니만, 은퇴한 녀석을 불러들이다니 치사하잖아.”
“은퇴한 거는 맞나?”
“맞아. 인간족 첩자의 말로는 아예 밀려나면서 성검도 잃고, 여신의 힘도 잃고 약해졌다는군.”
“뭐라고? 약해진 게 저 정도야?”
누군가의 말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괜히 혼자서 마왕성에 쳐들어가서 모조리 박살 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낙심할 때가 아니야. 벌써 네 개 팀이 전멸했다. 키클로테스 님이 아시면 난리 날 거야.”
“그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모인 거잖아. 어떻게 할 거야?”
“당연한 걸 왜 물어? 한꺼번에 덮쳐야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우리 모두가 덤비는데 어떻게 이길 거야?”
“그렇지. 용사도 전보다 약해졌다니, 싸워 볼 만할 거야.”
“우리가 한꺼번에 공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이번에 용사를 해치우는 건 우리 악마족이다!”
다들 기세등등한 와중에 누군가가 물었다.
“그런데 누가, 어느 팀이 앞장설 거야? ”
“…….”
그 말에 다들 언제 떠들었다는 듯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건 좋지만, 용사나 그 일행이 지치기 전에 필연적으로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 있는 누구도 그 희생양이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때 킬드로라는 이름의 악마족이 입을 열었다.
“흐흐, 협공하되 좀 더 쉽게 싸우는 방법이 하나 있지.”
“뭔데?”
“어서 말해 봐.”
“듣기로는 용사에게 약점이 있다고 한다.”
“약점?”
“금시초문인데.”
“바로 동료들이다.”
“아, 그 이야기인가? 예전에 동료를 잃은 것 때문에 용사가 충격을 받았다고 하던데.”
“맞아. 그 뒤로 동료 없이 혼자 다니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라더군.”
“지금은?”
“약해지기도 했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함께 싸울 수밖에 없겠지. 어쨌든 동료를 먼저 공격하면 용사가 평정심을 잃게 만들 수 있을 거야. 적어도 힘을 빼는 건 가능하겠지.”
“그렇군. 하긴, 용사가 강하다고 해도 그 동료들까지 그 정도로 강하지는 않겠지.”
다른 악마족들도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경계를 서고 있던 악마족이 황급히 날아왔다.
“어이, 금발 검사가 혼자 있는 걸 발견했다고 해.”
“용사는?”
“아직 성에 있다는군. 확실해.”
말을 들은 악마족들은 모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곧바로 작전을 시험할 기회가 생긴 거였기 때문이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