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신출귀몰한 용사 일행 (5)
키클로테스 대마왕까지 움직이는 걸 확인한 아르칸은 또 적당히 핑계를 대고 용사와 아우리오스를 데리고 동부로 이동했다.
그사이 허탕 친 본앰브로스는 돌아가 버리고, 다시 언데드 군단이 진격해 왔다.
인간족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용사와 그 동료들을 경계하느라 가뜩이나 느린 진군이 더욱 느려진 데다, 아르칸이 바람의 정령을 통해 미리 진군을 알리고 대피시켰기 때문이다.
‘내버려 두면 언데드 군단의 숫자만 계속 늘어날 뿐이니까.’
한편 언데드 군단을 지휘하는 네크로맨서들은 갑자기 나타난 용사와 그 동료들이 휘젓고 다니자 혼란에 빠졌다.
“아니, 저건 용사 아니야?”
“젠장, 서부에 있던 거 아니었나.”
“어서 본앰브로스 님께 알려야 해. 으아앗!”
네크로맨서들은 통신구를 꺼내 본앰브로스에게 보고하려고 했지만, 득달같이 달려온 용사의 검에 쓰러졌다.
아르칸이 용사에게 우리가 돌아왔다는 걸 본앰브로스가 최대한 늦게 알도록 네크로맨서부터 잡으라고 말해서였다.
“일단 네 말대로 하는데, 그럼 본앰브로스와는 언제 싸워?”
“성급하게 굴지 않아도 금방 싸우게 될 거야.”
아르칸은 그렇게 용사를 달랬지만, 또 언데드 군단에 타격을 입은 걸 보고 본앰브로스가 쫓아온다는 정보에 다시 서부로 떠났다.
“젠장, 또 허탕을 치게 만들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뒤늦게 나타난 본앰브로스는 크게 화를 냈지만, 이내 다시 돌아갔다.
신출귀몰한 용사가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데 자신의 위치를 노출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서부로 간 용사와 그 동료들은 키클로테스가 자랑하는 정예 악마족 팀에게 더욱 큰 타격을 입혔다.
악마족들은 용사가 사라진 뒤 동부에 나타났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다시 팀끼리 뭉쳐 인간계를 전방위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다가 용사와 그 동료들에게 각개격파를 당한 거였다.
거기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번에는 용사와 그 동료들을 잡기 위해 키클로테스의 지시대로 아예 20개 팀 가까이가 한곳에 뭉쳤는데, 그것마저 한 번에 박살 났다.
키클로테스로서는 반응하지 않기 힘들 정도의 타격이었다.
“이럴 수가. 용사는 약해진 거 아니었나? 그 동료들이 그렇게 강하단 말이냐.”
키클로테스는 도저히 믿기지 않은 상황에 저번처럼 당장 달려가는 대신, 외눈 박쥐를 보내 대마왕 바리스탄에게 연락을 취했다.
“너희도 좀 나서 줘야겠다.”
-무슨 일인가? 원정이 순조롭지 않은가?
‘알면서 모른 척하기는.’
속으로 투덜거린 키클로테스가 대답했다.
“용사가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성 공략이 힘든 상황이다. 내가 직접 상대하러 나왔지만 금세 사라져 버려서 쫓아다닐 수도 없고. 그러니 네 병력을 전진 배치하도록.”
현재 대마왕 바리스탄의 부하들과 원정에 참여한 마왕들은 비교적 후방에서 있었다.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악마족들은 숫자가 적어, 공략한 곳을 그들 대신 점령하고 있던 참이었다.
-내게 지금 명령하는 건가? 불쾌하군.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다.”
순간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키클로테스가 저자세로 대꾸했다.
그제야 바리스탄은 키클로테스가 환영할 만한 이야기를 했다.
-안 그래도 내가 직접 남하하는 중이다. 나머지 병력도 전격적으로 전진시키겠다.
“오, 정말인가?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분 건가.”
-아르칸이 아우리오스를 상대하기 버겁다는군.
“아, 그래?”
아르칸의 상황을 자연스레 유추해 낸 키클로테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원정 전에는 아르칸이 자신만만하게 골드 드래곤이자 왕국의 수호룡 아우리오스를 붙잡아 둘 수 있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바리스탄까지 함께라면 충분히 붙잡아 둘 수 있겠지.’
-그럼 나중에 보지.
바리스탄이 통신을 끊자마자 본앰브로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내용은 더욱 키클로테스가 바라던 거였다.
“함께 용사를 잡자고?”
-그래, 부하들을 시킬 게 아니라 우리가 선두에 서는 거다. 그러면 용사가 나타나도 충분히 잡고도 남겠지.
“나 혼자서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용사 혼자 나타난다면 그렇겠지. 그런데 지금은 동료와 함께 다닌다. 특히나 이번 성녀는 보통이 아니라는군. 오히려 바로 안 마주쳐서 다행이었어.
아무래도 본앰브로스의 힘인 죽음의 마기는 신성력과 상극이다 보니, 용사가 성녀와 함께 나타나면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사실 부담스러운 건 키클로테스도 마찬가지긴 했다.
용사의 동료 중에서 리오스라는 금발 검사가 있는데, 그 실력이 용사에 필적할 정도라고 했다.
‘용사와 일대일로 붙어서 지진 않겠지만, 용사가 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키클로테스도 부하들을 이끌고 싸울 거긴 하지만, 용사의 동료는 금발 검사뿐만 아니라 성녀와, 후방에서 따라다닌다는 마법사도 있었다.
‘압승하기 위해서는 본앰브로스와 손을 잡는 게 좋긴 할 거야.’
그렇게 결정한 키클로테스는 협공하기 위해서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본앰브로스와 약속한 뒤, 연락을 끊었다.
***
“이것들 봐라? 협공한다고?”
키클로테스가 말하는 걸 엿들은 아르칸의 얼굴이 굳었다.
소설 속 용사는 대마왕 하나를 혼자서 쓰러트렸지만, 셋이 덤볐을 때는 패배해서 목숨을 잃었다.
대마왕 둘도 상대하기 버거울 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때와 비교하면 용사가 더 약하다는 거였다.
‘그래도 지금 용사에게는 동료들이 있지.’
이번에야말로 용사를 적극적으로 도와서 용사에게는 동료가 필요하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해 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역시 대마왕 둘과 동시에 싸우는 건 싫은데. 역시 연극은 여기서 끝내야 하나? 아니지, 이제 새로운 연극을 할 때네.’
***
한편 대마왕 키클로테스는 본앰브로스와 합류하기로 한 지점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계획을 들은 키클로테스의 부하들은 기뻐하며 따라나섰다.
“드디어 골칫덩이였던 용사 녀석을 해치울 수 있겠군요!”
“하긴, 이렇게 선제적으로 공격하면 용사도 안 나타내고 배기겠습니까?”
“역시 키클로테스 님, 명안이십니다.”
“흐흐, 그렇지.”
부하들의 칭송에 키클로테스는 씩 웃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살짝 식은땀이 나는 게 느껴졌다.
그것까지 의도하지는 아니었지만, 생각해 보면 용사를 끌어내기에 이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용사는 혼자나 소수로 움직이다 보니 마계를 휘젓고 다닐 때도 그 위치를 특정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쳐들어간다면 용사도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을 터였다.
‘처음부터 이럴 걸 그랬군.’
키클로테스가 쓴웃음을 짓는 순간, 공간이 일렁이며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이건? 설마?’
키클로테스는 마력을 끌어올려 저항하면서 이 거대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것의 정체를 찾았다.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거대한 존재감만큼 그 실제 크기도 거대했으니까.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그것의 겉면은 태양 빛에 반사되어 눈부신 황금빛의 물결로 가득했다.
바로 골드 드래곤이었다.
“이 정도 크기는…… 아우리오스??”
키클로테스가 놀라는데, 아우리오스 아래로 뭔가가 떨어져 지면에 처박혔다.
흙먼지가 일었지만, 키클로테스는 그 정체를 바로 눈치챘다.
“아르칸?”
“죄송합니다! 더는 수호룡을 막을 힘이……!”
아르칸은 그렇게 외치더니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그걸 보며 키클로테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바리스탄에게 지원 요청을 했다더니, 이미 한계였나.’
키클로테스는 처음부터 아르칸이 아우리오스를 완벽히 잡아 두고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긴 했다.
그러나 무려 골드 드래곤을 잡아 둔다는 건 아르칸 스스로 자처한 임무.
그 임무를 완수하여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리할 텐데, 그 과정에서 아르칸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걸 기대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우리오스도 지칠 테니 그때 나서서 해치운다는 작전이었다.
즉, 이렇게 되는 건 예상 범위 안.
문제는 지금 용사와 싸우기 위해 본앰브로스와 합류하려는 와중이라는 거였다.
‘아니지. 당장 용사가 나타난 것도 아니니까. 본앰브로스를 불러서 이 녀석부터 잡자.’
빠르게 계획을 수정한 키클로테스는 본앰브로스에게 연락했다.
“어이, 본앰브로스. 왜 대답이 없나?”
그사이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가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적대감을 드러냈다.
“너희는 또 뭐냐? 더러운 악마족 놈들, 내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면서 입을 벌리자, 입 속에 강대한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드래곤 브레스다! 뭐 해? 어서 피하라고, 헉!”
그걸 감지한 키클로테스가 부하들에게 경고하려다가 깜짝 놀랐다. 어느새 모두 추락해 있었기 때문이다.
“큭, 어쩐지 조용하더라.”
키클로테스는 혀를 차면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드래곤 브레스의 범위에서 최대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아우리오스에게서 뿜어져 나온 드래곤 브레스가 지상을 삼켰다.
추락한 부하들이 대부분 그대로 소멸했고, 아르칸 근처에 떨어진 녀석들만 직격을 피해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젠장, 강하긴 강하군. 역시 바리스탄을 부르는 수밖에 없나.’
현재 바리스탄은 아르칸을 도우려고 남하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키클로테스가 바리스탄 대신 본앰브로스에게 먼저 연락한 것은, 먼저 만나기로 해서도 있지만.
골드 드래곤을 해치운 공로를 바리스탄과 나누기 싫었기 때문도 있었다.
게다가 가능하면 다친 아르칸도 이번 기회에 제거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래도 혼자서는 이기는 게 무리 같으니까.’
키클로테스가 입맛을 다시며 바리스탄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하는데, 본앰브로스가 응답했다.
-용사가 나타났으니까, 잔소리하지 말고 어서 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벌써 본앰브로스는 용사랑 싸우고 있는 듯했다.
“안 된다. 여기에는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가 나타났다. 아르칸이 막는 데 실패했다.”
-흠, 그래?
그렇게 말한 본앰브로스가 뭔가 계산하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말했다.
-그럼 혼자 잡는 수밖에 없겠군.
“되겠나?”
-후후, 물론이다. 조금 무리하겠지만. 너도 아우리오스를 잡으려면 무리해야 할 테니까.
그 말대로였다.
평소 대마왕들은 다른 대마왕을 견제하느라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대마왕 제니칼이 죽은 뒤, 영역을 차지한 아르칸은 이미 크게 다친 것처럼 보이는 상황.
본앰브로스도 용사와 본격적으로 싸우면 타격을 입는 걸 피할 수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키클로테스도 저 골드 드래곤을 상대로 마음껏 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변수는 대마왕 바리스탄인데, 그 성격이라면 적어도 지쳤을 때 비겁하게 뒤통수 때리진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또 배신당해도 응징할 방법도 있었다.
“좋아, 어디 한번 붙어 볼까?”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키클로테스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안광이 이글거리더니 전신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쿠쿵!
허공에 떠 있는 와중에도 지상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아우리오스가 씩 웃었다.
“좋아, 이번 전투는 아주 재밌겠는걸.”
***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인데.’
다친 척 지상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아르칸은 서로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는 키클로테스와 아우리오스를 바라봤다.
대마왕 키클로테스와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를 붙이고.
대마왕 본앰브로스는 용사와 싸우게 했다.
아버지인 대마왕 바리스탄은 이 전투에 휘말리지 않도록 위기에 처한 척 도와달라고 불렀다.
아르칸이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를 상대하기 버겁다고 하니, 무리하지 말라며 곧바로 달려오겠다고 했다.
속이는 건 미안했지만, 이 원정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과연 누가 이길까?’
대마왕과 골드 드래곤의 대결!
세기의 빅 매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전투를 직관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현재 용사와 성녀만으로는 본앰브로스에게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 아르칸이 가서 도와줘야 했다.
‘바쁘다, 바빠.’
아르칸은 할루시네이션으로 몸을 숨기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