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극변하는 전황 (2)
투명화한 상태로 전투 현장에 도착한 아르칸은 정령들에게서 전황을 듣자마자 혀를 찼다.
‘이대로라면 지겠는데.’
엘리시아가 신성력으로 언데드 군단을 쓸어버리고, 용사가 그 제자들을 해치운 것까지는 나쁘지 않은 전개였다.
다만, 본앰브로스의 전력이 아르칸이 짐작한 것보다 강했다.
제니칼보다 강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다.
‘대마왕 중에서는 제니칼이 최약체라더니만, 너무 차이가 나잖아.’
아르칸이 상정한 본앰브로스의 전투력은 제니칼보다 살짝 우위.
수많은 언데드 몬스터를 부하로 부리는, 강력한 리치킹인 걸 고려하면 특별히 잘못됐다고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불의 상급 정령 이그니스와 물의 상급 정령 나이어드가 가세해도 전세를 뒤집기는 힘들어 보였다.
반지의 봉인에서 풀려난 뒤 아르칸과 계약도 하고 세계수의 영향도 받아 더 강해졌는데, 그거로도 한참 모자랐다.
당장은 용사와 성녀 엘리시아, 불과 물 두 상급 정령이 본앰브로스와 그 부하들과 막상막하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서 보는 아르칸의 눈에는 전혀 아니었다.
본앰브로스는 여유로웠지만, 용사와 엘리시아는 지쳐 가고 있었다. 두 상급 정령의 힘도 빠르게 소진됐다. 생명력을 끌어당길 수 있는 인간계가 아니었으면 벌써 나가떨어졌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본앰브로스가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거였다.
‘아마도 대마왕 키클로테스와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의 대결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시간을 끌 생각인가 본데, 덕분에 살았어.’
키클로테스와 아우리오스 중 누가 이기더라도 양측 모두 피해가 클 게 예상되는 상황.
늦게 개입할수록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여긴 거였다.
용사와 성녀를 일찍 해치웠다면 도와주러 안 갈 수가 없었을 테니까.
본앰브로스에게 그런 꿍꿍이가 없었다면 아르칸이 오기 전에 둘 다 당했을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본앰브로스가 여유를 부리는 것처럼 아르칸에게도 남은 카드가 있었다.
“제피로스, 네가 나서야겠다.”
“네? 제가요?”
아르칸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대기 중이었던 제피로스는 깜짝 놀랐다.
형체만 대기 중인 거지 실제로는 두 상급 정령에게 힘을 보태 주고 있었다.
이런 마당에 자신이 나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정령왕이라도 되면 모를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의 마석이 필요한데, 제피로스가 알기로는 아우리오스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마석은 이번 침공을 막은 뒤에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르칸 님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말씀하셨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때였다.
“음??”
제피로스는 자신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바람의 핵에 이상을 감지했다.
바람의 핵은 생명력을 흡수해 거기에서 바람의 자연력만을 걸러서 응축해 놓은 곳.
가장 깊은 곳에 겹겹이 보호되어 있는 만큼, 큰 충격이 아니고서야 이상이 생길 리 없었다. 반대로 그곳에 타격을 입을 정도라면 소멸당할 수도 있을 정도로 위기 상황이라는 소리였다.
얼핏 마력 공유를 받았을 때와 비슷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힘이 전체적으로 강화되었기에 달랐다.
제피로스가 처음 겪는 이상 현상에 긴장하고 있는데, 아르칸이 물었다.
“느낌 어때? 내 권능으로 군주의 가호를 내렸거든.”
“군주의 가호…… 말입니까?”
군주의 가호는 아르칸이 권능 레벨이 6이 되었을 때 얻은 권능 스킬.
가호를 내린 신하를 강화한다.
문제는 이 가호를 내리기 위해서는 마정석이 필요하다는 점. 그 때문에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마왕을 상대하는 지금 안 쓰면 언제 써?’
아르칸은 그런 마음으로 마정석을 사용해 제피로스에게 가호를 내린 거였다.
그것도 무려 대마왕 제니칼의 대마왕 성에서 얻은 마정석이었다.
‘이거면 바로 정령왕이 되겠지?’
그러나 아르칸의 예상과 달리, 중급 정령에서 상급 정령이 됐을 때와 같이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진 않았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아르칸이 물었다.
“혹시 정령왕이 된 거 같아?”
“……음, 아니요. 뭔가 조금 모자란 느낌입니다.”
잠깐 고민하던 제피로스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조금 모자라? 그런 거라면 보충할 수 있지.”
아르칸은 곧바로 마력 공유로 피용의 마력을 끌어와 제피로스에게 보냈다.
‘이러면 임시적이나마 정령왕급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
이번에는 아르칸의 예상대로 됐다.
갑자기 제피로스 주위의 공기가 멈춘다 싶더니, 그 형체가 아주 거대해진 거였다.
거인족에 필적할 정도로 덩치가 커진 것과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환희에 찬 듯 떠는 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대마왕들이나 보여 줬던 존재감까지 발산했다.
“뭔가 차원이 다른 힘이 느껴집니다. 이게 정령왕의 힘…….”
감상에 젖어 있는 제피로스에게 아르칸이 외쳤다.
“이럴 때가 아니야! 가서 본앰브로스를 날려 버려!”
“알겠습니다.”
제피로스는 대답하고는 곧장 본앰브로스에게 날아갔다.
본앰브로스는 이미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는 이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는 아껴 뒀던 마력을 끌어올려 어둠의 마기를 사방에 퍼트린 뒤, 수천 개의 뼈 창을 만들어 허공에 띄웠다.
이대로 제피로스를 벌집으로 만들려고 한 거였다.
하지만.
날아오던 뼈 창들은 제피로스가 손짓하자 몰아친 바람에 흐트러지면서 서로 부딪혀 떨어졌다.
“역시 이런 장난으로는 안 되나. 내가 직접 나서 주지.”
본앰브로스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아예 제피로스에게 덤벼들어 육박전을 펼쳤다.
어차피 정령과의 대결은 힘과 힘의 대결.
자신의 마력으로 찍어 누를 작정이었다.
그사이 아르칸은 투명화한 채로 접근해 용사를 도와서 리치와 데스나이트들을 하나둘 해치웠다.
그걸 본 아르칸은 지시를 내렸다.
“엘리시아! 용사를 회복시켜 주고, 작전대로 나이어드와 함께 움직여.”
“네.”
엘리시아는 곧장 용사에게 치유의 기적을 내린 뒤, 물러났다.
“좋아, 이제 저 녀석을 해치우자!”
다시 활력을 되찾은 용사는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키며 본앰브로스에게 덤벼들었다.
그 후 전세는 완전히 역전됐다.
안 그래도 불과 물의 상급 정령에 이어 바람의 정령왕이 나타나서 상대하기 버거웠는데, 용사까지 회복해서 공격해 오자 본앰브로스가 밀리기 시작한 거였다.
“크윽, 이것들이. 나중에 두고 보자.”
본앰브로스가 분해하면서 연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마기가 되어 줄행랑치려고 한 거였다.
그러나.
“헉, 이게 어떻게 된 거냐.”
검은 연기가 된 본앰브로스는 그대로 하늘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하늘만이 아니었다. 동서남북 사방에 이어 지면으로 들어가는 길도 막혔다.
그 와중에 신성력에 당하기라도 했는지 점점 형체를 유지하는 데도 힘이 들었다.
아르칸이 미리 지시한 대로, 엘리시아가 다시 한번 축복을 내린 성수를 물의 상급 정령 나이어드가 사방에 촘촘히 흩뿌려 놓은 덕분이었다.
‘이거면 쉽게 도망 못 칠 테지.’
아르칸은 투명화한 채로 기회를 노렸다. 본앰브로스가 소멸하기 전에 막타를 쳐서 군주의 정복 스킬을 발동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어지간해서는 스킬이 발동 안 되겠지만.’
“용사님!”
엘리시아가 다시 한번 오러 블레이드에 축복을 내리고, 용사가 그렇게 신성력으로 강화된 오러 블레이드를 내찔렀다.
거기에 바람의 정령왕이 된 제피로스가 힘을 보탰다.
이 일격이라면 대마왕을 쓰러트리기 충분해 보였다.
그걸 본 본앰브로스는 최후를 직감하면서 소리쳤다.
“내 반드시 복수하겠다!”
그 순간 퍽 하고 아르칸이 전력을 끌어모은 마탄이 본앰브로스를 꿰뚫었다.
아르칸이 막타를 친 거였다.
그 직후 오러 블레이드는 움직임을 멈췄다.
아르칸이 막타를 칠 거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은 용사가, 혹시라도 본앰브로스가 마탄에 죽지 않았을 때 자신이 최후의 일격을 날린 셈이 되지 않도록 공격을 중단한 거였다.
하지만 군주의 정복 스킬은 발동하지 않았다.
‘역시 리치 상대로는 안 되는가.’
본앰브로스는 라이프베슬에 그 생명력을 보관하고 있는 불사의 존재 리치킹.
죽음의 마기로 도망치는 것까지 잡아서 제거하면 어떻게 소멸시킬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완전히 라이프베슬을 파괴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아쉽긴 해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 이번에는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다시 부활하겠지만, 타격이 크겠지.’
아르칸의 표정을 살펴보던 용사가 물었다.
“어때, 죽었어?”
“아니, 아무래도 라이프베슬을 박살 내야 할 거 같아.”
“역시 그런가.”
용사도 아쉬워했지만, 이미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해 둔 만큼 크게 실망한 기색은 아니었다.
그보다 힘든 전투를 겪은 탓인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다들 고생했어. 완전히 소멸시키진 못했지만, 대마왕을 쓰러트린 거잖아.”
“네, 아르칸 님 말씀대로예요. 용사님, 정령님들도 모두 고생하셨어요.”
엘리시아가 밝은 목소리로 말하자 한결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그때 용사가 문득 생각났는지 물었다.
“그럼 이제 언데드 군단도 철수하려나?”
“그건 아닐 거야. 통제하고 있는 네크로맨서들도 따로 있을 테니까.”
아르칸의 대답에 용사와 엘리시아의 표정이 굳었다.
아직 대마왕만 해치웠을 뿐, 침공을 완전히 막아 낸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전장은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와 악마족 대마왕 키클로테스의 대결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아르칸이 물었다.
“일단 난 아우리오스 님이 싸우는 곳으로 갈 건데, 너희는 어쩔래?”
아르칸은 아우리오스에 맞서다 쓰러진 것처럼 위장해 놓은 상황.
들키기 전에 돌아갈 필요는 있었다.
“음, 나도 한번 보고 싶어.”
“저도요. 멀리서 볼게요.”
용사와 엘리시아의 말에 아르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좀 있다가 와.”
그때 제피로스가 말했다.
“굳이 가실 필요 없을 거 같습니다.”
“왜? 벌써 전투 끝났어?”
“네, 아우리오스 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그 말에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일대일로 대마왕 중에 가장 강하다는 키클로테스를 꺾은 거였기 때문이다.
“괜히 수호룡이 아니군.”
아르칸이 감탄했다.
그때 제피로스의 말대로 저 멀리서 아우리오스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 왜 저러지?”
속도도 느리고 휘청거리면서 날아오고 있었다.
좀 더 가까워지니 왜 그런지 눈에 보였다.
황금빛 비늘이 상당히 뜯겨 나갔을 뿐만 아니라, 피부까지 찢겨서 피가 흥건했다. 날개도 성치 못했다.
그 상처투성이인 모습에서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겼다고 해서 가볍게 이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아우리오스에 비하면 이쪽은 지치기만 했을 뿐, 피해가 거의 없었다.
‘대신에 자칫 잘못하면 죽을 뻔했지만.’
그때 아우리오스가 아르칸과 그 일행을 발견하고는 천천히 내려와 착륙했다.
그러고는 당당하게 한마디 했다.
“이, 이겼다.”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혼자서 대마왕을 쓰러트리시다니, 과연 수호룡이라는 말이 붙을 만하군요.”
“와아!”
“후훗.”
아르칸과 용사가 칭송하고, 엘리시아마저 감탄성을 내자 아우리오스는 만족한 듯 웃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기절했다.
아르칸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엘리시아, 치유의 기도를 부탁해.”
“알겠습니다.”
“제피로스, 키클로테스는 어떻게 됐나? 죽진 않았지?”
“네, 도중에 도망쳤습니다. 아우리오스 님은 쫓으려다가 다른 악마족이 오는 걸 보고 후퇴하셨고요.”
“그래.”
아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우리오스가 키클로테스를 해치워도 상관은 없었지만, 아르칸은 기왕이면 자신의 손으로 쓰러트리고 싶었다.
군주의 정복 스킬도 스킬이지만, 어머니를 위협한 복수를 위해서였다.
한편 오늘 전투를 계기로 마계의 인간계 침공은 한풀 꺾였다.
덕분에 전황은 급속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