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대마왕 아르칸 (2)
마왕 케자르가 아르칸에게 일대일 결투를 제안했다는 소리에, 케자르 마왕성에 수인족 마왕들이 잔뜩 모였다.
랭킹권의 마왕만 아홉 명. 랭킹 밖의 마왕은 21명이나 됐다.
누가 보면 수인족 대마왕이 그 수하들을 불러모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실제로 이들은 아르칸을 수인족 파벌의 우두머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죽은 제니칼을 제외하고 마왕성 랭킹이 가장 높고,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케자르가 아르칸을 응징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케자르의 마왕성 랭킹은 8위.
제니칼을 제외하고 수인족 유일하게 10위권 안에 든 마왕이었다.
무엇보다 현재 아르칸 마왕성의 랭킹은 9위.
제니칼 대마왕성을 흡수했을 때 오른 순위였다.
그런 아르칸보다도 케자르의 순위가 높았다.
모인 마왕들은 당연히 케자르를 칭송하면서 아르칸을 비난하기 바빴다.
“일대일로 결투하자고 하신 건 정말 잘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아르칸이 지금 자리에 있는 건 어디까지나 그 부하들의 힘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부하들이 다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대마왕 바리스탄이 물심양면으로 챙겨 준 거겠지요.”
“그렇지. 바리스탄의 후광만 없으면 그 망나니 마왕 따위 별거 아니지.”
그때 한 마왕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바리스탄에게는 아르칸 위로 아들 둘이 더 있지 않습니까? 아르칸이 밀어줘서 저렇게 된 거라면 그 둘은 왜 안 밀어주는 거죠?”
“멍청한 녀석! 그 둘은 바리스탄이 은퇴하고 나면 그 영역을 물려받아야 하잖냐.”
“아!”
“둘 중에서 뛰어난 자질을 가진 쪽이 바리스탄의 영역을 물려받고, 나머지는 또 아르칸처럼 밀어주겠지.”
“그렇겠네요. 이해했습니다.”
그때 중앙에 있던 황금빛 갈기를 가진 수사자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자리의 주인공, 사자 수인족 마왕 케자르였다.
케자르는 특이하게도 뿔이 없었는데, 저 황금빛 갈기가 뿔을 대신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한편 케자르의 부정에 다른 마왕들이 어리둥절했다.
“그럼요?”
“아르칸이 수인족 영역을 차지하게 만들고 남은 아들에게 영역을 물려주는 건 틀림없어 보이지만, 그건 은퇴를 위해서가 아닐 거 같군. 더욱 큰 그림을 그리는 모양이다.”
“큰 그림이라면, 마계 일통이라도 노리는 겁니까?”
그 물음에 이곳에 모인 수인족 마왕들이 술렁였다.
케자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마 이곳을 완전히 차지한 다음에는 대마왕 본앰브로스나 키클로테스의 영역을 차지하려고 들겠지.”
“식량과 무기 같은 걸 뿌리면서 환심을 사는 것도 그때 동원하려고 하는 모양이군요.”
“그렇겠지. 아쉽게도 대마왕 세력 중에서는 우리가 제일 약했으니 먼저 손댄 것 같다.”
케자르의 말에 마왕들은 위기감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그런 꿍꿍이가 있다니.”
“쯧, 그것도 모르고 좋다고 식량을 받았으니 스스로가 한심하네요.”
“이번에 케자르 님이 혼쭐을 내 주셔서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케자르의 자신만만한 말에 다들 다소 분위기가 풀렸다.
“그런데 아르칸 녀석이 결투를 안 받으면 어쩌죠?”
“그러면 오히려 좋지. 그런 겁쟁이는 수인족들이 따르지 않을 테니까.”
“아, 그렇죠. 아르칸이 겁쟁이라고 떠벌리면 우리 쪽에 붙을 마왕이 더 많을 겁니다.”
그때였다.
수인족이 들어와서 알렸다.
“케자르 님! 아르칸 마왕으로부터 답변이 왔습니다! 일대일 결투를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예상 밖의 결과에 다른 마왕들이 술렁였다.
“그래? 설마 일시를 미뤄 달라고 하진 않았겠지?”
“네, 말씀하신 대로 내일 바로 붙자고 합니다.”
놀란 마왕들과 다르게 케자르는 여유롭게 대꾸했다.
“오만하군. 망나니 마왕으로 유명했던 아르칸답다고 할까?”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다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요?”
그 말에 케자르가 입꼬리를 올렸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짐작이 간다. 그러니 다들 걱정할 거 없다.”
“그렇습니까? 역시 케자르 님. 다 알고 계시는군요.”
“그래, 내 앞에서 헛소리하면 바로 깨부숴 주지.”
케자르는 자신 있게 말했다.
***
다음 날.
케자르 마왕성 인근의 작은 분지.
이 동그란 지형 밖으로 수많은 수인족이 둘러싸고 서 있었다.
이곳은 아르칸과 케자르의 결투가 치러지기로 한 장소. 다들 결투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모인 거였다.
“아르칸 님한테 블랙 드래곤이 있는데 결투가 성립되나? 예전에 굴로루스는 싸우지도 않고 꼬리를 말았잖아.”
누군가가 아르칸이 제니칼 대마왕성을 장악할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르칸에 반발하던 수인족 마왕들은 그때 대부분 꼬릴 말고 도망쳤었다.
“몰랐어? 그래서 일대일 결투를 하는 거잖아.”
“아, 그랬구나. 근데 둘이 붙으면 당연히 케자르 님이 이기는 거 아닌가?”
“원래 일대일이라면 제니칼 님도 상대하기 쉽지 않다고 했잖아.”
“맞아. 아르칸 님은 이번에 그 골드 드래곤을 막으려다가 많이 다쳤다며.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아?”
“허어, 모르는 소리. 아르칸 님이 얼마나 돈이 많은데. 회복 포션도 물처럼 쓰실 정도거든. 그 정도 상처는 진작 회복하고도 남았지.”
“그러고 보니 듣기로도 어디 상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어.”
“무엇보다 아르칸 님은 평범한 마왕들과 다르다고. 예전에는 분명 마력이 거의 없었지만, 점점 성장하고 계시다니까. 뿔만 해도 점점 커지고 있으니까.”
“그거야 원래 마왕성의 계층이 커지면 그 영향으로 마왕의 마력이 늘어나니까 그렇지. 그래 봐야 얼마나 강해졌겠어.”
다들 설왕설래하며 소란스러운 와중에, 케자르가 나타났다.
모두 입을 멈추고 케자르를 쳐다봤다.
눈부신 황금빛 갈기를 가진 수사자의 얼굴 아래, 몸은 또 단단하고 날렵해 보이는 근육질이었다. 무엇보다 그 아래의 발톱은 칼날처럼 예리했다.
케자르가 말 그대로 범상치 않은 기세를 감추지 않으며 결투장에 서자, 다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한편 주변을 둘러본 케자르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아르칸은 아직인가? 설마 이렇게 구경꾼이 많은데 도망친 건 아니겠지?”
그 말에 수인족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대마왕 제니칼이 신용사에게 사망하고, 아르칸이 제니칼의 자리를 차지한 뒤 식량과 장비, 그리고 어린이집(?)까지 여러모로 애를 썼지만.
아직 망나니 마왕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했기에 아르칸이 겁을 먹고 나타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다고 여긴 거였다.
그때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했더니, 위를 쳐다본 수인족들은 화들짝 놀랐다.
“어, 어. 저기. 저기 좀 봐.”
“저건 블랙 드래곤이잖아! 아르칸 마왕이 타고 온 건가?”
“그거 아니면 마계에 블랙 드래곤이 더 있겠어?”
그 말대로 블랙 드래곤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린다 했더니, 아르칸이었다.
아르칸은 아주 천천히 낙하하더니 케자르의 반대편에 섰다.
그 뒤에는 어느새 나타난 아르칸의 부하들이 잔뜩 늘어섰다.
“늦어서 미안. 인파가 너무 몰려서 착륙할 데가 없더군.”
“괜찮다. 일대일 결투가 겁나서 늦을 수도 있지.”
아르칸이 넉살 좋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데 대고, 케자르가 이죽거렸다.
그 말에 블랙 드래곤에 놀랐던 수인족들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어느새 해츨링 모습으로 폴리모프해서 아르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피용이 입을 열었다.
크릉.
가벼운 울음이었지만, 케자르의 뒤편에서 웃고 있던 수인족들은 뒤로 와르르 넘어졌다.
작아졌다고 해도 금방 블랙 드래곤인 모습을 본 탓에 겁을 집어먹은 거였다.
케자르마저 움찔했을 정도.
아르칸은 피용을 쓰다듬으며 달랬다.
“진정해, 진정. 그러다 드래곤 피어까지 쓰겠다.”
그 말에 겨우 넘어졌다가 일어난 수인족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괜히 한마디 더 했다가 드래곤 피어를 맞는다면 넘어지는 거로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해서였다.
‘수인족들은 가끔 힘으로 눌러 줘야 한다니까.’
그렇게 생각한 아르칸은 케자르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겁먹기는 누가 겁먹었다고 그래? 그럼 바로 시작할까?”
아르칸의 말에 케자르가 고개를 저었다.
“잠깐, 한 가지만 더 확인할 게 있다.”
“수인족답지 않게 말이 많군.”
아르칸이 투덜거리자 케자르가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 씩 웃었다.
“그쪽은 애당초 수인족조차도 아니잖아. 마인족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 네 어미가 엘프니.”
그 말에 수인족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계 엘프들은 마심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령술도 못 쓴다.
그 때문에 아주 약했고, 바리스탄 대마왕의 비호 아래 살아가고 있었다.
수인족들이 보기에는 기생하는 거나 다름없기에 아주 경멸의 대상. 그런데 아르칸이 그 마계 엘프를 피를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다들 블랙 드래곤 피용이 무서워서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아르칸을 꺼림칙하게 대했다.
한편 아르칸의 뒤에 서 있던 오웬이 침통한 목소리로 아르칸을 불렀다.
“아르칸 님…….”
“괜찮아. 어차피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였잖아.”
아르칸은 대수롭지 않은 듯 굴면서 케자르에게 물었다.
“근데 이게 지금 결투하는 데 중요한 이야기인가?”
“중요하지. 네가 정령들을 부린다고 들었거든. 엘프들의 협조를 받아서 부리는 걸 다 안다. 그러면 일대일이 아니지.”
“엘프들의 협조를 받는 게 아니라 내가 계약한 건데?”
“그걸 어떻게 믿나. 어쨌든 정령들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여기서 맹세하라.”
케자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분명 아르칸이 결투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구석은 정령들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해 두면 아르칸의 손발을 묶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결투 때 아르칸을 꺾고 나면 아르칸 밑에 붙었던 수인족들도 자신을 지지할 게 분명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칼날 같은 거친 바람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감히 우리 주군을 모욕하다니.”
분노한 제피로스가 힘을 발휘하는 거였다. 케자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거봐. 저렇게 멋대로 나서는데 일대일 결투를 하는 거라고 할 수 있겠나. 이러니까 정령들을 동원하지 말라는 거다.”
“이게 정말…….”
“참아라. 괜히 주군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밖에 안 된다.”
나이어드도 화가 났는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걸, 이그니스가 말렸다.
그제야 제피로스며 나이어드며 기운을 가라앉혔다.
그래도 화는 나는지 제피로스가 투덜거렸다.
“수인족치고는 치사하군.”
케자르는 못 들은 척하면서 아르칸을 재촉했다.
“그래서 일대일로 결투를 할 거냐, 말 거냐?”
“휴우.”
아르칸이 한숨을 내쉬는 걸 보면서 케자르는 자신이 생각한 게 옳았다고 생각했다.
‘아르칸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정령인 이상, 정령을 못 쓰게 했으니 꼬리를 말고 결투를 포기할 테지.’
그런데 아르칸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한다는데 왜 계속 물어?”
케자르는 의아했지만, 이내 아르칸이 무슨 속셈인지 깨달았다.
‘훗,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고 막상 결투에 들어가면 금방 항복할 생각인가 보네. 하지만 바로 숨통을 끊어 주마.’
그렇게 작정한 케자르는 결투가 시작되자마자 마심장에 구멍이 뚫렸다.
‘아, 아니 어떻게 된 거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눈으로 자신의 가슴팍에 생긴 커다란 구멍을 내려다본 케자르는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아르칸이 8성급 마력에 마력 공유로 피용과 정령들의 마력을 모조리 쓸어 넣은 마탄을 날린 거였다.
그 위력은 대마왕들의 등급인 9성에 필적해 8성급인 케자르를 단박에 해치우고도 남았다.
결투는 싱겁게 끝났지만, 그 장면을 본 모두 아르칸이 새로운 대마왕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