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대마왕 아르칸 (6)
어머니가 공격당하는 걸 본 아르칸은 홀드 마법을 쓰려고 했다.
잠깐 멈출 수만 있으면 피용이 쏜살같이 날아가 구하고도 남을 테니까.
하지만 마법을 발동시키기 직전, 다행히 방어막이 생겼다.
자신이 새로 드린 보호의 반지가 작동한 거였다.
하지만 계속 안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예전에 피용으로 보호막을 깨부쉈듯이 절대 방어는 아니니까 최대한 빨리 구하고 싶었다.
“피용, 위에서 보고 있다가 드래곤 브레스를 날려.”
“피피.”
피용에게 지시를 내린 아르칸이 모습을 드러내며 외쳤다.
“어머니를 공격하다니 용서 못 한다!”
“뭐라고?”
이어서 보호막을 공격하려던 악마족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때 아르칸이 외쳤다.
“피용아! 지금이야!”
동시에 하늘에서 검은 불꽃이 악마족들을 덮쳤다.
키클로테스 반대 파벌의 악마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앞선 전투의 시체들 모두 깡그리 재로 만들어 버렸다.
동시에 시커먼 매연이 피어올랐다.
그나마 탁 트인 곳이라 금방 흩어지겠지만. 어쨌든 악마족 중에 살아남은 건 아네스를 공격하느라 앞에 나온 악마족뿐이었다.
“이, 이런? 왜 갑자기 블랙 드래곤이…… 넌 대체 뭐냐.”
“방금 못 들었어?”
“저 여자의 자식이자 블랙 드래곤을 데리고 다닌다고 하면…… 아!”
그제야 악마족은 아르칸의 정체를 깨달았다.
“대마왕 아르칸?”
다른 파벌의 마인족에게 대마왕으로 불리다니.
감회가 새로웠지만, 그거랑 상관없이 청산해야 할 게 있었다.
퍽.
아르칸의 마탄에 악마족의 가슴팍이 뚫렸다.
어머니의 복수를 성공했다.
뿔을 보니 생각보다 강한 녀석은 아니었길래 마탄을 날렸는데, 한 방에 해치운 거였다.
아르칸은 아직 방어막 안에 있는 아네스를 보며 말을 걸었다.
“어머니, 많이 놀라셨죠?”
“으응, 고맙구나. 네 덕분에 살았다. 그리고 피용이도 도와줘서 고마워.”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하는 말에 아르칸은 안쓰럽다가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피용도 기분 좋은지 피피 울면서 하늘 위에서 한 바퀴 회전했다.
이내 아르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어머니,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키클로테스와 그 반대 파벌의 중하급 악마족과 마주친 거라면, 이후에는 수장들이 상급 악마족들을 이끌고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 알았어.”
아네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곧바로 방어막을 거뒀다.
“실례지만, 잠시 이 안에 계세요.”
아르칸은 어머니를 아공간 주머니를 넣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제피로스가 알렸다.
“키클로테스와 악마족 마왕 칼라드리스가 각각 부하들을 이끌고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키클로테스에게 시비를 건 마왕의 이름이 칼라드리스인 모양이었다.
‘현재 7위던가. 확실히 키클로테스에게 도전해 볼 만하네. 둘이서 실컷 다투라지.’
피용 위에 탄 아르칸의 속도는 아주 빨라서 충분히 둘의 추적을 뿌리치고 키클로테스의 영역 밖으로 나가는 게 가능했다.
‘거기서는 아버지와 함께 맞서 싸우면 되니까.’
때마침 제피로스도 희소식을 전했다.
“바리스탄 님이 마계 엘프 마을에 도착하셨습니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아르칸이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아르칸 님!”
“피핏!”
제피로스와 피용이 다급하게 외쳤다.
갑자기 소용돌이가 몰아치더니 피용이 그 소용돌이를 이용해 몸을 틀었다.
그 순간 바로 앞에 거대한 마력이 레이저처럼 쏟아져 내렸다.
여태껏 봐 왔던 모든 마력 공격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다. 피용의 드래곤 브레스보다도 훨씬 위력적이었다.
무엇보다 피용이 피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직격했을지도 몰랐다.
“이건 대체…….”
놀란 아르칸이 망연자실해하는 사이, 키클로테스가 날아왔다.
“흥, 쥐새끼가 내빼기 전에 잡았군.”
부하들은 뒤처지든 말든 아르칸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혼자서 냅다 날아온 모양이었다.
‘역시 방금의 공격은 키클로테스인가.’
아르칸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키클로테스가 비장의 무기를 숨기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위력이 너무나도 대단했다.
키클로테스가 직접 어머니를 공격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강했는데, 여기에 맞으면 보호막도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날 게 분명했다.
그때 저 앞에서 맹렬한 열기가 느껴졌다.
“키클로테스, 이쯤 하고 물러가지? 내 화가 폭발하기 전에.”
“아, 아버지?”
대마왕 바리스탄이 나타난 거였다.
키클로테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아냥거렸다.
“흐흐, 영역을 넘어오다니 나와 상대할 자신 있나 보군.”
“널 상대할 자신이야 언제든지 있지만. 지금은 영역을 넘어온 게 아니라, 그 경계선이다.”
그 말대로 영역에 줄을 그어 놓은 것도 아니니만큼, 영역 사이의 중립 영역이 제법 넓었다.
“…….”
“이대로 물러나면 아들을 공격했던 건 봐주지.”
순간 할 말을 잃은 키클로테스에게 바리스탄이 퇴로를 마련해 줬다.
화나긴 하지만, 당장은 아내의 안전을 확인하고 아들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르칸이 한마디 더 보탰다.
“한가하게 이럴 때가 아니야. 칼라드리스도 온다는데.”
까득.
그 말에 키클로테스는 이를 갈았다.
파벌 내에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를 다른 파벌의 수장들 앞에 노출한 것 자체로 치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 무례한 부하부터 손봐야겠지. 오늘은 이쯤 해야겠군.”
키클로테스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날아가 버렸다.
아르칸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바리스탄에게 말했다.
“아버지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니야. 네 어머니는?”
“아, 여기 계십니다.”
아르칸은 곧바로 아네스를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키클로테스가 나타나기 전에 가했던 공격이 마음에 걸렸던 거였다.
아르칸은 키클로테스의 공격에 깊숙이 파인 지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버지, 저 공격은 어떤 건지 아십니까?”
“저건 마신의 눈을 이용한 공격이다. 한동안은 못 쓸 테니 괜찮다.”
마신의 눈.
키클로테스가 가진 마신의 유산인 듯했다.
‘그러니 그토록 강력했겠지.’
어쨌거나 연속으로 공격 못 하는 거라면 어머니의 안전도 문제없어 보였다.
아르칸은 피용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나오라고 했다.
바리스탄은 아네스를 보자마자 반색했다.
“당신.”
“여보.”
아네스는 잠깐 바리스탄에게 안기더니, 걱정하는 얼굴로 바리스탄을 올려다봤다.
“당신, 너무 화내지 마세요.”
자신을 납치한 마계 엘프들에게 화내지 말라는 의미였다.
아르칸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한마디 거들었다.
“어머니를 납치한 마계 엘프들은 저기에서 모두 몰살당했습니다.”
“그런가. 라이넬 촌장에게 죄가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냥 넘어간다면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될 수도 있겠지.”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에 조치를 취할 거니까요.”
그 말에 바리스탄은 물론, 아네스마저도 놀란 눈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조치를 취한단 말인가.
잠깐 고민하던 바리스탄이 짐작 가는 게 있는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넌 여기서 볼일이 좀 더 있겠구나. 난 먼저 가 볼 테니, 어머니를 잘 모시거라.”
“알겠습니다.”
아르칸이 고개를 끄덕이자 바리스탄이 아네스를 바라봤다.
“오늘 많이 놀랐겠지만, 더욱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겠구려.”
“놀랄 일이요?”
“조금 있으면 알게 될 테니까. 그때의 즐거움을 위해 조금 참으시오. 그럼 이따가 보오.”
바리스탄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네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뒤늦게 깨달았는지 아르칸을 쳐다봤다.
“설마 세계수의 열매가 맺힌 거니?”
“네.”
아르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정작 아네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왜 그런지 이해한 아르칸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
아르칸이 아네스와 함께 마계 엘프 마을로 돌아가니, 모두 모여 바짝 엎드리고 있었다.
아네스가 놀라서 물었다.
“왜들 이러고 계세요?”
그러자 라이넬이 고개를 슬쩍 들어 말했다.
“다행히도 아네스 님이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처벌을 기다리는 겁니다.”
바리스탄이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한 모양.
어쨌거나 이렇게 사과하고 나오면 오히려 대놓고 화내기 힘들기도 했다.
라이넬의 연륜이 묻어 나오는 대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 아네스가 결심한 듯 아르칸을 불렀다.
“아들아, 잠시만 이야기 좀 하자.”
“네.”
대답한 아르칸은 아네스의 뒤를 따라갔다.
마계 엘프들이 대화를 못 들을 정도로 떨어지고 나서야 아네스가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이번에 얻은 세계수의 씨앗은 여기 엘프들에게 주지 않는 게 좋겠구나.”
라이넬이 동조한 건 아니라고 할지라도, 문제가 발생했는데 마계 엘프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세계수의 씨앗을 얻는 건 온당치 않다는 생각을 한 거였다.
무엇보다 아르칸이 이 세계수의 씨앗을 활용 못 하는 것도 아니고, 휘하에 엘프들도 잔뜩 있었다.
아르칸은 어머니의 결심에 새삼 놀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옳고 그름을 따져서 올바른 결정을 내린 거였다.
‘괜히 대마왕비가 되신 게 아니구나.’
안 그래도 아르칸도 좀 찜찜하긴 했다.
어머니를 생각해 세계수의 씨앗을 주려고 했던 거라, 어머니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당장 세계수의 씨앗을 넘겨줄 필요가 없긴 했다.
그때였다.
라이넬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불렀다.
“아네스 님, 아르칸 님.”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습니다.”
아네스가 일부러 차갑게 대꾸했지만, 라이넬은 물러서지 않았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사죄의 의미로 드릴 게 있습니다.”
그제야 아네스가 표정을 풀고 물었다.
“그게 뭔가요?”
라이넬은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 두 손에 올려 내밀었다.
“생명의 마석입니다. 최초의 세계수가 있던 곳에서 발생한 겁니다.”
그 말에 아르칸은 깜짝 놀랐다.
‘생명의 마석이 더 있다니!’
그거라면 다른 상급 정령들도 제피로스처럼 정령왕으로 만들 수 있었다.
아르칸은 마계 엘프들이 빈곤한 와중에도 어떤 마음으로 이 값어치 있는 생명의 마석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정령들을 저버리고 마계에 정착했던 것만큼, 나중에 정령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쓰려고 했던 거였다.
그런 귀중한 걸 사죄를 위해 내놓은 것.
아네스가 넌지시 물었다.
“아들아, 네 생각은 어떠니?”
“이 정도면 충분히 성의를 표시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네스의 물음에 아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용서해 줄 명분으로 충분했다.
아르칸은 생명의 마석이 든 주머니를 건네받고, 여전히 엎드려 있는 마계 엘프들에게 다가갔다.
“생명의 마석을 받은 거로,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겠다. 다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거야.”
“물론입니다.”
“아네스 님과 아르칸 님의 자애로운 처분에 정말 감사합니다.”
마계 엘프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아르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머니를 품 안에 넣고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럼 이것과 별개로 챙겨 온 걸 줘야겠군.”
그렇게 말하면서 작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든 걸 본 라이넬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세계수의 씨앗?”
“저, 정말 세계수의 씨앗이네요??”
“몇십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네스도 그 기간 때문에 처음에 세계수의 씨앗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깨닫지 못한 거였다.
“대신 여기에 심을 수는 없고, 내가 지정한 마왕성에 심을 예정이다. 그러려면 수인족 영역으로 넘어가야 할 텐데 괜찮아?”
“세계수와 함께할 수 있다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안 그런가?”
라이넬의 말에 모든 마계 엘프들이 찬성했다.
한편 이 일은 마계의 전역에 퍼져서 아르칸의 명성을 드높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단신으로 키클로테스의 영역으로 들어가 악마족을 소탕하고, 대마왕 키클로테스의 추격을 뿌리치고 본인의 어머니를 구해 내는 데 성공한 거였다.
그 영웅담은 모두를 감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망나니 마왕이라는 아르칸의 오명을 완전히 불식시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르칸을 만나는 이들은 모두 경의를 표하거나 칭송했다.
완전히 달라진 대우에 아르칸은 어색해하면서도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무엇보다 부모님과 형들이 아르칸이 오명을 벗고 대마왕이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거였다.
가족의 사랑과 인정.
빙의 전 아르칸이 그토록 바라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들에는 명암이 있듯이 이 일로 귀찮은 일이 잔뜩 생겼다.
그중 가장 귀찮은 건 바로 아르칸의 인기가 너무 높아졌다는 거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