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대마왕 아르칸 (7)
인기가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찮은 건 사람을 만나는 거였다.
새로운 대마왕을 만나 보기 위해 수많은 방문객이 아르칸을 찾아왔다.
혹은 커다란 연회를 열었다면서 아르칸을 초대하기도 했다.
오웬이 최대한 거절했으나, 대마왕이니만큼 모든 걸 다 피할 수는 없었다.
‘젠장, 용사가 연회 때 고생하는 걸 뒤에서 구경할 때가 좋았지.’
참고로 용사도 현재 아주 바쁘다고 했다.
마계의 침공을 막아 내긴 했지만, 그 피해도 적지 않은 데다가 결과적으로 영토도 빼앗겼다.
왕당파와 귀족파는 그 책임과 피해 보상을 어떻게 할지로 정쟁이 한창이라고 했다.
그것만이라면 용사가 바쁠 일은 없겠지만, 동시에 여신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탓에 여기저기 이교도들이 창궐하고 있다고 했다.
‘그거 바로잡지 않고 키워서 차원의 조각을 얻으면 좋겠지만, 용사는 그렇게 하지 않겠지.’
어쨌거나 그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정신이 너무 없었다.
아르칸을 찾는 게 마인족만이 아니어서였다.
마계에는 오크를 비롯해 리저드맨, 켄타우로스나 하피 등 다양한 아인족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아르칸이 고블린을 중용하고, 엘프와 드워프 들을 거둬들였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오크 로드 마왕을 만든 데 주목했다.
그동안은 망나니 마왕이라는 악명 때문에 아무래도 불안했다면, 지금은 그 위상이 완전히 달랐다.
대마왕 제니칼을 무너트리고 수인족 영역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계로 영역을 넓혔다.
거기다가 대마왕 키클로테스에게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웠다.
대마왕 아르칸이라고 불리는 데 걸맞은 힘을 증명한 상황.
그 때문에 아인족들은 아르칸에게 충성을 맹세해 오크 로드 나크룸처럼 마왕이 되는 걸 노렸다.
물론, 아르칸은 그들에게 앞으로의 성과에 따라 마왕의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온갖 혼담도 들어왔다.
마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랑감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르칸은 아직 형들도 미혼이라는 이유를 들어서 혼담을 모조리 거절했다.
그 소식에 엘프 자매들과 센시아가 내심 안도한 건 아르칸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차례 유명세를 치른 뒤에야 아르칸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바쁘긴 했지만.’
가장 신경 쓴 일은 마계 엘프들의 정착지를 결정하고 지원하는 거였다.
마계 엘프들의 정착지로 결정한 건, 오크 로드 나크룸의 마왕성.
나크룸의 마정석에 세계수를 심기로 한 거였다.
오크 로드 나크룸은 아르칸이 가진 마왕의 권능에 의해 신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크룸 그 자신도 명예를 알고 충성스러웠다.
그 때문에 이번에 인간계로 확장한 영토에 마왕성을 배치해 경계 임무를 맡길 예정이었다.
‘세계수로 강화하고 마계 엘프들이 도와준다면 정령을 이용해 임무를 수행하기 훨씬 편하겠지.’
여러 가지 이득도 있지만, 마계 엘프들의 결심이 얼마나 확고한지 시험하는 차원이기도 했다.
엘프들과 오크들은 사이가 나쁜 걸로 유명했으니까.
더군다나 마계 엘프들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오크들에게 당한 게 있어 더욱 악감정을 품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촌장 라이넬을 비롯한 마계 엘프들은 순순히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거기다가 나크룸의 마정석에 세계수의 싹을 틔우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나크룸은 아주 기뻐하면서 마계 엘프들을 칭찬했으며, 오크들이 시비 거는 일이 없도록 단속했다.
다만 당초 계획했던 것과 달리, 인간계와 인접한 곳까지 마왕성을 옮기지는 않았다.
인간계가 혼란스럽다고 하니 미리 가서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을 내린 거였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 마력 연구자이자 마법사인, 길리암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에 맡긴 본앰브로스의 영역에서 흘러들어 오는 죽음의 물 연구가 끝났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아르칸의 예상보다 놀라웠다.
***
“이걸 먹이면 몬스터를 만들 수 있다고?”
아르칸이 유리병을 흔들면서 물었다. 유리병 속 검은 물이 찰랑거리며 흔들렸다.
길리암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네. 이 물을 섭취하거나 흡수하는 경우, 체내의 피와 마력이 섞이면서 변이를 일으킵니다. 그 영향으로 몬스터가 되는 거죠. 참고로 죽음의 물이 필요한 양은 개체마다 다릅니다.”
죽음의 물에 숲이 오염되면 거기 사는 동식물이 오염되어 몬스터가 탄생한다고 짐작하는 정도였는데, 그 원리와 함께 단순히 섭취만으로도 몬스터가 된다는 걸 밝혀낸 거였다.
“용케 이런 위험한 물질을 가지고 있군.”
“원래 사령술사들은 별의별 연구를 다 하니까요.”
하지만 아르칸에게는 아주 도움이 되는 물건이긴 했다.
앞서 저주받은 숲을 토벌하면서 군주의 정복 스킬이 발동하는 것을 확인했었다.
즉, 이렇게 임의로 만든 몬스터 무리 중에 가장 강한 녀석을 해치우면, 아르칸의 마심장을 계속해서 키울 수 있다는 의미.
다만, 이 죽음의 물을 당장 무한정으로 구할 수는 없었다.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린 아르칸이 물었다.
“이 물 혹시 만들 걸까? 복제는 가능해?”
“불가능합니다. 제 분석으로는 이건 인공적으로 만든 물질이 아니거든요.”
길리암이 안 된다고 하면 정말 안 되는 거라고 봐야 했다.
‘그러면 최대한 구해 봐야겠군.’
그 말에 잠깐 고민한 아르칸이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방류되는 죽음의 물을 최대한 모으라고 해. 도린이나 브롬이랑 상의하면 좋은 방법을 마련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아르칸 님, 본앰브로스에게 앞으로 방류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다고 정말 안 하진 않을 거야. 아마 몰래 방류할 테니까 기다리기만 하면 돼.”
“아, 알겠습니다.”
아르칸의 말에 길리암이 곧바로 납득했다.
마법의 정수를 깨닫기 위해 인간의 몸을 버리고 리치가 될 정도니, 자기에게 필요하면 앞뒤 안 가릴 게 분명했다.
지시를 내린 아르칸은 다시 한번 죽음의 물을 흔들면서 고민에 빠졌다.
“그나저나 이건 대체 어디서 나온 거지?”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그것까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네.’
아르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죽음의 물을 아공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
얼음판 같은 차가운 바닥, 칠흑과 같은 어둠 속 세상.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한 본앰브로스의 실험실이었다.
그곳에 갇혀 있던 고블린들은 그곳을 감옥이라 불렀다.
철창밖에는 고블린들은 봐도 알 수 없는 장치들과 도구들이 줄지어 놓여 있고, 그 중앙에는 진찰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고블린이 머리와 목 몸통과 팔다리까지 완전히 결박된 채 난도질된 상태.
이미 심장이 느려지면서 전신이 식어 가기 시작한 그 고블린은 오히려 행복했다.
죽으면 실험이라는 명목하에 벌어진 잔혹한 고문이 끝나고 고통 속에서 해방되리라 여긴 거였다.
“……다, 다들 잘 있어. 케륵.”
테이블 위의 고블린이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눈을 뜬 채로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
“쯔쯧.”
늙은 고블린들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고블린 중에서도 그나마 오래 살아남은 이들은 여기서 죽음이 해방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체가 된 테이블 위의 고블린의 눈과 귀, 코와 입 속에서 희끄무레한 연기 같은 게 나오더니 테이블 위에 있는 장치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본앰브로스의 사령술에 의해 영혼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을 차례였다.
사령술에 문외한인 고블린에게는 불가사의한 현상이었지만, 어쩌다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고블린 귀신을 보면 죽은 뒤 평온을 찾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고블린들은 모두 죽음으로써라도 이 지옥에서 도망치려고 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온갖 실험으로 하루에 고블린 수십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그 숫자는 꾸준히 유지됐다.
따로 번식실이 있기도 했지만, 외부에서 대량으로 포획해 오는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마계 소식도 드문드문 들을 수 있었는데, 특히 아르칸을 따르던 고블린들은 늘 아르칸에게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들었어? 아르칸 님이 드디어 대마왕이 되셨대.”
“케르륵. 어쩌면 우리를 구해 주실지도 몰라.”
“헛소리 좀 그만해. 우리 같은 마계의 벌레 따위를 구하러 오실 리 없잖아.”
“무슨 소리야! 우리는 아르칸 님의 부하야. 부하가 잡혀 왔다는 걸 아신다면 반드시 구하러 오실 거야.”
고블린들이 이런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건, 마계의 모두가 고블린들을 벌레나 말하는 몬스터로 취급할 때 아르칸만은 제대로 부하 취급을 해 줬기 때문이다.
고블린을 믿고 임무를 맡기고,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며 보상도 해 줬다.
재미로 죽이려 들거나 쫓아내지 않고 영역 내에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기만 해도 감지덕지한데, 정당한 대우를 해 준 거였다.
고블린들은 처음 받는 대우에 모두 아르칸에게 충성했다.
일부 고블린은 의구심을 품기도 했었다.
한때 아르칸은 한창 망나니 마왕으로 악명을 떨쳤다. 본인의 마왕성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태로웠다.
그 부족한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잠시 이용해 먹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아르칸은 최근 수인족 영역을 차지했고, 마왕성을 수인족 영역으로 옮기고 나서도 마찬가지로 고블린들을 부하로 대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고블린들은 아르칸이 다스리는 영역을 자신과 같은 고블린들을 포함한 모든 아인종들이 동등하게 살아가는 천국 같은 곳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고블린들이 품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유일한 희망이자 꿈꿔 왔던 천국으로 갈 기회가 생겼다.
본앰브로스가 새로운 실험을 위해 고블린들을 모아 놓았을 때, 그 빈틈을 노린 한 고블린이 본앰브로스의 제자에게 덤빈 거였다.
물론, 고블린들이 모두 달려들어도 뛰어난 네크로맨서인 본앰브로스의 제자를 해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만들어 탈출할 틈을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1천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이 죽어 나갔지만, 누구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족스러운 죽음이었다고 여겼다.
적어도 이 소란 속에 죽었을 때는 그 이상한 장치에 영혼이 빨려 들어가진 않았으니까.
한편 탈출하는 데 성공한 고블린들은 지옥에서 벗어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꿈꿔 왔던 천국을 확인하기 위해 아르칸 대마왕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대마왕 아르칸에게 고블린들을 구해 달라고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그 일념으로 온갖 고생과 우여곡절을 이겨 낸 고블린들은 추격을 뿌리치고 수인족 영역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 중에 대부분의 고블린이 죽어 나가, 남은 건 고블린 블러크가 유일했다.
그렇게 수인족 영역에 도달한 블러크를 기다리는 건, 몬스터 헬하운드였다.
마인족이나 하다못해 오크라면 아르칸 님께 할 이야기가 있으니 데려다달라고 애원할 수 있을 텐데 몬스터랑 마주치다니.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끝장인가.”
그렇게 절망하는데,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헬하운드를 꿀꺽하고 삼켰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침에 고개를 들었던 블러크는 화들짝 놀랐다.
헬하운드를 삼킨 게, 블랙 드래곤이었기 때문이다.
헬하운드에 이어 블랙 드래곤이라니 설상가상이었지만, 블러크가 놀란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현 마계에 블랙 드래곤은 유일.
눈앞의 이 블랙 드래곤이 아르칸이 양녀로 삼은 블랙 드래곤 피용임이 틀림없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피, 피용 님, 아르칸 님을 뵙고 싶습니다.”
“피이?”
그 말에 피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