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7
17화 죽은 마룡의 둥지 (2)
아르칸은 소녀에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미궁 공략하러 온 거 맞아. 그냥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거든.”
“미궁에서 엄청난 보물이 나온다는 소문이 전국에 파다하게 났잖아요. 당연히 다들 몰려오죠.”
“보물?”
“네, 이미 금화를 가득 챙겨 나온 모험가들도 여럿 있다고요.”
아르칸은 그제야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소설에서 용사가 이 마룡의 둥지를 찾는 건 지금으로부터 한참 뒤.
그때 묘사된 마룡의 둥지에는 지키는 몬스터도, 보물도 없는 황량한 곳이라고 쓰여 있었다.
‘단순히 오래 방치되어서가 아니라, 이 시기에 모험가들이 휩쓸고 간 뒤라 그랬던 모양이네.’
“어차피 한몫 잡으실 테니 돈 아끼시지 말고 저희 여관에서 묵으세요!”
“한몫이라……. 그러지 뭐.”
아르칸은 소녀가 안내하는 여관으로 향했다.
가면서 미궁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미궁 입구는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데 들어가려면 모험가 관리소에서 등록한 뒤, 최소 다섯 명이 짝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안전을 위한 영주의 조치라는 거였다.
아르칸은 혀를 찼다.
“귀찮게 됐네.”
“귀찮으시면 일단 들어간 다음에 함께 들어온 셋을 제거해 버리죠.”
“됐어. 자칫 잘못하면 우리 정체가 들통날지도 몰라.”
“하긴, 조심해야겠지요.”
오웬의 과격한 발언에 기겁한 아르칸이 핑계를 대며 진정시켰다.
방을 잡은 뒤, 마을 중앙에 있다는 모험가 관리소로 가니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여기서 어떻게 파티를 구하지?’
주변을 둘러보는데, 넉살 좋게 생긴 사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기 처음 온 거 같은데 맞지?”
“어, 티가 나나?”
“딱 한 달 전 우리 모습이거든. 으하하!”
폭소를 터트렸던 사내가 엄지로 뒤를 가리키며 제안했다.
“어때? 같이 갈 사람이 없다면 우리랑 같이 가는 게. 마침 한 명이 다치는 바람에 인원이 부족해서 동료를 찾던 중이거든.”
뒤편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모험가 셋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처음부터 권유할 작정으로 접근한 듯했다.
“우리는 둘인데? 괜찮나?”
“상관없어. 노느니 한 명 몫 더 분배하고 말지 뭐. 어차피 보물만 찾으면 나누는 게 대수겠어?”
그 말에 오웬이 조용히 물었다.
“어떡하실 겁니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게다가 미궁에 대해서도 잘 아는 듯하니까.”
“하긴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아르칸이 사내에게 빙긋 웃으며 승낙했다.
“그러면 함께하지.”
“좋았어. 저기로 가자.”
사내는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데려가 차례로 소개했다.
“난 발다. 이쪽은 길립이랑 스페티야. 우리 셋은 전사고. 이쪽에 앉아 있는 친구가 길잡이인 자마트.”
발다의 동료들은 호명될 때마다 가볍게 손을 들었는데, 다들 노련한 모험가처럼 보였다.
“마법사인 아르칸이다. 이쪽은 호위 검사인 오웬이고.”
어차피 이쪽을 마인족이라고는 생각 못 할 것이기에 딱히 가명을 쓰진 않았다.
“이야, 마법사였어? 어쩐지 호리호리하더라.”
“잘됐네. 사실 마법사랑도 파티해 보고 싶었거든.”
“노년이신데도 검사로 활동하시다니, 정말 실력이 뛰어나신가 보군.”
“앞으로 잘 부탁한다.”
동료들은 웃으면서 아르칸과 오웬을 반겼다.
그대로 미궁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다음, 모험가 관리소에 파티 등록을 했다.
그 후에 권유를 받아 함께 식사도 했다.
내내 즐거운 분위기에서 웃고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다.
심지어 오웬도 웃으며 발다와 그 동료들과 어울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르칸은 오웬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아까 살벌한 소리 한 것과 달리 생각보다 인간족이랑 잘 지내길래.”
“허허, 정체를 들키면 안 된다는 아르칸 님의 뜻을 따르고자 한 것뿐입니다.”
오웬은 그러면서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실력을 보아하니, 여차하면 한칼에 제거해 버릴 수도 있고요.”
한마디로 만만한 상대라 사이좋게 어울렸다는 거였다.
‘오웬답네.’
아르칸은 피식 웃어넘기면서도 발다 일행을 떠올리며 입맛이 썼다.
‘소설에서처럼 분명 좋게 끝나진 않겠지.’
다음 날.
아르칸과 오웬은 발다 파티와 합류해서 미궁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오가는 모험가 파티를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들에게 확인하고 내부로 들어가자, 발다가 말했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봤지? 여기 지하 1층은 다 털린 지 오래고, 2층도 이제 건질 게 별로 없을 거야. 곧바로 3층으로 내려갔으면 하는데, 어때?”
“그럼, 그래야지.”
“흐흐, 말이 잘 통해서 좋군. 들었지? 자마트, 앞장서.”
“잘 따라오기나 하라고.”
자신 있게 말한 자마트는 빠르게 앞으로 나갔다.
덕분에 헤매는 일 없이 지하 2층을 지나 3층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여기도 쓸 만한 건 별로 없었어. 대박 터트리려면 역시 마룡의 보물 창고를 찾아야 해.”
“또 보물 창고 타령이네.”
“보물 창고가 정말 있긴 해? 전에도 한참 뒤졌는데 못 찾았잖아.”
발다와 전사들이 투덜거리고 있을 때, 자마트가 목소리를 낮춰 경고했다.
“조용, 저기 고블린이다.”
“마법 써 줘?”
“고블린 정도로 뭘.”
별거 아니라는 듯 아르칸에게 대꾸한 발다는 곧바로 고블린을 쫓아가서 도륙을 냈다.
그러더니 고블린을 품을 뒤적거린 후 외쳤다.
“야! 이 녀석 금화랑 황금 장신구를 들고 있다.”
“뭐라고?”
“어디 보여 줘.”
동료들은 그대로 달려가 발다가 내미는 금화와 황금 장신구를 봤다.
“정말이잖아.”
“어딘가에 정말 보물 창고가 있나 봐!”
“젠장, 이러면 입구를 안 찾아볼 수 없잖아!”
황금을 본 발다 일행은 흥분해서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뒤졌다.
그러나 한참을 뒤져도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이제 슬슬 입구를 알려 줘 볼까?’
보물 창고로 향하는 숨겨진 입구를 아는 아르칸은 모르는 척 주변의 벽을 더듬었다.
“앗, 여기 문이 열리는데?”
아르칸의 말과 함께 벽이 뒤로 밀리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뭐? 정말이잖아.”
“이야, 어떻게 발견한 거야?”
“마법사라더니, 마법이 아니라 기적을 썼네.”
발다 일행이 감탄하는 사이에 자마트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살폈다.
“함정도 없어 보이고, 이대로 내려가면 될 거 같아.”
“이럴 게 아니라, 어서 가자고!”
발다가 흥분해서는 방패를 들고 앞장섰다.
지금까지와 달리 보물 창고로 내려가는 계단은 제법 깊었다.
“이거 언제까지 내려가는 거야?”
“몰라. 그래도 이 계단 끝에 보물 창고가 있을 확률은 높을 거 같다.”
“정말?”
“그럼, 보물 창고에는 드래곤도 드나들 텐데 그러려면 천장도 높아야 할 거 아니냐.”
“하긴 그렇겠네.”
발다의 말에 다들 기대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래에서는 오크 세 마리가 있었다.
“크취익! 침입자다.”
“취익! 죽여라!”
“크취이익!”
“젠장, 오크다! 조심해!”
“어떻게 쉽게 풀린다 했다.”
“그래도 숫자는 우리가 더 많다. 겁먹을 거 없어!”
오크와 전사들이 맞부딪쳤다.
일대일로 맞붙는데, 전사들이 조금씩 밀렸다.
이대로 가면 패배할 게 분명했다.
오웬이 슬쩍 물었다.
“저도 나설까요?”
“아니, 내가 나설게.”
오웬이 나서면 오크들이야 쉽게 해치우겠지만, 실험해 볼 게 있었다.
아르칸이 게티아를 내밀며 주문을 외웠다.
“마법스크롤 작성, 홀드.”
“크취익!”
“마법이다!”
“우, 움직일 수 없어.”
홀드 마법에 걸린 오크들이 옴짝달싹 못 했다.
‘오크한테도 잘 통하는군.’
“덕분에 살았다.”
“이게 마법이라는 건가, 대단한데?”
“금방 풀리니까 어서 해치우기나 해.”
발다와 전사들을 향해 아르칸이 쏘아붙였다.
“흐흐, 알았어.”
발다와 전사들은 순식간에 옴짝달싹 못 하는 오크들의 숨통을 끊었다.
득의양양해진 발다가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어때? 내 말대로 마법사 선생님 영입하길 잘했지?”
“그래, 잘했다. 없었으면 골치 아팠을 거야.”
“우리 마법사님, 한몫 더 챙겨 드려야겠는데.”
아르칸을 찬양하는 분위기에서 발다가 눈을 감고 있는 게티아를 보며 넌지시 물었다.
“그나저나 그 마도서로 마법을 쓰는 건가?”
“내 경우는 그렇지. 왜?”
“별거 아니야, 신기해서. 그보다 어서 출발하지.”
발다는 그대로 아르칸을 지나쳐 다시 탐색에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굳게 닫힌 거대한 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자마트가 문을 보며 히죽 웃었다.
“이거 보물의 냄새가 나는데?”
“어서 열기나 해.”
“별다른 장치는 안 보이니까, 그냥 밀면 열릴 거야.”
그 말대로, 전사들이 힘을 합쳐 밀자 문이 열렸다.
문 너머로 거대한 공동이 나왔는데, 금은보화가 말 그대로 산처럼 쌓여 있었다.
발다와 동료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황금을 향해 달려갔다.
“우와아아아! 저게 다 보물이야?”
“저 황금빛 좀 봐. 너무 눈부셔.”
“미쳤다, 미쳤어. 이 정도면 성도 사겠는걸!”
“성이 뭐야, 왕국을 세울 수도 있겠다!”
오웬도 보기 드물게 흥분한 기색이었다.
“이제 마왕성의 운영비는 걱정 안 해도 되겠군요.”
“진짜라면 말이지.”
“네?”
오웬이 의아해할 때, 발다 일행의 비명이 들렸다.
“어! 뭐야?”
“다 어디 갔어?”
“으아아아아아! 내 황금 돌려내!”
그 많던 금은보화가 순식간에 사라진 거였다.
대신, 마룡의 환영이 나타났다.
【여기까지 온 너희의 용기와 모험심이 진정한 보물이다.】
마룡은 그 말만 남기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오웬이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죽고 나서도 이런 식으로 모험가를 조롱하다니. 마룡다운 악취미군요.”
‘다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아르칸은 여기에 숨겨진 진정한 보물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일단 저것들이 돌아가야 챙길 텐데, 어떻게 돌려보내지?’
한편 발다 일행은 울분에 차 소리쳤다.
“뭐? 용기?? 이 빌어먹을 마룡!!”
“눈앞에 있었으면 다시 죽여 줬을 텐데.”
“그럼 몬스터가 가지고 다니는 부스러기 외에는 보물이 없다는 소리야?”
그때 발다가 검을 아르칸에게 겨누는 게 아닌가?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네 몸값이라도 챙겨야겠다!”
“내 몸값?”
“그래, 너희 둘. 어디 지체 높으신 도련님이랑 그 경호원 아니냐? 분명 몸값도 두둑하게 내겠지.”
‘어, 그러고 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맞아.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지.”
“얌전히 있어. 마법을 쓸려고 하면 바로 베겠다.”
다른 전사들도 발다에게 동조하는 듯 무기를 들이대며 다가왔다.
하나는 게티아를 향해 검을 겨눴다.
아무래도 마법을 쓰는 방법을 물었던 것도 이럴 때를 위해서였던 모양이었다.
‘보물이 있어도 나눌 생각은 없었다고 봐야지.’
험악한 분위기에도 아르칸은 여유 있게 대꾸했다.
“돈 때문에 이러다니, 후회할 텐데?”
“뭐라고? 이게, 죽고 싶어?”
발다가 인상을 쓰는 순간, 그 가슴팍에 검이 푹 하고 꽂혔다.
오웬이 움직인 거였다.
“감히 마왕님께 검을 들이대다니, 죽음으로 그 죗값을 치르도록.”
“마, 마왕?? 마왕이 대체 왜 여기에……!”
“히익!”
“사, 살려 줘!”
다들 화들짝 놀라며 목숨을 구걸하기도 했지만, 오웬의 검은 가차 없었다.
마왕이 되어서일까?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이 죽어 나가는데도 별다른 동요가 일지 않았다.
“동료라고 했으면서 배신을 하다니, 명예를 모르는 자들이군요.”
“모험가들이 다 그렇지.”
소설 속 대부분 인간 모험가들은 이렇게 질이 나빠서 좋게 끝나는 일이 없었다.
용사가 혼자 다니는 것도 이런 식으로 당한 적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그나저나 허탕을 친 건 아무래도 아쉽군요. 음? 아르칸 님?”
손수건으로 검에 묻은 피를 닦던 오웬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르칸이 금은보화가 사라진 보물 창고 속으로 걸어가고 있어서였다.
‘왜 저러시지? 아르칸 님도 역시 충격을 받으셨나?’
오웬의 짐작과 달리 아르칸은 소설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이건 마룡이 소중히 여긴 단 하나를 위한 속임수지. 그건 바로…….’
보물 창고 반대편 끝에 도착한 아르칸은 벽을 눌렀다.
그러자 벽이 사라지면서 작은 공간이 나왔다. 그 안에는 수박만 한 커다란 알이 있었다.
마룡 크세트카흐의 알이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