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고블린과 함께 춤을 (2)
마계 북동쪽, 본앰브로스의 영역은 말 그대로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다.
아르칸도 전혀 알지 못했다.
소설 속 용사도 거기까지 가지 못하는 바람에 읽은 것도 없고, 빙의 전 아르칸이 기억하는 것도 없었다.
따로 조사하려고 해도 흘러나오는 정보도 거의 없었다.
그만큼 본앰브로스의 영역 내의 보안은 철저했는데, 그곳의 마왕들이 모두 본앰브로스의 제자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당장 본앰브로스에게 궁금한 것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
먼저 자신에게 감정해 달라고 해서 모으는 마석을 어디에 쓰려는 건지 궁금했다.
언데드 몬스터를 만드는 게 아니면, 저주 마법을 준비하는 거겠지만. 어느 쪽인지 도통 감이 안 잡혔다.
거기다가 죽음의 물도 어떻게 구한 건지. 생명의 물처럼 나오는 곳이 따로 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마신의 유산도 들고 있는 건지이지만.
‘그건 어지간해서는 알아내기도 힘들겠지.’
어쨌거나 그곳에 있던 고블린들을 구하고 그 과정에서 본앰브로스의 영역을 들쑤시면 이런저런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한편 아르칸의 말에 블러크는 감동한 나머지 이마를 지면에 박았다.
“감사합니다! 대마왕 아르칸 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저희 동족은 살았네요.”
보코마저 냉정했던 얼굴을 풀며 말했다.
“민폐를 끼치는 거라 여겼는데, 아르칸 님이 도와주신다면 걱정할 거 없지요.”
그 말을 들은 아르칸은 둘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도와준다고 했지, 구해 준다고 안 했는데?”
“케륵?”
“그게 무슨 말입니까?”
블러크와 보코가 놀란 눈으로 아르칸을 쳐다봤다.
“말 그대로야. 나는 너희가 본앰브로스 영역에 있는 고블린들을 구하는 걸 도와줄 거야. 내가 직접 구하러 가는 게 아니라.”
“그, 그런…….”
“그럼 저희가 직접 구하러 가란 말씀입니까?”
보코의 물음에 아르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구해 줘 봤자 지금 갇혀 있는 일부만 구하는 데 불과해. 근데 이번 탈출로 벌써 많이 죽었다며? 앞으로도 이런 일을 안 당하려면 스스로 구출해서 위상을 높이는 수밖에.”
“아, 그런…….”
블러크는 탄식했다.
탈출할 때도 많은 고블린이 죽어 나가 겨우 했는데, 자신들만으로 어떻게 대마왕 본앰브로스에게서 동족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답이 안 나왔지만, 그렇다고 못 하겠다고 따질 수도 없었다.
계속 잠자코 있던 피용도 그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함께 기뻐하던 보코마저 곧바로 태도를 바꿨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희가 너무 저희 편한 대로 착각했군요.”
절망적인 말이었다.
그곳에서 탈출한 고블린이라고는 자신이 전부.
이곳의 고블린들을 대표하는 보코가 포기해 버리면 그야말로 끝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르칸이 보코에게 물었다.
“그래서 구하러 갈 거야? 말 거야?”
“크흠…….”
보코는 잠깐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쉽게 결정 내릴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아르칸에게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아르칸 님, 다른 고블린들과 상의한 후 답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야. 참, 블러크도 데려가도록.”
“아, 알겠습니다.”
보코의 대답에 블러크가 피용을 쳐다봤다.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게 피용이었기 때문이다.
‘오는 동안 기절하긴 했지만.’
그 시선을 느낀 피용이 말했다.
“피이, 일단 가 있어. 나중에 보러 갈게.”
그 말에 블러크는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
고블린 장로 보코는 그전 고블린왕 토카와 달리, 중대사를 독선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도대로 결론을 유도하더라도 일단은 다른 고블린들과 의논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다만, 이번에는 자신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좋을지부터 고민이 됐다.
‘대마왕 본앰브로스의 실험실에 가서 동족을 구해 온 다라…….’
성공하기만 하면 아르칸 님의 말씀대로 고블린의 위상이 높아지는 일임은 틀림없다.
당장 아르칸 님은 고블린들을 아주 잘 대해 주시지만, 아직 아르칸 님의 영역 내 마인족이나 수인족은 고블린들을 대놓고 탐탁지 않게 보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외부로 나가면 전처럼 벌레 취급 당하기 일쑤였다.
거기다가 이번 일의 가장 큰 이점은 만약 작전에 성공했을 때도 본앰브로스의 보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그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왔다.
고블린의 강점인 숫자도 네크로맨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당장 저주 마법만 흩뿌려도 다 죽어 나갈 테니까.
아니, 고블린이 죽으면 그대로 언데드 몬스터가 되어 공격해 올 테니 오히려 단점이었다.
‘역시 안 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겠어.’
마음을 정한 보코는 블러크를 보며 말했다.
“그럼 가지.”
“네, 네.”
블러크는 황급히 대답하고 허겁지겁 보코의 뒤를 따랐다.
이들이 있던 곳은 대마왕성의 알현실.
안 그래도 체형이 작은 블러크에게는 어찌나 넓은지 한참을 뛰듯이 걸어서야 알현실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 밖은 또 어찌나 넓은지 다른 세상 같았다.
그동안은 기절한 채로 옮겨진 탓에 이제야 대마왕성의 크기를 체감하는 거였다.
‘1계층도 이렇게 넓은데, 모두 10계층이나 있다지? 정말 대단해.’
다만, 이래서 나가는 데도 한참 걸릴 거 같았다.
‘고블린 부족까지는 안 멀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어디 있지?’
“구경은 나중에 하고 어서 따라오게.”
“아, 네. 근데 저기…… 고블린 부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 내가 말 안 했던가? 2계층에 있어.”
“2계층이요? 설마, 이 대마왕성 안에 고블린 부족이 있단 말입니까?”
블러크가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실험실에서 아르칸 대마왕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들었지만, 부족이 대마왕성에 있다는 건 들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한편으로 그럴 만한 게, 이 대마왕성에 지내는 고블린은 본앰브로스 실험실에 잡혀 올 일이 없었던 것이다.
“흠, 흠. 당연하지.”
한편 놀라는 블러크는 보며 보코가 헛기침하며 잘난 체했다.
블러크가 놀란 건 그게 끝이 아니었다.
2계층의 고블린 구역으로 가자 놀랄 일투성이였다.
블러크는 보코가 번듯한 차림새를 한 건 고블린을 대표하는 장로여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나치는 고블린들도 비슷한 차림새였는데, 일부는 더 화려해 보이기도 했다.
본앰브로스 영역의 고블린들은 다른 동물들이 먹다 남긴 동물의 사체나 나무껍질을 벗겨 먹는 게 전부였다.
덕분에 대부분 블러크처럼 왜소했는데, 반면에 이곳의 고블린들은 다른 종족이라도 해도 믿을 정도로 체격도 건장하고 얼굴에 윤기가 흘렀다.
‘되게 잘 먹나 보네……. 엇, 저래도 괜찮나?’
그렇게 짐작하고 걸어가는데, 집 앞의 테이블에서 한가롭게 식사를 하는 고블린들이 눈에 들어왔다.
싱싱한 과일은 물론이거니와 썩은 냄새라고는 조금도 나지 않은 멀쩡한 고기를 반듯하게 썰어 먹고 있었다.
블러크가 놀란 건 주변에 있는 고블린들이 그 음식들을 보고서도 덤벼들지 않아서였다.
본앰브로스 영역의 고블린들이 썩은 고기라도 서로 차지하려고 싸웠던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블러크가 음식을 보며 군침을 삼키며 참고 있는데, 보코가 말했다.
“족장들이 모이는 데 시간이 좀 걸릴 테니, 다른 곳에서 좀 쉬고 있게.”
그러더니 다른 고블린을 불러서 블러크를 챙겨 주라고 맡겼다.
그 고블린은 블러크를 손님방이라는 곳으로 안내했는데, 내부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아주 깨끗했다.
심지어 아주 푹신한 소파도 있었다.
조심스레 앉아 있는데, 고블린이 블러크에게 물었다.
“케르륵, 곧 식사 시간인데 뭐 좀 드실래요?”
“식사 시간?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밥 먹는 시간 말이에요.”
“밥 먹는 시간이요?”
블러크는 이해가 안 됐다. 밥이라는 건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게 아닌가?
고블린은 이해 못 하는 블러크가 이해가 안 됐지만, 일단 다시 말했다.
“……밥 먹고 싶으시면 가져올게요.”
“네, 부탁드립니다!”
블러크가 대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방에 있는 테이블 위로 여러 음식이 올려지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진수성찬에 블러크가 놀라서 물었다.
“이건 전부 저 혼자 먹으라고 준비하신 겁니까?”
단순히 양으로 따지면 혼자가 아니라 고블린 30명이 먹을 양이었다.
반면에 혼자서 먹으면 한 달은 족히 먹고도 남을 정도.
“물론이죠. 많으시면 남겨도 됩니다.”
“남기다니요, 아깝게.”
그렇게 대꾸한 블러크는 군침을 삼키며 빵을 집어 들었다. 그대로 한 입 베어 물은 블러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엇, 이토록 맛있는 건 태어나면서 처음이야.’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지만, 그러고 있기에는 아직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잔뜩 남아 있었다.
블러크가 허겁지겁 먹는 걸 보면서 식사를 준비해 준 고블린이 걱정했다.
“천천히 드세요. 모자라면 더 준비해 드릴 테니까요.”
“으읍. 감사합, 으음.”
블러크는 입 안에 음식을 잔뜩 넣은 채로 인사했다.
하지만 더 요청할 일은 없었다.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음식을 집어넣어서 더 먹을 수 없을 지경까지 먹었으니까.
덕분에 안 그래도 볼록 튀어나온 배가 만삭의 임신부 같아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준비한 음식은 모조리 먹은 뒤였다.
그 뒤로 누워서 배를 두드리며 쉬고 있으려니, 고블린이 알렸다.
“보코 님이 회의실로 오라고 하십니다.”
“아, 네. 바로 가겠습니다.”
그대로 한숨 자고 싶었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고 그럴 수는 없었다.
힘겹게 소파에서 일어나서 회의실로 향했다.
안에는 고블린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이들은 밖의 고블린보다도 대부분 덩치가 컸는데, 하나하나가 우두머리처럼 보였다.
반면에 그들도 블러크를 관찰했는데, 블러크의 왜소한 체형과 초췌한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때 보코가 먼저 블러크를 소개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여기 이 고블린의 이름은 블러크. 대마왕 본앰브로스는 실험실을 만들어 고블린들을 잡아다가 끔찍한 실험을 하는데, 그곳에서 탈출해서 멀리 이곳까지 도와달라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블러크 자네가 하는 게 좋겠네.”
“아, 네 알겠습니다.”
블러크는 그동안의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고블린들은 본앰브로스의 악행에 분노하기도 하고, 동족이 끔찍한 고통 속에 있다는 걸 깨닫고 슬퍼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의 설명이 끝난 후.
보코는 이들을 구하는 데 아르칸 님이 도와주시기로 했는데, 우리가 구하러 갈지 말지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회의가 시작되자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저 끊임 없는 고통 속에 있는 동족을 구해 내고 고블린의 위상을 높이자는 말도.
우리 힘으로는 무리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의가 길어지는 와중에 누군가 잠자코 있는 보코에게 물었다.
“장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모두가 보코를 쳐다봤다.
보코는 아무래도 고민된다는 듯 턱 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상은 좋지만, 아무래도 현실적인 면을 무시하지 못하겠지. 솔직한 말로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이네.”
그 말에 다른 고블린들도 수긍했다.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다 보니, 동족을 구해야 한다는 측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블러크는 낙담했다.
‘이러면 구출 작전은 무산되는 건가? 어떻게 하지?’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뒤에서 익숙한 울음이 들렸다.
“피이,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블랙 드래곤 피용이었다.
고블린들은 피용이 온 걸 보고 일제히 엎드렸다.
보코도 엎드리면서 물었다.
“블랙 드래곤이시여,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왜 실패를 걱정해? 아빠가 실패할 일을 도와준다고 하겠어? 다 가능하니까 도와준다는 거겠지.”
그 말에 다른 고블린들이 납득했다.
“하긴 그렇겠네요.”
“저희 생각이 짧았군요.”
“피용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다, 다행이야.’
순식간에 여론이 반전된 걸 보고 블러크는 안도했지만, 막상 본격적인 구출 준비에 들어간 뒤 얼마 안 지나 후회했다.
지옥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제 발로 지옥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