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고블린과 함께 춤을 (5)
‘셀레니아가 과연 고블린에게 신성력을 내려 줄까?’
아르칸은 엘리시아의 모습을 한 여신 셀레니아를 살폈다.
원래는 엘리시아에게 성물과 성수를 빌려다가 고블린들에게 쓰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교도가 난립해서 곤란하다는 소식에, 아예 셀레니아더러 고블린에게 축복을 내려 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다.
전에 듣기로는 여신이 발휘할 수 있는 신력은 신도들의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다고 했다.
현재 마계의 침공으로 영토까지 빼앗기는 바람에 사람들의 신앙심이 흔들려 이교도가 난립하는 중.
당연히 신력도 낮아져 있을 게 분명했다.
아르칸은 그 빈자리를 고블린으로 메꾸라고 제안하는 거였다.
‘숫자도 많으니까 얼마나 좋아?’
한편 순간 멈칫했던 여신 셀레니아가 갑자기 웃었다.
“호호, 저런 하찮은 벌레들한테 신성력이라니 농담도 잘하는군.”
“농담 아니야. 농담하려고 엘리시아에게 부담 주면서까지 널 부른 줄 알아?”
“……진담이란 말이야?”
“그래.”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라서 농담인 줄 알았잖아. 호호.”
그렇게 웃던 셀레니아는 이내 돌변해 차갑게 쏘아붙였다.
“나를 모욕하는 거냐? 저런 하찮은 벌레들에게 내 축복을 내려 달라니.”
신용사를 뽑았을 때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말이 심했다.
아르칸은 지적하고 싸우는 대신, 살살 달랬다.
“그래도 고블린은 그 수가 많잖아. 그 많은 수가 네게 신앙심이 생긴다면 신력도 꽤 모일 거 같은데. 꽤 괜찮은 제안 아니야?”
“저런 벌레들이 아무리 많이 모여 기도해 봐야 모이는 신력도 얼마 안 된다.”
“뭐야, 단순히 숫자가 많은 거로는 안 되는 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아르칸이 낭패한 기색을 보이자, 셀레니아가 비웃으며 설명했다.
“그렇다. 신력에 보탬이 되려면 어설픈 신앙심으로는 안 된다. 아주 강하게 믿어야 하는데, 그런 믿음이 생기려면 또 그만큼 배우고 수양해야 하지.”
확실히 수시로 신전에 가서 성직자에게 설교를 들으면서 기도하고 헌금하면, 매몰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신실한 신자가 될 수밖에 없을 거 같긴 했다.
‘그렇게 시간을 쏟고 돈까지 냈는데 신앙심마저 없다면 정말 헛짓거리 한 거니까.’
아르칸이 생각에 잠겨 있는 걸 보고, 도리어 셀레니아가 제안했다.
“고블린에게 축복을 내리는 건 됐고, 이교도를 해치우는 데 힘을 보태면 도와주겠다.”
“그래, 알았어.”
아르칸은 순순히 대답했다.
굳이 고블린 성기사가 아니더라도, 여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할 때 유리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신자를 너무 많이 늘려 주는 거 같아 썩 내키지는 않았으니까.’
“그럼 기대하겠다. 대마왕 아르칸.”
셀레니아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엘리시아의 몸에서 빠져나간 듯, 힘을 잃고 쓰러지는 엘리시아를 아르칸이 잡았다.
“괜찮아?”
“아, 네. 괜찮습니다.”
엘리시아는 의식이 돌아왔는지 얼굴을 붉히며 일어섰다. 그러면서 들고 있던 성물을 떨어트렸는데, 새까맣게 변한 게 완전히 힘을 잃은 듯했다.
엘리시아의 상태를 보니, 잠시 강림한 것만으로 꽤 신체에 부담되는 모양이었다.
‘진짜 어지간하면 여신을 불러 달라고 하면 안 되겠어.’
아르칸이 속으로 다짐하고 있는데, 문득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용사의 시선이 느껴졌다.
“왜?”
“고블린에게 신성력이라니 기가 막힌 발상이었어.”
“아쉽게도 안 하기로 했으니까. 하는 수 없지.”
“칭찬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보다 순순히 대답한 게 수상쩍은데?”
“사람을 좀 믿으라고. 믿어.”
아르칸은 금방 대답한 대로 성실히 이교도를 퇴치해서 여신 셀레니아를 도울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미심쩍은 표정의 용사를 보며 아르칸은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이교도가 아직도 많아?”
“그래, 어찌나 계속해서 생기는지 골치 아플 정도다.”
“점점 은밀해질 뿐만 아니라, 잔인해지고 있어요.”
아르칸의 물음에 용사와 엘리시아가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그만큼 이교도들을 상대하느라 고생한 탓이었다.
아르칸이 넌지시 제안했다.
“다들 너무 지친 것 같은데 조금 쉬는 게 어때?”
“그랬다가는 이교도들의 세력이 부쩍 커질 거야.”
“맞아요. 악신을 소환해 버릴지도 몰라요.”
용사와 엘리시아는 절대로 안 된다며 대꾸했다.
이어서 용사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다.
“역시 대답만 순순히 하고 농땡이 치려고 그러지?”
“아니라니까. 나도 이교도 때려잡으러 갈 거야. 내가 쉬자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야.”
“다른 이유?”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조금 내버려 뒀다가 악신을 소환할 정도로 커지면 잡는 게 어때?”
“음, 차원의 조각 때문이군. 나쁘지 않은 제안 같긴 한데…….”
뜻밖에도 용사는 아르칸의 말에 동조하면서 엘리시아를 쳐다봤다.
그러나 엘리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최근에 셀레니아님의 신력이 부족하다고 난리이신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큰일 날지도 몰라요.”
“큰일이라면?”
“지금도 셀레니아님의 신력으로 다른 차원으로부터의 침공을 막고 있거든요. 그게 무너질지도 몰라요.”
한마디로 이 세계가 악신 같은 존재들의 난입에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그렇게는 되는 건 곤란하지.’
이 세계는 앞으로 아르칸이 새로운 마신으로서 살아갈 세계.
엉망이 되면 곤란했다.
용사도 이제 그 사실을 알았는지 심각한 표정이 됐다.
“그럼 바로 출발하자고. 이교도는 내가 찾아 주지.”
미련을 버리고 앞장선 아르칸은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를 불렀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이교도의 은신처가 어디야?”
“안내하겠습니다.”
제피로스가 대답했다.
***
놀랍게도 칼더 산맥 아래쪽에 있는 곳에 바로 이교도의 은신처가 하나 있었다.
곧바로 공격해서 함락시킨 후, 뒤처리를 위해 엘리시아가 성기사들을 불렀다.
용사는 뒤늦게 아연한 표정으로 은신처 내부를 살폈다.
“이런 곳에 이교도의 은신처가 있을 줄이야.”
“제피로스 님이 아니었으면 한동안 못 찾았을 거예요.”
아르칸은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력을 좀 키운 뒤에 잡아도 됐는데…….’
한편 용사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아르칸의 도움을 받으면 이렇게 편한데…….”
신용사로부터 탄압받는 드워프들을 구하면서 바람의 정령으로부터 도움을 받았기에 그 위력을 잘 알고 있어서 하는 소리였다.
“죄송해요. 아르칸 님께 도움을 받으면 안 된다는 여신님의 명령이라서요.”
“아니야. 엘리시아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그래. 여신이 거부하는 거 어쩌겠어.”
용사와 아르칸은 사과하는 엘리시아에게 말했다.
아르칸은 전부터 직접 도와주진 못하더라도 정령들에게 이교도 위치 정도는 찾아서 알려 주겠다고 했지만, 엘리시아는 여신님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아무 대가 없이 도움을 받으면 안 된다나.’
한편으로 아르칸에게 별다른 대가를 주기도 싫다고 해서 지금껏 도움을 못 주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교도가 너무 늘어나서 가릴 처지가 아닌 모양.
“아무리 기도하고 빌어도 여신은 신경도 안 쓰는데 다른 신을 믿는 게 무슨 잘못이냐!”
그때 한 이교도가 성기사에게 끌려 나가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신에 대한 믿음을 잃는 건 크게 두 가지 때문.
마계의 침공으로 인한 불안과, 신에게 아무리 빌어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불만이 쌓인 거였다.
‘이 경우에는 불만이 심해진 탓이겠군.’
아르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엘리시아가 이교도에게 다가갔다.
“진정하세요. 여신님을 믿으시면 그분이 꼭 도와주실 겁니다.”
엘리시아가 성녀답게 자애로운 얼굴로 말하자 따스한 기운이 주변을 맴돌았다.
기분이 진정되면서 마음에 온기가 돌았다.
그러나 이교도는 여전히 악을 썼다.
“이런 장난은 필요 없어. 여신이 정말 전능하다면 내가 바라는 걸 이뤄 주든가.”
“대체 뭘 원하시는데 그러시죠?”
그때 이교도를 압송하던 성기사가 말렸다.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음습한 소원일 테니까요!”
“음습하다고? 내 머리를 되찾고 싶은 게 음습하단 말이냐?”
이교도는 처절하게 외치면서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그렇게 드러난 머리카락을 본 모두는 입을 다물고 숙연한 얼굴이 됐다.
탈모가 상당히 진행되어 아주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테두리에 남은 얼마 안 되는 머리카락은 가늘고 앙상했는데, 모자에 눌러져 있던 탓에 구겨져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했다.
게다가 텅 빈 머리 중심부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도 쓸쓸해 보였다.
“어, 음…….”
엘리시아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여신의 힘을 빌려 기적을 내릴 수 있는 그녀였지만, 머리카락만은 안 됐다.
여신은 겨우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기 위해 자신의 신력을 소모하는 걸 이해 못 해서였다.
엘리시아가 좌절하고 돌아가는데, 아르칸은 여전히 악을 쓰며 끌려가는 이교도를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 발모제를 쓰면 치료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발모제 효과를 보았던 상인 데이브처럼 호감도도 급증할 게 분명했다.
인간족 데이브는 탈모를 치료해 줬을 뿐인데 마왕인 아르칸에게 가진 호감도가 99나 됐었다.
‘생명을 구해 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종교 정도는 바꾸고도 남을 게 분명해.’
그렇게 생각하던 아르칸은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거 되기만 하면 최곤데, 가능한지 한번 알아봐야겠군.’
그러면서 늘 끼고 다니는 게티아를 쳐다봤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게티아가 하나밖에 없는 눈을 끔뻑거렸다.
“크릉?”
“크릉거리는 건 그만하고, 슬슬 말할 때가 되지 않았어?”
“크르릉?”
“속여도 소용없다니까.”
“……언제부터 알았나?”
그제야 게티아가 정색하고 똑바로 말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금쯤이면 전성기 마력을 회복하고도 남았을 테니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원래 소설 속 게티아는 마왕 크로울리가 그 계약자였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똑바로 말을 했다고 나와 있었다.
그 때문에 아르칸은 처음 발견했을 때 게티아가 크릉거리며 울었던 건 마력이 부족해서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현재 게티아의 마력은 마법을 걱정 없이 써도 될 만큼 아주 많았다.
예전에는 쓰디쓴 마력초를 먹어서 간신히 마력을 늘렸다면, 어느 순간부터 한가할 때는 혼자 돌아다니면서 마력이 될 만한 걸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게티아의 정체지만.’
게티아는 단순한 마도서라고 하기에는 그 궤를 달리했다.
자아를 가진 것도 가진 거지만, 모든 걸 읽어 내는 감정 성능은 여신이 용사에게 준 전시안이 연상될 정도.
거기다가 아르칸이 계속 사용하면서 느낀 거지만, 마법서를 먹어 치움으로써 배우고 사용한다는 그 능력은 누군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거였다.
지금까지는 계약자로서 활용만 하면 됐기에 크게 신경을 안 썼다.
그러나 작가를 포함해 여신과 여러 악신들을 만나 보면서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게티아도 혹시 이 세계 밖의 존재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아르칸은 지금까지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게티아, 넌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지?”
“음, 그건 걸 대뜸 묻다니 무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말 돌리는 거 보니까 내 예상대로 다른 세계에서 온 게 맞네.”
“……그렇다.”
게티아는 순순히 인정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전혀 눈치챈 낌새가 없었는데, 어떻게 알았나?”
“여러 차원의 존재들과 부딪치다 보니까 느낌이 오더라고.”
“그런가.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지금 네 충실한 계약자니까.”
“그건 나도 아니까 너무 경계할 필요 없어. 그냥 네 정체가 내 예상대로라면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었거든.”
“뭔가? 내가 답할 수 있는 거라면 답해 주겠다.”
“내게 신앙심을 가진 신도가 모이면 여신 셀레니아처럼 신력을 발휘할 수 있나?”
아르칸의 계획은 마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
그런 만큼 이참에 아예 신격을 노려 볼 참이었다.
그때 게티아가 대답했다.
“가능하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