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벌레들의 반란 (2)
그건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네크로맨서 마왕 바로우의 마왕성이 신성력에 난도질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우의 주특기는 언데드 몬스터 소환인 만큼, 신성력에 약할 수밖에 없긴 했다.
문제는 그 신성력을 쓰며 덤벼드는 존재가 고블린들이라는 거였다.
아니, 외형만 놓고 보면 도저히 고블린 같지가 않았다.
흔히 봐 왔던 깡마르고 왜소한 고블린이 아니라, 떡 벌어진 어깨에 근육질을 가졌는데 체구도 두 배는 커 보였다.
얼핏 보면 오크라고 착각할 정도.
더욱 놀라운 건 손에는 마검을 들고 있고, 갑옷은 마갑이란다.
저 검에 닿기만 하면 뭐든지 잘려 나가고, 반대로 공격은 마갑에 막혀 아예 통하질 않았다.
심지어 무슨 영문인지 죽음의 저주도 통하지 않았다.
마치 성기사를 상대하는 듯했다.
‘설마, 이 미친 여신이 저 벌레 따위한테 축복을 내린 건가. 무르게노 녀석도, 상대가 이런 고블린이라면 진작 알려 줬어야지.’
바로우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이렇게 되기까지 일을 떠올렸다.
대마왕 본앰브로스 님이 부재중일 때는 대제자들이 영역을 나눠서 관리하는데, 이번에 이 일대의 담당이 된 게 하필 무르게노였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고블린을 연구하다가 놓치다니,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멍청한 짓이었다.
차라리 날파리나 모기를 놓쳤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아주 작고 날쌔니까.
그 후로 어찌하는지 지켜보고 있자니, 본앰브로스 님에게 자신의 치부를 어떻게든 감추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실컷 감춰 보라지. 내가 일러바칠 텐데.’
그렇게 비웃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주위가 환해졌다 했더니 신성력이 사방에 넘쳐 났다.
바로우는 여신 셀레니아가 이 일대를 성역으로 선포한 영향이라는 걸 눈치챘다.
신성력은 아주 미미했기에 딱히 타격을 입진 않았지만, 불쾌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재수가 없으려니 별의별 짓을 다 당하는군.’
그때 무르게노부터 연락이 왔다.
탈주한 고블린이 나타나 그걸 잡기 위해 직속 부하를 보냈으니 협조를 해 달라는 거였다.
‘협조는 무슨, 내가 잡아서 본때를 보여 주지!’
바로우는 신나서 부하들을 이끌고 고블린을 공격했다가 호되게 당하고 후퇴한 거였다.
그때 무르게노의 부하들이 나타났다.
‘젠장, 늦었잖아! 조금만 더 일찍 올 것이지.’
바로우는 못마땅했지만, 협력해서 저 성기사 같은 고블린들을 잡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바로우가 미처 병력을 이끌고 마왕성 밖으로 나가서 호응하기도 전에, 무르게노의 부하들은 도망친 한둘 빼고는 몰살당해 버렸다.
“제기랄!”
바로우는 욕지기를 내뱉으면서 마왕성 안으로 도망쳤다.
다른 지원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틀어박혀서 농성하기 위해서였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의외란 말이야.’
블러크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마왕 바로우가 겁쟁이처럼 도망치는 게 의외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바로 자신을 2조에 포함시킨 아르칸의 결정이 의외였다.
자신은 본앰브로스의 실험실에서 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한 고블린이니만큼, 실험실에서 동족을 구하는 임무를 맡은 1조에 배정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아르칸은 실험실의 대략적인 위치만 알려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며, 자신을 2조에 배정시켰다.
블러크는 구조 임무에서는 제외됐지만, 내심 안도했다.
사실 실험실에서 탈출할 때도 수많은 고블린들에 떠밀리다시피 나왔기에, 주위를 살필 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험실 내부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정확히 몰랐다.
그런 자신만 믿다가 헤매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던 참이었다.
‘설마 아르칸 님이 내 속내까지 아시고 그런 결정을 하신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정한 블라크는 마음을 다잡았다
‘비록 구조에 참여는 안 하지만, 구조대로 시선이 몰리지 않도록 최대한 열심히 싸우자!’
다가오는 언데드 몬스터를 마검을 휘둘러 벤 블러크는 마왕성 안으로 도망치는 마왕 바로우의 뒤를 쫓았다.
***
잠시 후.
무르게노에게 경악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마왕 바로우가 죽고, 그 마왕성도 고블린들이 정복했다는 소식이었다.
“아니, 어떻게 고블린 따위한테 마왕성이 함락당할 수 있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평소라면 어떻게 고블린한테 당하냐고 조롱하고 넘기면 됐지만, 문제는 바로우 마왕성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영역의 마왕성이라는 거였다.
심지어 바로우는 이미 죽어 버려, 그 담당인 자신만 망신당할 판이였다.
어쩌면 한창때의 망나니 마왕보다 더 조롱받을지도 몰랐다.
“제기랄! 쓸모없는 바로우 녀석 때문에 곤란해지다니.”
무엇보다 슬슬 대마왕성 제일 깊은 곳에서 칩거 중인 스승이 언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만약 나왔다가 이 난장판을 보게 된다면, 분노한 스승에게 살해당하고 자신의 영혼 또한 영원히 고통받을지도 몰랐다.
‘그, 그것만은 안 돼. 최대한 빨리 진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르게노는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한 무르게노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번 일은 내가 해결한다. 너희는 먼저 바로우 마왕성 근처로 가서 고블린들을 지켜보고 있어. 도망치면 공격해서 발을 묶고.”
“함께 안 가시고요?”
부하의 말에 무르게노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잠깐 챙겨야 할 게 있다. 금방 갈 테니까. 먼저 가 있도록.”
그렇게 말한 무르게노는 그대로 고블린 실험실로 향했다.
***
본앰브로스의 영역 내에서 양동작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아르칸도 영역 내부로 들어와서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할루시네이션을 이용한 투명화도 무적은 아니다.
눈으로는 보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 밖의 감지에는 걸리고 만다.
그 이유로 그동안 검은 안개 내부에는 잠입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성역 선포로 검은 안개를 다 몰아낸 틈을 이용해 몰래 내부로 들어온 거였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아르칸 혼자만 움직였지만, 실제로 혼자는 아니었다.
함께 온 정령들이 돌아다니면서 본앰브로스 영역 내 온갖 정보를 가져왔다.
이런 정보 수집도 아르칸이 본앰브로스의 실험실에서 고블린을 구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제법 괜찮은 정보를 얻었지.’
당장 아르칸이 얻은 정보는 다음과 같다.
먼저 본앰브로스의 현재 위치.
영역 내의 본앰브로스의 부하 대부분이 본앰브로스를 최근 들어 못 보고 있다고 했는데, 일부 존재의 말에 따르면 대마왕실 내에 있는 연구소에 틀어박혀 있는 듯했다.
그 밖에도 이 인근의 지형지물에 대한 파악도 끝났다.
추후에 본앰브로스의 대마왕성으로 쳐들어갈 때도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두 번째는 아르칸이 노리고 있는 본앰브로스의 라이프베슬이 숨겨진 위치나 마신의 유산에 관한 정보.
당연하게도 본앰브로스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라이프베슬이 숨겨진 위치에 대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알게 된 거라고는 본앰브로스의 라이프베슬이 아마도 본인 대마왕성의 마정석에 융합되어 있을 거라는 제자들의 추정이 전부였다.
마신의 유산도 행방이 묘연했다.
그런 와중에 나이어드가 아르칸이 노리고 있던 죽음의 물을 찾아냈다.
죽음의 물은 본앰브로스와 아르칸 영역 사이의 불특정 지점에서 갑자기 솟아 나온단다.
그 때문에 아르칸이 요청해 왔을 때, 본앰브로스는 부하들에게 일대를 감시해서 미리 차단하라고 했다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한마디로 의도적으로 아르칸 영역으로 흘려보내는 게 아니었다는 소리였다.
다만, 솟아 나온 죽음의 물을 쫓아가니 그 근원이 본앰브로스의 대마왕성이라고 했다.
나이어드가 죄송스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대마왕성 안으로 침입할 수 없어서 그 이상은 확인 못 했지만요.”
“아니야, 잘했어. 그것만으로 충분해.”
아르칸은 그렇게 말하면서 역시 기회가 생기면 본앰브로스의 대마왕성을 공격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나이어드가 넌지시 물었다.
“저기, 아르칸 님…….”
“응?”
“이 정도면 상을 받을 만한가요?”
그 말에 아르칸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곧바로 눈치챘다.
마계 엘프에게서 받은 생명의 마석을 노리는 거였다.
그걸 흡수할 수만 있으면 제피로스처럼 정령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받을 만하긴 한데, 다른 정령들과도 비교해 봐야 하니까 다 끝나고 보자고.”
“알겠어요.”
나이어드는 살짝 실망한 듯했지만, 순순히 납득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불의 상급 정령 이그니스와 원래 정령왕이었던 땅의 상급 정령 로카스톤까지, 노리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르칸도 생명의 마석을 갖고 뜸 들일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마신과 싸우기 전에 가능한 한 모든 상급 정령을 정령왕으로 만들어 두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추가로 생명의 마석을 찾거나 만드는 방법을 강구 중이었다.
‘마신과 싸우기 전에 넘어야 할 산이 아직 여럿 있지만.’
그때 땅의 정령 로카스톤이 알려 왔다.
“본앰브로스의 실험실 구조 파악이 끝났습니다.”
로카스톤은 그러면서 아르칸 앞에 있는 흙을 이용해 작은 스케일로 실험실 구조를 재현했다.
그 미니어처에는 각종 시설물뿐만 아니라, 네크로맨서들과 하인들, 언데드 몬스터들, 잡혀 있는 고블린들이 모두 나타나 있었는데, 더욱 놀라운 건 움직임까지 표시하고 있다는 거였다.
“대단하네. 이거 1조한테도 전달했어?”
“네. 현재 같은 걸 보고 있습니다.”
“잘했어.”
아르칸은 로카스톤을 칭찬하면서 실험실을 유심히 살펴봤다.
지상의 경비병과 별개로 이곳에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은 유령같이 실체가 없는 레이쓰와 언데드 몬스터와 한 고블린과 헬하운드 정도였다.
“이 정도면 현재 1조 전력으로도 충분히 제압 가능해 보이는군. 하인들도 걱정 없을 테고. 지금 실험실을 지키고 있는 네크로맨서들은?”
“제가 보기에는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하급 마족 정도입니다.”
“그래?”
고블린들의 탈주 사건 이후에도 실험실을 복구하긴 했지만, 경비 자체를 강화하지 않은 듯했다.
“아니, 강화한 게 이 정도인가.”
분명 원래 실험실에는 네크로맨서와 그를 돕는 하인 외에는 고블린 시체를 활용한 언데드 몬스터가 전부라고 했었다.
거기에 고블린들이 도망치려고 할 때, 공포심을 심어 줄 레이쓰와 그를 쫓은 스켈레톤 헬하운드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게 분명했다.
“어쨌든 우리한테는 잘됐어. 이대로 구조 작전을 개시하라고 해.”
그렇게 이번 작전이 순조롭게 흘러간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로카스톤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실험실 지하 3층에 갑자기 새로운 네크로맨서가 나타났습니다. 중급 마왕급입니다.”
그 말에 아르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고블린들이 성장의 물과 훈련으로 강해졌다고 해도 그 정도 상대를 이기는 건 무리였기 때문이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일단 거기로 가 보자.”
아르칸은 빠르게 본앰브로스의 실험실 방면으로 달렸다.
도착하기도 전에 로카스톤이 새롭게 나타난 네크로맨서가 지하 1층에서 구조대 1조를 모조리 해치웠다고 알렸다.
“늦었나.”
아르칸이 안타까워하는데, 제피로스가 물었다.
“이제 어떡하시겠습니까?”
“나야 이미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고블린들이 만족할는지 모르겠는걸.”
“고블린들도 마왕성을 함락했으니 만족하지 않겠습니까?”
“맞아. 그 정도면 원래 목적대로 고블린의 힘을 보여 주는 데는 충분해요.”
“비록 마왕성 랭킹에도 없는 마왕이라고 하나, 마왕을 해치운 만큼 이번에는 최초로 고블린 마왕을 탄생시켜도 될 것 같습니다.”
이그니스와 나이어드, 로카스톤까지 그렇게 나오자 아르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뭐, 그렇긴 하지.”
고개를 끄덕인 아르칸은 제피로스에게 말했다.
“2조에게 1조는 전멸했으니 철수하라고 해야겠군. 내 목소리를 전달해 줘.”
원래 2조는 단순히 주의를 끄는 역할이 전부는 아니었다.
1조가 고블린을 구조하는 데 성공하면, 고블린들을 수인족 영역으로 보내는 데 돕게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아르칸의 지시를 들은 구조대 2조원들이 뜻밖의 결정을 전해 왔다.
그리고 그 결정을 들은 아르칸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호? 이것들 봐라? 제법 근성 있는데?”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