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벌레들의 반란 (3)
바로우 마왕성 안은 고블린들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케륵! 우리가 마왕성을 함락시켰다!”
“다시는 고블린을 무시하지 마라!”
도망치던 바로우 마왕을 해치우고, 내부에서 저항하는 그 부하들도 모조리 쓰러트린 거였다.
25명에 불과한 고블린이 이뤄 낸 업적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본앰브로스 영역의 마왕성이라 가능한 쾌거기도 했다.
다른 영역의 마왕성이라면 그 휘하의 부하도 죄다 상대해야 하니까.
그러나 여긴 달랐다.
겁도 없이 앞으로 나온 바로우 마왕을 해치우자, 나머지 언데드 몬스터들은 통제에서 풀린 덕분에 끝까지 싸우지 않아도 됐다.
오히려 블러크를 비롯해 몇몇 고블린들이 가지고 있는 성물을 느꼈는지 겁먹고 도망치기 바빴다.
강제적으로 명령하지 않는 이상, 덤빌 일은 없었다.
어쨌거나 고블린만으로 처음으로 마왕성을 함락시킨 건 사실. 앞으로 고블린들 사이에서 대대손손 내려올 전설이 생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승전이 마계에 퍼지면 이곳처럼 마왕성 랭킹에 없는 하급 마왕들은 앞으로 고블린들을 마냥 무시할 수 없게 될 터였다.
그만큼 고블린들의 위상을 드높일 만한 사건이었다.
블러크는 뿌듯함을 느끼며 함께했던 다른 고블린들을 격려했다.
“다들 고생했다! 너희가 아니었으면 못 해냈을 거야.”
“케르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네가 저 마왕의 숨통을 끊어서 이길 수 있던 거였지.”
“맞아!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성공 못 했을 거야.”
“성공은커녕 진작 죽었을지도 모르지.”
그 말대로 이번 작전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오웬 님에게 철저히 훈련을 받았지만, 대부분 실전은 처음.
특히 죽음의 마기를 두른 적이 눈앞에 나타나자 대부분 당황했다. 그 음산하고 사악한 기운에 몸이 굳어 버린 거였다.
마치 공포가 심장을 움켜쥔 것만 같았다.
그때 블러크가 나서서 마검을 휘둘렀다.
블러크는 이곳에서 탈출한 만큼 죽음의 마기에 익숙했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던 거였다.
블러크의 검이 스켈레톤을 두 동강 내는 걸 본 다른 고블린들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눈앞의 언데드 몬스터가 죽음의 사신이 아니라, 쓰러트릴 수 있는 적으로 느껴진 거였다.
그 결과 대승을 거둘 수 있었고, 모두가 블러크의 말에 따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조장도 블러크로 바뀌었다.
“어, 어쨌든 이대로 마정석도 확보하자.”
다른 고블린들의 칭찬에 블러크가 쑥스러워하며 통제실로 향했다.
고블린의 마력으로는 마정석을 빼내는 건 불가능했지만, 아르칸은 당연히 마왕성 공략에 성공할 거라고 여겼는지 마정석을 뽑아내는 마도구까지 주었다.
그물과 같이 생긴 마도구로 마정석을 씌운 다음, 마정석을 빼내자, 모두 황홀한 눈빛으로 마정석을 쳐다봤다.
이 마정석만 있으면 최초의 고블린 마왕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고블린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블러크, 이거 아르칸 님한테 드릴 거지?”
“당연히 그래야지.”
“케륵, 그러지 말고 이거 들고 튀자. 이거면 어디를 가도 떵떵거리고 살 수 있어. 전과 달리 우리한테도 이제 힘이 있잖아.”
그 말을 듣자마자 블러크가 검집을 휘둘렀다.
퍽!
튀자고 권유했던 고블린이 얻어맞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블러크는 곧바로 그 고블린의 가슴팍을 발로 누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허튼소리 하지 마! 지금 우리가 이럴 수 있는 게 누구 덕분인지 다 잊었나?”
“아.”
그제야 그 고블린이 정신을 차린 듯 엎드려 빌었다.
“미, 미안하다. 순간 보물을 보고 정신이 회까닥한 거 같아.”
“케륵, 케륵! 블러크의 말이 맞아. 우리가 어떻게 아르칸 님을 배신할 수 있겠어?”
“우리가 강해진 것도 아르칸 님 덕분이잖아. 아르칸 님의 비호가 없다면 보물을 가지고 있어 봤자 뺏길 뿐일걸.”
“무엇보다 다들 고블린을 뭐라고 하겠어. 이제 배신하는 벌레라고 할 거 아니야?”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블러크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게 일단락되나 싶었을 때였다.
허공에서 아르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왕성 공략에 성공하다니 대단하군. 모두 수고했다.”
“아르칸 님 덕분입니다. 여기 마정석도 챙겨 뒀습니다.”
블러크가 대표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묻어나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아르칸의 말은 기쁨을 누리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쉽게도 1조의 구조 작전은 실패했다. 2조의 지원은 이제 필요 없으니 바로 철수하도록.”
그 말에 웃고 있던 고블린들의 얼굴이 굳었다.
“…….”
“케륵! 1조가 실패하다니, 어떻게 된 거지?”
“그럼 구조 작전은 이대로 끝이야?”
“아쉽지만 하는 수 없지. 마왕성을 함락시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긴 하잖아.”
충격에서 겨우 벗어난 고블린들이 한마디씩 할 때였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블러크가 입을 열었다.
“아르칸 님, 저희가 구출하러 가면 안 됩니까?”
“뭐라고? 블러크? 지금 무슨 소리야.”
“방금 1조가 전멸했다고 했잖아. 우리가 어떻게 이겨.”
“케륵케륵, 우리는 할 만큼 했잖아.”
놀란 고블린들이 소리치는 걸 보고 블러크가 고개를 숙였다.
“아, 미안. 내가 멋대로 정하다니 경솔했어.”
그 말에 안도하던 고블린들은 이어지는 블러크의 말에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다들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나 혼자서 갈 테니까.”
심지어 블러크는 진담인 듯 아르칸에게 애원했다.
“아르칸 님, 허락해 주십시오. 혼자서라도 가서 구출하겠습니다.”
그러자 아르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하면 충분히 성과를 이뤘는데, 구조하러 가겠다고 고집 피우는 이유가 있나?”
“아, 죄송합니다. 제 주제에 아르칸 님의 뜻에 반해 고집을 피우다니.”
“아니, 너희가 구하러 갈지 몰라서 한 소리니 신경 안 써도 된다. 그보다 이유가 궁금해서 말이지.”
“이대로 물러나면 평생 죽은 동족들이 괴로워하는 악몽에 시달릴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고블린들의 몸이 움찔했다.
그러다 한 고블린이 말했다.
“젠장,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빠지라고. 나도 간다, 가!”
“그러게, 같이 가는 수밖에 없겠는걸.”
“어차피 블러크가 구해 준 목숨이니까, 끝까지 함께하는 수밖에 없지.”
“너희들…….”
블러크가 감동한 얼굴로 동료 고블린들을 바라봤다.
그때 아르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정 난 거 같군. 그러면 곧바로 출발하도록.”
“알겠습니다!”
고블린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
아르칸의 말이 끝나자 이그니스가 우려를 표했다.
“아르칸 님, 저 고블린들이 이길 수 있을 거 같습니까? 저는 못 이길 거 같습니다만.”
“고블린들만으로는 못 이기겠지만, 저 정도로 근성을 보여 주는데 도와줘야지.”
아르칸의 대답에 제피로스가 놀라며 물었다.
“어, 도와줘도 괜찮은 겁니까?”
“본앰브로스에게 꼬리를 잡힐까 봐 조심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지금 본앰브로스는 칩거 중이라며? 게다가 몰래 도와줄 방법이 생겼거든.”
아르칸은 게티아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블러크는 고블린 실험실로 이동하면서 작전 설명을 들었다.
땅의 정령이 구체적인 내부 구조까지 나온 건물 모형을 보여 준 덕분에 이해가 쉬웠다.
고블린 실험실은 지상 1층, 지하 3층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지상 1층은 네크로맨서와 하인들의 방과 창고.
고블린의 감옥이나 실험은 주로 지하 1, 2층에서 이뤄졌다.
지하 3층에는 고블린 시체들과 언데드 몬스터들이 잔뜩 있다고 되어 있는데, 블러크도 가 본 적이 없었다.
듣기로는 1조는 정공법으로 시도했다고 한다.
실험실의 전력은 1조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지상으로 진입해 지하 2층까지 내려가서 고블린들을 구해서 탈출하기로 한 거였다.
실제로 진입 초기에만 해도 이곳을 지키고 있던 네크로맨서를 해치고 언데드 몬스터들 쓰러트리면서 작전은 순조롭게 성공하는 듯했다고 한다.
문제는 새롭게 등장한 네크로맨서 무르게노였다.
이동석을 이용해 갑작스레 나타난 무르게노는 고블린 구조대가 실험실에서 저지른 짓을 보고 분노하면서 뼈 마법으로 고블린들을 하나하나 해치워 나갔다고 한다.
고블린들은 분투했지만 마검은 그 무르게노의 뼈의 갑옷을 베지 못하고, 반대로 마갑은 뼈투창에 쉽게 뚫리다 보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성장의 물을 마신 고블린들은 그나마 버텼지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 무르게노는 현재도 지상 1층에서 머물고 있다고 했다.
이에 아르칸은 땅굴을 파고 곧바로 지하 3층으로 접근해 지하 1, 2층의 동족을 은밀히 구하라고 했다.
땅굴을 파는 건 땅의 정령, 로카스톤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용기 있게 블러크와 함께한다고 나섰지만, 그토록 강한 네크로맨서를 상대해야 걱정했던 고블린들은 그 작전을 듣고 안심했다.
아예 무르게노가 철수하길 기다리면 더 좋겠지만, 이번 성역 선포의 경우 그 효과가 한나절밖에 가지 않기에 바로 움직여야 했다.
실험실 근처에 도착하자 땅의 상급 정령 로카스톤이 조용히 굴을 파기 시작했다.
일부러 현재 고블린 중에서 가장 큰 블러크만 기준으로 통로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네크로맨서나 중대형 언데드 몬스터가 쫓아오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였다.
한창 굴을 파고 들어가던 로카스톤이 멈추며 말했다.
“지하 3층의 벽에 도달했습니다. 이 건물 내에는 마법적인 보호가 이뤄져 있어서 이 벽을 공격하면 경보가 울릴 겁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겠네요.”
“다만, 제 능력으로 은밀히 작업하면 안 들킬 겁니다.”
“아, 네.”
그렇다면 어차피 경보가 안 울리는 게 아닌가?
블러크가 로카스톤이 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 못 하고 있을 때, 로카스톤이 넌지시 말했다.
“이번 일이 성공하면 아르칸 님께 제 도움이 컸다고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아, 당연히 그래야지요.”
블러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블러크는 몰랐지만, 나이어드가 죽음의 물의 근원을 찾은 공로로 생명의 마석을 노리자, 로카스톤도 공을 내세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던 거였다.
어차피 블러크 입장에서는 큰 문제 없었다.
없는 일을 꾸며 내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큰 도움을 받았는데 그런 말을 해 주는 것쯤은 별거 아니었다.
로카스톤이 지하 3층의 벽을 변환시켜 구멍을 냈다.
동시에 안에서 끔찍한 악취가 엄습했다.
시체 썩는 냄새였다.
“크엑.”
“우에엑.”
“케륵!”
고블린들은 냄새를 맡자마자 구토하기 시작했다. 순간 참았던 고블린들도 주변에서 구토하는 모습에 결국 똑같이 구역질해 댔다.
로카스톤이 만들어 준 모형은 냄새가 나지 않기에 벌어진 참사였다.
“케르르, 여기서 빨리 벗어나자.”
그나마 구토를 참은 블러크가 핼쑥해진 얼굴로 앞장섰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던 고블린들은 지하 2층으로 올라가자 곧바로 눈빛이 돌변했다.
한쪽에서 고블린들을 묶어 놓고 피부를 벗기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구역질 나는 장면이었지만, 이번에는 살기가 그를 앞섰다.
모두 달려들어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잔혹한 짓을 저지르는 하인을 난도질했다.
그 와중에 블러크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블러크! 정신 차려!”
블러크는 동료가 소리쳐 부르고 흔들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걱정했던 대로 이곳의 끔찍했던 기억이 블러크의 머릿속을 엉클어트린 거였다.
“휴우, 미안하다.”
“정신 돌아왔으면 됐어. 그보다 어서 동족을 구해야지.”
그사이 다른 고블린들은 하인에게서 열쇠를 찾아 감옥의 문을 열었다.
“어이! 구하러 왔다! 나와!”
감옥 안에 갇혀 있던 고블린들은 그 소리를 들었음에도 눈을 끔뻑거리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답답했던 블러크가 나와서 한마디 했다.
“아르칸 님이 보내서 왔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으니 어서 탈출하자.”
다른 고블린들이 웅성거렸다.
도저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이럴 때가 아닌데. 어떡하지?’
그때 감옥에 있던 한 늙은 고블린이 말했다.
“혹시 블러크냐?”
“네, 제가 블러크입니다.”
“오오, 이럴 수가! 네가 정말 살아서 아르칸 님에게 갔구나. 거기다가 우리를 구하러 왔다니 이렇게 감격스러울 때가 있나. 뭣들 하냐, 어서 블러크를 따라가자고!”
그 늙은 고블린의 외침에 드디어 고블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배고프고 지친 터라 꾸물거렸지만, 들어온 땅굴을 통해 탈출하기 위해 지하 3층으로 하나둘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들을 도와주는 고블린 셋만 남겨 두고 블러크는 나머지 고블린들과 함께 지하 1층으로 올라갔다.
지하 2층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일하는 하인들을 해치운 뒤, 감옥 열쇠를 찾아 고블린들을 풀어 주기 위해 다가갔다.
그걸 본 감옥 안의 고블린들이 깜짝 놀라면서도 반색했다.
“헉, 또 구하러 온 거냐!”
아무것도 모르던 지하 2층 고블린들과 달리, 구조대 1조를 봤었기에 곧바로 반응했다.
“맞아, 구하러 왔다.”
“근데 어떻게 밑에서 올라온 거야?”
“지하 3층으로 땅굴을 팠다. 그러니까 어서 내려가.”
블러크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지상에서 내려오는 입구 쪽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벌레 같은 것들이 또 기어들어 오다니…….”
네크로맨서 무르게노가 나타난 거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