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벌레들의 반란 (4)
‘케륵, 저 녀석이다. 저 녀석이 이곳의 주인이야.’
블러크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어렴풋이 실루엣으로 본 것에 불과하지만, 저 신경질적인 목소리까지 더해지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자가 대마왕 본앰브로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몸이 꽁꽁 얼어붙은 듯 굳어 버렸다.
이번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대마왕 본앰브로스와 부딪치지 않는 거라고 누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고블린들이 대마왕을 쓰러트릴 정도로 강하다면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탈출 작전을 펼칠 필요도 없을 테니까.
안 그래도 1층에 강력한 네크로맨서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를 초월한 존재인 대마왕 본앰브로스가 나타나다니.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정령왕 제피로스가 귓가에 속삭였다.
“큰일이군요. 1층에 있던 무르게노가 내려와 버렸습니다.”
“케륵? 그렇다는 건 저자가 대마왕 본앰브로스가 아니라는 건가요?”
“아닙니다. 일단 리치도 아니잖아요.”
“아…….”
그제야 블러크는 자신이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일까.
분명 눈앞의 네크로맨서도 강력하다고 들었는데, 직전처럼 절망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 이자를 물리치고 고블린들을 구하는 거야.’
자신감을 되찾은 블러크가 무르게노를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려고 할 때였다.
무르게노에 가까이 있던 고블린 구조대원들이 먼저 덤볐다.
“벌레라고? 아직도 우리가 벌레로 보이나?”
“이 기회에 고블린의 힘을 보여 주겠다.”
“케륵! 어디 한번 벌레한테 당해 봐!”
다들 마검뿐만 아니라, 성물도 들고 있는 상황.
그 성물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은 고블린들의 전신에 활력을 불어 넣어 힘과 스피드를 강화했다.
무엇보다 마검에도 은은하게 신성력을 두르고 있어서 공격을 닿기만 해도 언데드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그건 죽음의 마기로 둘러싼 네크로맨서에게도 유효했다.
그러나.
가만히 있던 무르게노에게 마검을 맞혔지만, 검은 안개를 뚫지 못하고 가로막혔다.
무르게노를 멸하기에는 신성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케륵? 왜 안 통해?”
“젠장, 검이 안 빠져.”
“어떻게 된 거야??”
고블린들이 당황해서 낑낑대고 있을 때, 무르게노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흐흐, 하찮은 벌레들의 공격이 나한테 통할 줄 알았느냐?”
그 말과 동시에 고블린들의 피부가 무르게노의 손을 향해 잡아당겨지듯 쏠리더니, 이내 버티질 못하고 피부가 뜯겨 나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앗!”
“케르르르릇!”
고블린들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피부뿐만이 아니었다.
피부가 뜯겨 나간 자리에 드러난 살점과 피까지 모조리 무르게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뼈다귀만 남은 고블린들은 그대로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편 무르게노는 미소를 지으며 고블린을 흡수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후후, 마력이 늘어난 게 느껴진다. 그동안 몇백 번이나 실패했는데, 드디어 성공해 보는군.”
그 말대로 고블린을 흡수한 거였다.
저 기괴한 마법을 몇백 번이나 실패했다는 소리에 고블린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법을 시도한 만큼의 고블린이 저런 식으로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무르게노는 잠깐 고민에 빠진 듯 턱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실패했던 게 아니라, 혹시 실험에 쓰던 고블린들이 너무 약해서 마력이 늘어난 걸 못 느꼈나? 그럼 고블린들을 좀 육성해야 하나. 아니면 한 번에 흡수시키는 숫자를 늘려 볼까?”
그 소름 끼치는 소리를 들은 블러크는 언제 전의를 불태웠냐는 듯 굳은 얼굴로 바라봤다.
다른 고블린들도 마른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
그때 원래 구조대 2조 조장이었던 고블린이 말했다.
“케륵,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될 거 같아. 일단 최대한 잡혀 있는 동족들을 탈출시키면서 후퇴하자.”
“그, 그래야겠어.”
블러크도 동의했다.
혼란을 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탈출했을 때처럼 꽤 많은 고블린이 탈출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블러크는 바로 마검으로 철창문을 베며 소리쳤다.
“자! 도망쳐. 지하로 가든 지상으로 가든 알아서 도망쳐! 탈출에 성공하면 수인족 영역으로 오고!”
감옥 안에 있던 고블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모두 일전에 탈출한 걸 기억하고 다음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보며 조장 고블린이 외쳤다.
“잘했어! 우리도 어서 도망치자!”
“도망치는 건가? 헛수고인데?”
분노하며 나타났던 무르게노는 고블린 흡수의 성공으로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층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그 대처까지 여유롭지는 않았다.
무르게노가 손을 들자 금방 흡수당하고 뼈다귀만 남았던 고블린들이 몸을 일으켰다.
고블린 스켈레톤을 소환한 거였다.
그런데 소환한 고블린 스켈레톤의 모양이 독특했다.
다리가 벌레처럼 여섯 개일 뿐만 아니라, 세 개의 상체 뼈가 위로 이어 붙어 있었다.
그렇게 기다래진 상체에 팔은 여섯 개, 머리 세 개가 다른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마치 세 마리의 고블린 스켈레톤을 하나로 합체시킨듯한 모양이었다.
그 기괴한 모습에 이제 언데드 몬스터와의 전투에 익숙해졌던 구조대 고블린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나가 약하면 셋이면 조금은 쓸 만하지 않겠어? 자, 가서 도망치는 고블린들을 모조리 죽여.”
무르게노의 지시에 합체 스켈레톤이 고블린들을 향해 덤볐다.
고블린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걸 보며 의기양양해진 무르게노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는 내게 고마워해야 해. 내가 아니면 누가 벌레들을 이렇게 활용할 생각을 하겠어?”
안 그래도 제대로 먹지 못해 쇠약했던 감옥 안의 고블린들은 합체 스켈레톤에게 부딪치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렇게 쓰러진 고블린들의 피륙은 검은 안개가 되어 흩어지고 뼈다귀만 남았는데, 그 뼈다귀는 놀랍게도 합체 스켈레톤에게 달라붙었다.
그걸 반복한 합체 스켈레톤은 순식간에 덩치가 커져 오크만 해졌다.
그걸 본 조장 고블린이 나서며 외쳤다.
“젠장! 이대로 두면 다 죽겠어!”
조장 고블린은 훈련병 때 3위를 했을 정도로 우수한 전사. 거기다가 성장의 물 효과도 톡톡히 봐서 체격도 커졌다.
얼핏 보면 다 성장한 마인족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조장 고블린이 마검을 휘두르며 합체 스켈레톤에게 덤볐다.
“케룩! 나도 도울게!”
블러크가 외쳤지만, 조장 고블린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누구 하나는 고블린들을 이끌어야지. 너는 어서 다른 고블린을 데리고 어서 탈출해!”
그 말에 움직임을 멈춘 블러크는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렸다. 지하 2층으로 향하면서도 조장 고블린의 싸움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해, 해치웠다!”
잠시 후, 조장 고블린이 소리쳤다.
그가 마검으로 합체 스켈레톤을 벤 거였다.
그 후로도 방심하지 않고 합체 스켈레톤을 난도질해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여전히 무르게노는 건재하다는 거였다.
“호오, 벌레치고는 제법이잖아? 잡아다가 실험해 봐야겠는데?”
무르게노가 손을 뻗자 검은 안개가 조장 고블린을 휘감았다.
“케르륵! 놔라!”
조장 고블린이 악을 쓰면서 뿌리치려고 했다.
심지어 검은 안개가 머금고 있는 죽음의 마기에 반응해 품속에 있는 성물이 신성력을 발했지만, 잠깐 검은 안개를 흐트러트리는 데 그칠 뿐, 풀려나진 못했다.
“안 돼!”
블러크가 그걸 보고 소리치며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조장 고블린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외쳤다.
“나는 이미 늦었으니까 너만이라도 도망쳐. 동족을 하나라도 더 구해!”
블러크는 조장 고블린을 노려보다가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려 달아났다.
자신이 생각해도 저 무지막지한 네크로맨서를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대마왕 본앰브로스가 아닌 걸 눈치채고는 해볼 만하다 여겼지만, 무르게노가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내자 도저히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은 조장 말대로 고블린 하나라도 더 살리는 게 나아.’
다행히 무르게노는 고블린들이 허겁지겁 도망치는 와중에도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걸어왔다.
잠시 후.
겨우 지하 3층으로 내려간 블러크는 무르게노의 저 여유가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 깨달았다.
지하 3층에 고블린의 사체와 언데드 몬스터들이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미 전투태세를 갖추고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고블린 구조대원들은 분투했지만, 일단 언데드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중 가장 끔찍한 건 고블린들의 사체를 그대로 반죽해서 이어 붙인 듯한, 거대한 고블린 벽이었다.
그 벽 속의 고블린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그 끔찍한 모습에 일부는 굳어 버리고, 일부는 구토하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블러크가 이를 악물고 나섰다.
‘조장의 희생을 생각해서라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블러크가 마검을 휘둘러서 고블린 사체 벽을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들리는 동족의 끔찍한 비명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겨우 길을 뚫은 블러크가 있는 힘을 짜내 소리쳤다.
“자, 도망쳐!”
그러나 어느새 무르게노가 바로 뒤까지 쫓아온 참이었다.
“오호라, 재밌는 녀석이 또 있었잖아?”
그 말과 동시에 검은 안개가 주위를 휘감았다. 거기에 휘말린 고블린들은 움찔하고 굳었다.
그런 고블린들을 보며 무르게노가 실실 웃었다.
“고블린을 볼 때면 늘 이 벌레 같은 것들의 존재 의미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궁금하다 못해 잡아다가 이것저것 실험하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고블린들의 존재 의미란 바로 이 내게 힘을 주는 재료라는 걸 말이지. 벌레도 약에 쓸데 있다는 말도 있잖아.”
그 소리에 붙잡힌 채로 끌려온 조장 고블린이 악을 썼다.
“케륵, 우리는 그저 고블린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그 이유만으로 너에게 고통받고 벌레라고 조롱당하다니, 너무하지 않느냐?”
“너무하다니? 그게 이 세계의 법칙인걸?”
무르게노가 이죽거렸다.
그런 무르게노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블러크였다.
“케륵!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네가 다시는 벌레라고 조롱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겠다!”
분노한 블러크는 그대로 무르게노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르게노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이 상황에서도 움직일 수 있다니, 역시 재밌는 녀석이야. 그래 봐야 소용없지만.”
그러나 무르게노의 비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푸욱.
“어?”
블러크의 마검이 검은 안개를 뚫고 무르게노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신성력을……. 아니, 아니다. 이건 신성력이 아니야. 헉!’
그제야 눈앞의 고블린, 블러크를 똑바로 본 무르게노는 숨이 멎었다.
블러크에게 거대한 뿔이 달린 게 아닌가?
머리통만 한 뿔은 자신을 노리듯 앞으로 솟아 있는데, 그것만 봐서는 상급 마왕에 버금갈 정도였다.
“어떻게 벌레 주제에…….”
의문을 품는 순간, 거대한 마력이 무르게노를 집어삼켰다.
***
“헉. 헉.”
블러크는 전신에 식은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어디를 다치거나 피로해서는 아니었다.
엄청난 마력이 전신에 밀려 들어왔다가 무르게노를 공격하자마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블러크는 그 어마어마한 탈력감을 견디느라 애를 쓰는 중이었다.
한편 주위에 있던 고블린들은 눈앞에 벌어진 놀라운 광경에 얼떨떨해 있다가 뒤늦게 하나둘 입을 열었다.
“해, 해치웠다!”
“케륵! 케륵! 블러크가 저 사악한 네크로맨서를 해치웠다고!”
“나도 봤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검은 안개에서 벗어난 조장 고블린이 블러크에게 다가와 물었다.
“블러크,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거야?”
“모르겠어, 나도 잘…….”
겨우 입을 뗀 블러크가 말꼬리를 흐리다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아마 신께서 내게 힘을 내려 주신 거 같아.”
“신? 그 재수 없는 인간족의 여신 말인가? 재수 없긴 해도 성물의 위력이 대단하긴 했지. 네게 준 게 뭔가 특별했나 보군.”
“아니야. 그게 아니라, 아르칸 님이 힘을 내려 주신 거 같았어.”
“케륵? 그래?”
“그래, 분명해!”
이해가 안 간다는 조장 고블린과 달리, 블러크는 어느덧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 이야기를 바람의 정령을 통해 전해 들은 아르칸이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 눈치가 제법 빠른데?”
아르칸은 작전 중, 블러크의 호감도가 100이 된 걸 보고 바로 신하로 임명해 뒀다.
그러다 땅굴 밖에서 블러크가 위기에 처한 걸 보고, 군주의 권능으로 마력을 공유해 준 거였다.
정령들을 동원하면 손쉽게 해치울 수 있겠지만, 안 그래도 강력한 정령술을 쓴다고 소문난 이상.
정령이 힘을 발휘하면 아르칸이 나선 거라고 공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굳이 여신을 끌어들인 이유가 없지.’
다행히도 작전은 아르칸의 계획대로 대성공했으며, 본앰브로스도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고블린들이 본앰브로스 영역의 마왕성을 공략했을 뿐만 아니라, 본앰브로스의 대제자마저 쓰러트렸다는 소식이 마계 전역에 퍼졌다.
엄청난 소식에 모두 놀랐고 일부는 헛소문이라며 믿기를 거부했지만, 이후 대마왕 아르칸과 대마왕 본앰브로스 간 오가는 이야기에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르칸이 이번 일은 고블린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인 거라고 양해를 구한 거였다.
원한다면 보상까지 해 준다고 했다.
그러자 본앰브로스는 이번 일은 마왕성 대결의 일종에 불과한 것이라며 과한 의미 부여를 하지 말고 마무리 짓자고 답했다.
이 일련의 대화는 고블린들이 놀라운 일을 해낸 걸 증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와중에 대마왕성 내에 아르칸이 신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소문의 근원지는 이제 영웅 고블린으로 불리는 블러크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