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죽은 마룡의 둥지 (3)
마룡 크세트카흐는 알이 부화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죽을 거라는 걸 알았다.
방금 빈 보물 창고를 보여 준 환영 역시 사후에도 알을 지키기 위한 작전이었다.
‘비어 있는 창고를 더 뒤지진 않을 테니까.’
참고로 아르칸이 마룡의 알을 얻으려 하는 건, 소설에서 용사가 마룡의 알을 찾아 부화시키는 걸 읽어서였다.
눈을 뜨고 용사를 본 해츨링은 놀랍게도 용사를 어미처럼 따랐다.
처음 본 대상을 어미처럼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처럼 말이다.
아르칸은 그 각인 효과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해츨링이 태어나자마자 나를 보면? 바로 충성스러운 부하가 생기는 거지.’
그대로 신하로 임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르칸이 알을 향해 손을 뻗자 펑! 하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까처럼 마룡의 환영이 나타나 아르칸을 가로막은 거였다.
【드디어 왔는가. 오랜 기다림이었노라…… 음? 마인족??】
근엄하게 말하던 마룡 크세트카흐의 환영이 당황했다.
예상과 달리 마인족이 나타나서였다.
당황한 건 오웬도 마찬가지.
“아르칸 님, 저 환영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거 같습니다만.”
“괜찮아.”
살아 있지는 않았다.
그저 아까 봤던 것과 달리 마룡의 사념체까지 깃든 환영이기에 살아 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것뿐이었다.
‘덕분에 대화도 가능하지.’
【이놈들! 이곳의 존재는 어떻게 안 거냐?】
분노한 마룡의 기세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전신을 짓눌러 왔다.
오웬은 이를 악물며 간신히 버텼다.
“큭, 이런 위압감이……. 정말 환영이 맞는 겁니까?”
아르칸은 슬쩍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괜찮대도. 진짜 드래곤 피어를 맞았으면 나는 벌써 피를 토하고 죽었겠지. 여기 밑을 봐 봐.”
“아, 그러고 보니…….”
그제야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오웬이 바닥을 살폈다.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방금의 압박은 이 마법진이 작동한 게 분명했다.
마룡이 분한 듯 이쪽을 노려봤다.
【어떻게 안 거지? 설마 인간들이 이곳의 위치며 함정이며 다 알려 준 건가?】
아르칸은 미리 준비해 둔 변명을 읊었다.
“아니, 우연히 인간이 남긴 기록을 읽었을 뿐이다.”
【이런 멍청한 인간들이! 아무리 망각의 동물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지, 겨우 그걸 잊을까 봐 기록을 해 둬?】
인간을 하찮게 보는 마룡답게 곧바로 납득했다.
수백 년 전, 자신의 생이 끝나 감이 다가오는 걸 느낀 마룡은 자신의 자식을 지키기 위해 여러 안배를 해 뒀다.
그중 제일 핵심이 예언에 나오는 용사에게 자식을 맡기기로 한 거였다.
그걸 위해 한 인간에게 용사가 나타나면 알의 존재를 전달해 달라고 명령했다.
당연히 맨입은 아니었다.
인간의 자손이 이어져야 하니 힘과 보물을 주고,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해 귀족으로 만들었다.
‘소설에서는 안배대로 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였지.’
용사는 마룡의 계획대로 귀족에게 마룡의 알에 대한 전설을 전해 듣고 이곳까지 찾아온다.
마룡은 자신이 바라던 대로 용사가 온 걸 보고 기뻐하며 자식을 잘 부탁한다고 힘까지 준다.
그 후 용사는 알을 부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알에서 나온 해츨링은 용사를 매우 따랐다.
용사도 그런 해츨링에게 마음을 열고 함께 모험에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나름대로 용사에게 동료를 붙여 주려는 작가의 안배였겠지.’
처음에는 그렇게 잘 풀리는 듯했다.
문제는 그 후의 일이었다.
용사가 자신을 시기하는 인간 세력의 함정에 빠졌을 때, 해츨링이 용사를 구한다고 자신을 희생한 거였다.
최후의 순간 해츨링이 ‘……아빠, 사랑해.’ 하면서 죽는 장면에서는 아르칸도 눈물을 쏟았었다.
그 사건으로 죄책감을 느낀 용사는 더욱 성격이 어두워져 다시는 다른 이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
【그래서 내 알을 가져갈 거냐?】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거니까.”
【…….】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데려가서 어엿한 드래곤으로 잘 키워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아르칸은 속으로 덧붙였다.
‘내 부하로서지만.’
그래도 용사에게 갔다가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
마룡은 무서운 눈빛으로 한참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흠,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거 같군.】
마룡이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는 건 알았지만, 아르칸은 개의치 않았다.
‘안 믿어도 알을 가져가는 걸 막을 수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아르칸이 계속 마룡을 안심시키고 설득하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네 진심은 알겠다만,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는군. 내 자식을 무사히 부화시키고 드래곤으로 성장할 때까지 돌보겠다고 피의 맹세를 해라! 그러면 네게 힘을 주겠다!】
‘됐다!’
아르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또 피를 봐야 하는 건 싫었지만, 꼭 얻어야 할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오웬은 반대했다.
“안 됩니다. 마룡과 피의 맹세라니요. 자칫 문제라도 생기면…….”
“문제없을 테니까, 나를 믿어.”
용사가 해츨링을 못 지켰음에도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아마 마룡의 자식을 해코지한다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 맹세를 어긴 거라고 여기지 않는 듯했다.
아르칸은 마룡이 딴소리하기 전에 손가락 끝에 상처를 낸 뒤 앞으로 내밀었다.
“피의 맹세를 하겠다.”
【좋다.】
아르칸의 피가 바닥에 떨어지자, 지면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아르칸을 삼켰다.
“아르칸 님!”
“괜찮아. 계약한 것뿐이니까.”
아르칸은 게티아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됐어. 마룡의 가호를 얻었다.’
[마룡의 가호] [위대한 마룡 크세트카흐의 가호를 받은 자는,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게 된다.]이건 단순히 담력이 세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모든 정신 공격을 무효화할 정도로 강력한 방어 스킬이었다.
‘소설에서는 용사가 이것 덕분에 드래곤 피어까지 막아 냈지.’
거기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바닥에는 마법서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아르칸은 펼쳐 보지 않아도 뭔지 알았다.
바로 5써클 마법 할루시네이션이 적혀 있는 마법서였다.
이 마법을 쓰면 지금까지 마룡이 선보였던 것처럼 생생한 환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용사도 이 마법을 얻었지만, 거의 써먹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써먹어야지.’
아르칸이 마법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게티아, 먹어!”
“크릉!”
게티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서를 낚아채서 꿀꺽 삼켰다.
그때 마룡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내 아이를 부탁한다.】
“어, 잠깐…….”
놀란 아르칸은 뒤늦게 불렀지만, 마룡의 환영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마룡의 환영이 사라지는 걸 보고 안심하던 오웬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그건 아니고. 이름을 뭐라고 지을지 물어본다는 걸 깜박했네.”
“아, 그렇군요. 자식의 생존이 중요하지, 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음, 그럴지도.”
아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소설 속 용사도 이름을 못 들었으니까.
다만, 용사의 네이밍 센스는 최악이라서 해츨링이 태어난 뒤 고심 끝에 용용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마 마룡도 그걸 알았으면 이름을 지어 놓고 갔을 테지만. 그보다 괜찮은 이름을 생각해야겠네.’
아르칸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룡의 알을 집어 들었다.
“이제 돌아가자. 그 전에 챙길 것도 챙기고.”
아르칸은 발다와 그 동료들이 가진 것들을 챙겼다.
한 달 동안 이곳을 드나들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는지 금붙이를 제법 들고 있었다.
그러고는 알이 있던 곳 뒤로 난 통로를 통해 마룡의 둥지를 빠져나왔다.
* * *
5일 뒤.
마왕성으로 돌아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센시아와 트릴은 마룡 둥지의 보물이 환영이었다는 말에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그 후에 함께했던 인간족들이 배신했다는 말에 화를 내기도 했다.
“그 돈이면 일급 용병도 고용 가능했겠네요.”
“우와! 그렇게 돌변했다고요? 역시 인간족 놈들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요. 여기 오기 전에 일 하나 같이한 적이 있는데 왜 그렇게 통수를 치는지…….”
그러다가 마룡의 알을 얻었다는 말에 다들 호기심을 보였다.
“이게 마룡의 알……. 동그란 게 귀엽네요.”
“근데 이거 수백 년 동안 알 상태로 있는 거 아닙니까? 부화는 어떻게 시켜요?”
“다 방법이 있지.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얼마 안 남았다고요?”
반문하는 센시아를 보며 아르칸은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곧 아르칸이 넘어야 할 진정한 난관이 다가올 시기였기 때문이다.
* * *
그 후로 아르칸은 고블린들이 알아서 바치는 사체를 통해 얻은 마력으로 마왕성을 확장했다.
여유 자금으로는 병력 모집을 했지만, 그간의 명성(?) 덕분에 잘 모이지 않았다.
‘당장에 병력은 크게 의미가 없긴 하지.’
그러고 열흘 뒤.
트릴이 허겁지겁 달려와 보고했다.
“고블린들 말로는 인간족이 이쪽으로 오고 있답니다. 그것도 혼자서요.”
“혼자? 아르칸 님이 말한 그자인가?”
미리 언질받았던 센시아는 그대로 아르칸에게 전달했다.
아르칸은 심각한 얼굴로 지시를 내렸다.
“다들 내가 전에 말한 대로 마왕성을 나가 있도록.”
“아르칸 님…….”
“이번 일에 대해서는 이견은 듣지 않는다.”
오웬의 걱정에도 단호하게 말한 아르칸은 마정석으로 마왕성 바깥을 바라봤다.
‘드디어 오는군. 용사.’
* * *
“쩝, 마왕성 랭킹이 있을 정도라니. 이놈의 세계는 마왕이 많아도 너무 많아.”
용사 김용사는 혀를 찼다.
이번에 마왕성 랭킹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용사는 기겁했다.
마신 밑에 4명의 대마왕을 포함해 무려 100위까지 집계한다는데, 랭킹 밖의 마왕까지 따지면 그 숫자가 수백은 된다는 게 아닌가.
마신과 그 휘하에 마왕이 서너 명 정도 되는 줄 알았던 용사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에잇, 닥치는 대로 해치워 나가면 언젠가는 다 끝장낼 수 있겠지.’
안 그래도 이 외딴곳에도 마왕성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해치우려고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좀 이상하네.’
여기서부터는 마계의 영역이라 고블린이 활개 치는 건 당연했지만, 숫자가 제법 많았다.
자기들 딴에는 숨는다고 숨었지만, 여신에게 받은 권능, 전시안이 있는 용사에게는 다 보였다.
문제는 이 고블린들이 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오고 있다는 거였다.
마치 감시하는 것처럼.
거슬렸지만, 신경 끄기로 했다.
‘마왕도 많은데, 고블린까지 일일이 다 못 해치워. 마왕부터 친다.’
잠시 후.
마왕성 앞에 도착한 용사는 당황했다.
“왜 아무도 없지?”
분명 자신이 온다는 걸 고블린에게 전해 들었을 텐데, 방어하러 나온 병력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어서 들어오라는 듯 입구도 열려 있었다.
‘무슨 속셈이지.’
용사는 경계하면서 마왕성 안으로 들어갔다.
전시안으로 살펴봤지만, 놀랍게도 마왕성 내부에는 쥐 새끼 한 마리 안 보였다.
‘설마 마왕성을 버리고 도망갔나?’
그러나 좀 더 들어가자 저 멀리서 마왕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음, 마왕은 남아 있었군.’
사정이 어떻든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던 용사는 번개처럼 내달려 오러를 두른 검을 휘둘렀다.
‘벴다! 아니??’
분명 마왕의 허리를 베어 위아래로 반 토막 냈다고 생각했던 용사는 깜짝 놀랐다.
마왕이 그대로 연기처럼 흩어졌기 때문이다.
‘환상? 내 전시안을 속일 정도라니……. 이게 이 마왕의 권능인가? 그보다 본체는 어딨지?’
용사가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는데, 뒤에서 마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나랑 같이 일 하나 하자.”
“뭐?”
뜬금없는 제안에 용사는 당황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