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왜 자꾸 잘되는데? (1)
블러크는 고블린들의 영웅이 됐다.
끔찍한 고블린 실험실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갖은 노력 끝에 강해진 다음 다시 고블린 실험실로 돌아가 동족을 구해 왔다.
그것도 대마왕 본앰브로스의 대제자를 쓰러트리고 말이다.
고블린 역사상 이보다 더 영웅적인 서사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고블린들은 모두 블러크를 영웅으로 추켜세웠다.
그리고 그런 블러크는 아르칸을 신으로 여겼다.
“케륵! 이번에 아르칸 님의 힘을 체험해 보니 깨달을 수 있었어. 아르칸 님은 정말로 위대하신 분이라고. 아르칸 님을 따르면 우리 고블린도 위대해질 수 있어. 아니, 고블린들이 위대해지려면 아르칸 님을 진심으로 찬양하고 숭배해야 해.”
처음에 고블린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칸은 다른 마왕과 다르게 고블린들을 무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블린들의 든든한 후견인이었다.
심지어 대마왕 본앰브로스의 고블린 실험실에서 동족을 구하는 데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줬다.
그만큼 고블린들은 모두 대마왕 아르칸의 은혜에 고마워할 뿐만 아니라, 그 인격을 존경했다.
그런데 블러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뭔가 이상했다.
“케륵! 케륵! 그 인간족의 신전처럼 우리도 아르칸 님을 위한 신전을 세우고, 모여서 찬양해야 해.”
“신전? 그냥 술집에서 우리끼리 아르칸 님을 위해 건배하면서 떠들면 되는 거 아닌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어떻게 술집에서 아르칸 님을 섬길 수 있어. 그러면 신성 모욕이야!”
“신성 모욕? 어, 너 설마 아르칸 님을 섬긴다는 게 신으로 모신다는 거였어?”
“케륵! 당연하지.”
그렇게 블러크는 진심으로 아르칸 님을 대마왕이 아니라, 신으로 여기고 있었다.
다른 고블린들은 의아해했다.
“케륵? 대마왕 아르칸 님이 신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인가?”
“지금 봐 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아르칸 님으로부터 온 거나 마찬가지 아니야? 거기다가 여신처럼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신비로운 힘을 부여하는 축복까지 내려 주신 걸 보면, 신이 분명해.”
성역 선포는 아르칸이 직접 한 게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다들 긴가민가하는 와중에, 한 고블린이 장로인 보코에게 달려가 블러크의 주장이 맞는지 물었다.
보코는 잠자코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블러크 자네가 경험한 그 신비로운 능력은 권능이 아닐까?”
“케륵? 권능은 마법이 아니었나요?”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오해했지만, 마법은 아르칸 님께서 항상 들고 다니시는 마도서를 통해 쓰시는 거라고 여겨지네. 그 능력이야 어쨌든 아르칸 님은 마신을 믿을 텐데, 신이 다른 신을 믿는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어.”
하지만 블러크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소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케르르, 그것도 일리가 있군. 확실한 건 아르칸 님께 물어보는 수밖에.”
다만, 아르칸은 구조 이후 본앰브로스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뒷수습하느라 아주 바빠 물어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사이 대마왕성의 고블린들은 블러크의 업적을 기리고, 새롭게 합류한 실험실 출신 고블린들을 위해 축제를 열었다.
심지어 블러크는 자신을 위한 축제 자리임에도 아르칸을 찬양하길 바빴다.
그렇게 영웅 고블린이 계속 떠들다 보니 어느새 다른 고블린들도 아르칸을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매일 블러크가 만든 임시 신전에 모여서 아르칸을 찬양했다.
이 일을 보고받은 아르칸이 머리를 긁적였다.
“나를 위한 신전이라니 쑥스럽긴 하지만, 그 마음은 기특하니 일단 내버려 둘까.”
블러크가 어느 순간 신도가 된 걸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기껏해야 신도가 한 명 늘어난 것뿐이었으니까.
고블린 장로 보코의 말대로 대륙에서 여신을 믿지 않는 나머지가 이단이라면, 마계의 신으로는 모두 마신을 꼽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아르칸이 신을 자처하고 신도를 모은다고 해서 딱히 모일 것 같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마계에서는 본격적으로 포교할 생각은 없었다.
괜히 포교했다가 망나니 마왕 때의 버릇을 못 고치고 기행을 저지른다고 비웃음당하거나, 마신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며 마신을 추종하는 다른 마왕들이 불쾌해할 수도 있었다.
어지간한 건 무시하면 되지만, 마신의 극렬한 추종자라고 할 수 있는 대마왕 키클로테스가 공격해 올 수도 있었다.
반대로 나중에 이걸 이용해 키클로테스를 도발할 수 있는 상황이라, 당장 내세우지 않은 거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 뒤.
신도가 많이 늘었다고 게티아가 알려 줘서 보니, 정말로 고블린들이 잔뜩 신도로 등록되어 있었다.
심지어 호감도가 신하가 될 정도로 높은 고블린들도 다수 생겼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설마 블러크의 설득력이 그렇게 뛰어났나?”
곰곰이 생각해 보던 아르칸은 이내 자신이 간과하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대머리들은 성장의 물로 구원해 주고 신도로 만들었다.
그걸 생각하면 고블린들은 이미 그에 상응하는 구원을 받은 상황.
아르칸을 신으로 의식해서 모시고 따라야겠다고 마음먹기 시작하면 신도가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음, 그나저나 이거 생각보다 쓸 만한걸.”
신과 관련된 부분을 떠올리며 게티아를 들춰 보던 아르칸이 중얼거렸다.
신하를 임명하면 신하의 마력 일부분을 아르칸이 얻는다.
그러나 원체 마력이 적은 고블린을 신하로 임명해 봐야 그 효과는 미미하다.
물론 신하로 임명하면 마력 공유를 해 줄 수 있고, 군주의 깃발 같은 군주 스킬로 버프를 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 해도 강적과의 전투에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는 것.
다만, 신도로서는 제법 유용하다고 할 수 있었다.
여신 셀레니아는 고블린들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무시했지만, 아르칸을 신으로 모시는 고블린들은 달랐다.
가장 열정적인 추종자라고 할 수 있는 블러크를 필두로, 아르칸의 그동안의 행적과 거기서 나왔던 말들을 묶어서 경전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걸 보코가 읽고 기도를 올리며, 아르칸을 위해 공물까지 바친다고 했다.
덕분에 기도가 끝난 후 보내온 공물들이 점점 쌓여 가고 있다.
놀라운 건 대부분 문맹인 고블린들이 경전을 읽고자 글자를 배우는 중이라는 거였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야.’
그 덕분인지 신력 모이는 게 아주 쏠쏠했다.
간단한 축복이나 기적은 이제 쓸 수 있게 됐고, 이대로 계속 모아 나가면 이번에 본앰브로스 영역에서 활동하는 데 아주 유용했던 성역 선포까지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력이 많이 모이는 걸 수치로 보니, 아르칸도 의욕이 생겼다.
“좋아, 이렇게 된 김에 본격적으로 고블린의 신이 되어 볼까?”
대머리들의 신으로 시작한 마당에, 고블린들의 신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믿음이 아주 강한 경우에는 자연스레 신도가 되지만, 아르칸이 알아본 바로는 믿음이 다소 부족한 경우에도 신도로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그건 바로 세례를 내리는 거였다.
아르칸은 아예 대마왕성 내에 신단을 짓고 고블린들을 모아 세례를 내렸다.
이미 신도인 고블린들은 세례를 받고 기뻐하면서 더욱 열정적으로 찬양했고.
아직 믿음이 부족한 고블린들도 세례를 받고, 함께 기도하다 보니 자연스레 신앙심이 깊어졌다.
다만, 이번에도 직접 나서서 설교한다든가 하진 않았다.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것도 하는 거지만, 딱히 종교를 믿어 본 적이 없는데 괜히 앞에서 떠들다가 실없는 소리로 신도 앞에서 체면 구기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거기다가 블러크처럼 신하로 삼을 수 있는 고블린들은 모두 신하로 삼았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아르칸이 대마왕성에 자신을 위한 신전까지 만들자 당연히 다른 부하들의 귀에도 들어갔는데, 그 때문에 난리가 났단다.
‘이런, 괜한 짓 한다고 뭐라 하려나?’
아르칸은 괜스레 걱정했지만, 난리가 난 이유는 아르칸의 걱정과 정반대였다.
***
가장 먼저 찾아온 건 오웬이었다.
“아르칸 님, 대단한 일을 벌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응.”
괜히 찔린 아르칸이 눈치 보며 대답했다.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자신의 신전을 스스로 만든다고 생각하자 멋쩍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대마왕성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오웬에게도 알리지 않고, 고블린 영역 옆에다가 작게 지은 참이었다.
‘그래도 당연히 오웬의 귀에 들어가겠지.’
그때 오웬이 고개를 숙였다.
“아르칸 님, 죄송합니다.”
“응? 뭐가?”
“제가 고블린들을 훈련시키느라 바쁘다 보니 신경 써 드리질 못해서 직접 신전을 지으라고 지시한 거 아닙니까?”
“음, 그런 면도 있긴 하지.”
점잖고 신사적인 오웬도 고블린들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막상 훈련시키다 보니 블러크를 비롯해 쓸 만한 재목을 여럿 발견한 거였다.
그러다 보니 재미가 들렸는지, 작전 이후에도 고블린들을 데리고 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르칸은 오웬의 반응을 보고는 넌지시 물었다.
“신전 만든 건 어때? 괜찮아?”
“이미 신도도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강제도 아니고 열렬히 추종하는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시다니 정말 너그러우십니다.”
“그, 그래?”
그 정도까지는 생각 안 했는데 왠지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그동안 고블린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 기댈 곳이 생긴 것이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오웬이 정말 긍정적으로 여기는 듯해서 안도하고 있으려니, 오웬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섭섭한 점이 하나 있긴 합니다.”
“뭐, 뭐가?”
“저 오웬은 오래전부터 아르칸 마왕성의 집사이자, 아르칸 님의 심복으로 가까이서 모셔 왔습니다. 신하도 가장 먼저 되었고요. 아닙니까?”
“그, 그렇긴 하지.”
“그렇다면 이번에도 제가 가장 먼저 신도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를 빼놓으시다니 섭섭할 수밖에 없지요.”
“어? 미안.”
오웬이 신도까지 될 마음이 있는 줄은 몰랐던 아르칸은 놀라며 사과한 뒤, 신도로 삼았다.
이어서 센시아도 찾아왔는데,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저도…….’라고 중얼거리길래 ‘신도가 되려고?’라고 물었다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칸이 곧바로 세례를 내려 신도로 삼자, 웃는 얼굴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던 아르칸은 문뜩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거신이 있는데, 괜찮은 건가?’
생각해 보면 마신이 있는데도 다들 신도로 삼았으니, 여러 신을 섬겨도 별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 뒤로 여러 부하가 신도로 삼아 달라고 찾아와 차례대로 세례를 내렸다.
그런 와중에 오크 로드 나크룸까지 찾아와서 신도로 삼아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다들 신도로 삼아 달라고 해서 삼아 주긴 했는데, 넌 오크 신의 뜻에 따라 전사의 천국에 가야 하는데 괜찮아?”
“크취익! 그런 두려움을 이겨 내고 내 선택으로 두 신을 모신다는 것 자체가 용맹스러운 일이다!”
“이거 말솜씨만 늘었군.”
아르칸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신하로 삼았다.
신기하게도 오크 로드 나크룸의 논리가 먹혔는지 다른 오크들도 신도가 되었다는 거였다.
덕분에 졸지에 오크 신도마저 엄청나게 늘었다.
이 일련의 상황을 보며 별생각 없었던 피용마저도 신도로 삼아 달라고 졸라 대서 신도로 삼아야 했다.
어찌 됐든 마계에서 신을 자처한 건,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잘 풀렸다.
‘나중에 부모님께 말해야 하는 게 문제지만.’
내 자식이 갑자기 신을 자처한다니, 부모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건 나중 일이니까…….’
아르칸이 그러면서 미뤄 두고 있는데, 정작 인간계에서 문제가 터졌다.
아르칸더러 대머리의 신이라 조롱하던 여신 셀레니아가 아르칸이 빠르게 교세를 확장하는 걸 보고 경계하기 시작한 거였다.
그 소식을 들은 아르칸은 투덜댔다.
‘여신은 또 왜 난리야…….’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