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왜 자꾸 잘되는데? (2)
빠르게 쌓이기 시작한 신력을 보며 아르칸이 싱글벙글하고 있는데, 세계수의 쌍잎이 반짝였다.
용사가 메시지를 보내온 거였다.
-아르칸, 큰일 났다.
-또 무슨 큰일이야?
‘하루도 편할 날이 없네. 또 왕국에서 마계 침공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르칸이 그렇게 여긴 이유는, 일단 마계에서는 현재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침공하려고 해도 서쪽으로는 바리스탄의 영역을, 동쪽으로는 아르칸의 영역을 지나야 했다.
몰래 침공하려고 해도 그 감시를 모두 피하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대규모 병력을 보내는 건 불가능하다 봐야지.’
그런데 용사가 보내온 메시지는 아르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성녀 엘리시아가 파문당했다.
-파문이라니, 무슨 말이야?
-성직에서 쫓겨나서 참회실에 갇혔다. 더불어 성녀 자격도 박탈당했고.
-뭐라고? 정말이야?
아르칸은 깜짝 놀랐다.
신이 된 후 알게 된 바로는, 성녀를 임명하는데도 제법 많은 신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런데 박탈이라?
‘여신한테 그럴 여유가 없을 텐데?’
납득이 안 간 아르칸이 물었다.
-대체 왜 그랬대?
-정확한 건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네가 신 노릇을 한 것 때문인 듯하다.
-신 노릇? 여신이 대충 이해해 주고 넘어가기로 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여신이 마음을 바꾼 거 같아.
-여신이 마음을 바꿔? 왜?
-그것까지는 내가 모르겠고, 중요한 일이라서 연락한 거야.
-그래, 고마워. 너는 괜찮아?
여신 셀레니아는 이미 저번에 용사의 용사 자격을 박탈한 적이 있어서 물은 거였다.
-나는 유지라는군. 다만, 너를 돕지 말라고 경고받았다. 어기면 원래 세계로 안 돌려보내 준다고 하더군.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아무래도 여신이 단단히 독이 오른 듯했다.
‘근데 대체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용사도 모른다니,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는 듯했다.
‘일단 엘리시아에게 물어보자.’
아르칸은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에게 참회실에 있다는 엘리시아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죄송하지만 안 되겠군요. 그 참회실이라는 곳은 신성력에 의해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래? 답답하지만 따로 알아봐야겠네. 좀 알아봐 줄래?”
“알겠습니다.”
제피로스는 인간계 전역의 바람을 불러 모아 여신 셀레니아와 관련된 정보가 있는지 찾았다.
그러나 셀레니아는 딱히 인간계에 뭐라고 하지 않았는지, 신전은 물론이며 어디에서도 쓸 만한 정보를 얻진 못했다.
그 와중에 알아낸 건 아르칸이 나서서 이교도 집단을 신속하게 모조리 정리한 뒤로는 새로운 이단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 때문에 신전의 성직자들이 안도했다.
“이러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일전의 일로 말을 하기 시작한 게티아가 말했다.
“아무래도 이것 때문인 거 같군. 이걸 한번 봐라.”
그러면서 자신의 몸을 열어 보였다.
신 관련 내용을 상태창처럼 표시한 거였다.
“말할 수 있으면 그냥 말로 해 줘.”
“하지만 난 책인데…….”
“책? 책에 봉인된 게 아니라, 본래 책이었어?”
뜻밖의 소리에 아르칸이 묻자 게티아가 화제를 돌렸다.
“아, 아니다. 어쨌든 인간족의 신도가 대폭 늘어난 것 때문에 여신 셀레니아가 위협을 느낀 거 같다. 어림잡아도 2천 명은 더 늘었다.”
“2천 명이나? 대머리들이 그렇게 많았나?”
생각해 보면 마계의 침공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탈모가 와도 이상하지 않긴 했다.
게다가 마계의 위협이 완전히 가신 것도 아니라, 다음 침공을 막기는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여성 신도가 많은 거로 봐서는 꼭 대머리라서 가입한 건 아닌 거 같긴 하다만.”
“그래? 자세한 건 따로 물어봐야겠네. 제피로스, 데이브나 헤롤드에게 내 목소리를 전달해 줄 수 있어? 뭐 하고 있는지 한번 찾아봐.”
데이브와 헤롤드는 아르칸의 첫 신도나 다름없는 인간족.
대머리였던 이들을 성장의 물로 머리카락을 돌려준 다음, 신도로 삼았었다.
그리고 현재 인간계에서 다른 대머리들에게 포교하는 건 이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음…… 마침 둘이 같이 있군요.”
“그래? 잘됐군. 그대로 내 목소리 전달해 줘.”
“알겠습니다.”
제피로스의 대답을 들은 아르칸은 잠시 후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데이브, 헤롤드. 나다.”
그러자 약간의 시차를 두고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 아, 아르칸님이시군요.
-뭐 해, 데이브? 어서 인사드려야지.
-아, 그렇지. 신님의 미천한 종, 데이브가 신께 인사 올립니다.
-여기 헤롤드도 신의 말씀을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데이브와 헤롤드가 신도에 걸맞은 태도를 보이자 아르칸이 내심 감탄했다.
‘이거 나도 장단을 맞춰 줘야겠는걸.’
아르칸도 목소리를 깔고 최대한 근엄하게 말했다.
“나의 충실한 추종자들이여! 요즘 내게 믿음을 가진 이들이 많이 생겼더군. 잘하고 있다.”
-아, 역시 다 알고 계셨습니까?
-아르칸님께서 기뻐하시도록 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서인지 너희와 같은 고충을 겪은 이들 외에도 신도가 된 듯하더군. 대단한 성과다.”
아르칸의 칭찬에 데이브와 헤롤드는 신나서 떠들었다.
-그게 어찌 저희의 성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르칸님께서 다 안배해 두신 거지요.
‘안배? 무슨 안배를 말하는 거지?’
-성녀 엘리시아 님이 아르칸님의 종교에 관한 건 셀레니아 여신님과 다 이야기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르칸님을 믿어도 이교도로 몰리지 않는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다행히 직설적으로 묻기 전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최근까지 이교도가 창궐한 건, 마계의 침공에 왕국이 혼란스러웠기 때문.
이 와중에 여신 셀레니아를 믿어 봐야 자신들을 지켜 주지 않는다며 불신하기 시작한 거였다.
하지만 다른 신을 믿는다면 이교로 몰렸다.
심지어 여신 셀레니아는 신도가 떨어지는 만큼 신력 수급에도 차질이 생기기에 이런 이교도에 민감했다.
그런 와중에 아르칸을 믿는 건 이교가 아니라고 허용해 주자, 꽤 많은 신도들이 아르칸을 믿기 시작한 거였다.
‘가만히 있는데도 잘되다니. 세상일은 정말 모를 일이야.’
물론, 다시 셀레니아를 믿는 비율이 훨씬 높았지만.
셀레니아는 예상보다 자신의 파이를 많이 침범당했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엘리시아도 이것 때문에 잘렸나 보네.’
사실 아르칸을 믿는 게 양해된 건, 어디까지나 셀레니아와 아르칸 사이의 일.
엘리시아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당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게 분명했다.
‘엘리시아는 분명 나 잘되라고 한 소리였을 텐데, 결과적으로 셀레니아의 이익을 침해하게 된 셈인가.’
그 생각을 아니 참회실이라는 곳에 감금당해 있을 엘리시아가 안쓰러웠다.
“일단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인간계로 가기로 마음먹은 아르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엘리시아는 성직자로서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나이에 신전으로 팔려 갔다.
그곳의 사제들은 엘리시아더러 성녀 후보생이 되라고 했다.
그리고 여신을 위해 고행해야 한다면서, 최소한의 곡기만 먹게 하며 매일 빠짐없이 기도를 시켰다.
엘리시아는 힘들었지만, 이 세계의 수호신인 여신님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그렇게 성녀 후보생으로 엄격한 생활을 보낸 게 10년이 넘던 와중에, 기존에 성녀였던 엘로디아 님이 전사했고, 그녀는 성녀가 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엘리시아는 책임감을 가지고 성녀로서 열심히 활동했다.
물론, 마음속 한구석에 성녀 후보생 시절 납치당해 악신에게 제물로 바쳐질 뻔한 자신을 구해 준 아르칸 님이 있다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 때문에 최근 신도가 늘어나고 있는 아르칸 님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이야기했다. 셀레니아님께서 인정한 신흥종교라고 말이다.
무엇보다 엘리시아는 이게 꼭 셀레니아님께 나쁜 것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셀레니아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신도들은 악독한 신에게 마음이 빼앗겨 이교도가 되고 만다.
하지만 아르칸 님은 대마왕이긴 해도 여러 악신과 다르다는 걸 엘리시아는 잘 알았다.
당장 악신들이 이 세계로 건너올 힘을 모으려면 기도만으로는 힘들다. 그렇기에 고문이나 인신 공양 등 끔찍한 짓을 벌여서라도 빠르게 힘을 모으길 원했다.
반면에 아르칸 님은 이미 이 세계에 실존할 뿐만 아니라, 별다른 공물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셀레니아님이 못 미더울 때, 이교도보다는 아르칸 님을 믿는 게 낫다는 게 엘리시아의 결론이었다.
‘두 분이 교류하면서 가르침을 나누면 왕국도 한층 평화로워질 게 틀림없어.’
무엇보다 일전에 용사님과 잠깐 대화한 바로는 아르칸 님은 예전부터 마신이 되어 인간계와 평화롭게 지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러면 이 세계의 대규모 전쟁과 인간족의 존속을 위협하는 일은 사라질 게 분명했다.
‘그런 대의를 가지고 계시니까 용사님도 아르칸 님과 함께하시는 거겠지.’
그러나 셀레니아님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아르칸 님이 셀레니아님이 인정한 새로운 신이라는 걸 왜 공표했냐고 나무라는 셀레니아님께 자신의 견해를 밝혔지만, 제까짓 것이 판단 내릴 계제가 아니라고 더욱 혼나기만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성녀직을 박탈하고 파문까지 시킨 후, 이곳 참회실로 보낸 거였다.
신전 꼭대기에 있는 참회실은 창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밀폐된 공간.
유일하게 뚫려 있는 건 천장의 작은 구멍뿐.
그 어두운 곳에서 감금된 성직자는 천장에 작게 난 구멍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신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
만약 셀레니아님이 용서하지 않는다면 이곳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심지어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며칠 안 되어 대부분이 괴로워하며 굶어 죽는다고 엘리시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용서를 빌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걸.’
오히려 그동안 해 온 게 있는데 이 일로 이렇게까지 징계받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고수하기 위해서라면 굶어 죽더라도 용서를 빌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버티기를 하루 이틀 사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티다 보니 어느 순간 여기서 얼마나 있었는지 잊을 정도였다.
괴로운 와중에도 엘리시아는 기도했다.
예전처럼 셀레니아님을 위해 기도하는 건 아니었다.
아르칸 님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
거창한 소망은 아니었다.
죽기 전에 아르칸 님을 한 번만 뵐 수 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었다.
‘하지만 이루어지진 않겠지.’
아르칸 님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셀레니아님과 달리 대마왕성에 계신다.
아마도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실 게 분명했다
잘 안다고 해도 대마왕으로서 셀레니아님의 힘으로 보호받고 있는 이곳 신전에 얼굴을 비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사실 내 욕심이지, 무리인 걸 알면서도 바라다니.’
이제 기도할 힘도 잃은 엘리시아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씁쓸하게 웃었다.
점점 몸이 차가워지면서 동시에 졸리기 시작했다.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는 걸 느낀 엘리시아는 마지막으로 힘을 끌어모아 아르칸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피로와 배고픔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은 탓인지 도저히 아르칸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제발 생각 좀 나라, 제발…….’
엘리시아가 눈을 질끈 감고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눈부신 빛이 자신의 앞에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부셔서 인상을 찌푸리는데, 그 안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바로 그토록 보길 바랐던 아르칸 님의 얼굴이었다.
“그래, 이 얼굴이었어.”
“응? 얼굴?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르칸이 의아해하면서 되물었다.
“아, 목소리까지 들리다니, 정말 기적이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중얼거린 엘리시아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