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왜 자꾸 잘되는데? (4)
“뭐, 내 성녀가 되고 싶다고?”
아르칸은 엘리시아의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엘리시아는 자기가 말을 꺼내 놓고도 고개를 숙였다. 귓불이 새빨개진 걸 보니 창피한 모양.
그러면서도 의지는 확고한지 대답하는 동시에 반문했다.
“네, 안 되나요?”
“안 될 리가. 내 성녀가 되어 준다면 나야 좋지.”
아르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세계에 현존하는 아르칸은 신탁을 내릴 필요가 없지만, 성녀가 있으면 좋긴 했다.
성녀는 신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신을 대리해 신력을 사용해 기적을 일으키거나 축복을 내릴 수 있다.
심지어 성녀가 기도를 올리면 함께 기도하는 신도들과 시너지 효과를 내서 신력도 더 많이 모인다고 했다.
그 효율은 성녀의 자질이 뛰어날수록 좋기에, 여신 셀레니아는 자질이 뛰어난 성녀 후보생을 뽑아서 육성한 듯했다.
즉 아르칸은 그런 수고 없이 뛰어난 성녀를 바로 얻게 되는 셈이었다.
다만 우려스러운 점도 있었다.
“근데 한번 다른 신의 성녀였는데, 내 성녀가 될 수 있어?”
“그건 저도 잘…….”
유례가 없었던 일인만큼, 엘리시아도 모르는 듯했다.
그저 막연히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간청한 거였다.
다행히 그 대답은 게티아가 해 줬다.
“가능하다.”
긍정적인 대답에 엘리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표정도 밝았지만, 이어진 게티아의 말에 굳은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셀레니아는 안 좋아할 거 같은데, 당분간은 그 여신과 충돌을 피할 생각 아니었나?”
우려대로 셀레니아의 성격상 지금까지 자신의 성녀였던 이가 다른 신의 성녀가 된다면 불쾌해할 게 분명했다.
“괜찮아. 자기가 먼저 파문한 거잖아.”
그렇게 말한 아르칸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니면, 다시 성녀로 임명할 거야?”
잠시 기다렸지만, 셀레니아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거 봐, 셀레니아도 별말 없네. 지금 바로 성녀로 임명해 줄게. 게티아, 혹시 신력이 모자라라거나 하진 않지?”
용사 임명만큼은 아니더라도 성녀 임명에도 제법 많은 신력이 필요했기에, 아르칸이 확인차 물었다.
“된다. 마침 딱 필요한 만큼 모았다.”
“들었지? 엘리시아, 너를 내 성녀로 임명할게.”
아르칸이 말한 것과 동시에 손바닥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더니, 엘리시아의 이마에 스며들어 갔다.
“아, 이 느낌은.”
이미 한 번 성녀가 되어 본 적이 있는 엘리시아는 새로운 신력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내 눈을 뜨더니 아르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르칸님, 감사합니다. 아르칸님의 성녀로서 부족함이 많지만, 최선을 다해 섬기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해.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아르칸이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엘리시아는 성녀가 되면 뭘 어떻게 할지 생각해 뒀을 정도로 의욕이 충만했다.
“아르칸님, 저를 인간족 신도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 주시면 그들을 이끌어 더욱 신실한 신도로 만들겠습니다.”
“아, 데이브와 헤롤드가 있는 곳 말이지…….”
아르칸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셀레니아의 전 성녀를 곧바로 거기에 투입했다가는 셀레니아가 더욱 불쾌해할 게 분명했다.
당장 셀레니아가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용사에게 셀레니아와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이야기했는데 곧바로 대립하기도 미안했다.
“거기보다는 대마왕성 내의 신도들이 하는 것 좀 봐 줄래? 자기들끼리 어떻게 운영은 하는 거 같은데, 경험이 없거든.”
“아, 알겠습니다. 그보다 아르칸님의 대마왕성에 가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
눈빛을 반짝이는 엘리시아의 모습을 보니 정말 기대하는 듯했다.
그리고 대마왕성으로 간 엘리시아는 며칠 동안 여러 계층을 빠짐없이 돌아보며 구경했다.
그리고 구상이 끝났는지 본격적으로 성녀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제대로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친 거였다.
정확한 기도 방법뿐만 아니라, 기도할 때 말할 아르칸님을 찬양하는 문장도 정리해 제공했다.
거기다 하루 두 번 기도하는 시간도 정했다.
아침에는 아르칸님께 감사의 기도를, 저녁에는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라고 했다.
그 소리에 아르칸은 깜짝 놀랐다.
“그거 너무 과한 거 아니야? 셀레니아 신전에서도 이 정도는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성녀 후보생이 생활하는 곳에서는 이게 기본입니다. 처음 와서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도 이렇게 한두 달만 하면 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게 된답니다.”
게티아는 그런 셀레니아의 모습에 감탄했다.
“제법이군. 기도를 규칙적으로 하게 만들어 습관화시키면 효율은 떨어지더라도 신력은 꾸준히 모일 거다.”
“음, 그래?”
“다만 어지간히 폐쇄적인 사회가 아니고서야 강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여긴 대마왕성이라 다르겠지만.”
게티아의 말대로 이곳에서 아르칸은 딱히 신이 아니더라도, 신이나 마찬가지긴 했다.
특히 대마왕성의 규모가 크고 마인족이 밀집된 만큼 식량이 부족했는데, 아르칸이 외부에서 사다가 분배해 주고 있었다.
훈련과 정비 외에는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마당에, 기도하는 건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르칸이 잠깐 생각하다가 엘리시아를 불러 물었다.
“여기서는 식사 전에 기도하나?”
“네? 아니요.”
“그러면 아침저녁으로 기도시키지 말고 밥 먹을 때마다 기도를 시키는 게 어때?”
“아! 좋은 생각이세요. 밥 먹기 전에 기도를 올리게 하면 아르칸님께 더욱 감사하지 않겠어요?”
“……어, 그런가?”
신도들의 편의를 봐주며 간소화시킬 생각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엘리시아가 말했던 대로였다.
‘이래서 교회 다닐 때 밥 먹기 전에 기도시킨 건가.’
웃으며 넘겼던 아르칸은 며칠 뒤 확인했다가 깜짝 놀랐다.
아침, 저녁 기도 대신 식사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아침, 저녁 기도도 하고 식사 기도도 하고 있었다.
총 4, 5회 기도를 하게 된 셈이었다.
덕분에 신력도 빠르게 늘어났다.
물론, 신도들도 기도하느라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기도로 자신들이 모시는 아르칸에게 신력이 쌓이는 것과 별개로, 스스로에게도 신성력이 쌓였다.
식사 기도까지 성공적으로 자리 잡자 엘리시아는 욕심을 내어서 새벽 기도까지 추진했는데,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해서 결국 무산됐다.
그래도 엘리시아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기도한 뒤에 기존의 경전을 다듬느라 바빴다.
그걸 본 아르칸은 괜한 애를 쓰는 거 같아서 쉬엄쉬엄하라고 했지만, 엘리시아는 아르칸님께 바칠 거라 허투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른바 공물이라는 건가. 꼭 생명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로군.’
문득 예전에 제물로 사람 머리 대신, 만두를 빚어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 그러면 되겠네.’
좋은 생각이 떠오른 아르칸이 손바닥을 치고는 부하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공물을 바칠 때 무의미하게 가축이나 동물을 희생시키는 걸 금지한다고 말이다.
참고로 인신 공양은 진작 금지해 뒀다.
어쨌거나 아르칸은 엘리시아가 개작 중인 경전처럼, 열정과 진정성이 담긴 공물을 더욱 가치 있게 여긴다고 공표했다.
물론, 신전의 운영을 위한 기부는 언제든 환영이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르칸의 말에 다들 의아해했다.
“케륵. 열정과 진정성이라. 대체 뭘 바쳐야 할까.”
“크취익? 우리도 경전을 만들어야 하나.”
혼란스러워하는 걸 보고 아르칸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기도만으로 충분하지만, 공양물을 꼭 자신에게 바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은 가정의 화목과 세계의 평화를 추구하니,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조형물이라든지,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그 말에 대마왕성 안의 신도들은 나무와 바위를 가져다가 조각을 하거나, 구전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놀랍게도 이들은 만든 조각과 이야기를 아르칸에게 바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만들고 지어낸 걸 서로 보여 주고 솜씨를 뽐냈다. 그걸로 교류하면서 마인족, 고블린, 오크 등 아인족 등 종족을 초월해 어울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여러 종족이 모여 사는 대마왕성의 분위기는 한층 훈훈해졌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은 덕에 신력을 모으는 데 제법 큰 보탬이 됐다.
가족과 동족뿐만 아니라, 새로 사귄 친구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수록 이 계기를 마련해 준 아르칸을 안 떠올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엘리시아가 합류하고 이뤄진 변화 덕분에 신력이 모이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한 달도 안 되어서 엘리시아를 임명하느라 소모한 신력을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엘리시아를 성녀로 임명하길 잘했어.’
아르칸이 실시간으로 이자가 붙는 통장을 보듯이 게티아에 표시되는 신력을 보며 만족하고 있을 때, 엘리시아가 찾아왔다.
“아르칸님,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괜찮으십니까?”
“어, 나야 언제든지 환영이지.”
아르칸은 엘리시아가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추진할지 궁금해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대마왕 쪽은 이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거 같으니, 이제 외부에서 포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계로 가려고?”
“아니요. 그곳도 도움이 필요하지만, 더 도움이 시급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도움이 시급한 곳? 거기가 어딘데?”
“바로 바리스탄 영역 내에 있다는 인간족의 난민촌입니다. 경전에 쓸 아르칸님의 행적을 정리하다가 알게 됐어요.”
“아, 거기.”
아르칸 마왕성이 아직 바리스탄 대마왕의 영역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마왕성은 험하기로 유명한 카퓨 산맥 안쪽에 있었는데, 그 카퓨 산맥에는 인간족의 난민촌이 있었다.
비록 살기는 어려웠지만, 여러 이유로 인간계에서 찾아온 난민들이 있었다.
아르칸도 그런 난민들과 만난 적 있었다.
바로 용사의 후예인 발다와 그 손녀인 레아였다.
그들은 병사들에게 잡혀가기 직전이었는데, 아르칸은 그들을 구해 주고, 자기들을 경호하다가 성에 잡혀 버린 드워프 도린까지 구해 주는 대가로 오리할콘을 받았었다.
놀랍게도 도린은 드워프 왕자이기도 했는데, 그를 구하면서 드워프 왕국까지 가는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렸었다.
어쨌든 발다와 레아는 난민촌에서 데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무사히 난민촌에 갔다.
그 후 먹을 게 없어 굶다 못해 아이 먹을 걸 구하느라 강도질에 나선 탈주민들이 공격하려 할 때도, 아르칸은 그들에게 난민촌으로 가라고 권했다.
아르칸은 그렇게 권한만큼 최소한의 책임도 졌다.
난민촌의 사람들이 최소한의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도록 은밀히 지원해 준 거였다.
그 지원은 아르칸의 마왕성이 수인족 영역으로 옮겨 오면서도 끊지 않았다.
참고로 발다를 도와주고 보상으로 오리할콘을 받은 거지만, 실제 오리할콘의 값어치를 생각하면 그 정도 지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믿음이 필요한 이들이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난민촌 사람 대부분이 높은 세금과 영주들의 탄압을 못 이겨 탈주한 만큼, 여신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악신을 믿는 이교로 빠질 만도 했다.
다행히 보고받은 바로는 그런 기미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직 성녀가 가서 막대한 지원을 약속하며 아르칸을 믿으라고 하면 바로 믿을 게 틀림없었다.
“좋아, 엘리시아가 한번 가 봐.”
“알겠습니다.”
엘리시아 대답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때 제피로스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왔다.
방금 이야기 나누던 그 난민촌이 공격받고 있다는 거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