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왜 자꾸 잘되는데? (6)
“아르칸 님이 날 구해 주시다니…….”
카슨은 감동했다.
하지만 자신만 산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그런 카슨의 걱정을 읽기라도 한 듯 아르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하지 마. 다른 주민들도 모두 무사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엎드려 있던 카슨이 이마를 바닥에 박으며 감사를 표했다.
다른 경비대원들도 안도했다.
그사이 양날도끼를 거둔 모르골트가 이죽거렸다.
“아르칸? 아, 그 망나니 마왕?”
그때 아르칸의 말을 전달해 주고 있던 제피로스가 본모습을 드러내며 버럭 화를 냈다.
“무엄하다! 감히 대마왕 아르칸 님을 모욕하는 것이냐!”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면서 제피로스가 엄청난 위압감을 풍겼다.
그러나 모르골트는 피식 웃었다.
“아아, 뭔가 했더니 정령이었나?”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다! 내 주군인 아르칸 님께 망발을 한 죄를 묻겠다!”
그 말에 모르골트 주위의 부하들이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마왕 아르칸이 건드리지 말라고 한 곳을 굳이 공격한다고 했을 때도 조금 불안하긴 했다.
그래도 아르칸은 수인족 영역으로 옮긴 상황. 난민촌을 쓸어버리고 난 뒤라면 화는 내겠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 전에 아르칸의 부하가 막으러 나타난 거였다.
심지어 그 부하도 일반 마족이 아니라, 정령왕이었다.
원래라면 마왕 모르골트로서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그나마 이곳 마계가 정령들이 제대로 힘을 발휘 못 하는 곳이기에 유리하긴 했지만, 무턱대고 싸울 수는 없었다.
압도적인 전력 차가 아닌데 괜히 싸웠다가는 이쪽 피해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재미로 난민촌을 공격해 편하게 학살하는 거면 몰라도, 피 터지게 싸우는 건 사양이었다.
“흐흐, 네 멋대로 나를 공격하겠다고? 그래도 될까? 네가 모시는 그 망나니 마왕이 곤란해질지도 모르는데.”
모르골트가 제피로스를 비웃었다.
그제야 부하들은 자신들의 마왕이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걸 떠올렸다.
“큭, 그런.”
제피로스가 난처한 듯 움츠렸다.
대체 믿는 구석이 뭐길래 상대가 이 영역을 다스리는 대마왕 바리스탄의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저렇게 뻗대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통하는 듯했다.
“크하하핫! 그래, 그래야지.”
그걸 보며 모르골트가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웃다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자, 어서 마무리 지어 볼까? 헬하운드도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내버려 두라고. 그리고 네 주인에게 이것들이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 잘 설명해 주고.”
그 말에 카슨을 비롯한 경비대원들이 다시 절망했다.
그때, 제피로스가 갑자기 돌변해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훗. 아르칸 님의 허락이 떨어지셨다. 응징해 주마!”
“뭐라고? 아르칸 네 녀석, 제정신이냐! 어딜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나를 공격하겠다고?”
제피로스가 아르칸의 목소리를 전달해 대꾸했다.
“금방까지는 딱히 공격할 명분이 없었는데, 고맙게도 네가 나를 모욕했으니 공격할 명분은 충분하지.”
“흥. 내가 주제를 모른다고 한 건 모욕 따위가 아니다, 이 반역자야.”
“반역자? 그게 무슨 소리지?”
뜬금없는 소리에 아르칸이 반문했다.
모르골트의 부하들이나 카슨과 경비대원들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 와중에 모르골트 혼자 의기양양해하며 카슨을 가리켰다.
“흐흐, 모르는 척하기는, 저 인간족과 내통했지 않느냐! 인간족과 내통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 말에 모르골트의 부하들도 옳다구나 하고 동조했다.
“그러네. 마왕님 말씀이 맞네.”
“마왕이 인간족을 공격하지 말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야?”
“인간족을 감싸고 도는 건 내통하는 것보다 더 심한 거 아니야?”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제기됐다.
“그런데 대마왕도 처벌을 받나? 누가 대마왕을 처벌해?”
“적어도 문제 제기하면 그냥 넘어가긴 힘들겠지. 어쨌거나 아르칸은 궁지에 몰린 셈이지.”
“이런 게 바로 마신의 한 수라는 건가? 역시 모르골트 님이셔!”
“어떠냐? 얌전히 물러가고, 내가 만족할 만한 선물을 보내라! 그러면 인간족과 내통한 건 모른 척해 주지.”
“그게 목적이었나?”
아르칸은 씁쓸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모르골트가 난민촌을 들쑤신 건, 자신이 화를 내며 왔을 때 인간족과 내통했다는 거로 약점을 잡기 위해서였다는 걸 깨달은 거였다.
“망나니 마왕이라더니,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데? 어서 가서 내게 줄 선물이나 준비해. 흐흐, 아주 값비싼 거야 할 거다!”
그렇게 말한 모르골트는 카슨을 쳐다보면서 혀로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동안 나는 재미 좀 볼 테니까.”
“그렇게 둘 수야 없지. 제피로스, 다 쓸어버려!”
“뭐라? 방금 내 말 이해한 거 아니었나?”
“이해했다. 그래도 상관없다.”
“설마 나를 죽여서 입막음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 말에 마왕을 믿고 기세등등했던 모르골트의 부하들이 움찔했다.
마왕을 죽여서 입막음한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자신들도 모두 살해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르골트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흥! 저 정령 따위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직접 저 정령을 소멸시키고 이 일을 폭로하겠다.”
“폭로하든 말든 상관없는데? 애당초 인간족과 내통했다는 게 사실이 아니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로 도망쳐 온 자들에게 내가 뭘 얻는다고 내통했다고 우기는 거냐?”
“…….”
모르골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내심 아르칸이 주장하는 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딴죽 걸 여지는 남았다.
“그렇다면 왜 저 쓸데없는 인간족을 감싸는 거냐?”
“너한테는 쓸모없지만. 나한테는 쓸데가 있거든.”
“그렇다는 건 역시 내통한다는…….”
“그게 아니라, 저들을 보살펴서 내 신도로 삼을 거거든. 내가 요즘 신을 자처하고 있는 건 알지?”
“……그래, 고블린 같은 벌레들도 신도로 삼고 있다지. 같잖은 짓을.”
“뭐라고 하든 상관없지만, 내 신도와 내통한다고 하긴 어렵지.”
“큭!”
아르칸의 논리에 완전히 밀린 모르골트는 반박하는 대신 앓는 소리만 냈다.
그러면서 카슨을 쳐다봤는데, 카슨은 눈치껏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사실 몰랐다고 해도 아르칸이 받은 거 없이 보살펴 준 게 다 그 의도였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잠깐 고민하던 모르골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휴. 그래, 알았다. 알았어. 이대로 물러나 주지.”
사실상 항복 선언에 카슨을 비롯한 경비대원들은 안심하고, 모르골트의 부하들도 안도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마무리 지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르칸이 어림도 없다는 듯 말했다.
“누구 마음대로 물러나?”
“뭐라고?”
“나를 모욕한 건 까맣게 잊었나 보지? 얌전히 보내 주길 원하면 사과부터 해.”
아르칸의 요구에 모르골트가 까득 하고 이를 갈았다.
“됐다! 싸움을 원하면 끝까지 해보자고!”
아르칸이 워낙 오랫동안 망나니 마왕으로 불렀던 여파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듯했다.
수인족 영역에서 대마왕이 되었다고 해도 모르골트처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거였다.
‘마침 명분도 충분하겠다. 이 기회에 한번 밟아 줄 필요가 있어.’
아르칸은 그런 생각으로 이번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모르골트를 도발한 거였다.
“내가 저 정령을 맡을 테니, 나머지는 인간족을 쳐라. 도망치는 놈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된다!”
완전 약이 오른 모르골트는 지시를 내리자마자 제피로스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르칸 님의 분부대로 본때를 보여 주겠습니다.”
제피로스의 주변으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주변의 돌멩이까지 휘말려 올라갈 정도로 강력한 소용돌이였다.
“흥! 누가 그따위 잔재주에 당할 줄 아느냐.”
모르골트의 양 뿔에 마력이 모이면서 노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걸 본 모르골트의 한 부하가 소리쳤다.
“헉, 모르골트 님이 권능을 쓰신다. 모두 도망쳐!”
그 말에 공격하러 나섰던 부하들이 허겁지겁 발걸음을 멈추거나, 뒤로 피했다.
빛나던 모르골트의 뿔은 어느 순간 콰르릉! 하며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번개가 제피로스를 향해 날아갔다.
모르골트의 권능, 심판의 번개가 발동한 거였다.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이 심판의 번개는 피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위력도 무시무시하지만, 맞으면 감전 상태를 유발해 상대의 움직임을 멈춘다.
그렇게 마비된 상대를 향해 모르골트가 양날도끼로 결정타를 날리는 식이었다.
심지어 모르골트의 양날도끼에는 강력한 마력이 품고 있기에, 실체가 모호한 정령을 타격하는 데도 문제없었다.
이 무시무시한 연계기 덕에 대마왕 바리스탄에게 전투력을 인정받고, 카퓨 산맥 너머 인간족의 성까지 담당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 거였다.
“크억!”
번개에 적중한 제피로스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모르골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양날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죽어라! ”
양날도끼가 가진 마력에, 모르골트 자신의 마력까지 일부 더했다.
이 정도 공격이면 마왕성 랭킹 하위권 마왕까지 단박에 해치울 자신 있었다.
그런데.
캉!
양날도끼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도중에 멈춰 버린 게 아닌가? 아주 단단한 강철에 가로막힌 것만 같았다.
“어, 어떻게 된 거냐?”
지금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던 모르골트가 물었다. 방금의 일격은 강철마저도 벨 자신이 있는데 가로막힌 거였다.
흙먼지가 가시고 모르골트의 공격을 막아 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윗덩어리를 짊어진 거북, 땅의 정령인 로카스톤이었다.
원래 정령왕이었다가 상급 정령으로 약화된 로카스톤은 이곳 마계에서 실체를 드러내면서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 제피로스를 도우라고 아르칸이 가지고 있던 생명의 마석으로 다시 정령왕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르칸이 마력 공유로 정령왕에 준하는 힘을 얻게 해 줄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발성에 가까웠다.
전투를 지속하려면 정령계를 열어 정령력을 꺼내 쓸 수 있는 정령왕이 될 필요가 있었다.
아직 감전 상태에 다 못 빠져나온 제피로스가 투덜댔다.
“조금만 일찍 와 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미안해. 헬하운드들을 다 처리하느라고……”
“흥! 정령 따위 하나 더 나타나 봐야 소용없다.”
모르골트는 다시 심판의 번개를 날렸다. 감전을 건 뒤, 등껍질이 아닌 부분을 공격해 벨 생각이었다.
그러나.
로카스톤은 그 번개를 가볍게 흡수해 버렸다.
상성상 로카스톤이 우위에 있어서였다.
아르칸은 모르골트를 상대하기 위해 정령왕 제피로스 외에 생명의 마석으로 새로운 정령왕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모르골트가 번개와 관련된 권능을 쓰는 걸 알기에, 상급 정령 중 땅의 정령인 로카스톤을 선택했다.
대신 최근 생명의 마석을 구할 방법을 알아냈다며, 나머지 상급 정령에게도 최대한 빨리 정령왕으로 만들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심판의 번개가 통하지 않았지만, 모르골트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심판의 번개는 순간적인 마비 효과만 노리는 것으로, 진짜 공격은 양날도끼였기 때문이다.
모르골트는 최대한 힘을 짜내 양날도끼를 휘둘렀다.
“이번에야말로 죽어라!”
그러나 금방 감전으로 인한 마비가 풀린 제피로스가 전력으로 붙잡고, 로카스톤이 모르골트에게 박치기를 했다.
“크억!”
로카스톤의 박치기에 튕겨 나간 모르골트가 그대로 쓰러졌다.
“이런, 마왕님이 당하다니.”
“어쩌지? 도망쳐?”
“아직 모른다. 지켜보자.”
모르골트의 부하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모르골트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크윽,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
자신들의 마왕이 크게 타격을 입은 것 같지 않은 걸 본 부하들이 얼른 모르골트 뒤로 가서 섰다.
“역시 마왕님!”
“이대로 안 당하실 줄 알았습니다.”
“뭣들 하느냐. 다들 마왕님과 함께하자.”
마왕 하나만을 상대하는 것만이라면 모를까, 부하 수백이 일제히 덤빈다면 두 정령왕으로서도 상대하기 버겁다.
“마계에서는 정령력 회복이 더디니 아쉽네요.”
“하지만 꼭 우리가 상대할 필요는 없지.”
제피로스와 로카스톤이 중얼거리는 순간, 하늘 위에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대마왕 아르칸이 블랙 드래곤 피용을 타고 나타난 거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