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아르칸의 신도들 (1)
모르골트와 그 부하들은 처음에는 그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몰랐다.
그러다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졌고, 한 마족이 소리쳤다.
“브, 블랙 드래곤이다!”
그 소리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블랙 드래곤이라면 이곳을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젠장, 왜 갑자기 블랙 드래곤이 나타난 거야?”
“설마 우릴 공격하는 건 아니겠지?”
“혹시 모르지, 지금 마계에 블랙 드래곤을 데리고 있는 건 아르칸뿐이잖아!”
그 말에 모르골트의 부하들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현재 아르칸이 보낸 두 정령왕과 상대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저 블랙 드래곤이 아르칸의 부하라면 당연히 자신들을 공격할 게 분명했다.
모르골트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젠장, 블랙 드래곤까지 보내다니.’
정령왕 둘까지는 어떻게 자신과 부하들이 합세해서 싸우면 상대해 볼 만했다.
그러나 저 블랙 드래곤까지 가세해서는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다.
‘겨우 인간족의 난민촌을 공격하는 거로 정령왕에 블랙 드래곤까지 보낼 줄이야.’
솔직히 예상 못 했다.
원래 계획은 아르칸이 인지하기 전에 난민촌을 박살 내고, 항의하면 인간족과 내통했다는 약점을 잡는 거였다.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난민촌을 다 박살 내기도 전에 아르칸이 정령왕을 보낸 거였다.
그것도 둘이나.
거기다가 블랙 드래곤이라니, 완전 계산 밖이었다.
심지어 약점을 잡을 거리라고 생각한 것도 일축당했다.
‘쩝, 이제는 정말 사과하고 물러서는 수밖에 없겠군.’
입맛이 쓰지만, 하는 수 없었다.
이 난리를 피우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하며 물러선다면 아버지 파벌의 마왕인 자신을 해치기까지는 않을 터였다.
‘그럼 블랙 드래곤이 공격하기 전에 이제 그만하자고 해야…….’
모르골트가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였다.
“꿇어라!”
근엄한 목소리와 함께, 주위의 공기가 무거워지면서 엄청난 압박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젠장. 이건 드래곤 피어? 한발 늦었나.’
그나마 모르골트는 압박감을 느끼는 데 그쳤지만, 마족인 부하들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심지어 그 외에 나머지 부하들은 죄다 쓰러졌다.
블랙 드래곤의 한마디에 아군 진영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쩝, 한 방 먹기 전에 그만두자고 했어야 체면을 덜 구기는데.’
아쉬웠지만 하는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철수하겠다고 하는 수밖에.
“블랙 드래곤이라니, 아르칸 님. 마인족끼리 너무 험하게 구는 거 아닙니까? 사과할 테니 이쯤 하시죠?”
“누구 마음대로?”
곧바로 아르칸의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층 가깝게 들리는 거 아닌가?
“어?”
모르골트가 놀라는 사이, 블랙 드래곤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낙하해 왔다.
아르칸이었다.
조각 같은 얼굴도 얼굴이었지만, 마심장 8성이 되고 난 아르칸의 뿔은 아주 날카롭게 쭉 뻗어 있었다.
그 위엄 있는 모습에 모르골트의 부하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깨달았다.
“지, 직접 올 줄이야.”
모르골트도 당황했다.
부하만 보냈을 때는 센 척해도 괜찮았지만, 아르칸이 직접 나섰으니 상황이 달라졌다.
쉽게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 거였다.
아르칸이 지면에 도착하기 전, 아르칸에게서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수십 명의 병사가 나타나 유일하게 서 있는 모르골트를 향해 외쳤다.
“대마왕 아르칸 님이시다. 무릎을 꿇어라!”
용아병들이었다.
일제히 한목소리를 내니 그 위압감이 상당해, 모르골트의 부하 마족들이 움찔했다.
모르골트를 강제로 굴복시키기에는 부족하지만, 아쉬운 입장이기에 그 소리에 맞춰 무릎을 꿇었다.
“대마왕 아르칸 님을 뵙습니다.”
모르골트가 인사했지만, 아르칸은 무시하고 곧바로 쏘아붙였다.
“나에게 트집 잡을 생각으로 난민촌을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말리려고 보낸 부하들까지 공격해 놓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난민촌 공격한 거야 그렇다 치고, 일이 커지기 전에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사과하라고 한 게 누군데.’
모르골트는 억울하다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 압도적인 전력 차에서는 일단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죄송합니다. 아르칸 님을 모욕한 걸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아르칸 님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모르골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르칸의 반응을 살폈다.
‘내가 이 정도까지 정중하게 사과했는데, 당연히 용서하겠지?’
“크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아버지를 봐서라도 사과는 받아 줘야겠지.”
‘흐흐, 역시나.’
아르칸이 예상한 반응을 보이자, 모르골트는 속으로 웃었다.
그러면서 슬쩍 아르칸을 노려봤다.
‘지금은 숙이지만, 나중에 꼭 복수해 주마.’
그런데 아르칸이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사과를 말로만 받고 넘어갈 수는 없지.”
“칫.”
모르골트는 혀를 찼다. 어쩐지 쉽게 넘어간다고 했더니, 자신처럼 선물을 요구하려는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지, 그 정도는 맞춰 주는 수밖에.’
모르골트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아르칸 님 말씀대로 말로만 끝나서는 안 되겠죠. 제가 추후 충분한 성의를 느낄 수 있는 사죄의 선물을 보내겠습니다.”
당연히 이 자리만 모면하면 모른 체할 생각이었다.
‘체면이 있다면 달라고 하진 않겠지.’
혹시나 망나니 마왕답게 체면 차리지 않고 사죄의 선물을 달라고 재촉하면, 싸구려 무기나 장신구 정도나 던져 주면 될 일이었다.
“선물을 왜 준비해? 내가 원하는 선물은 여기 있는데?”
자신을 가리키면서 아르칸이 말하자 모르골트는 혼란에 빠졌다.
“무슨 의미로 말씀하신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아, 모르겠어?”
아르칸은 그렇게 반문한 뒤, 이번에는 정확하게 모르골트의 이마에 달린 두 개의 뿔 중 하나를 가리켰다.
“이 뿔 중 하나를 내놓으라는 소리였어.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해 주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모르골트는 그 제안에 기겁했다.
뿔은 마심장과 더불어 마인족이 가진 마력의 결정체.
모르골트가 비록 뿔이 두 개 나 있다고 하지만, 그중 하나를 내놓으라는 건 마력의 상당 부분을 내놓으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되면 부하 마족보다 약해지기에 마왕 자리를 유지하는 것부터 어려워진다.
더 잘못되면 뿔이 잘리는 충격으로 마심장에 문제가 생겨 폐인이 될 수도 있었다.
즉, 마왕을 그만두거나 폐인이 되라는 요구나 다름없었다.
“아, 아르칸 님. 너무 무리한 요구이십니다. 너희도 그렇게 생각 안 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르골트가 태도를 바꿔 애원하며 부하들에게도 동의를 구했다.
“모르골트 님의 말이 맞습니다. 조금만 선처해 주십시오!”
“이렇게 사과하는데, 아량을 베풀어 주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뿔은 너무합니다!”
모르골트의 부하들이 맞장구쳤지만, 아르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싫으면 죽든가.”
“크윽.”
모르골트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깨닫고는 신음을 흘렸다.
막무가내에 화가 났지만, 반항할 수도 없었다.
그만큼 아르칸의 전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 곤경에 처한 거지.’
괜히 건드렸나 후회됐지만, 어떻게든 뿔이 잘리거나 살해당하는 건 피해야 했다.
“아, 알겠습니다. 마정석을 드리겠습니다. 이거로 만족하시지요.”
마정석을 내놓는다는 건, 마왕의 자리를 넘긴다는 의미였다.
뿔이 잘려 마력을 잃는 것보다 일신의 마력을 온전히 남기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 던진 승부수였다.
마력만 남아 있으면 마왕성은 다시 얻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아르칸은 무슨 소리 하느냐는 듯 눈을 끔뻑거리며 대꾸했다.
“그러면 내가 아버지 파벌의 마왕성을 노렸던 것 같잖아. 난 뿔 하나면 돼.”
‘이게 끝까지…….’
모르골트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아르칸을 타이르듯 말했다.
“뿔이 잘리면 운 좋게 살아나도, 마왕으로 남기 어렵습니다.”
“그건 내가 알 바 아닌데?”
“……지금 그랬다가는, 인간족 성을 관리하라고 하신 바리스탄 님의 임무를 수행 못 하게 됩니다.”
꼴사나워 보일지 몰라도 대마왕 바리스탄의 이름까지 팔았다. 만약 자신이 잘못됐을 때 인간족 성에 문제라도 생기면 바리스탄이 곤란해할 걸 생각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르칸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왜 너만 그 임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여기에 다른 실력 있는 마족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내가 보기에는 너 대신해서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녀석들이 널렸는데?”
아르칸의 말에 모르골트 부하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모르골트의 신변에 문제가 생겨 마왕직을 유지 못 하는 게 자신들에게는 기회라는 걸 깨달은 거였다.
“그, 그럴 리가요.”
모르골트가 부정하며 부하들을 둘러봤지만, 이미 딴마음을 품은 부하들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이 자식들이…….”
배신감에 치가 떨렸지만, 당장은 저것들을 어떻게 처단할 방법이 없었다.
“어서 결정해. 안 그래도 바쁘니까.”
그 말에 모르골트는 아르칸과 그 주위의 부하들을 슬쩍 노려봤다.
아르칸도 상당히 강력해 보였지만, 어느새 해츨링으로 변해 아르칸의 어깨 위에 앉은 블랙 드래곤은 그 이상으로 강했다.
거기다가 함께 나타난 용아병들도 범상치 않아 보였고, 먼저 싸웠던 정령왕들도 무시 못 할 상대였다.
아무리 계산해 봐야 나오는 결과는 단 하나.
‘덤비면 무조건 진다.’
그 결과에 체념한 모르골트가 할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사죄의 뜻으로 뿔을 바치겠습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제피로스.”
아르칸이 부르자마자 거센 바람의 칼날이 순식간에 모르골트의 뿔 중에 왼쪽 뿔을 뎅강 하고 잘라 냈다.
“크윽.”
모르골트는 극심한 고통이 밀려오는 걸 이를 악물고 참고는 아르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아르칸의 허락이 떨어지자 모르골트는 억지로 힘을 끌어내 목소리를 높여 부하들을 채근했다.
“뭣들 해? 방금 아르칸 님이 하신 말씀 못 들었어? 돌아간다!”
아르칸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뿔을 자르는 걸 멍하니 바라보던 모르골트의 부하들은 그제야 엉거주춤 그 뒤를 따라갔다.
그 와중에 마족 몇 명은 결연한 눈빛을 한 게, 어쩌면 모르골트의 자리를 노리는 건지도 몰랐다.
한편 그 모습을 보면 아르칸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뿔을 잘랐는데 생각보다 멀쩡한데?”
오웬 때를 생각하면 아주 고통스러울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해답은 게티아가 알려 줬다.
“제피로스가 너무 깔끔하게 베어서 그래.”
“죄송합니다. 단번에 베려고 최대한 힘을 모아서 그렇습니다.”
“그거 가지고 죄송할 거까진 없지.”
“그래도 지금은 멀쩡하지만, 조만간 아주 고통스러워할 거다.”
“그런가.”
조금 아쉬워했던 아르칸은 게티아의 말에 위안이 됐다.
무엇보다 이후에 모르골트는 아픈 와중에도 마왕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하들과 다투느라 골치 아플 게 틀림없었다.
‘그것도 재미있겠지만, 지금은 따로 할 일이 있지.’
당장은 공격받은 난민촌 사람들을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신도로 삼는다고 했는데, 괜찮을까?’
그러나 난민촌의 주민들은 아르칸의 걱정과 달리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광신도가 됐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