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아르칸의 신도들 (2)
모르골트와 그 부하들이 허겁지겁 돌아가고 난 뒤.
카슨과 경비대원들이 일제히 아르칸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아르칸 대마왕님,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하기는, 저 녀석이 꿍꿍이속을 들으니 나 때문에 고생한 거던데.”
아르칸은 진심으로 미안했다.
이 험한 땅에 자리를 잡고 마을을 만들었는데, 괜히 자신과 연관되어 이런 고초를 겪게 됐으니까.
그러자 카슨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처음 자리 잡을 때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아르칸 님의 비호 덕분에 편히 지낼 수 있었죠.”
틀린 말은 아닌 게, 대부분 마인족은 인간족과 사이가 나쁘다.
특히 마왕 정도 되면 인간족을 증오하는 이도 있어서, 만약 원래 아르칸이 자리하고 있던 마왕성에 그런 성향의 마왕이 왔더라면 진작에 잿더미가 되고도 남았을 터다.
“그렇게 생각해 주면 다행이고. 참, 아까 신도로 삼는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그런 목적은 아니었어.”
“사실 그런 목적이라도 관계없습니다. 이미 여신을 버리고 마계로 온 마당에 새롭게 의탁할 곳이 생기면 좋은 거죠.”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마왕이 선의로 인간족을 도와줬다고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카슨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가락으로 뺨을 긁으며 한마디 더 했다.
“저는 선의라고 믿지만요.”
그 말에 다른 경비대원들도 같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민촌에서 내 이미지가 이렇게 좋다니.’
아르칸은 놀라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한결 여유가 생긴 아르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 제안에도 찬성하겠는걸.”
“……제안 말입니까?”
반문하는 카슨에게 아르칸은 오는 와중에 생각한 걸 말했다.
“이렇게 된 김에 마을을 아예 수인족 영역으로 옮기는 게 어때? 옮긴다면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지. 아니면 대마왕성 안으로 들어와도 좋고.”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카슨이 아주 기뻐했다.
난민촌을 지키는 경비조장으로서, 안전한 곳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큰 근심을 덜었기 때문이다.
모르골트를 물리치긴 했어도 다음에 또 쳐들어올지도 몰랐고, 모르골트가 이번 일로 겁먹는다고 해도 다른 마왕이나 몬스터 들도 언제든 공격해 올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아르칸이 지켜 준다고 해도 그것만 믿기에는 불안했다. 이번만 해도 조금만 늦었다면 모두의 목숨이 위험했을 테니까.
그런데 아예 아르칸의 영역에서 지내라고 하니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카슨이 좋다고 해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카슨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아르칸 님의 제안은 감사하고 저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만, 저는 경비조장일 뿐이라 주민들에게 의견을 물어봐야 합니다.”
“아, 그거야 당연하지. 천천히 상의하고 신중하게 결정해.”
아르칸의 말에 카슨이 미소를 지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무례하다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역시 듣던 대로 아르칸님은 보통 마왕이랑 다른 느낌이군요.”
“듣던 대로?”
“네. 발다 님과 레아가 몇 번이나 아르칸 님과 만난 이야기를 했거든요. 정말 선량하고 좋으신 분이라고요. 다른 주민들도 그 이야기를 듣고 아르칸 님을 만나 보길 기대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군.”
뜻밖이었다.
발다와 레아의 목숨과, 잡혀간 드워프 도린을 구해 주고 오리할콘을 받은 거로 거래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거로 끝이 아니라 평판을 좋게 해 주민들이 호감을 느끼게끔 해 준 거였다.
잠시 후.
마을 밖으로 도망쳤던 주민들이 돌아왔다.
그중에는 용사의 후손인 발다와 그 손녀인 레아도 있었다.
발다는 뿔을 드러낸 대마왕 아르칸의 모습을 한 아르칸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아르칸 대마왕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 무릎도 안 좋을 텐데 왜 이래? 어서 일어나.”
놀란 아르칸이 얼른 발다를 일으켰는데, 그 모습을 주민들은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아르칸은 웃으며 발다를 나무랐다.
“왜 갑자기 이래? 전에는 안 그랬잖아.”
“일전에는 마왕님이신 줄 미처 몰랐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제야 아르칸은 발다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아, 그때는 날 새로 나타났다는 용사로 오인했었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피식하고 웃음이 나올 거 같았다.
심지어 아르칸이 신용사가 아니라고 부인하자.
자신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며 적어도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한다고 했었다.
그러고 헤어져 난민촌으로 갔는데, 아마 뒤늦게 아르칸이 마왕인 알고 깜짝 놀랐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계속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 준 건 고맙네.’
그때 저 뒤에서 익숙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왕님?”
발다의 손녀, 레아였다.
레아는 다른 어른들의 뒤에서 반쯤 몸을 감추고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겁먹은 건가?’
아무리 안면이 있다고 해도 이제 마왕인 걸 알게 됐으니 두려워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때 발다가 웃으며 말했다.
“레아야, 거기서 뭐 하고 있느냐, 아르칸 님이 보고 싶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할아버지!”
레아가 얼굴을 붉히며 빽 하고 소리 지르더니, 아예 주민들 사이에 완전히 숨어 버렸다.
그러자 주민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마왕군에게 쫓기고 헬하운드에게 도망치느라 지친 와중에 기분 전환이 된 듯했다.
“죄송합니다. 손녀가 많이 부끄러운가 봅니다.”
“하하, 그래. 괜찮아.”
아르칸이 너그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누군가가 아르칸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아르칸 님 만세! 만세!”
“아르칸 님, 마왕을 물리치고 저희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르칸 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카슨과 경비대원들에게 아르칸이 마왕을 물리쳤다는 말을 들은 주민들이 환호성을 외치기 시작한 거였다.
앞서 이야기를 들은 대로 주민들은 아르칸에게 호감을 가졌으면 가졌지, 마왕이라고 두려워하는 거 같진 않았다.
‘이러면 이야기가 쉽겠어.’
아르칸은 손을 들어 주민들의 환호성을 멈추고 주민들에게 말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르칸의 목소리가 곳곳에 잘 들리도록 제피로스가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다들 난데없는 공격에 피난한다고 고생 많았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무사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친 경비대원도 아르칸 님께서 그 비싼 회복 포션으로 치료해 주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평소에도 굶지 않도록 신경 써 주시는데,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말로만 감사할 수밖에 없는 저희가 한심할 정도입니다.”
“자 자, 그 정도면 충분히 아르칸 님께서도 마음을 아실 테니 이제 조용히 합시다. 아르칸 님이 중요한 말씀을 하신답니다.”
주민들의 말이 길어질 것 같자 카슨이 눈치껏 나섰다.
“카슨, 고마워.”
그렇게 말한 아르칸은 주민들을 둘러봤다.
다들 아르칸에게 고마워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동안 이뤄 온 터전을 버리고 옮기라고 해도 이 분위기가 유지될까 걱정이 됐다.
카슨은 흔쾌히 승낙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비조장의 관점이기 때문이었다.
‘싫다고 하면 하는 수 없지.’
아르칸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입을 열었다.
“오늘과 같은 습격에 대비해서 이 마을을 옮길 것을 제안한다. 내가 다스리는 수인족 영역이나 대마왕성으로 옮기면 지금보다 더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겠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발다를 포함한 주민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주민들에게 부담스럽지 않도록 아르칸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물론, 오늘 이 자리에서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 같이 충분히 상의하고 결정하도록.”
그때 카슨이 조용히 말했다.
“아르칸 님, 신도가 되라고도 하셔야죠.”
“음, 그러긴 해야지.”
사실 여기서 말하면 강제하는 거 같아서 나중에 이주가 결정 나면 이야기하려고 했다.
‘하긴, 카슨이나 경비대원들이 이미 다 아는 마당에 지금 말하나 나중에 말하나 차이가 없나? 건너 듣게 할 바에는 직접 이야기하는 게 낫겠지. 이거 직접 영업하려니 쑥스러운걸.’
아르칸은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흠, 흠. 그리고 나를 신으로 믿고 따를 신도도 구한다. 강제하는 건 아니니 참고만 하도록.”
주민들은 그 말에 멈칫하더니 한층 더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의 말로는 도저히 결론이 안 나는지 발다가 대표로 물었다.
“그 말씀은 아르칸 마왕님이……. 신이 되신 겁니까?”
“그런 셈이지.”
“혹시 저희가 신도가 되면 아르칸 님에게 도움이 됩니까?”
“물론이야. 신도들의 기도가 모여서 내게 힘이 되니까.”
그 말에 발다가 눈빛을 반짝이더니, 주변의 주민들과 뭔가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고는 다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아르칸님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저희를 신도로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다른 주민들도 모두 함께 무릎을 꿇었다.
순식간에 이뤄진 결정에 오히려 아르칸이 놀랐다.
“어, 정말이야? 좀 더 생각해 보지 않고?”
“더 생각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동안 아르칸님께 도움을 많이 받고, 이번에 마을까지 또 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곳이 워낙 척박해 먹을 것도 부족한 데다가 다들 난민들이라 가진 게 없어서 어떻게 보답할까 걱정만 깊어 가던 중이었습니다.”
발다야 이미 아르칸에게 오리할콘을 주긴 했지만, 이미 그건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그런데 아르칸님의 신도가 되어 은혜를 갚을 기회가 생겼는데 이를 마다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발다 님 말이 맞습니다!
“오히려 신도로 삼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아르칸님을 위해서라면 이교도가 되어도 괜찮습니다.”
그 각오에 아르칸은 놀라면서도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교도가 되진 않아. 여신 셀레니아에게도 정식 종교로 인정받았거든. 사이는 좋지 않지만.”
그 말에 주민들은 더욱 환호했다.
아무래도 각오는 했지만, 이교도가 된다는 데에 조금은 꺼림칙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발다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신께 인정받으셨을지는 몰랐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요즘 교세가 늘어나는 것 때문에 질투하는 거 같지만 말이야.”
아르칸은 웃으며 말했다.
그 뒤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들 신도가 되기로 결정 내리자 오히려 이주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 거였다.
모두 가능한 한 짐을 챙기고, 아르칸의 아공간 주머니로 들어가 순식간에 대마왕성으로 이동했다.
아르칸에게 미리 연락을 받은 오웬은 아르칸이 엘프들을 데려왔을 때처럼 놀라진 않았지만, 여전히 골치 아파 했다.
아르칸이 데려온 인간족이 엘프 때의 다섯 배가 넘는 1천여 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아르칸도 뒤늦게 놀랐다.
‘난민촌의 주민이 이렇게 많다니…….’
다행히 여기서는 아르칸의 성녀인 엘리시아가 나섰다.
엘리시아는 난민촌의 주민들을 신도로 삼자는 의견을 가장 먼저 낸 만큼, 이들이 왔을 때를 위한 준비를 나름대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낮에는 드워프들이 인간족들의 마을을 새로이 건설하는 걸 돕고, 밤에는 엘리시아와 함께 경전을 공부하고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어찌나 다들 열심히 기도하는지 엘리시아가 놀랄 정도였다.
“다들 웬만한 성직자들보다 훨씬 신실하게 기도하고 있어요.”
“알고 있다.”
엘리시아의 보고에 아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난민촌 주민들이 신도가 된 후로 신력이 모이는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기 때문이다.
그사이 아르칸이 모르골트를 혼낸 일도 마계 전역에 퍼졌는데, 바리스탄 영역 내 마왕들에게 확실히 각인됐는지 사적인 자리에서 아르칸을 얕보는 일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나저나 파벌 내 마왕을 건드렸다고 아버지가 화내시는 건 아니겠지?’
그런 아르칸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바리스탄은 도리어 서신을 보내 칭찬했다.
대마왕이 됐으면 가끔 이렇게 강하게 나가야 할 때가 있다고 말이다.
‘이거 일이 생각보다 자꾸 잘 풀리네.’
아르칸이 안도하면서고 기뻐하고 있을 때, 본앰브로스 쪽과 인접한 영역에서부터 긴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리치 무르게노가 쳐들어온다는 거였다.
무르게노는 고블린 실험실을 운영하던 본앰브로스의 제자로, 네크로맨서에서 리치가 된 후 복수심을 잃지 않고 온 거였다.
아르칸도 죽은 뒤 리치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라이프베슬을 어디에 뒀는지 알 수 없어 내버려 둔 참이었다.
무엇보다 침공해 온다고 해도 딱히 걱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로 여겼다.
‘어디 한번 신도들이 얼마나 활약할 수 있는지 봐야겠어.’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