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아르칸의 신도들 (5)
수십 미터 지름의 거대한 마법진, 대마왕 본앰브로스는 그 마법진 중앙에 서 있었다.
그것도 단순히 서 있는 게 아니라 마력을 공급하듯 죽음의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후.”
본앰브로스는 한참 뒤에야 긴 한숨을 내뱉고 뒤로 물러났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그 말에 후드를 쓴 제자들이 빠르게 마법진으로 들어갔다. 마법진에 놓은 마석과 마원석들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회수한 마석들은 마력을 모두 소진해 그냥 돌덩어리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모은 마석과 마석원들은 모두 이 마법진에 쓰였던 거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 그 전에 상급 마석을 모아야 할 텐데.”
마법진을 살펴보던 본앰브로스가 중얼거렸다.
마법진에 마력을 비축할 땐 마력의 크기가 그리 중요하진 않지만, 발동할 때는 상급 마석이 필요했다.
최소 8성급 마석 한 개에, 7성급 마석 다섯 개.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했지만, 지금까지 구한 건 겨우 7성급 마석 네 개에 불과했다.
그것도 하나는 아르칸이 최근에 블랙마켓에서 구해다 준 거였다.
나머지 마석을 구하기 위해 아르칸에게 수시로 마원석을 보내서 감정을 받았지만, 그 후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나마 거인의 섬에서 강한 마석이 대량 풀렸다고 해서 매수하려고 접촉했지만, 아쉽게도 가장 상급이 6성에 불과했다.
다만, 알아본 바로는 놀랍게도 아르칸도 거인섬에서 마석을 하나 챙겨 갔다는데 주변에서 짐작하기로는 아주 상급이라고 했다.
‘분명 7성급 마석 이상일 게 틀림없어.’
그렇다고 대마왕 바리스탄의 자식에, 스스로 대마왕이 된 아르칸에게서 마석을 강탈할 수는 없었다.
‘쩝,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무르게노를 죽인 일을 트집 잡으면 됐는데.’
한창 마법진에 신경 쓰던 와중이라 적당히 마무리 짓고 나서 아르칸이 상급 마석을 얻었다는 정보를 얻게 된 거였다.
아쉬워하던 와중에 무르게노가 아르칸에게 복수하겠다며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안 그래도 아르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데 무슨 헛짓거리인가 싶었지만, 잠시 고민한 본앰브로스는 허락해 줬다.
무르게노의 복수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 녀석의 복수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무르게노가 만에 하나 아르칸을 압박하는 데 성공하기라도 하면, 후퇴시켜 줄 테니 거인섬에서 얻은 상급 마석을 팔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최근 신을 자처하고 있는 아르칸이 어느 정도로 성과를 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때 제자 하나가 달려왔다.
“스승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무르게노 쪽 이야기겠지. 어떻나?”
“아주 처참하게 밀리고 있다고 합니다. 마왕성 하나도 점령 못 했답니다.”
제자가 고소한 듯 말했다.
무르게노와 그를 따라간 사형제들이 승리라도 하면 배가 아팠기 때문이다.
“그래? 한심한 녀석들. 혹시 아르칸의 신력에 대한 정보는 없느냐?”
그 물음에 제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건 자신과도 상관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왜? 어서 말하도록.”
“이번에 공격해 온 아르칸의 부하들이 대부분 신성력을 쓰고 있답니다. 그것도 성기사급이라고 합니다.”
“뭐? 정말이냐?”
“분명 무슨 착오가 있을 게 분명합니다. 성기사급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 단기간에 그 정도 전력을 뽑아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제자가 맞장구쳤지만, 본앰브로스는 안광을 번뜩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 아르칸이라면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만큼 아르칸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었다.
“그럼 어떡합니까?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지원군을 보내실 겁니까?”
“아니, 지원은 없다. 그만 돌아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해.”
만약 모조리 전멸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된다 해도 본앰브로스에게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해가 되진 않았다.
그 때문에 다른 제자들이 무르게노를 따라가는데도 별말 하지 않은 거였다.
“그럼 당분간은 더욱 바빠지겠군.”
본앰브로스는 마법진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
한편 아르칸은 지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본앰브로스의 속셈을 모르겠는걸?”
아르칸은 현재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에게서 영역 내의 일은 실시간으로 보고받는 중.
적의 움직임을 지도로 표시했는데, 아무리 봐도 적은 중구난방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아무리 마왕들의 연합이라고 해도 너무한 게, 제각기 전공을 올리기 위해서인지 흩어져서 마왕성을 공략하기 바빴다.
‘이러면 내가 미리 내려 준 대책이 큰 도움이 되겠군.’
다만, 본앰브로스가 이 정도 전력을 그냥 꼬라박은 게 이해가 안 됐다.
‘무르게노가 준비하고 있다던 비장의 한 수를 그토록 믿는 건가? 하지만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뭐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준비한 게 있으니까.’
그때 옆에서 파삭하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좌측에는 작은 마석이 들어 있는 유리병 열 개가 늘어져 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마석을 자세히 보면 거미줄처럼 갈라진 데다가 길리암 특유의 마법진이 미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열 개의 유리병 중 세 개는 검은 액체로 가득 차 있는데, 빈 병 중 하나가 마석이 박살 난 채로 검은 액체가 차오르고 있었다.
방금 소리도 그 마석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그걸 보며 아르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또 한 녀석 해치웠구나.”
***
“젠장. 무르게노 선배! 후배가 당했답니다.”
보고를 받은 아메드가 소리치자 무르게노가 안광을 가늘게 떴다.
“쯧, 한심한 녀석.”
무르게노를 무시하던 아메드는 자신이 공략 못 해서 쩔쩔매고 있던 곰 수인족 아즈라 마왕성을 무르게노가 힘으로 함락시키자 곧바로 태세를 바꿔 살랑거리며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라도 모이니까 다행이군.”
처음 출발했던 제자들은 무르게노를 포함해 모두 12명.
그중에서 둘은 도중에 할 일이 있다고 돌아가 버렸고, 넘어온 열 명 중에 현재까지 넷이 당한 거였다.
나머지도 마왕성을 공략하다가 포기하고 일단 한자리에 모이기로 했다.
그나마 마왕성 공략에 성공한 건 무르게노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르게노가 대장으로서 이끌게 됐다.
애당초 무르게노의 복수 때문에 이번 원정이 시작된 거였지만, 다른 사형제들이 대장으로 인정했다는 게 중요했다.
그때 아메드가 투덜댔다.
“그나저나 죽은 녀석들도 리치가 된 김에 와도 좋을 텐데 말이지.”
이곳에 모인 모든 네크로맨서들은 죽더라도 무르게노처럼 리치로 부활할 수 있다.
아직 그리 멀리 오지 않은 만큼, 리치가 된 후 합류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기에, 늦지 않았다고 함께하자고 연락까지 했지만 응답하지도 않았다.
“맞아, 아직 연락 없지?”
“무르게노도 복수하려고 하는데 근성도 없는 녀석들이야.”
“겁쟁이 녀석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리치가 된 사형제들이 꼼짝하지 않은 게 적이 대부분 신성력을 쓰는 걸 보고 두려워서 그런 게 틀림없다고 여겨서였다.
사실 아메드를 비롯해 이 자리에 있는 사형제들이 욕하는 것도 그게 겁나기도 해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합리하고 억울했다.
마왕 주제에 신성력을 쓰다니.
그때 무르게노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만으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으니까.”
“자신 있는 건 좋은데요, 어떻게 마왕성을 공략하려고요?”
아메드의 물음에 다른 사형제들이 무르게노를 쳐다봤다.
현재 수인족 마왕성들은 하나같이 내부를 공략하기 어렵도록 미로처럼 좁게 만들어, 다들 골탕 먹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통로를 무시할 정도로 강한 공격을 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모였으니까, 하나씩 공략하면 문제없지 않나?”
“맞아, 맞아.”
다른 사형제들이 그렇게 주장했지만, 무르게노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마왕성을 공략하지 않는다.”
“그럼요?”
“마왕성을 함락시켜서 마정석을 얻는 건 좋겠지만, 지금 우리가 상대해야 할 건 그 신성력을 쓰는 녀석들이다.”
“하긴, 그 녀석들만 없으면 마왕성을 함락시키는 건 시간이 걸려도 어떻게 할 순 있죠.”
“확실히 마왕성을 공략하는 것보다 그편이 나을 것 같군.”
“나도 찬성이야.”
모든 사형제가 그 의견에 동의하며 병력을 모아 결전에 대비했다.
그렇게 모은 병력은 무려 일만이 넘어갔다.
그에 대항해 아르칸의 성전사들과 그 휘하의 신도들도 모두 모였다.
“멍청한 녀석들, 우리를 상대로 대규모 전투를 시도하다니.”
마왕 아메드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일단 언데드 몬스터들은 적이 아무리 많아도 그 앞에 위축되거나 두려움을 떨지 않았다.
무엇보다 네크로맨서들에게는 그 많은 적도 언데드 몬스터를 만들어 낼 소재에 불과했다.
실제로 까마득히 많은 언데드 몬스터들 앞에, 성전사들과 원래 전투적인 성향의 오크들, 그 신체 능력부터 강력한 마인족이나 엘프들은 괜찮았지만, 별다른 힘이 없는 인간과 고블린 신도들은 겁을 집어먹은 듯 몸을 움츠렸다.
그나마 신앙심이 있기에 저 많은 적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마인족 성전사 단장 카슨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이대로라면 저희 부대는 제대로 못 싸울 거 같습니다만.”
“크취익, 괜찮다. 오크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건 그쪽이 용맹해서 그렇지, 우리는 다르다고.”
맞다. 오크들은 용맹하다.
오크 로드 나크룸의 아들, 바쿰이 하는 말에 고블린 영웅 블러크가 딴죽을 걸었지만, 바쿰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엘프 미네도 표정이 썩 좋진 않았다.
아무래도 마계라 정령술을 못 쓰다 보니 힘이 반감될 수밖에 없어서였다.
그때 나미라가 나섰다.
“걱정하지 마. 방금 아르칸님이 좋은 방법이 있다고 알려 주셨거든.”
“아르칸님이요? 대체 뭔가요?”
미네가 놀라며 물었다.
나머지도 기대하면서 나미라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나미라는 대답하는 대신 구미호의 아홉 개 꼬리를 쫙 하고 펼쳤다.
동시에 머리에 난 뿔에 마력이 모이며 빛나기 시작했다.
그걸 본 트릴이 중얼거렸다.
“설마 권능을 쓸 건가?”
“응, 맞아!”
빙긋 웃으며 대꾸한 나미라는 아군 진영 쪽을 바라보며 권능 유혹을 발휘했다.
효과를 약하게 하면서 가능한 한 모든 아군에게 그 효과가 미치게 한 거였다.
그 결과 신도들의 마음속에 두려움 대신 전투의 흥분이 대신했다.
그걸 본 블러크가 감탄했다.
“이걸 이렇게 써먹을 수 있다니. 역시 아르칸님, 정말 대단해.”
“이러면 평소처럼, 아니 그보다 더 잘 싸울 수 있겠어.”
카슨도 기꺼워했다.
한편 성전사 진영에서 뭔가 하는 걸 본 무르게노가 소리쳤다.
“저것들이 무슨 수작을 부린다! 어서 공격해, 공격!”
그 외침에 언데드 대군이 일제히 달려들며 전투가 시작됐다.
초반은 병력이 훨씬 많은 언데드 대군이 압도하는 듯했으나, 성전사들은 버티며 차근차근 싸웠다.
유혹의 영향을 받은 신도들도 전의가 꺾이지 않은 덕분에 어떻게든 막아 내고 있었다.
그걸 보며 아메드가 외쳤다.
“큭, 이대로 가면 불리해!”
무르게노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황은 막상막하였지만, 여긴 적의 영역.
적이 추가로 지원군을 보내오거나 아르칸이 본격적으로 나서 버리면 이쪽이 불리했다.
최대한 빨리 적 전력을 무너트려 승리해 전공만 챙기고 물러나는 게 좋았다.
‘바로 비장의 수를 써야겠군.’
무르게노가 신호를 보내자 주변에 있던 언데드 몬스터들이 각자 지니고 있던 아공간 주머니에서 사람 몸만 한 커다란 자루를 꺼내서 중앙에 쌓았다.
그렇게 잔뜩 쌓인 자루는 수백 개에 달했다.
“이게 다 뭐야?”
“두고 보면 알아.”
아메드의 물음에 대꾸한 무르게노는 자루 앞에 마석을 내려놓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자루 안에 든 게 꿈틀거리더니 자루가 하나둘 터져 나갔다. 그 안에는 작은 뼈다귀들이 잔뜩 있었는데, 무르게노의 마력에 의해 뭉쳐 갔다.
“설마 저것들, 모두 고블린의 뼈야?”
“어, 맞다.”
“대체 고블린을 얼마나 죽여서 모은 거야?”
“안 세어 봤는데 못해도 몇천 마리 분은 될걸. 아무리 약한 고블린이라도 몇천 마리가 모이면 제법 쓸 만해.”
무르게노의 말과 함께 3층집 정도로 거대해진 고블린 스켈레톤이 완성됐다.
그 초거대 고블린 스켈레톤은 그대로 전장에 뛰어들어 날뛰기 시작했다.
트릴이 낭패한 얼굴이 됐다.
“젠장, 저건 대체 뭔데 저렇게 강해?”
“크취익. 신성검이 통하지 않는다. 무기가 너무 작다.”
바쿰도 난색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큰 신성검을 쓰는 오크의 대검도 이쑤시개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다들 늦어서 미안. 무기를 준비하는 데 좀 걸렸어.”
아르칸 마왕성의 경비대장인 거인족 센시아가 나타났다.
센시아는 아르칸의 가장 충실한 신하 중 하나인 만큼, 당연히 성전사기도 했다.
그리고 그 거인족 성전사의 손에는 그에 걸맞은 거대한 신성검이 들려 있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