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대마왕 vs 대마왕 (5)
“바리스탄의 자식들을 당장 이리로 데려와라!”
본앰브로스의 지시에 랜드리크 마을에 있던 네크로맨서 제자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기서 랜드리크 마을까지는 걸어서 하루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래도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일단 저 녀석이 날뛰는 것부터 막아야겠군.’
본앰브로스는 곳곳에 화염을 발사하며 한창 날뛰는 바리스탄을 보며 생각했다.
마냥 내버려 뒀다가는 바리스탄의 자식들을 데려오기 전에 언데드 괴물들이 상당수 불타 버릴 게 분명했다.
“바리스탄! 네 자식들의 목숨이 아깝다면 그만해라!”
그 소리에 바리스탄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노려봤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냐! 납치한 아이들을 해치지 않는 조건으로 다른 대마왕들의 참전 없이 일대일로 붙자는 거 아니었나? 지금 그러고 있지 않느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큭, 처음부터 약속 따위는 지킬 생각이 없었나 보군.”
“있었어. 내가 이기고 있었다면 말이지.”
그 뻔뻔한 소리에 바리스탄이 쏘아붙였다.
“이렇게 야비하게 굴다니! 대마왕의 체면이 있지, 창피하지 않으냐! 네 제자들도 듣고 있는데?”
“흥! 체면? 창피? 그런 것 따위는 리치가 될 때 이미 모두 버렸다.”
사실 체면을 많이 챙기는 본앰브로스였지만, 지지 않기 위해 악을 쓰며 대꾸했다.
무엇보다 설전을 벌여 바리스탄의 공격을 중단시킨 것만 해도 큰 성과였다.
‘그런데 정말 꼼짝도 못 하다니, 아예 부하들을 불태우지 않으면 자식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해도 먹히겠는데?’
사악한 상상을 하며 즐거워하던 본앰브로스의 행복은 금방 깨졌다.
랜드리크에 있는 제자로부터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스, 스승님! 아니, 대마왕님…….
“왜? 무슨 일이냐?”
-마왕 브리카와 길렉이…….
“설마 반항이라도 하는 거냐? 그럼 마법진을 작동시켜 기절시켜서라도 데려와라. 여기 와서 깨우면 되니까.”
-그게 아니라, ……없습니다.
“없다는 게 무슨 말이냐?”
-그러니까, 그 두 마왕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 대답에 본앰브로스의 사고가 순간 멈췄다.
바리스탄의 자식들을 가지고 신나서 협박하고 있었는데, 그 녀석들이 사라졌다니!
자식 가지고 협박한 것도 체면 구길 걸 각오하고 저지른 건데, 그 자식을 놓쳤다?
어마어마한 망신거리로 온 마계의 놀림감이 될 일이었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 본앰브로스가 처음 보인 반응은 부정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바닥에 깔아 둔 마법진 외에도 사방에 경보 마법을 달아 뒀지 않느냐. 거기다가 저택 안팎으로 지키고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들을 물리치고 탈출한 것도 아니고, 아무런 낌새도 없이 탈출했다고?”
-아,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본앰브로스가 분노했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 너한테 잘 감시하라고 맡겨 둔 건데 남의 일처럼 이야기해?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
-죄, 죄송합니다. 저도 이렇게 감쪽같이 탈출할 줄 몰랐습니다.
제자가 별다른 변명 없이 저자세로 나오니, 더 화내려고 해도 화낼 수 없었다.
본때를 보여 주기에는 저 멀리 있는 데다가, 눈앞의 바리스탄과 그의 군대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본앰브로스가 물었다.
“혹시 지금 마을에 바리스탄의 자식들과 비슷한 외모의 마인족은 없나? 그 녀석들이 나타나기 전에 위장해서 속일 수만 있으면…….”
그때였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마인족 쪽에 함성이 터져서 봤더니, 언데드 몬스터들이 박살 나고 있었다.
난데없이 좌측에 나타난 둘이 강력한 마법으로 언데드 몬스터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던 것.
본앰브로스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분명 대마왕 바리스탄의 자식인 마왕 브리카와 길렉 형제였다.
‘……이제 다 끝장이다.’
납치한 뒤 졸렬하게 협박까지 하고 있었는데 인질이 탈출해 나타나다니.
안 그래도 영원히 사는 리치에게는 평생의 조롱거리였다.
바리스탄은 자식들이 나타난 걸 보고는 아주 기뻐했다.
“역시! 내 아들들이다. 탈출할 줄 알았어! 본앰브로스! 어떻게 된 거냐!”
그렇게 묻는 바리스탄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걸 보니 더욱 우울해진 본앰브로스는 다 내팽개치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본앰브로스 님! 어떡합니까?”
“스승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물러섭니까?”
순간 멍하게 있던 본앰브로스는 제자와 부하들의 외침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래, 이미 저질러진 일을 어쩌겠어. 이번 일을 제자들이 내 앞에서 티 내면 죽여 버리고, 마계에서 하는 소리는 못 들은 척하면 돼.’
그렇게 이 우스꽝스러운 사태를 수용한 본앰브로스는 전황을 살폈다.
마왕 브리카와 길렉이 탈출해서 합류한 덕분에 더욱 사기가 높아진 바리스탄 대마왕군은 자신들의 몇 배나 되는 언데드 군단을 밀어붙였다.
심지어 플레쉬 골렘들도 전의를 상실했는지 지휘는커녕 주춤거리며 방어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그동안 애써 모은 언데드 군단이 궤멸할 판국이었다.
“일이 이렇게 틀어진 이상, 내 실력대로 싸우는 수밖에! 애당초 잔머리 굴리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아.”
본앰브로스의 명령에 따라 브리카와 길렉을 납치한 퀴라니스나 그의 제자들이 들으면 어처구니없어 할 소리를 중얼거린 본앰브로스는 마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이 불리한 전황을 뒤엎을 회심의 카드를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나와라!”
본앰브로스의 명령이 내려지자 저 멀리서 검은 안개와 같은 죽음의 마기가 구름처럼 몰려왔다.
거기에서 무언가 거대한 뼈다귀 뭉치가 바리스탄 대마왕군의 위로 툭 하고 떨어졌다.
깜짝 놀란 바리스탄 대마왕군은 피하려고 했지만, 작은 산을 방불케 하는 그 크기에 수백 명이 그대로 깔려 버렸다.
“젠장,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면 어떡하라고?”
“저 거대한 건 뭐지? 날개도 달려 있는데.”
“설마 저건 드래곤??”
누군가가 눈치챈 것처럼 본앰브로스가 소환한 건 언데드 몬스터 중에 가장 강력하다고 하는 본드래곤이었다.
“후후, 이 녀석 하나면 이 병력을 모두 쓸어버리고도 남지.”
마력 소모가 극심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본드래곤이 날뛰기 시작하자 바리스탄 대마왕군이 그야말로 낙엽처럼 쓸려 나갔기 때문이다.
“제기랄, 공격이 전혀 안 통하잖아.”
“저걸 어떻게 이겨.”
“일단 모두 피해!”
심지어 바리스탄 대마왕군 측 간부들과 마왕들도 어찌할지 몰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드래곤은 비록 드래곤 브레스는 쓰지 못하나, 압도적인 신체에서 내뿜는 힘과 드래곤의 뼛속에 스며들어 있는 강대한 드래곤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본앰브로스의 마력과, 제작하면서 곳곳에 박아 놓은 마석까지 힘을 더했다.
“흐흐, 만든 나도 쉽게 못 이길 정도지.”
그만큼 본앰브로스가 자신 있게 내놓은 회심의 역작이었다.
그때 바리스탄이 큰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다들 후퇴하라! 후퇴해!”
그 지시에 바리스탄 대마왕군이 썰물처럼 우르르 뒤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훗,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깨달았나 보군. 진작 이렇게 할걸.”
본앰브로스는 웃으면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크하핫,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지 마라!”
본드래곤으로 전세를 뒤집긴 했지만, 지금까지 입은 부하들의 피해가 막심했다. 후퇴하는 적을 추격해서 타격을 입히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였다.
‘으하핫, 드디어 전공을 세울 기회가 왔다.’
‘모두 돌격!’
‘내가 제일 활약할 테다.’
플레쉬 골렘들이 신나서 달려드는 걸 본 바리스탄이 지시를 내렸다.
“마족 이상은 후방에서 후퇴하는 거 도와!”
그 말에 바리스탄 대마왕군에서 싸웠던 마왕부터 간부, 마족까지 후방으로 와서 병사들이 무사히 후퇴하도록 지원했다.
다행히 후퇴 속도는 아주 빨라서 금방 본드래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추격이 여의치 않다는 걸 직감한 본앰브로스가 여유로운 태도를 가장하며 말했다.
“후후. 졌다고 하면 이쯤에서 그만두지.”
“대신 패배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배상하라는 거겠지?”
“물론이다. 이거 대마왕끼리다 보니 이야기가 빠르군.”
“나도 더 피해를 키우고 싶지 않…….”
바리스탄은 그렇게 말하면서 필사적으로 후퇴하는 부하들을 바라봤다.
그때 귓가에서 바람이 속삭였고 그 말을 들은 바리스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러나 놀라움도 잠시뿐, 금방 불꽃같은 눈빛으로 본앰브로스를 노려보며 말을 이어 갔다.
“……지만, 가족을 납치한 녀석에게 항복할 수는 없지.”
“크윽.”
본앰브로스는 움찔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현재는 본드래곤을 소환하느라 마력 소모가 극심한 상황.
바리스탄이 전력으로 공격하면 당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뒤로 물러난 뒤, 안전을 확보했다고 생각한 본앰브로스가 소리쳤다.
“흥. 너 때문에 네 부하들이 죽어 나가게 될 거다!”
“그건 두고 봐야지.”
그렇게 대꾸한 바리스탄은 아래의 본드래곤을 쳐다봤다.
현재 본드래곤은 언데드 몬스터와 엉겨 붙어 있어 이동이 여의치 않은 상태. 무엇보다 자신의 부하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딱 좋군.”
바리스탄은 허리 쪽 주머니를 뒤에 있는 부하들에게 던진 뒤, 눈을 감고 마력을 모았다. 이마의 뿔이 먼저 붉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전신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뒤늦게 그걸 본 본앰브로스가 경악했다.
“설마 여기서 권능을 쓸 생각이냐!”
바리스탄의 권능, 염체화는 자신이 불 그 자체가 되어서 적에게 돌격해 모조리 불태워 버린다.
태울 수 없는 존재는 전무하다고 일컬어질 정도의 강력함으로 유명하다.
다만 막대한 마력을 필요로 하는 데다가 그 후유증도 있어, 그야말로 최후의 순간에서 쓸 만한 필살의 일격이었다.
“젠장, 여기서 끝장을 볼 생각이라니. 더 멀리 도망가야 해.”
아무리 자신이라도 지금 상태에서 저 염체화에 당하면 소멸할 게 분명했다.
라이프 베슬이 있어 부활할 수는 있겠지만, 여러모로 타격을 입기에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더욱 멀리 떨어진 본앰브로스는 뒤늦게 바리스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나를 노리는 게 아니었다니…… 아, 안 돼!”
본앰브로스가 절규했다. 바리스탄이 본드래곤을 향해 초고속으로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쾅!
화염 그 자체가 된 바리스탄이 본드래곤에게 충돌했다. 아니, 정확히는 본드래곤을 꿰뚫고 지면에 박혔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지면에서 수십 미터에 달하는 화염이 치솟더니 본드래곤을 집어삼켰다.
본드래곤만이 아니라, 그 주위에 있던 플레쉬 골렘 십여 마리와 언데드 몬스터 수천 마리도 휘말렸다.
그렇게 불길이 가라앉았을 때 남은 건 거대한 잿더미였다.
그토록 강했던 본드래곤이 순식간에 재가 된 거였다.
그 허무한 최후를 본 본앰브로스의 안광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내가 저걸 만드느라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절대로 용서 못 해!”
본앰브로스가 잿더미 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현재 바리스탄의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무리하게 권능을 쓴 탓에 지쳐 있을 게 분명했다.
자신의 마력 소모가 크긴 해도 충분히 유리한 데다가, 바리스탄은 현재 자신의 진영 한가운데 언데드 몬스터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 차라리 잘됐어. 이건 오히려 기회야!’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본앰브로스가 한층 속도를 높여 날아가는데, 무언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그건 바로, 바람 그 자체였다.
“이건…….”
현재 마계에서 자신을 막을 정도로 바람을 조종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아르칸?”
“네, 맞아요.”
형들을 구한 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르칸이 나타난 거였다.
아르칸은 빙긋 웃으며 본앰브로스의 속을 뒤집어 놓는 제안을 했다.
“그보다 이제 슬슬 그만 싸우지??”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