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불길한 예감 (1)
아르칸은 그대로 아버지와 함께 대마왕성으로 향했다.
이동석을 쓸 수도 있었지만, 블랙 드래곤에 관심을 보여서 피용을 타고 날아갔다.
참고로, 맏형 브리카와 둘째 형 길렉은 면목 없다면서 피용의 몸에 다는 운송 장치 안에 들어가 있겠다고 했다.
아르칸과 바리스탄이 괜찮다고 했지만, 두 형제는 한사코 사양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줄지어 회군하던 바리스탄 대마왕군은 블랙 드래곤에 탄 바리스탄과 아르칸을 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승리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바리스탄이 막대한 포상금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번 전투에 참여한 모든 마왕과 간부, 병사 들이 받기로 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건 전투 참여 수당.
본앰브로스에게 받는 배상금은 전공에 따라 추가로 지급한다고 했다.
‘이러니 다들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아르칸도 스스로 제법 베푸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리스탄은 그걸 넘어서 통이 아주 컸다.
저래서 파벌 내 많은 마왕들이 등을 돌리거나 비협조적으로 나왔을 때도 직속 병사들은 이탈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편 전투에 참석하기를 거부하거나 무응답한 마왕들은 전투의 향방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가, 바리스탄 대마왕군의 대승이라는 말에 난리가 났다.
아쉽게 패배했거나 겨우 승리했을 때 자신들의 값어치를 주장하면서 비싸게 굴 수 있었을 텐데, 대승이라니.
앞으로 아르칸이 멋대로 굴어도 제지하기 힘들어질 터. 이들 입장에서는 바리스탄이 차라리 대패하는 게 나을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들 속으로는 욕하면서도 바리스탄 대마왕님의 대승을 축하한다며 선물을 보내왔다.
뒤늦게 허겁지겁 병사를 이끌고 오는 중이라며 늦어서 죄송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승에 싱글벙글하던 바리스탄이었지만, 이들의 방문에는 찬바람이 부는 것처럼 쌀쌀맞게 대했다.
선물을 모두 거절한 뒤,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선언한 거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르칸이 물었다.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면 어디까지 징계하실 건가요?”
“일단 다시 사과하러 올 테니 그 진정성을 보고 결정하려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마왕을 교체할 수도 있겠지.”
마왕 자리에서 끌어내린다니, 생각보다 강경한 조치였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번에 어떻게 잘 넘기긴 했지만, 위험한 순간에 외면당한 거였다.
이번에 본때를 보여 주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또 쉽게 외면할지도 몰랐다.
‘나도 저럴 때는 단호해야겠지.’
아르칸은 새삼 다짐했다.
바리스탄 대마왕성에 도착하자 블랙 드래곤을 본 주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 저건? 아르칸 님의 블랙 드래곤이다!”
“드디어 돌아오셨나 봐. 바리스탄 님도 함께 계시잖아.”
“대승을 거두신 바리스탄 님을 찬양하라!”
“우와아아아아아!”
“이번 승리는 다 아르칸 님 덕분이라며?”
“맞아. 아르칸 님이 브리카 님과 길렉 님을 구출하신 덕분에 무사히 승리할 수 있었대.”
“다들 열심히 싸우긴 했지만, 브리카 님과 길렉 님이 계속 납치되어 있는 상태였다면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니까.”
“본앰브로스는 대마왕인 주제에 협박까지 해 댔다던데. 쯧쯧.”
“어쨌든 만세다! 아르칸 님 만세! 바리스탄 님 만세!”
주민들은 저마다 떠들면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돌아오는 동안 납치된 마왕들을 구하고, 대승을 거뒀다는 소식이 전해진 거였다.
모두 내심 대마왕성이 공격당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특히나 본앰브로스의 언데드 군단이 이곳을 점령하는 걸 두려워했다.
본앰브로스의 영역은 죽음의 마기가 뒤덮고, 언데드 몬스터 천지가 됐기 때문이다.
바리스탄과 아르칸은 잠깐 상공을 맴돌며 환호하는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뒤, 저택으로 향했다.
개선식은 추후 대마왕군 본대가 돌아왔을 때 따로 열 예정이었다.
한편 저택에서 목이 빠질 듯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 아네스는 블랙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뛰쳐나왔다.
“앗, 어머니가 나오셨네요. 빨리 가죠.”
“그러자.”
어머니를 본 아르칸은 곧바로 아래로 뛰어내리고, 바리스탄이 그 뒤를 따랐다.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가 아르칸과 바리스탄, 브리카와 길렉 형제까지 무사히 착륙하게 도와줬다.
아네스는 곧바로 납치됐었던 두 아들을 껴안았다.
“다행이구나, 무사했구나.”
“어머니, 죄송합니다. 걱정시켜 드려서.”
“잘못했어요.”
장성하다 못해 마왕인 아들들이었지만, 이때만큼은 어릴 때로 돌아가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겼다.
아들들의 말에 아네스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잘못은 무슨, 납치한 녀석들이 잘못이지.”
그러고는 조금 뒤에 있던 아르칸의 두 손을 잡았다.
“아르칸, 네가 네 형들을 구했다며? 정말 장하구나.”
“당연히 구해야죠. 제가 납치당했어도 형들이 구하러 오셨을 테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우리는 구출하는 데 실패했을 거 같아.”
“맞아,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탈출하기 어려웠어.”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었단 말이니?”
아네스가 놀라는 걸 보고, 아르칸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에이, 형들이 저 띄워 준다고 과장한 거예요. 그보다 아버지도 이번에 멋지게 본드래곤을 날려 버리셨어요.”
“맞아, 나도 고생했다고.”
바리스탄이 투덜거리자 아네스가 다가가 팔짱을 끼며 빙긋 웃었다.
“얼굴을 보니 그런 거 같아 보이네요. 고생했다니, 이따가 기대해요.”
“크흠, 흠.”
아네스의 간드러진 목소리에 민망해진 아들들이 민망해하며 헛기침하거나 외면했다.
아르칸도 화제를 돌렸다.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죠.”
그 말에 아네스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깜짝 놀랐다.
“맞다, 그래야지. 이거 요리를 해 줘야 하는데, 신경 쓰느라 아무것도 못 해서 어쩌지? 잠시만 기다리거라.”
“아, 아닙니다. 어머니! 저흰 어머니랑 함께 있고 싶습니다.”
“맞아요, 맞아.”
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떠올린 브리카와 길렉이 기겁하면서 만류했다.
뒤에 있던 바리스탄도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칸은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지만,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하게 느껴졌다.
***
반대로 그대로 돌아온 본앰브로스는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마신의 시신에 눈이 뒤집혀, 대마왕의 체면을 집어던지면서까지 바리스탄의 자식들을 납치했다.
그거로 단둘이서 붙자고 협박해 전쟁을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다시 자식들을 볼모로 협박했다.
그런데 그 자식들은 냉큼 탈출해 버리고, 전쟁도 대패해서 배상까지 해 줘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거였다.
그 과정에서 아끼던 본드래곤도 박살이 났다.
타격이 아주 컸지만, 본앰브로스를 우울하게 만든 건 그런 실질적인 타격이 아니었다.
어차피 리치로서 영생을 사는 만큼, 그런 피해야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복구할 수 있으니까.
우울한 건 바닥에 떨어진 평판이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납치 협박을 했어도 이기기만 했으면 어떻게든 포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처참하게 져 버린 거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자들을 별말 없이 묵묵히 평소처럼 지내고 있다는 거였다.
사실 제자들은 이번 일에서 보였던 본앰브로스의 모습에 실망했지만, 어떻게든 티를 내지 않게끔 노력 중이었다.
본앰브로스가 각종 감시 마도구부터 유령형 언데드 몬스터까지 모든 걸 동원해 자신들의 반응을 주시하는 중이라는 걸 알아서였다.
만약 본앰브로스가 서운해할 만한 이야기를 한다?
목숨을 잃는 건 기본이고 리치도 되지 못하고 소멸할지도 모르기에 필사적으로 속이고 있던 거였다.
그걸 모르는 본앰브로스였지만, 우울하긴 마찬가지였다.
‘제자들이 조용해 봐야 무슨 소용이야. 바깥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내 욕 하기 바쁜데.’
본앰브로스는 멍한 눈빛으로 서류를 내려다봤다.
그 서류는 외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 정리한 것. 특히 지금 보는 서류에는 마계에서 본앰브로스에 대해 떠도는 이야기가 잔뜩 적혀 있었다.
당연히 한창 이슈인 만큼 본앰브로스에 대한 조롱과 비난으로 가득했다.
본앰브로스는 한 글자라도 빠트릴까 꼼꼼히 읽으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제자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어차피 안 좋은 소리만 적혀 있을 텐데, 왜 그렇게 열심히 보십니까.”
“휴, 혹시나 여론이 좀 달라졌을까 해서 본 것뿐이야.”
본앰브로스는 변명하며 서류를 내려봤다.
만약 다른 제자가 그런 말을 했다면 화를 냈겠지만, 이 제자, 퀴라니스는 달랐다.
브리카와 길렉을 납치해 온 일종의 공범. 본앰브로스는 자신의 죄를 나눠 줄 유일한 제자이기에 해코지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일전에 너무 쉽게 물러나신 거 아닙니까? 충분히 승산이 있으셨는데요.”
“나도 끝까지 싸워 볼까 싶긴 했었어. 그런데 키클로테스가 물러나라고 하잖아.”
“그자가 대체 뭐라고, 위대한 리치킹이시자 대마왕 중 하나이신 본앰브로스 님께 왈가불가한단 말입니까!”
“으흠, 역시 그렇지? 그래도 거기에는 사정이…….”
살짝 기분 좋아진 본앰브로스가 설명하려 할 때였다.
뒤에서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왈가불가할 수 있는 건, 본앰브로스가 그토록 원하는 걸 줄 수 있어서지.”
어느새 키클로테스가 나타나 있었다.
퀴라니스는 깜짝 놀랐다.
이곳은 본앰브로스의 대마왕성.
아무리 대마왕이라고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지.’
바로 이 대마왕성의 주인인 본앰브로스가 출입을 허용했을 경우였다.
퀴라니스가 쳐다보자 본앰브로스가 시인했다.
“어, 내가 마음껏 들어오라고 이동석 열어 줬어. 그래야 한시라도 빨리 마석을 받지.”
그 대답에 퀴라니스는 낭패한 얼굴을 하면서 키클로테스의 눈치를 봤다. 자신이 한 말을 듣고 불쾌해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어서였다.
키클로테스는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보다 잘도 지껄이더군.”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죽어야지.”
그 말과 동시에 키클로테스는 퀴라니스의 머리를 잡아서 터트렸다.
자신의 제자가 무참히 살해당했건만, 본앰브로스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도리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에 이렇게 왔다는 건, 드디어 마석을 구했나 봐?”
“그렇다.”
“큭, 얼마나 기다렸다고.”
그때 리치 한 마리가 문을 열고 나타나더니, 무릎을 꿇었다.
“키클로테스 님, 죄송합니다.”
방금 키클로테스에게 살해당한 퀴라니스였다.
리치로 부활하고도 찾아와 키클로테스에게 사죄한 거였다.
키클로테스는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흥,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군. 그대로 내뺐으면 소멸시켜 버리려 했다.”
“됐지? 걔는 이제 신경 끄고, 어서 구해 온 거 보여 주기나 해.”
“흐흐, 여기 있다.”
키클로테스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석을 꺼내자마자 본앰브로스가 냉큼 가로채 소중하게 살폈다.
뼈다귀만 남은 양손 위에 아주 크고 찬란한 빛을 뿜는 마석이 있었다.
애타게 구하던 8성급 마석.
절대로 못 구할 것만 같았는데, 얼마 전 키클로테스가 마침 하나 생길 거 같은데 어떡할 거냐고 물어 왔었다.
이것 때문에 본앰브로스는 한동안 키클로테스에게 저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거면 되겠지?”
“그럼. 충분하다, 충분해.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든 구하면 된다.”
본앰브로스는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8성급 마석이 손에 들어온 이상, 지금까지의 굴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 마계, 아니 온 대륙이 자신 때문에 두려움에 떨게 될 테니까.
***
한편 아르칸은 바리스탄 대마왕성에 며칠간 머무르면서 개선식까지 마쳤다.
그런 다음 자신의 대마왕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블랙 드래곤 피용을 타고 날아가는데, 피용이 움찔했다.
“왜 그래?”
“핏, 저기 뭔가가 느껴져서.”
피용이 고개를 들어 가리키는 쪽은 본앰브로스 영역 방향이었다.
하늘이 아주 캄캄한 게 불길하게 느껴졌다.
‘뭐지? 예감이 안 좋은데…….’
그런 아르칸의 불길한 예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이 됐다.
아르칸이 다스리는 수인족 영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진 거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