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죽은 마룡의 둥지 (5)
잠시 후.
마룡의 새끼, 해츨링이 알을 깨고 나왔다.
전신에 점액질이 묻어 엉망이었다.
“이거 눈도 못 뜨고 있네. 어서 닦아 줘야겠어.”
아르칸은 그렇게 말하며 미리 준비해 둔 깨끗한 천으로 직접 해츨링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그사이 오웬은 아예 통제실 밖으로 나갔다.
해츨링이 눈을 떴을 때 보여서는 곤란해서였다.
아르칸을 자신의 부모처럼 따르게 만드는 게 목적인 만큼, 해츨링이 눈을 뜨자마자 처음 보는 건 아르칸이어야 했다.
물론, 그 후로도 신경 써서 돌봐 주며 애착 관계를 형성해 나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직접 몸을 닦아 주는 것도 그 일환이었지만, 당장 해츨링은 아르칸의 손길이 귀찮은지 어떻게든 피하려고 버둥댔다.
“피이이잇! 피잇!”
“자 자, 금방 끝나니까 얌전히 있어.”
아르칸이 해츨링을 달래며 얼굴의 점액질이 하나도 남지 않게 깔끔하게 닦아 냈다. 그래도 해츨링은 인상을 찌푸리기만 할 뿐, 눈을 뜨지 못했다.
딱히 걱정하진 않았다. 소설에서도 이랬으니까.
“배고파서 기운 없지? 이거 먹으면 기운 날 거야.”
아르칸은 마찬가지로 미리 준비해 둔 육포를 내밀었다.
해츨링은 냄새를 맡고 킁킁거리더니 냉큼 삼켰다.
“잘 먹네.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
계속 머리를 쓰다듬으며 육포를 먹였다.
해츨링은 육포 예닐곱 개를 먹어 치우고 나서야 기운이 났는지, 한 번 크게 눈살을 찌푸리더니 천천히 눈꺼풀을 열어 올리기 시작했다.
“오! 눈 뜨는데? 떴다.”
아르칸이 감탄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눈을 뜬 해츨링이 아르칸을 올려다봤다.
커다랗고 맑은 황금빛 눈동자에 아르칸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해츨링은 눈을 끔뻑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
그런 해츨링에게 다시 육포를 내밀었다.
“왜? 아직 배고파? 이거 더 먹을래?”
“……!!”
해츨링의 눈동자가 한층 더 커졌다.
지금껏 먹을 것을 준 게 눈앞의 존재라는 걸 깨달은 거였다.
해츨링은 아르칸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그래그래, 내가 앞으로 널 돌봐 줄 보호자다.”
흐뭇한 얼굴로 해츨링을 쓰다듬던 아르칸은 게티아에게 손짓했다.
“한번 확인해 봐.”
“크릉.”
해츨링이 바로 신하로 삼아도 될 만큼 호감도가 높은지 보려고 한 거였다.
게티아가 가름끈을 내밀며 다가가는데, 해츨링이 가름끈을 덥석 물어 버렸다.
“크릉! 크릉!”
“이런, 괜찮아?”
아르칸은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게티아를 어떻게든 빼서 해츨링과 떼 놓았다. 그러고는 해츨링의 입 안을 살폈다.
“혹시 가름끈 씹어서 삼킨 건 아니지? 이런 거 먹는 거 아니야. 지지야, 지지.”
“크르으응…….”
“섭섭하다고? 너는 수백 년을 넘게 산 어른이잖아. 방금 태어난 애부터 챙겨야지.”
“크릉? 크릉!”
어른이라는 말에 게티아가 신났는지 펄쩍 날아올랐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은 어른이라고 말한 아르칸이 무색할 정도였다.
‘얘 지능은 마력을 얼마나 먹어야 돌아오려나…….’
아르칸은 속으로 혀를 차며 물었다.
“그래서 감정은 됐어?”
“크릉!”
게티아가 자랑하듯 몸을 펼쳤다.
물리는 것도 접촉, 그 와중에 감정한 거였다.
[해츨링] [마력 : 3성] [특성 : 드래곤 브레스] [호감도 : 99]‘이름은 아직 안 지었으니까 해츨링으로 나오나 보네. 그래도 마력이 3성이라니, 역시 드래곤 수저.’
3성이면 중급 마족에 버금가는 수준.
나중에는 9성, 10성까지 성장한다니까 기대됐다.
‘그보다 호감도가 아쉽네. 1만 더 올랐으면 바로 신하로 삼을 수 있는데. 그래도 1 정도는 금방 올릴 수 있겠지.’
그때 통제실 밖으로 나가 있던 오웬이 물었다.
“이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다 됐어. 들어와도 돼.”
아르칸이 대답하자마자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꺅!”
“……!”
깜짝 놀란 해츨링이 몸을 낮추고 꼬리를 바짝 들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아르칸이 돌아보니 센시아가 비명을 지른 거였다.
그사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왜 저러나 싶었는데, 그 이유가 황당했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죠?”
센시아는 거대한 체구에 걸맞지 않게 눈을 반짝이며 해츨링을 바라봤다.
확실히 지금 해츨링은 작은 강아지 정도 크기에 동글동글하게 생겼는데, 마룡의 새끼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귀엽긴 했다.
“아르칸 님, 안아 봐도 되나요?”
그렇게 묻는 센시아의 눈빛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허락하지 않으면 아르칸을 원망할 것만 같았다.
“……어, 그, 그래.”
“후후. 이리 오렴.”
아르칸의 허락이 떨어지자 센시아가 두 손을 내밀며 해츨링에게 다가갔다.
흥분한 듯 콧김을 내뿜으며 다가가는 모습은 마치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앞둔 맹수 같았다.
“피잇!”
그 기세에 공포를 느꼈는지 작은 꼬리를 바짝 세우며 경계하던 해츨링은 센시아가 안으려고 하자 펄쩍 날아올라 피했다.
‘오!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날다니 대단한걸.’
“아니, 왜 도망쳐. 이 누나가 귀여워해 준다니까.”
“피이이이이이이이이!”
눈이 뒤집힌 센시아가 잡으려고 했지만, 해츨링은 곡예비행을 선보이며 요리조리 피했다.
“그만해. 싫어하잖아.”
아르칸은 센시아의 이마를 붙잡고 해츨링을 등 뒤로 숨겼다.
“힝.”
센시아는 아쉬워했지만, 순순히 물러났다.
“……!!”
그 광경을 본 해츨링이 눈을 크게 뜨더니 아르칸의 등에 비비적거렸다.
아르칸이 저 두려운 존재를 물리치고 자신을 지켜 줬다고 여긴 거였다.
“피이이. 피이이.”
“귀, 귀여워…….”
센시아는 그 모습을 입을 헤 벌린 채 보면서 부러워했다.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귀엽다는 말뿐만이 아니라 귀여운 것도 좋아하나 보네.’
처음 게티아를 봤을 때는 안 귀엽다고 질색하기도 했었다.
‘게티아도 나름대로 귀여운데…….’
한편 아르칸을 잘 따르는 해츨링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던 오웬이 물었다.
“아르칸 님, 이 해츨링을 신하로 임명하셨습니까?”
“아니, 아직. 아, 지금 일로 호감도가 올랐을지도.”
아르칸은 해츨링을 게티아에게 내밀었다.
“다시 확인해 봐. 너도 얌전히 있어.”
“크릉.”
게티아는 다시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가름끈을 해츨링에게 가져다 댔다.
해츨링도 아르칸의 말을 알아들은 듯 잠자코 있었다.
그 결과는 아르칸의 예상대로였다.
[호감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대상을 신하로 임명할 수 있습니다.]“됐다! 임명한다.”
망설임 없이 권능을 발휘했다.
그러자 해츨링으로부터 마력이 흘러나와 아르칸에게 흡수됐다.
[해츨링이 새로운 신하로 등록됐습니다.]“우웃.”
저 조그마한 몸에서 흘러들어오는 마력이 생각보다 묵직했다.
센시아와 같은 3성이라도 느껴지는 기운이 달랐다.
‘과연 드래곤의 마력. 보통이 아니네.’
감탄하며 마력을 간신히 흡수해 냈는데, 오웬이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는 게 아닌가?
“아, 아르칸 님.”
“왜?”
“이마에 뿔이…….”
“뿔?”
그 말에 이마에 손을 올리니 단단한 게 만져졌다.
마정석에 얼굴을 비춰 보니 정말로 뿔이 돋아나 있었다.
오웬이나 센시아를 신하로 삼았을 때도 안 났던 뿔이었다.
‘크기는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인가.’
마왕의 뿔이라기에는 초라하고 게티아를 통해 확인해도 아직 마력이 1성에 불과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임에는 분명했다.
센시아도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했다.
“축하합니다, 아르칸 님!”
“고마워. 드래곤의 마력이 이렇게 효과가 좋다니. 우리 해츨링을 하루라도 빨리 키워야겠는걸?”
아르칸이 웃으며 해츨링의 턱을 긁자 해츨링도 기분이 좋은지 눈을 감고 비비적거렸다.
“그러면 당장 마력초를 가져올까요?”
“크르흐흥!”
오웬의 말에 게티아가 음흉하게 웃었다.
해츨링이 그 쓰디쓴 마력초를 먹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눈앞에 아른거린 거였다.
그러나 아르칸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거 너무 써서 먹이기 힘들 거야. 다른 영약이나 마석을 구해 봐야지.”
“크릉!”
게티아가 화를 냈다.
자기한테는 그 쓴 마력초를 잔뜩 먹여 놓고는, 해츨링에게는 못 먹이겠다니.
억울했기 때문이다.
“너무 그러지 마. 너는 어른이고 애는 아직 아기잖아, 아기.”
“크릉!”
아르칸이 달랬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는지 삐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센시아가 넌지시 물었다.
“이 아이 아직 이름이 없나요? 계속 해츨링이라고 부르시던데.”
“어, 아직 못 지었지.”
“그럼 제가 이름 지어도 될까요?”
“괜찮은 걸 생각해 내면.”
“음……. 검으니까 오닉스?”
‘센시아도 센스가 안 좋군.’
아르칸이 속으로 평가를 내리는데, 센시아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어때요? 귀엽죠?”
“기각.”
“힝.”
덩치에 맞지 않게 앙탈을 부리며 아쉬워하는 걸 보면서 해츨링을 가리켰다.
“이 아이도 마음에 안 드는 거 같은데?”
해츨링은 고개를 휙 돌리고 있었다.
명백하게 마음에 안 든다는 의사 표현.
그 모습에 풀이 죽은 센시아는 어깨를 늘어트리며 중얼거렸다.
“미, 미안. 좀 더 생각해 볼게.”
“다크드래곤은 어떻습니까?”
오웬이 제안했지만, 해츨링은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역시 내가 생각해 보는 수밖에 없나.’
아르칸은 해츨링을 유심히 쳐다봤다.
“피이?”
고개를 갸웃하며 쳐다보는 해츨링을 보며 아르칸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그래, 어렵게 생각할 거 없지. 피 하고 우니까, 피용이 어때?”
“피피? 피피!”
이번에는 해츨링도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용사가 지은 용용이보다는 피용이가 훨씬 낫지.’
아르칸이 자신의 센스에 만족하고 있을 때, 오웬이 넌지시 불렀다.
“흠, 아르칸 님.”
“음?”
“저희 마력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아르칸 님께서 얻는 마력도 더욱 많아집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다만, 마인족의 마력은 대부분 타고나는 편.
성인이 될 때까지는 성장하지만, 한계치 이상 높이기는 매우 어렵다고 했다.
쉽게 높일 수 있었으면 바리스탄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르칸의 마력을 높였을 테니까.
“참, 그러고 보니 오웬이 마심장을 회복하면 마력이 꽤 늘어나겠는걸?”
오웬은 현재 마심장 문제로 1성에 불과하지만, 본래 마력은 5성. 어지간한 하급 마왕급이었다.
문제는 마심장을 고치려면 현재 아르칸의 능력으로는 힘들다는 거였다.
“미안하지만, 고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해.”
“아, 제 이야기가 아니라, 피용이 말입니다.”
“피이?”
“드래곤답게 태어나자마자 많은 마력을 가졌지만, 앞으로 막대한 마력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렇겠지.”
아마 피용이가 온전한 드래곤이 된다면, 그에게서 마력을 일부만 나눠 받더라도 아르칸의 마력은 마왕급에 이를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하려면 성장의 열매가 필요한데…….’
문제는 당장 오웬의 치료법을 구하기 힘든 것처럼, 성장의 열매도 지금 아르칸으로서는 찾으러 가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아르칸 님만 허락해 주시면 제가 피용이를 훈련시켜 볼까 합니다만. 마력을 다루는 훈련을 하면 조금이라도 빠르게 성장할 거고, 전투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훈련이라…….”
피용이는 소설에서 용사와 함께 싸울 때도 강하긴 했다.
단순했지만, 드래곤의 피지컬이 워낙에 사기였던 덕분이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안 좋은 최후를 맞이했지.’
어차피 앞으로 아르칸과 함께하면 전투를 피할 수 없는 상황.
“확실히 호신도 겸할 겸,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아, 안 되는데…….”
그때 센시아가 말리길래 쳐다보니까 공포에 질린 듯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런 센시아를 보며 오웬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뭐가 안 돼? 왜, 오랜만에 센시아도 같이 훈련할까?”
“저, 저는 경비대장이 일이 바빠서…….”
센시아는 사시나무처럼 떨면서도 간신히 거절했다.
“그래? 아쉽군. 피용이는 안 바쁘지?”
오웬이 악의 없이 물었지만, 피용이의 목소리는 진작 안 좋았다.
아무래도 저 무서운 마족까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니, 겁을 안 집어먹을 수가 없었나 보다.
그때 부관 트릴이 다급하게 달려와 소리쳤다.
“대, 대장! 마왕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야?”
“고블린들의 첩보입니다. 제니칼 파벌 방면에서 마왕군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답니다.”
더 설명 안 해도 포그밀이 부추겨서 온 마왕군임이 틀림없었다.
오웬과 센시아의 얼굴이 굳었고, 아르칸도 쓴웃음을 지었다.
‘올 것이 왔군.’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