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불길한 예감 (3)
아르칸은 바리스탄과 상의한 후, 곧바로 용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바빠? 대마왕 한번 안 잡아 볼래?
-드디어 내 손에 죽고 싶은가 보네.
-또 그 소리야? 이제 재미없거든.
-농담이야, 농담.
‘용사는 농담이라고 했지만, 왠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단 말이지. 내가 마왕이라서 그런 걸까?’
-그래서 어떤 대마왕을 잡으라고 연락한 거야?
-본앰브로스.
그렇게 운을 뗀 아르칸은 메시지로 본앰브로스가 마심의 심장을 가졌으며 그게 활성화된 거 같다고 설명했다.
-뭐라고? 마신의 심장이 활성화됐다고?
-그래, 덕분에 내 영역도 오염되기 시작했다. 몬스터도 잔뜩 늘어났고.
-흥, 그럴 줄 알았다. 너한테 피해 준다고 죽여 달라는 거였구만.
-계속 내버려 두면 온 대륙이 오염될 텐데? 내버려 두고 싶으면 내버려 두든가.
-농담이야, 농담. 가서 해치울게.
-진작 그럴 것이지.
문득 아르칸은 용사가 농담을 계속하는 걸 보고, 왠지 기분 좋은 일이 있는 것 같다 느꼈다.
‘무슨 일이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괜히 캐묻기도 싫었다.
지금은 본앰브로스를 제거하는 데 용사의 도움을 받기만 하면 된다.
본앰브로스가 바리스탄보다 약하다고 알려진 만큼, 소설에서 바리스탄을 일대일로 싸워 해치운 용사라면 본앰브로스를 해치우고 남았다.
‘다만 일대일 상황까지 가는 게 힘들겠지만.’
본앰브로스는 일신의 전투력은 약해도 본드래곤처럼 언데드 몬스터를 미리 만들어 둘 수 있는 리치킹인 데다가, 제자도 많았다.
특히 이번에는 본앰브로스의 대마왕성까지 쳐들어가야 하는 만큼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었다.
무엇보다 마신의 심장이 활성화되면서 본앰브로스가 특별한 힘을 손에 넣었을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것까지 최대한 고려해서 작전을 짜야겠군.’
아르칸은 뒤통수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그 후로 아르칸은 대마왕성의 간부들과 직속 마왕들을 불러 밤새도록 작전 회의를 했다.
***
그러는 사이 수인족 영역 내의 혼란은 갈수록 커졌다.
곳곳에서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하는 건 예사였다.
부족이나 마을 단위, 심지어는 마왕끼리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때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가장 큰 싸움은 놀랍게도 아르칸의 직속 부하라고 알려진 수인족 마왕 삼인방 사이에서 벌어졌다.
아르칸 파벌의 수인족 마왕 삼인방이라고 하면 이 셋을 가리킨다.
먼저 구미호 수인족 마왕 나미라.
뱀 수인족 마왕 베리나.
박쥐 수인족 마왕 아그나르.
이 셋은 아르칸에 맞서 연합을 맺어 싸울 때부터 서로 친하기로 유명했다.
아르칸의 휘하에 들어와서도, 서로 티격태격할 때도 많았지만 어디까지나 친구들끼리의 장난이었다.
그런데 이번 나미라와 베리나의 다툼은 유난히 심각했다.
다툼의 시작은 베리나가 가진 독 때문이었다.
나미라가 아홉 개의 여우 꼬리를 바짝 세우며 위협하듯 소리쳤다.
“야! 독 관리 똑바로 안 해? 내 꼬리에 튀었잖아!”
“츠츳, 그거 가지고 왜 난리야? 그보다 네가 자랑질 하느라 꼬리를 공작처럼 펼치고 다니니까 그렇지.”
“자랑질? 또 질투하는 거야? 네 질투는 지긋지긋해. 네 꼬리가 바닥에 질질 끌리는 게 내 탓이야?”
“뭐라고? 지금 내 꼬리 흉본 거야?”
분위기가 살벌해지는 걸 느낀 박쥐 수인족 마왕 아그나르가 나서서 말렸다.
“싸우지 마, 응? 싸울 일 아니잖아? 구미호 꼬리에 묻은 독은 내가 지워 주면 될 거 아니야?”
그러자 나미라가 질색했다.
“흥, 내 아름다운 꼬리를 너한테 맡겨 둘 거 같아?”
“넌 왜 속없이 나서고 그래? 너도 나미라가 자랑하는 거 꼬았잖아.”
베리나의 말에 나미라가 코웃음을 쳤다.
“아아, 그랬어? 내 아름다운 꼬리에 그렇게 열등감을 느끼다니. 안타깝다, 정말.”
“열등감? 힘도 없어서 꼬리 치며 유혹이나 하고 다니는 주제에.”
“이게, 어디 한번 붙어 봐?”
“그래, 이 기회에 누가 위인지 결판을 내자!”
“아니, 다들 왜 이러는 거야?”
아그나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미라와 베리나는 싸우기 시작했다.
어찌나 살벌하게 싸우는지, 서로의 몸에 상처가 생기고 사방에 피가 튈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싸우던 둘은 지쳤는지 거리를 벌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둘 다 이제 분이 좀 풀렸어? 이제 그만해, 알았지?”
아그나르가 어떻게든 둘을 달래려고 했지만, 둘은 아직 화가 가시지 않았는지 마주 보며 씩씩거렸다.
“두고 보자! 조만간에 결판을 내는 거야.”
“츠츳. 두고 보자고 하면 무서워할 줄 알아?”
결국, 화해는커녕 서로 으름장만 내뱉고 헤어졌다.
그걸 본 아그나르는 그 사이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풀이 죽은 채 사라졌다.
곧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이 떠들어 댔다.
나미라가 잘했는지 베리나가 잘했는지, 혹은 둘 다 잘못했고 아그나르가 불쌍하다고 말하는 이들끼리 설전을 벌이다가 다시 싸움을 벌였다.
그걸로 그날의 소란은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다음 날 소란은 더 크게 벌어졌다.
나미라와 베리나가 말만으로 끝내지 않고 정말 다시 싸우기 시작한 거였다.
이번에는 각자 부하들까지 끌고 왔다.
아그나르는 그 소리를 듣고 쫓아 나와 말렸지만, 조금도 들어먹지 않았다.
말리던 아그나르도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야! 아르칸님한테 혼나고 싶어? 싸울 거면 다른 데 가서 싸워!”
“윽, 확실히 대마왕성에서 싸우면 아르칸님께 혼날 거야.”
“츠츳. 자리를 옮기자.”
나미라와 베리나는 잔뜩 화가 난 상황이었지만, 아르칸의 이름에는 반응하며 아그나르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둘은 대마왕성을 나와서 싸움을 재개했다.
“좋아, 더욱 제대로 싸울 수 있겠군.”
“츠츳. 누가 할 소리.”
수인족 영역에서 유명한 삼인방 중 두 사람이 싸우고 있다는 말에 구경꾼까지 생겼다.
문제는 나미라가 쓰는 유혹의 권능에 대비한 베리나와 그의 부하들과 달리, 구경꾼들이 거기에 걸린다는 거였다.
“젠장, 방해되는데.”
“츠츳. 안 되겠다, 좀 외딴곳으로 가서 싸우자.”
“그래야겠어.”
합의한 둘은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서 싸우기로 했다.
그러자 구경꾼도 따라 올라왔다.
“젠장! 따라오지 말라니까.”
“츠츳. 방해꾼들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람.”
하는 수 없이 두 마왕은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다 못해 본앰브로스 영역과 접해 있는 구역까지 갔다.
“어, 저기로 가도 되나? 본앰브로스 대마왕 영역이잖아.”
“아니, 아직 대마왕 아르칸님 영역 맞을 텐데.”
“뭐 선이 그어져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더 가면 위험하니까 돌아가자.”
“그러자고. 괜히 이곳에 얼쩡거리다가 언데드 몬스터라도 나타나면 위험해.”
그제야 끈질기게 따라왔다던 구경꾼들도 포기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반면에 나미라와 베리나는 오히려 잘됐다는 듯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위로 올라가면서 싸우는데, 저 멀리서 데스나이트가 스켈레톤 기사들을 이끌고 달려왔다.
“여기는 본앰브로스 대마왕님의 영역이다. 썩 나가라.”
그 말에 한창 싸우던 둘은 데스나이트를 노려봤다.
“지금 누구보고 명령질이야?”
“츠츳. 기분 나쁘네.”
“아, 아니 잠깐. 돌아가 주십시오.”
데스나이트는 나미라와 베리나의 뿔을 보고 보통 수인족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눈치채고는 태도를 바꿔서 정중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미 화가 난 두 마왕을 멈추진 못했다.
“이 자식이, 너부터 작살을 내 주마.”
“츠츳. 안 그래도 열받았는데 잘 걸렸다.”
둘은 그렇게 본앰브로스의 영역 경비대를 순식간에 박살 냈다.
그 때문에 비상이 걸렸고, 당연히 본앰브로스에게도 보고됐다.
***
“뭐, 수인족 마왕들이 우리 영역을 침범했다고?”
보고에 놀란 본앰브로스가 묻자 퀴라니스가 보충 설명을 했다.
“네, 알아보니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여기까지 넘어온 듯합니다.”
퀴라니스는 자신의 스승이 키클로테스가 자신을 해칠 때 방관한 데 불만이 컸다.
그러나 마신의 심장을 활성화한 뒤, 죽음의 물이 만들어진 뒤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다른 제자들처럼 본앰브로스에게 잘 보여서 죽음의 물에 자신의 라이프베슬을 넣어 강화하고 싶었다.
‘제자 중에서는 내가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중이니 그 가능성도 가장 크지.’
퀴라니스가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본앰브로스가 실실 웃으며 물었다.
“그래, 최근 수인족 영역이 엉망이라며?”
“여기저기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르칸도 어떻게 할 줄 몰라 손 놓고 있나 봅니다. 이번에 영역을 넘어왔다는 마왕들도 아르칸의 측근이라 불리는 이들입니다.”
“훗. 꼴 좋군. 만날 잘난 체하더니 드디어 골탕을 먹는구나. 그 얼굴을 봐야 하는데.”
기분 좋아하던 본앰브로스는 이내 안광을 가느다랗게 해서 물었다.
“수인족 영역이 이상한 거, 아무래도 우리 탓 같지?”
“네. 죽음의 피가 미친 영향이 분명합니다.”
“크흠. 그것 때문에 대륙을 오염시키는 건 좀 미루려고 했는데, 그래도 골탕 먹는 걸 보니 썩 나쁜 일만은 아니군.”
본앰브로스는 오랜만에 아주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그나저나 침범한 수인족들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마왕들을 동원해서 내쫓습니까?”
“아아, 내버려 둬. 어차피 이곳은 수인족이 넘어와도 살 수 없잖아. 싸우다가 돌아가겠지.”
본앰브로스가 관대하게 말했다.
실제로 죽음의 마기로 뒤덮인 본앰브로스의 영역에서는 수인족에게도 악영향이 간다.
언데드 몬스터가 전멸한 뒤 시간이 지나면 죽음의 마기가 빠지긴 하지만, 마신의 심장이 활성화된 지금은 수인족 영역까지 확대되면 확대됐지 그럴 일은 없었다.
그러나 얼마 뒤 전해진 소식은 본앰브로스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다투던 수인족 마왕 나미라와 베리나가 자신의 영역에서 각각 다른 마왕성을 공격해 함락시켰다는 거였다.
“뭐라고? 대체 뭐 때문에? 둘이 서로 싸우는 거 아니었나?”
“죽음의 마기 때문에 싸우기 힘들다고 마왕성 대결을 펼칠 거라고 했답니다.”
확실히 마왕성 내부라면 죽음의 마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네들 사정. 본앰브로스로서는 황당할 노릇이었다.
“무슨 미친 소리야. 그럴 거면 자기네들 영역에서 하든가.”
“어떡합니까? 쓸어버립니까?”
“아니, 일을 크게 만들긴 싫군. 그래, 이번 기회에 바리스탄에게 준 배상금이나 좀 벌충하자. 아르칸에게 책임을 묻고 배상해 달라고 해야겠어.”
“알겠습니다. 제가 항의하는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칸으로부터 회신이 도착했다.
그런데 사과나 배상에 관한 이야기는커녕, 최근 부하들이 통제가 잘 안 되고 수인족들도 상태가 안 좋다며, 오히려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냐고 따지듯 묻는 게 아닌가?
회신을 읽은 퀴라니스가 물었다.
“뭐라고 답변합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부하들이나 데려가라고 해. 아니면 공격할 거라고.”
“알겠습니다.”
퀴라니스는 대답하면서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소식이 도착했다.
또 다른 마왕성까지 점령당했다는 거였다.
“에잇, 더 내버려 둘 수 없다.”
참다못한 본앰브로스가 공격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 아르칸으로부터 새로운 연락이 왔다.
“이제야 정신 차리고 사과하려는 건가 보는군. 어서 줘 봐.”
서신을 뺏어 읽던 본앰브로스의 안광이 흔들렸다.
“스승님, 왜 그러십니까? 거기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선전포고다.”
“네?”
“……아르칸이 내게 선전포고를 해 왔다. 일이 이렇게 된 김에 그냥 침공하기로 했단다.”
본앰브로스는 대꾸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설마 죽음의 물이 대마왕까지 분노 조절 장애로 만든 건가?’
그러나.
본앰브로스의 오해와 달리 이건 모두 아르칸의 계략이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