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불길한 예감 (4)
죽음의 피의 영향으로 수인족들은 쉽게 분노하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들을 말리러 간 볼가는 싸움은 피할 수 없었지만, 멀쩡했다.
그걸 간파한 아르칸은 몇 가지 실험 끝에 자신의 신하들과 신도들은 그 영향을 안 받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 이용해 먹을 수 있겠는데?’
아르칸은 이 점을 고려하여 참모들과 논의해 작전을 짰다.
먼저 죽음의 피 영향으로 분노한 아르칸의 신하들이 다투는 척하면서 본앰브로스의 영역으로 넘어가 그곳의 마왕성을 점령하기로 했다.
정식으로 선전포고 하면 상대가 방어 태세를 갖출 테니, 이 방법으로 혀를 찌를 생각이었다.
치사하다고 해도 본앰브로스가 그동안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누구도 아르칸을 비난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본앰브로스는 바리스탄의 자식들, 즉 아르칸의 형들을 납치해 볼모로 잡고, 협박을 일삼았으니까.
‘다 자업자득이지.’
아르칸이 납치당했던 형들의 복수를 위해 한 짓이었다고 하면, 오히려 잘했다고 박수 치는 이도 적지 않을 게 분명했다.
사실 명분이 없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번에 끝장을 볼 생각이니까.’
어쨌거나 나미라와 베리나가 싸운 것도 이 작전의 일환.
작전은 현재까지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본앰브로스 측이 당황하는 사이에 마왕성을 차례차례 점령해 나가고 있었다.
그 도발에 본앰브로스의 본신이 나오면, 그 틈에 별동대가 본앰브로스 대마왕성에 잠입해 최심부로 내려가 마신의 심장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제피로스가 아르칸에게 보고했다.
“현재 점령한 마왕성은 모두 여섯 개. 곧 몇 개의 마왕성을 더 점령할 거라고 합니다.”
“그럼 슬슬 움직여도 되겠군. 자, 선수 입장!”
“선수 입장은 무슨, 너도 가야지.”
“그래그래. 그냥 이 대사, 한 번쯤 해 보고 싶었거든.”
용사의 타박에도 아르칸은 웃으며 대꾸했다.
사실 별동대의 멤버라고 해 봐야 아르칸과 용사 둘뿐이었다.
그래도 아공간 주머니에 있는 용아병들과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 땅의 정령왕 로카스톤도, 전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지만 동원할 수 있었다.
단, 피용을 비롯해 나머지는 본앰브로스 대마왕군과 본격적으로 싸울 때 필요할 것 같아 함께하지 못했다.
이것만으로 부족했지만, 용사가 가세한 것만으로도 빠진 전력을 메우고도 남았다.
단, 용사는 여전히 혼자였다.
“여신이 성녀를 아직 임명 안 했나?”
“했지만, 안 데려왔다.”
“그래, 어련하려고.”
워낙 솔플을 고집하던 녀석이다 보니 아르칸도 더 따지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싸우러 나서는 것만 해도 많이 나아진 거였으니까.
“그럼 가자.”
본앰브로스 대마왕성에 침입하는 임무를 맡은 별동대가 출발했다.
영역 경계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거기서 아르칸은 마법 할루시네이션을 사용해 자신과 용사를 전처럼 용병으로 위장했다.
‘그러고 보니 용사는 지금도 성검을 빼고는 용병처럼 보이는데, 별다른 위장이 필요 없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본앰브로스 영역으로 넘어갔다.
원래라면 영역 경비대인 데스나이트와 스켈레톤 기사단이 부리나케 쫓아와서 시비를 걸었을 테지만 한참 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수인족 마왕 나미라와 베리나가 마왕성을 점령한 뒤로 제법 많은 수인족들이 영역을 넘어가서 난동을 피우는 척하면서 마왕성을 점령해 나가는 상황.
그들로부터 마왕성을 방어해야 하니, 영역 경계에 신경 쓸 겨를이 있을 리 만무했다.
다만, 유령형 언데드 몬스터 레이쓰가 감시하듯 한참 위에서 맴돌았다.
아르칸은 그런 레이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
“저희 용병입니다! 용병!”
“잘도 믿겠다.”
“믿던데?”
“……?”
핀잔을 주던 용사는 아르칸의 대답에 어리둥절한 얼굴이 됐다.
그사이 아르칸은 저 앞에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본앰브로스를 끌어내야 할 텐데, 잘 해내겠지?’
***
분노 때문에 서로 죽일 듯 다투던 나미라와 베리나는 아르칸이 선전포고를 날리자마자 돌변했다.
언제 싸웠냐는 듯 힘을 합쳐 마왕성을 탈환하려는 적을 상대했다.
한쪽이 위기에 처하면 뛰쳐나가서 도와주고, 그 반대로도 나섰다.
둘을 말리다가 실패하는 역할을 맡았던 아그나르도 슬쩍 합류해 둘을 지원했다.
수인족 마왕 삼인방이 강하긴 해도, 이들뿐이라면 본앰브로스 측도 그렇게 골치 아프진 않았다.
문제는 본앰브로스 측이 나미라와 베리나를 주목하는 사이에, 아르칸을 대신해 수인족 영역을 이끄는 볼가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영역을 넘어온 거였다.
그제야 본앰브로스 대마왕성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거 홧김에 선전포고 한 줄 알았더니, 진짜 전면전을 벌일 생각인가?’
본앰브로스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마신의 심장을 활성화한 뒤, 빠르게 생성되는 죽음의 물 덕분에 그는 시시각각 강해지는 중이다.
다만, 본앰브로스의 마력에 변동이 생기면 라이프베슬에 영향을 미쳐 마력 흡수도 멈췄다.
리치 중의 리치, 리치킹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는 마력으로 이뤄진 존재.
심정이 흐트러지는 것만으로 마력 변동이 생겼다.
사실 최근에 관대하게 군 것도 이 영향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골탕을 먹였다고 생각한 아르칸 때문에 오히려 분노로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심해지면 임계점을 넘어 마력 흡수가 멈출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까진 괜찮았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마력을 늘리는 게 중요해.’
그렇게 결정을 내린 본앰브로스는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자신의 충실한 제자를 불렀다.
“퀴라니스.”
“네.”
“네게 전권을 줄 테니, 집 안에 들어온 벌레들을 모조리 제거하도록.”
그 말에 퀴라니스는 내심 아주 기뻐했다.
‘이건 기회다! 내 주가를 올릴 절호의 기회!’
아르칸 대마왕이나 그가 데리고 다니는 블랙 드래곤이 나설 경우가 걱정되긴 했다.
그러나 그쯤 되면 아무리 전권을 줬다고 할지라도 스승님이 나서야 할 시점이니까 문제없었다.
“대답은? 혹시 자신 없나? ”
“아닙니다. 반드시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퀴라니스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그 시각 수인족 마왕 삼인방은 작전 회의 중이었다.
나미라가 지도를 콕콕 집으며 말했다.
“자 자, 내일은 이 마왕성까지 공략하자.”
“츠츳, 식은 죽 먹기다. 여기 마왕들은 대부분 수준이 낮아.”
베리나의 자신 넘치는 말대로, 본앰브로스 영역의 마왕들은 비교적 약했다.
아무래도 강해서 마왕의 자리에 올랐다기보다는 본앰브로스에게 잘 보인 덕분에 마정석을 하사받아 마왕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였다.
“그래도 내일부터는 쉽지 않을걸. 슬슬 상대도 정신 차리고 대응할 테니까.”
아그나르의 지적에 볼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슬슬 주의할 때야. 무엇보다 재미없게도 우리의 임무는 본앰브로스 파벌의 마왕성을 최대한 많이 점령하는 게 아니니까. 대마왕성 근처까지는 안 올라가는 게 좋지.”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참모인 아바로스가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지금 너무 많이 올라왔어요. 이대로라면 본앰브로스가 나타나도 금방 귀환할 겁니다.”
“그러면 마왕성을 포기하고 물러나?”
“물러나야 하겠지만, 그냥 물러나긴 아깝죠.”
아바로스는 뱀 혀를 날름거리며 사악하게 웃더니 지도에 표시했다.
“아르칸님께서 주신 정보로는 저희를 토벌하기 위해 이곳으로 병력이 모이는 중이라는군요. 이 병력을 잡아먹고 본앰브로스를 끌어낼 생각입니다.”
“작전은 있어?”
“마침 아르칸님이 미리 알려 주신 작전이 있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아바로스는 그 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아바로스의 설명에 회의실 안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퀴라니스는 이번 임무를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했다.
그동안 모아 둔 언데드 몬스터들을 모두 출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돈과 마석을 탈탈 털어서 사형제들에게 주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 모은 네크로맨서와 리치는 자신을 포함해 모두 열 명.
본앰브로스에게 전권을 받은 만큼, 그 이름을 팔면 더 많은 네크로맨서들을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건성으로 나서면 도움은커녕 발목만 잡을 테지.’
그럴 바에는 돈과 마석을 쥐여 주고 확실히 계약을 맺는 편이 나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겠지?’
퀴라니스는 적의 진격로를 살폈다.
“다음에는 여기로 공격해 오겠군요.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공격해 오는 적을 한 차례 무너트리고 반격하겠습니다.”
“흠, 확실히 괜찮은 전략인데?”
“그래, 대마왕성에서 방어할 게 아니라 바깥에서 포위해야 병력이 많은 이점을 살리지.”
“본앰브로스 님이 괜히 전권을 맡긴 게 아니군.”
그럴싸한 퀴라니스의 지시를 들은 사형제들이 찬양했다.
어깨가 으쓱해진 퀴라니스는 헛된 꿈까지 꾸었다.
‘그래. 넘어온 수인족들을 다 몰아낸 다음에, 아르칸 영역에도 타격을 주는 거야. 그럼 마정석이 다 몇 개야?’
지금껏 투자한 돈과 마석을 모두 회수하고도 남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실력을 본 사형제들이 앞으로도 이끌어 달라고 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대마왕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파벌을 이룰 수 있겠지.’
그러나 이런 퀴라니스의 꿈같은 계획은 시작부터 어그러졌다.
예상 진격로에서 한참을 대기했는데도, 적이 도통 나타나지 않았다. 확신해 보니 마왕성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단다.
‘왜 가만히 있지? 분명 충동 조절을 못 해서 마구잡이로 공격해야 하는데.’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 적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 싸우는 기색도 없었다.
그러자 사형제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아, 지루해.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해?”
“함께 싸우기로 한 건 딱 한 달이다. 그 이상은 하루도 지체하지 않고 돌아간다.”
“그냥 돌아갔다가 싸우면 다시 오면 안 되나?”
이러다가는 싸우지도 못하고 부대가 와해할 것만 같았다.
“아, 알겠습니다. 적이 휴식을 취하는 모양인데, 지금 쳐들어가죠.”
“그럼 어떻게 싸울 건데?”
“공략할 마왕성은 많으니까 각자 하나씩 잡으면 되지.”
“좋은데? 누가 먼저 함락시키는지 내기하는 게 어때?”
퀴라니스의 눈이 지도로 향했다.
사형제의 말처럼 적은 어느덧 본앰브로스 파벌 내 마왕성을 무려 열 개나 점거하고 있는 상황.
각자 마왕성을 공략시켜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너무 안이한 작전이지.’
이번 임무는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퀴라니스는 방심하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결정했다.
“가까운 마왕성부터 차례로 공략합시다. 둘씩 짝지어서 하나는 공격, 하나는 보조하는 거죠.”
“그럼 나 공격한다. 알았지?”
“씁, 멋대로 정하는 게 어딨어?”
“맞아, 누구는 보조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나?”
다투기 시작하려는 걸 보고, 퀴라니스가 얼른 나서서 중재했다.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마왕성 두 곳씩은 함락시켜야 하니, 순번만 다를 뿐 한 번씩 공략하게 될 겁니다. 짝지어서 금화 앞뒷면으로 정해요.”
“음, 그러면 되겠네.”
“난 보조가 좋아. 공격 담당이 공략에 실패하면 힘이 빠진 적을 내가 상대하면 되니까. 공격 먼저 하고 싶으면 나랑 같이하자고.”
다소 소란스러워지긴 했지만, 짝을 짓는 데 성공해 그대로 각자 마왕성을 공략하기 위해 나뉘어 이동했다.
그런데 퀴라니스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안이하게 접근하지 않은 건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상대인 아르칸 대마왕군은 이번 일을 더욱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는 점이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