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라이프베슬 (2)
“왜 쳐다봐?”
아르칸의 시선을 느낀 게티아가 찔린 듯 하나뿐인 눈을 크게 뜨면서 물었다.
아르칸은 아직도 조금씩 불어나고 있는 죽음의 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 저거 마시고 싶지?”
마왕성 지하 보물 창고에 갇혀 있던 게티아는 마력 부족으로 반쯤 기절해 있다가 아르칸이 흘린 피 냄새를 맡고 깨어나서 덤벼들었다.
피에 있는 마력을 필요로 해서였다.
죽음의 물도 실제로는 마신의 피.
과거 아르칸의 피와는 비교도 안 되는 진한 마력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러니 침 흘릴 정도로 탐내는 게 당연했다.
짐작대로 게티아가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
“마, 마셔도 돼?”
“그 전에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내 허락을 구해? 그냥 냉큼 마시지 않고?”
“저 귀한 걸 내가 멋대로 마시면 네가 막을 게 뻔하잖아.”
‘하긴, 귀하다면 귀하네. 좀 챙겨 가야겠어.’
그렇게 마음먹은 아르칸은 게티아에게 말했다.
“괜찮으니까 마음껏 마셔. 몇 통은 챙겨 갈 테니까 다 마시진 말고.”
“우왓! 알았다. 고맙다!”
신난 게티아는 죽음의 물 위로 날아가더니 가름끈을 빨대 삼아 죽음의 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찌나 빨리 마시는지 수위가 낮아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와, 이걸 이렇게 해결하네.”
용사도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아르칸도 멍하니 그걸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게티아가 죽음의 물을 모조리 마실 기세로 빨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따로 챙기기 전에 죽음의 물이 바닥날 것만 같았다.
아르칸은 용아병들을 불러내 가지고 있는 통에다가 죽음의 물을 담아 넣으라고 지시했다.
용아병들을 본 게티아는 경쟁하듯 더욱 빠르게 죽음의 물을 빨아들였다.
‘욕심은 많아 가지고. 그나저나 이거 너무 커졌는데?’
게티아는 죽음의 물을 빨아들인 만큼 점점 커져서 어느덧 사람만 해졌다.
그때 용사가 불렀다.
“어이, 저거 봐. 저게 마신의 심장인가?”
그 말대로 죽음의 피가 바닥을 드러내자 목표물인 마신의 심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장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마석의 모습에 더 가까웠지만.
중요한 건 죽음의 물을 내뿜고 있다는 거였다.
마신의 심장 앞에 선 용사가 난감해했다.
“저걸 어떻게 멈추지?”
“네가 한번 공격해 봐.”
“음, 알았어.”
용사는 심호흡하며 성검을 들어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켰다.
가만히 있는 마신의 심장을 노리는 만큼, 전력을 그러모아 만든 오러 블레이드였다.
마왕도 단칼에 베어 넘길 정도로 강력한 오러 블레이드가 마신의 심장을 향해 휘둘러졌다.
오러 블레이드가 마신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오, 역시 용사. ”
그걸 본 아르칸이 감탄했다.
이대로 마신의 심장을 베어 버릴 수 있다면, 마신의 시신도 풍화시킬 게 아니라 바로 없애 버려도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오러 블레이드는 마신의 심장을 끝내 뚫지 못했다. 도리어 성검을 튕겨 냈다.
“큭!”
용사가 성검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사이, 마신의 심장에 난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다.
“이럴 수가…….”
마신도 아니고 마신의 심장에 직접 전력을 다해 공격했는데 조금도 통하지 않는다니.
용사가 좌절하며 무릎을 꿇었다.
만약 마신이 부활해 상대한다고 해도 물리칠 수 없다고 생각해, 절망감이 엄습해 온 듯했다.
“실망할 거 없어. 차원의 조각으로 약화시키지 않았으니까.”
“아, 차원의 조각이 있었지.”
용사는 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렸다. 동시에 차원의 조각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다.
‘내가 다 관리하니까 잊을 만도 하지.’
현재 아르칸이 모은 차원의 조각은 네 개.
대략 개당 마신의 힘을 1할씩 억제할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 마신의 힘을 절반 가까이 제한할 수 있었다.
다만 구하기 힘든 만큼 결정적인 순간에 써야지, 마신의 심장 하나만 제거하는 데 쓰긴 아까운 상황.
단순 계산으로도 차원의 조각을 써서 마신의 심장을 제거하면 손해였다.
“일단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어?”
용사를 달래던 아르칸은 깜짝 놀랐다.
대꾸하는 와중에 수위가 더 낮아서 새로운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반면에 겨우 마음의 추스른 용사는 아르칸이 놀라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아르칸의 얼굴을 보고는 질겁했다.
“왜 놀라? 윽, 왜 그렇게 사악하게 웃어? 누가 대마왕 아니랄까 봐.”
“웃을 수밖에 없지. 이건 라이프베슬이거든.”
그렇게 말하는 아르칸의 손끝에는, 죽음의 물 안에 넣어 둬 강화시키고 있던 본앰브로스의 라이프베슬이 있었다.
***
“젠장! 계속 도망치기나 하고.”
자신의 마법을 피하는 블랙 드래곤을 보며 본앰브로스가 짜증을 냈다.
자신의 영역을 침입한 이 불청객들을 혼내서 쫓아내는 게 우선이긴 하지만, 블랙 드래곤을 보니 욕심이 났다.
평소라면 아르칸과 함께 있는 탓에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고는 노리기 힘들지만, 현재는 아르칸이 없는 상황.
지금 냉큼 죽여서 그 시체를 손에 넣으면 끝인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처음 시도를 실패한 뒤, 블랙 드래곤이 너무 경계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되도록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 다니니 잡기가 어려웠다.
옆에서 그런 스승의 모습을 보던 퀴라니스는 답답했다.
드래곤의 사체는 자신도 욕심이 났다.
하지만 스승의 힘이라면 분명 전력상 우위임에도, 스승이 저러고 있으니까 전투가 지지부진해지고 있었다.
“스승님, 일단 적부터 물리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흠, 하는 수 없군. 비장의 수를 쓰는 수밖에. 잠시만 기다려 봐, 이번에는 잡을 테니까.”
본앰브로스는 그렇게 대꾸하면서 주문을 외웠다.
조금 무리하더라도 마석과 자신의 마력을 더한 강력한 마법으로 블랙 드래곤을 노릴 생각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무리지만, 죽음의 피로 강해진 지금은 자신 있었다.
그 모습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던 퀴라니스는 스승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마력을 느끼곤 감탄했다.
“오오, 이토록 강력한 마력이라니.”
이거면 블랙 드래곤은 물론, 다른 대마왕들마저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 그럼 어디 한번 잡아 볼까.”
본앰브로스가 뼈다귀만 남은 손을 블랙 드래곤 피용에게 향했다.
피용도 본앰브로스의 강대한 마력을 느꼈는지 잔뜩 경계했다. 이번에야말로 쉽사리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이 자리에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아빠의 부하들이 몰살당할 테니까.
“준비!”
본앰브로스의 외침에 사방의 스켈레톤이 순식간에 뼈다귀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사라진 스켈레톤이 수천에 달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스켈레톤들도 주문의 소재로 쓰이는 걸 보며 놀라거나 분노했지만, 대놓고 반발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하늘을 가득 메운 뼈다귀들은 소용돌이치면서 블랙 드래곤에게로 날아갔다.
그야말로 뼈의 폭풍.
놀랍게도, 무슨 원리인지 그 소용돌이는 피용을 빨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다른 것들을 밀어냈다.
“피용아!”
심상치 않음을 느낀 센시아도 피용을 보호하기 위해 다가가려고 했지만, 다가갈수록 밀어내는 힘이 거세져 도저히 접근이 불가능했다.
“피핏.”
피용이 안 되겠다 싶어서 있는 힘껏 브레스를 날렸지만, 뼈의 폭풍은 그마저도 흩트려 버렸다.
“오오, 이번에야말로 블랙 드래곤을 잡겠군요.”
“역시 스승님이셔.”
“저런 힘을 가지고 계셨다니, 평생 존경하고 따를 테야.”
퀴라니스를 비롯한 제자들의 감탄을 들은 본앰브로스는 있지도 않은 콧대가 올라가는 거 같았다.
“이대로 블랙 드래곤을 잡기만 하면…… 억.”
자신만만하게 마력을 더하던 본앰브로스는 순간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그 순간 뼈의 폭풍이 멈추면서 하늘을 찢을 듯 날뛰던 뼈다귀가 지면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덕분에 강력한 인력에서 벗어난 피용은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스승님? 무슨 일입니까?”
“…….”
퀴라니스가 놀라서 물었지만, 본앰브로스는 대꾸하지 않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스승님? 스승님?”
퀴라니스는 난데없는 본앰브로스의 돌발 행동에 황당해하며 그를 불렀지만, 이미 사라진 스승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수십에 달하는 제자와 1만에 달하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버리고 사라진 거였다.
하지만 지금 본앰브로스는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대체 누가, 어떻게, 왜?’
죽음의 마기를 타고 대마왕성으로 초고속으로 복귀하던 본앰브로스의 머릿속은 온갖 의문으로 가득했다.
당장 어느 것도 답을 찾을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누군가 내 라이프베슬에 상처를 냈다!’
놀라운 건 본앰브로스의 라이프베슬은 현재 대마왕성의 최심부에 위치해 있다.
그것도 죽음의 물속 깊숙한 곳에 있었다.
누구도 접근하지 못할 거라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라이프베슬을 공격당하다니.
그것도 한 번 상처를 낸 후 가만히 있는 거로 봐서는, 자신더러 오라고 신호를 준 게 분명했다.
‘누군지 몰라도 내 갈가리 찢어 죽여 주게…… 억.’
본앰브로스가 복수를 맹세하는 순간.
그걸 알아채기라도 한 듯, 다시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라이프베슬을 손에 넣은 녀석이 얼른 오라고 재촉하는 거였다.
“제기랄.”
본앰브로스는 다시 몸을 일으켜 대마왕성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마왕성 입구가 보였다.
“앗, 대마왕님. 어서 오십시오. 안에 용…….”
“비켜라!”
대마왕성 입구를 지키는 데스나이트가 할 말이 있는지 자신을 불렀지만, 지금 그런 걸 들을 틈은 없었다.
“대마왕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저기…….”
“…….”
들어가자마자 제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불렀다.
자신의 라이프베슬이 적의 손에 떨어졌는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듯 웃는 제자를 보니 기가 막혔지만.
지금 그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기에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 뒤로 많은 제자와 부하, 하인 들이 자신을 보고 예를 차렸지만, 역시 적이 침입한 걸 전혀 모르는 듯했다.
‘설마 대마왕성에 없나?’
본앰브로스는 순간 의아했지만, 지하 9계층의 통제실에 내려가서 마정석을 보니 침입자가 10계층에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여태 뭘 보고 있었나. 저기 침입자가 있지 않느냐!”
“헉, 죄송합니다.”
대마왕성의 집사 역할로 마정석을 관리하던 본앰브로스의 제자가 이마를 땅에 박으며 사죄했다.
마음 같아서는 박살 내 놓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10계층으로 내려가서 침입자를 마주해야 했다.
이곳을 아무도 모르게 침입한 실력자답게, 10계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의 자물쇠도 깔끔하게 잘려 나가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 보니, 가득 차 있어야 할 죽음의 물이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여전히 죽음의 물을 내뿜고 있는 마신의 심장과 낯익은 침입자가 있었다.
침입자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왔네.”
“아르칸, 역시 네 녀석이었나…….”
본앰브로스는 가라앉은 안광으로 자신의 라이프베슬을 들고 있는 아르칸을 바라봤다.
아르칸의 수인족들이 쳐들어온 만큼, 라이프베슬을 노리는 침입자도 아르칸이라고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참고로 본앰브로스는 몰랐지만, 용사는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다.
“내게 뭘 원하지?”
본앰브로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르칸이 형들의 복수를 하러 왔으면 라이프베슬을 손에 넣자마자 부숴 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상처만 낸 거로 봐서는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다고 여긴 거였다.
“역시 본앰브로스 대마왕님, 머리가 잘 돌아가네.”
그렇게 말한 아르칸은 옆에 있던 마신의 심장을 가리켰다.
“저거 멈춰 주면 라이프베슬 박살 안 낼게.”
“흥, 박살 내도 상관없다.”
“왜? 예비로 만들어 둔 라이프베슬로 옮기면 되어서? 그것도 내가 영혼 유도 장치 쓰면 불가능할 텐데?”
“……알았다.”
자신의 허세가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본앰브로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본앰브로스가 주문을 외워 마법진의 작동을 멈췄다. 그러자 마신의 심장도 서서히 멈췄다.
아르칸은 마심의 심장이 완전히 멈추자,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됐지? 이제 가라.”
“그래, 잘 있어.”
본앰브로스의 축객령에 아르칸은 라이프베슬을 냉큼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그걸 본 본앰브로스가 기겁했다.
“자, 잠깐! 그건 두고 가야지!”
“왜? 난 박살 내지 않는다고만 했지, 두고 간다고는 안 했는데?”
아르칸의 태연한 말에 본앰브로스가 좌절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