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라이프베슬 (3)
“휴.”
아르칸이 유유히 떠나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던 본앰브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기어코 자신의 라이프베슬을 들고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본앰브로스의 안광이 멍한 걸 보고 아르칸이 영문 모를 말을 남기긴 했다.
-너무 풀 죽어 있지 마. 네 체면은 살려 주고 갈 테니까.
‘체면?’
무슨 소린가 의아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됐다.
통제실로 올라갔더니, 아르칸 대마왕군이 일제히 철수하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그것도 점령했던 마왕성 중심으로 영역을 확장하지 않고, 원래 영역으로 완전히 돌아갔다.
단, 마왕성 내부의 마정석은 챙겨 갔다.
한참 뒤, 대마왕성으로 귀환한 퀴라니스가 물었다.
“스승님, 혹시 아르칸을 만나러 가셨던 겁니까?”
“……그래.”
아르칸을 만나러 간 건 아니지만, 와서 아르칸을 만난 건 사실이긴 했다.
“역시나. 아무 언질 없이 갑자기 사라져서 놀랐는데, 물러나라고 아르칸과 담판을 지으신 거군요.”
‘담판은 무슨, 라이프베슬을 빼앗기고 협박당했는데.’
하지만 부하들에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라이프베슬을 공격당한 것 때문에 모두를 버리고 허겁지겁 돌아왔다고 하면 한심하게 볼 뿐만 아니라, 아르칸에게 목숨 줄이 잡혔다며 별 볼 일 없다고 여겨질 게 분명해서였다.
다른 제자들은 나중에 퀴라니스의 말만 믿고 역시 스승님이 나서면 전투도 끝내 버린다면서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그 소리를 들은 본앰브로스는 갑갑했다.
‘이쪽은 생명 줄이 적의 손에 넘어가서 속이 타는데. 내 속도 모르고…….’
해골만 남아서 표정 관리를 안 해도 되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아르칸 녀석의 손아귀에 놀아나다니…….’
수인족 마왕들이 슬쩍 영역을 침범해 온 것부터, 아르칸이 분노한 척 선전포고 한 것까지.
마신의 심장을 노린 게 분명했다.
허탈해하고 있으려니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대마왕 키클로테스가 나타난 거였다.
“이번에 완전히 당했더군.”
“흥, 놀리러 온 거면 그만 돌아가. 상대할 기분이 아니니까.”
“마석을 받아 갈 때는 발이라도 핥을 기세였으면서.”
“그렇게 얻은 마석은 다 소용없게 되어 버렸거든. 마신의 심장도 빼앗기고…….”
“라이프베슬도 빼앗기고?”
“……어떻게 알았냐?”
“떠본 거였는데 정말이었군. 이거 큰일인데.”
키클로테스는 심각한 얼굴이 됐다.
키클로테스는 바리스탄과 다른 의미로 현재 마계의 구도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본앰브로스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라이프베슬과 마신의 유산인 마신의 심장을 아르칸이 가지고 있으면, 그 구도는 무너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르칸이 대마왕 바리스탄의 막내아들인 걸 고려하면 바리스탄 일가의 손에 마신의 유산이 세 개나 들어간 셈.
거기다 바리스탄과 아르칸이 본앰브로스까지 동원해서 쳐들어온다면, 키클로테스도 솔직히 막아 낸다고 자신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자신마저 쓰러지면 마계가 완전히 바리스탄 일가 손에 떨어지게 되는 거였다.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해.’
옆에서 본앰브로스가 불편해하고 있는 것도 무시하며 한참 고민하던 키클로테스는 드디어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후후, 그렇게 하면 되겠군.”
“……?”
의아해하면서 쳐다보는 본앰브로스에게 키클로테스가 물었다.
“아르칸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나?”
“다, 당연하지. 뭐든지 하겠다.”
본앰브로스가 다급히 대답했다.
그 대답에 만족한 키클로테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
한편 수인족 영역으로 돌아온 아르칸.
아르칸은 함께 온 병력을 그대로 해산시키지 않고 죽음의 물의 영향을 받은 영역 경계 쪽에 파견해 치안 유지에 힘쓰도록 했다.
마신의 심장은 멈췄지만, 죽음의 물 영향이 곧바로 사라지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조심할 필요가 있지. 그나저나 이제 남은 건 키클로테스뿐이네.’
본앰브로스는 라이프베슬을 뺏은 이상,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됐다.
바리스탄도 아르칸이 마신이 되어 평화를 추구한다고 하면 도와줄 가능성이 컸다.
반면에 키클로테스는 그동안의 원한도 있지만, 아르칸이 마신을 대신한다고 나서면 가장 극렬히 반대할 게 분명해, 어떻게든 꺾어야 했다.
다만 키클로테스의 마왕성 랭킹은 무려 2위.
마신이 1위인 만큼, 사실상 마계에서 제일 높은 랭킹이었다.
게다가 그 부하들도 숫자는 적었지만, 하나같이 강했다.
그만큼 키클로테스 세력은 쉽사리 꺾을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 때문에 아르칸은 키클로테스가 당장 경계하지 않도록 본앰브로스 영역의 마왕성까지 모두 내버려 두고 후퇴한 거였다.
물론 본앰브로스가 일렀거나 키클로테스의 정보력이라면, 이미 다 털어 갔다는 걸 알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현재 아르칸의 대마왕군은 이번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피로가 아직 안 풀린 상황.
리치킹 본앰브로스 대마왕의 언데드 몬스터들과 치열한 사투를 벌인 탓이었다.
전사자나 부상자도 상당했다.
참고로 부상자들은 치안 유지 업무에서 빠져 대마왕성 내에서 회복 중이었다.
‘다들 쉬어서 전력을 회복할 때까지는 조용히 지내야지.’
다만, 이 와중에도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용사를 달래는 거였다.
대마왕성 밖으로 나온 아르칸은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용사를 꺼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당연히 용사가 화를 냈다.
“대마왕을 잡게 해 준다며. 이대로 돌아가라고?”
아르칸은 잠입 작전 중, 본앰브로스와 싸울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용사를 불렀다.
그러나 작전이 너무나도 성공적으로 이뤄진 덕분에 용사가 나설 일이 없었다.
한 거라고는 10계층으로 내려가는 문의 자물쇠를 벤 게 전부. 그러니 투덜거릴 만도 했다.
“어차피 본앰브로스의 라이프베슬은 손에 넣었으니까, 잡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렇긴 한데, 내가 너무 한 게 없잖아. 이렇게 된 이상 아르칸, 너라도…….”
“어, 어. 진정해, 진정.”
용사의 눈빛에 섬뜩함을 느낀 아르칸이 뒷걸음을 쳤다. 그러자 용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이번에도 농담이야? 그보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원래 사생활일 것 같아서 캐물을 생각이 없던 아르칸이었지만, 용사의 기분이 너무 좋아 보이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정작 용사는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대꾸했다.
“실은 얼마 전에 원래 세계 모습을 조금 봤거든.”
“정말이야? 어떻게?”
“여신이 보여 줬어.”
“아, 그래?”
생각해 보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최근 여신 셀레니아가 성녀를 쫓아내고 멋대로 구는 바람에 용사와 사이가 소원해졌는데, 관계를 재고하려고 신력을 좀 쓴 모양.
“내가 사라진 것 때문에 부모님도 많이 놀라신 거 같지만, 그래도 건강히 잘 계시더라고. 이제 무사히 돌아가기만 하면 돼.”
“다행이네. 근데 그것뿐만이 아닌 거 같은데?”
“헤헷. 들켰나? 사실은 원래 세계에 썸 타던 동생이 있었거든.”
썸이라니.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용사의 모습을 보고 대충 분위기를 짐작한 아르칸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 동생이 여전히 너를 그리워하고 있나 보네.”
“으응, 그렇더라고.”
용사는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히면서도 헤실거리며 웃었다.
어쩐지 솔플도 솔플이지만 여자를 멀리한다 했더니, 원래 세계에 마음에 두는 여자가 있어서였던 모양이었다.
‘순정파네. 하긴 그러니까 더욱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했겠지.’
다만 용사의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함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아무 말도 안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만큼, 그사이 그 동생이라는 여자가 변심하고 다른 남자를 만났을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불안이 해소되고 오히려 자신을 애틋하게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인 거였다.
“부러운 녀석, 그래서 요즘 기분이 좋아 보였구나.”
“헤헷. 그것도 있지만, 너 때문이기도 해.”
“나 때문?”
아르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예전에는 열심히 싸우긴 했지만, 정말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었거든.”
하긴, 소설을 읽을 때도 쉽지 않겠다 싶었다.
그래도 주인공 보정에 솔플 고집만 버리면 충분히 마신을 쓰러트리거나, 마신의 부활을 막을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용사 혼자서 바리스탄 대마왕을 해치우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소설 속에 들어와서 보니 적들이 이만저만 강한 게 아니었다.
용사가 성녀를 비롯해 여러 명의 동료를 데리고 싸워도 이길 확률이 극히 낮아 보였다.
그때 용사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네가 활약한 덕분에 목표 달성까지 정말 얼마 안 남았잖아. 조만간 끝난다 싶으니 들뜬다고 할까.”
그 말대로 아르칸 덕분에 목표 달성에 훨씬 가까워지긴 했다.
마신 부활에 필요할 거라고 짐작되는 마신의 유산도 아르칸의 손에 두 개나 있는 데다가, 아버지인 바리스탄도 마신의 부활을 원치 않았기에 협조적이었으니까.
유일하게 마신을 추종하는 대마왕 키클로테스만 해치우고 나면 방해할 세력도 없었다.
지금은 7부 능선을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는 마계의 일인자가 된 아르칸이 마신을 자처하면서 처음 목표대로 마계와 인간계가 다투지 않도록 중재하면 됐다.
용사로서는 마음 놓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용사가 웃으면서 물었다.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너는 빙의됐다고 했잖아. 빙의가 풀려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마왕으로 이 세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없는 거 아니야?”
“나는 안 돌아가.”
“왜? 부모님이 기다리실 텐데.”
“부모님이 안 계시거든.”
“아, 미안. 몰랐어…….”
용사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얼굴이 뻘게져서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런 용사를 보며 아르칸이 피식 웃었다.
“괜찮아. 어쨌든 그런 이유로 원래 세계에는 미련 없거든? 그러니 여기는 내가 남아서 평화를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흠. 그래, 알았어.”
아르칸이 괜찮다고 했지만, 용사는 여전히 고개 숙인 채 아르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덕분에 분위기도 어색해졌다.
“흠, 흠. 그럼 내 할 일은 다 한 거 같으니 돌아갈게. 도와줄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용사는 더는 트집 잡지 않고 돌아갔다.
“정말 괜찮은데…….”
혼자 남은 아르칸이 중얼거렸다.
친부모의 얼굴도 모르지만, 대신 대마왕인 아버지와 아름다운 어머니가 생겼다.
거기다가 의리 있는 멋진 형들도 이제는 아르칸을 인정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며 따르는 블랙 드래곤 피용과 믿음직한 부하들, 신도들까지 한가득.
이들을 두고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는 용사가 되도록 타인과 인연을 맺지 않으려는 게 새삼 이해가 갔다.
‘그래도 부모님이 있다면 조금 달랐으려나…….’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무의미한 가정이었다.
아르칸은 고개를 저으며 대마왕성으로 돌아갔는데, 뜻밖에도 키클로테스가 보낸 사신이 마침 도착해 있었다.
무슨 일로 왔나 물어보니 대마왕들의 회합을 개최하니 참석하라는 거였다.
‘갑자기 회합을 연다고? 무슨 속셈이지?’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