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라이프 베슬 (4)
“정말 회합을 연다고? 지금 시점에?”
아르칸이 재차 확인했다.
앞서 대마왕 간의 회합이 열린 건, 아르칸이 제니칼 대마왕성을 손에 넣은 직후.
인간계의 침공을 막자마자 반격하는 차원에서 인간계로의 침공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아르칸은 곧바로 대마왕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회합을 열 만한 이유가 없는데. 대마왕들 간에 사이가 안 좋은 상황에서 만나 봐야 다투기만 할 뿐이니까.’
아르칸의 물음에 키클로테스가 보낸 사신, 네페라가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그렇다. 그러니 이거나 받아.”
네페라가 내민 건 일전에 받은, 회합 장소로 갈 수 있는 초대장이 들어 있던 것과 같은 모양의 상자였다.
아르칸은 그걸 받지 않고 물었다.
“전혀 짐작 가는 게 없어서 그러지. 무슨 일로 회합을 연다는 건지 알아?”
“그런 걸 왜 궁금해하느냐. 키클로테스 님의 어련히 필요하니까 소집하셨을 텐데. 얌전히 응하면 된다.”
“아니, 일단 좀 더 알아보고 결정할래.”
“쓸데없는 짓을. 대마왕이 소집한 회합에는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그런 규칙이 있었나?”
네페라가 비웃으며 대꾸하자 아르칸이 옆에 있던 오웬을 쳐다보며 물었다.
오웬은 네페라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저 사신은 너무 무례하군요.”
“아무래도 그렇지? 제피로스.”
“크아아악!”
아르칸이 부르자마자 제피로스가 만든 바람의 칼날이 기다렸다는 듯이 네페라에게 휘몰아쳤다.
네페라의 전신이 순식간에 상처투성이가 됐고, 박쥐 날개마저 일부분 찢겼다.
“이런 미친, 지금 대마왕 키클로테스 님의 사신을 공격하는 거냐!”
“내게 무례하게 군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뿐이다. 일전에 왔던 사신은 예의 바르더니만, 너는 왜 그래?”
아르칸이 말하는 건 키클로테스의 사신으로 왔던 네불론이었다.
네불론은 오웬처럼 정장을 차려입고, 아주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굴었다. 회합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도, 인간계 침공이 안건이라고 확실히 알려 줬다.
‘아, 비교해 보니 왜 다른지 알겠군.’
네불론 때는 인간계 침공이라는 대의를 위해 아르칸에게 예의 바르게 군 거였지만, 이 무례한 녀석을 보낸 건 일부러 아르칸을 조롱해 열받게 하려는 의도가 틀림없었다.
‘그럼 그 의도대로 해 줘야겠지.’
아르칸이 오웬에게 시선을 줬다.
그러자 오웬이 순식간에 검을 휘둘렀다.
“어? 지금 무슨…….”
뭔가 당했다는 걸 느낀, 네페라가 인상을 쓰면서 오웬 쪽을 돌아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가 자신의 앞쪽으로 스르륵 하고 떨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의 이마에 달린 두 개의 뿔 중 하나였다.
“으아아아아악!”
네페라는 뒤늦게 엄습하는 고통에 바닥을 뒹굴었다.
아르칸은 그런 네페라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혀를 뽑아 버리고 싶지만, 돌아가서 보고해야 하니 남겨 두겠다.”
네페라의 부하들이 굳은 얼굴로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네페라를 챙겼다.
“아르칸 대마왕님, 키클로테스 님께 뭐라고 전하면 되겠습니까.”
네페라의 부하가 겁먹었는지 아주 공손하게 물었다.
아르칸이 손짓하자 제피로스는 네페라가 떨어트린 초대장이 든 상자를 들어 아르칸에게 건넸다.
그걸 집어 든 아르칸이 대답했다.
“회합에 참석할지 말지는 좀 더 생각해 본다고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네페라의 부하들은 머리를 숙이고 돌아갔다.
네페라는 이미 격통에 의식을 잃은 채였다.
사신단이 모두 알현실을 나간 뒤 오웬이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회합을 미룰 수는 있어도, 계속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무슨 의도로 모은 건지부터 알아봐야지. 아무것도 모른 채 회합에 나가 봐야 끌려다니기만 할 뿐이니까.”
“그럼 바리스탄 님께 연락을 해 보시지요.”
“아니, 그 전에 한번 알아볼 데가 있지.”
키클로테스는 바리스탄도 적대시하는 만큼, 그 의도를 정확히 알려 주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해서 추측하고 계셨을 테니, 아르칸도 따로 정보를 수집한 뒤 바리스탄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아르칸은 곧바로 본앰브로스의 라이프베슬을 꺼내 쥔 채 마탄을 날렸다.
그러자 라이프베슬 안의 액체가 거칠게 출렁였다.
얼마 후, 본앰브로스가 대마왕성에 찾아왔다.
아르칸 앞에 도착한 본앰브로스는 안광을 살벌하게 번뜩이며 말했다.
“부르면 바로 올 텐데, 꼭 그렇게 불러야겠어?”
“왜, 열받아? 덤비려고?”
아르칸이 본앰브로스의 라이프베슬을 들며 묻자 본앰브로스는 금세 살기를 거두며 헤실거렸다.
“덤비다니 그건 아니고, 그거 중요한 거니까 조심스럽게 다뤄 달라는 거지. 그보다 무슨 일로 불렀나?”
“키클로테스가 회합에 초대했는데, 뭣 때문에 회합을 열었는지 알아?”
“아아, 나도 초대받긴 했는데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그냥 오라고 초대장 줘서 알았다고 했지.”
“정말 아는 거 없어?”
아르칸이 라이프베슬을 쥔 손에 마력을 모았다.
이대로 마탄을 날려 라이프베슬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본앰브로스는 할 테면 해 보라는 듯 대꾸했다.
“모른다니까. 가 보면 알겠지 하고 말았거든.”
“쩝. 쓸모없는 녀석. 가 봐.”
아르칸은 본앰브로스를 내쫓고 라이프베슬을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수상쩍었지만, 더 캐낼 방법이 없었다.
이 정도 일로 라이프베슬을 진짜 부숴 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본앰브로스도 그걸 믿고 저렇게 강하게 나오는 거였다.
“하는 수 없지. 아버지한테 가서 물어보는 수밖에.”
아르칸은 곧바로 피용을 타고 바리스탄에게 날아갔다.
바리스탄은 여전히 마신의 시신을 옮긴 사막에 있었다.
바리스탄은 아르칸을 보자마자 웃는 얼굴로 반겼다.
“아들아, 승리를 축하한다. 형들의 복수를 제대로 했구나.”
“아, 감사합니다.”
이 사막에서도 벌써 아르칸이 본앰브로스를 공격한 소식을 전해 들은 듯했다.
그러나 바리스탄이 아는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아르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본앰브로스까지 손아귀에 넣다니, 이제 나보다 더 대단한 대마왕이 되었구나.”
아무래도 본앰브로스의 라이프베슬까지 손에 넣은 걸 아는 듯했다.
‘혹시 아버지라면 키클로테스가 회합을 여는 목적에 대해서도 알고 계실지도.’
아르칸은 나름 기대를 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오늘 찾아온 건, 키클로테스가 대마왕의 회합을 열어서입니다. 혹시 무슨 목적으로 여는 건지 알고 계시나요?”
“음, 안 그래도 내게도 키클로테스가 보낸 사신이 와서 초대장을 주고 갔다. 다만, 정확한 목적은 모르겠군. 내가 알기로는 본앰브로스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게 전부다.”
‘이 자식, 역시 관련되어 있었군. 그런 주제에 시치미를 떼다니.’
본앰브로스가 괘씸했던 아르칸은 바리스탄과 헤어져 대마왕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라이프베슬을 꺼내서 호출했다.
본앰브로스는 아예 근처에 분신을 놔뒀는지 곧바로 달려왔다.
“……또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까 너 키클로테스와 뭔가 꾸몄다며? 이야기 듣고 왔으니 순순히 털어놔.”
아르칸이 라이프베슬을 든 채 말했다.
아까는 긴가민가했지만, 이번에는 바리스탄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상황.
이 자리에서 본앰브로스를 날려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뒤통수를 맞을 생각은 없었다.
살벌한 분위기에 아르칸이 진심이라고 느낀 본앰브로스는 결국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하지. 키클로테스가 찾아와 물었다. 너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으냐고 말이다.”
“복수해 줄 테니 도와달라고 말이야?”
“그래.”
자신의 목숨 줄이나 다름없는 라이프베슬을 뺏긴 마당이니 본앰브로스가 복수심을 품는 건 당연했다.
아르칸도 그걸 가지고 탓할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살려 두면서 이용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그래서 내게 어떻게 복수하겠다는 건데?”
“마왕성 랭킹 총력전을 열겠다는군.”
“……총력전? 그게 뭐지?”
“아, 넌 아직 어려서 모르는가. 내가 알려 주지.”
본앰브로스는 으스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왕성 랭킹 총력전.
총력전(總力戰), Total War이라는 말에 걸맞게 마왕성의 존망을 걸고 모든 자원과 수단을 총동원해서 싸우는 걸 의미한다.
기존에 마왕성을 이동시켜서 마왕성끼리 전면전을 펼치는 마왕성 대결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소라면 마왕성 대결을 펼치고 싶어도 물리적인 거리부터 시작해 제한이 많았다.
‘그러나 마왕성 랭킹 총력전에서는 그 제한이 사라진다지.’
대마왕의 회합에서 봤던 검은 공간 같은 곳으로 두 마왕성이 통째로 옮겨져서 마왕성 대결이 펼쳐진다고 했다.
방법도 간단.
마왕이 마정석으로 마왕성 랭킹 목록을 보고 대결을 펼치고 싶은 마왕을 선택하면 된다고 했다.
단, 이때 랭킹에 없거나 자신보다 랭킹이 낮은 마왕은 선택하는 게 불가능하고, 반대로 지목된 상대는 대결을 거절하지 못하고 무조건 싸워야 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아르칸이 물었다.
“뭔지는 알겠는데, 이거로 나한테 어떻게 복수한다는 거야?”
현재 아르칸 마왕성 랭킹은 4위.
마신을 제외하더라도, 아르칸의 위로는 2위인 키클로테스와 3위인 바리스탄이 전부였다.
그중 실제로 위협이 되는 건 키클로테스뿐.
오히려 아르칸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대마왕 키클로테스 영역은 마계에서도 가장 척박한 땅. 또한 그 부하들인 악마족들도 강력했다.
그걸 모두 상대하면서 키클로테스 영역을 침공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마왕성 랭킹 총력전을 이용하면, 그걸 다 건너뛰고 키클로테스와 담판을 지을 수 있는 거였다.
“그건 이번 총력전의 룰 때문이다. 대마왕은 제외한, 파벌 내 부하들의 랭킹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우승 파벌을 결정 짓는다더군. 마왕성 랭킹에 있는 네 부하들을 모조리 공격하겠지.”
“음, 그래? 그러면 확실히 불리하겠군.”
현재 아르칸이 대마왕이 되긴 했지만, 그 부하들의 마왕성은 제대로 육성되지 않은 상황.
덕분에 당장 마왕성 랭킹을 봐도 랭킹 안에 든 아르칸 파벌 마왕은 적었다.
본앰브로스는 강자를 자기 파벌의 마왕으로 삼는 게 아니라, 자기 말을 잘 듣는 제자를 마왕으로 만들었다.
그 때문에 마왕성 랭킹에 드는 마왕이 적었는데, 아르칸 파벌도 그 본앰브로스 파벌과 비슷하게 랭킹을 차지하고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아르칸이 대처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만약 우리 파벌이 이번 총력전을 포기한다면 문제가 생길까?”
현재 아르칸 파벌의 마왕들이 마왕성 랭킹에 거의 없는 만큼,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거였다.
그 말에 본앰브로스가 웃었다.
“스스로 마정석을 빼서 마왕성 랭킹에서 벗어난다? 그것도 방법이긴 하겠지. 하지만 보상을 들으면 네 생각이 달라질걸.”
“뭘 주길래 그래?”
“바로 마신의 유산이다.”
“마신의 유산…….”
“뭘 받을지는 지금 알 수 없지만, 마왕성 랭킹마다 점수를 매겨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대마왕에게 하사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너는 키클로테스가 1위 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그래. 키클로테스의 부하들이 쳐들어오면 힘 빼지 말고 마왕성을 포기하라고 하더군.”
확실히 그것만으로도 키클로테스가 압도적으로 유리해졌다.
한편 모든 걸 실토한 본앰브로스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키클로테스의 제안은 거절할 테니 라이프베슬만은 부수지 말아 다오.”
“안 부술 테니 거절하지 마.”
“응?”
“거절하지 말고 키클로테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무슨 속셈이라도 있는 거냐?”
그 물음에 아르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