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치열한 공방전 (1)
평야에서 철수하라는 아르칸의 지시가 두 마왕에게 전해졌다.
둘 다 지시를 듣자마자 마왕성을 움직여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마왕성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몰랐던 마계 원정대는 깜짝 놀라면서도 적이 후퇴한다는 사실에 고무됐다.
“어, 저거 물러간다. 우리가 이긴 거야?”
“당연히 이긴 거지. 우와아아아아아! 우리의 승리다!”
“그런데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다니 이상한데?”
“맞아. 함정일지도 몰라.”
병사들은 승리했다며 기뻐하기도 했지만, 아직 경계하며 의심을 풀지 않기도 했다.
더욱 혼란스러운 건 이 원정대의 지휘관들이었다.
이번 마계 원정대는 전적으로 신적 측의 주도로 이뤄졌지만, 왕국군과 귀족파 병력의 지휘관은 따로 있었다.
왕국군은 테론 장군이 지휘를, 귀족파의 병력은 발토르 공작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카즈그림 백작이 지휘를 맡고 있었다.
상황을 보고받은 테론 장군이 카즈그림 백작을 찾아와 물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이번 원정의 목적은 평야를 되찾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요. 이쯤 하면 물러나도 될 텐데요.”
카즈그림 백작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왕실 측과 귀족파들은 여신의 강력한 요청 때문에 원정에 나섰지만, 이번 원정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안 그래도 계속된 마계 원정과 마계의 침공으로 금고가 바닥났고, 기사들은 피로를 호소했다.
그사이 죽어 나간 기사는 물론, 병사나 백성 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신이 신탁과 별개로 만약 신전에서 비용 대부분을 지급한다고 하지 않았으면, 성전이라도 해도 동참하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그러니 마침 목적도 달성했겠다, 물러나도 상관없었다.
그때, 저 앞에서 병사들의 외침이 들렸다.
“어엇! 블랙 드래곤이다!”
“이쪽으로 오잖아!”
“이런, 우리 공격하는 거 아니냐?”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보니, 정말로 여기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드래곤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걸 본 테론과 카즈그림은 등골이 서늘했다.
“저 드래곤으로 우리를 쓸어버리기 위해 일부러 후퇴한 것이었나.”
“이런 젠장, 어서 도망칩시다!”
호들갑 떠는 와중에 뒤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겁먹을 거 없습니다. 여신님께서 함께하고 계시니까요.”
새로 임명된 성녀 아벨리아였다.
태연한 그 모습에 테론과 카즈그림이 다급하게 말했다.
“성녀님, 지금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피해야 합니다.”
“저 드래곤이 브레스라도 쏘면 아무리 성녀님이라도 위험합니다.”
아벨리아는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태연히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여신께서 저희를 보살펴 주실 테니까요.”
그런 아벨리아의 머리 위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신이 보살펴 주기는 무슨, 내가 지켜 주는 건데.”
왕국을 수호하는 고룡,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였다.
아우리오스는 수도 위쪽 자신의 둥지에서 꼼짝도 하지 않다가, 여신의 요청에 처음으로 여기까지 내려왔다.
다른 이들은 알 수 없지만 도와주는 건 어디까지나 평야까지로, 마계로 넘어가면 상관하지 않겠다고 여신 셀레니아와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여신님께서 부탁하셔서 저희를 도우시는 거니, 여신님이 보살펴 주시는 거지요.”
“쯧, 말이나 못 하면.”
아벨리아의 대답에 혀를 찬 아우리오스는 그대로 블랙 드래곤에게 향했다.
그걸 본 테론와 카즈그림은 안심했다.
“수호룡이 등장하셨으니 이제 위험하진 않겠지요.”
“위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 나타난 블랙 드래곤쯤이야 가볍게 해치우지 않겠습니까? 하하.”
테론과 카즈그림이 기대하면서 말하고 있는데, 정작 마주친 두 드래곤은 전혀 싸울 기미가 없었다.
피용이 아우리오스를 보자마자 고개를 꾸벅 숙인 거였다.
“피잇? 앗! 아우리오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드래곤에게 인간의 존칭 따위는 의미가 없으니.”
“죄송해요.”
“후훗, 죄송할 거까지야.”
피용은 아우리오스가 자신이 나바리 삼촌이라고 부르는, 블루 드래곤 나바리우스를 무시하는 모습이 불편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 때문에 예전에 만났을 때도 딱히 친분을 쌓지 못했다.
그래도 아우리오스 쪽은 아르칸과 함께 다닌 인연으로 피용을 나름 친근하게 여기는 중이었다.
일단은 지인의 자식인 데다가, 자신과 같은 드래곤이니까.
그래서 웃으면서 넘어간 거였다.
정작 그 광경을 지켜보던 테론과 카즈그림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뭐지? 둘이 친한가?”
“아무래도 그런가 봅니다. 그래도 드래곤이라서 그런가…….”
심지어 자신만만하던 아벨리아의 표정도 굳었다.
아무래도 저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벨리아가 불렀다.
“아우리오스 님.”
“응?”
“지금 한가하게 이야기 나누실 때가 아닙니다.”
“뭐? 이런 건방진 인간족이.”
자신의 대화를 방해받은 데 분노한 아우리오스가 으르렁거렸다.
동시에 드래곤 피어가 아벨리아를 비롯해 그 주변을 짓눌렀다.
“크음.”
“꺄앗!”
“크어억.”
테론은 그래도 장군이라고 오러 블레이드까지 다룰 정도의 강자기에 잠깐 괴로워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아벨리아와 카즈그림은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때 아벨리아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곧바로 일어섰다.
여신 셀레니아가 아벨리아의 신체에 강림한 거였다.
셀레니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아우리오스, 우리의 계약을 잊지 마라.”
“알았다.”
아우리오스의 대답을 듣자마자 아벨리아가 다시 쓰러졌다.
자신의 강림으로 아벨리아의 몸에 큰 무리가 오기 전에 나간 거였다.
아우리오스가 겨우 진정하긴 했지만, 다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상황을 주시했다.
그렇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지만.
다행히 아우리오스는 드래곤 피어를 거두고, 못마땅한 얼굴로 피용을 쳐다봤다.
“크음. 반갑긴 해도 네가 이들을 해친다면 나는 계약에 따라 너를 막을 수밖에 없다.”
“해쳐요? 제가요? 전 아빠 말을 전하러 왔을 뿐인데요.”
말을 전달하는 것뿐이라면 제피로스를 보내도 됐지만, 여신 셀레니아와 대마왕 키클로테스에게 피용이 대마왕성 내에 있지 않고 외부에서 움직인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보낸 거였다.
“그래? 무슨 말?”
“평야를 양보할 테니 침공을 멈추라고요.”
“아, 그래? 양보한다고? 어이, 인간족들. 들었지?”
아우리오스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묻자, 다들 고개를 황급히 끄덕였다.
그 와중에 테론과 카즈그림, 아벨리아는 기가 막혔다.
이럴 거면 아우리오스가 나설 필요도 없었던 데다가, 괜히 아우리오스를 자극한 꼴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침착을 찾은 건 카즈그림이었다.
“역시 처음 생각했던 대로 평야를 넘겨주는 거였나 보군요. 그러면 이쯤에서 원정을 마치죠.”
“확실히 얼마 전 오크와의 전투에서도 우위를 점했겠다, 원정을 끝내기 나쁘지 않을 거 같군요.”
테론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다만, 아벨리아만은 이 예상치 못한 소식에 어떻게 할 줄 몰라 멍한 얼굴이 됐다.
한편 마계 원정대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일단 따라는 왔던 용사는 이 소식에 아주 기뻐했다.
“아르칸 녀석, 역시 머리 좋다니까.”
이미 전부터 아르칸은 평야를 양보한다고 했다. 여신이 바로 거절했지만.
하지만 왕실 측과 귀족파에게 대놓고 양보하겠다고 말해서 저들이 받아들이면, 여신으로서도 무시하기 힘들 게 분명했다.
실제로 테론 장군과 카즈그림 백작은 바로 수긍하는 듯했으니까.
그러나 용사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거절합니다. 다시는 평야를 넘보지 못하도록, 대마왕 아르칸을 쓰러트려야 안심할 수 있습니다.”
여신 셀레니아가 다시 강림해 그렇게 못 박은 거였다.
여신이 워낙에 단호해서였을까?
테론과 카즈그림도 금세 입장을 바꿨다.
“흠, 여신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냥 넘겨받은 거면, 다시 쉽게 빼앗길 우려가 있으니까요.”
“확실히 아르칸을 쓰러트리는 편이 안심되겠지요.”
그 소리에 아우리오스가 혀를 찼다.
“쯧. 확실히 해 두지만, 내 계약은 이 평야까지다.”
“다 알고 있으니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셀레니아가 대꾸하고는, 다시 강림을 풀었다.
아벨리아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는데, 전신에 식은땀을 잔뜩 흘린 채였다.
심지어 몸은 삐쩍 마르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그걸 본 테론과 카즈그림이 깜짝 놀랐다.
“여신님의 말씀은 잘 알았으니, 성녀님은 어서 후방으로 가셔서 몸을 살피시지요.”
“네, 여신님 뜻대로 할 테니 믿고 쉬어도 됩니다.”
“……네.”
아벨리아는 겨우 대답하고는 다른 성직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사라졌다.
아우리오스는 그러든 말든, 피용을 돌아보며 물었다.“
“피용, 너는 어쩔 거냐.”
“피, 핏. 잘 안 되어서 아쉽지만, 아빠한테 돌아가서 말씀드려야죠.”
“그렇게 해라. 참, 가능한 한 평야 끝에서 싸우라고 해. 내가 나설 일 없게.”
“알겠습니다.”
피용의 대답을 들은 아우리오스는 그대로 하늘 위로 올라갔다. 황금빛 비늘이 태양에 비쳐 반짝거리다가 그대로 사라졌다.
피용은 그런 아우리오스를 쳐다봤다가, 몸을 돌려 왔던 방향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여신 셀레니아가 아르칸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걸 알렸다.
그 소식을 들은 아르칸은 얼굴을 붉히며 분노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양보했는데, 끝까지 나를 쓰러트리려 한다고? 나도 이제 못 참아! 내가 직접 가서 저 오만한 것들을 혼내 주겠다!”
드물게 아르칸이 화내는 모습에 다들 깜짝 놀랐다.
“으아, 아르칸님이 그렇게 화내실 줄이야.”
“망나니 마왕 시절에도 패악질만 부렸지, 저렇게 진정으로 분노하시는 모습은 처음 봐.”
“그 뒤로 여러모로 온화해지셨잖아. 그런데 자신의 선의가 무시당하셨으니 열받으실 만도 하지.”
놀라운 건, 오웬과 센시아, 아바로스까지, 아르칸의 심복들이 아르칸을 달래거나 말리기는커녕 같이 열 내고 나선 거였다.
“이 기회에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합니다.”
“저도요. 동감합니다.”
“저들이 아르칸님의 손을 잡지 않은 걸 후회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좋다, 다들 저 오만한 적들을 쓰러트리고 다시는 평야를 넘보지 못하도록 쫓아내도록!”
“알겠습니다!”
아르칸의 단호한 지시에 모두 일제히 대답했다.
그걸 본 모두는 아르칸이 전력으로 적을 응징하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엇보다 아르칸이 직접 출정한다고 결정 내린 만큼, 거기에 걸맞은 준비를 하느라 대마왕성 안팎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뭔가가 있었으니.
키클로테스가 보낸 외눈 박쥐였다.
***
외눈 박쥐를 통해, 대마왕성의 움직임을 관찰한 키클로테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조금만 기다리면 아르칸 녀석이 대마왕성을 비우겠군.”
그때야말로 아르칸 대마왕성을 기습해 마정석을 뽑아낼 작정이었다.
단, 방어 병력을 최대한 남길 테니 그것마저 끌어내려면 여신이 좀 더 분투해야 할 상황이었다.
“여신은 자신만만했지만,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키클로테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야를 다시 마계 원정대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달라진 원정대의 모습을 본 키클로테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거면 충분하고도 남겠군.”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