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치열한 공방전 (3)
각지에 퍼져 있는 셀레니아 여신의 신전 안에는, 셀레니아 여신상이 설치되어 있다.
신도들은 그 앞을 오가면서 기도를 올렸는데, 그 과정에서 여신상에 신력이 미세하게나마 모였다.
그게 짧게는 몇 년부터 길게는 수백 년에 이르자 무지막지한 신력이 모인 거였다.
그리고 지금, 그 신력을 동력원으로 해서 여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중이었다.
“엘리시아 님, 저건 뭔가요?”
지금까지 상정하지 못한 적 전력의 등장에, 아바로스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죄송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거대 여신상은 마신 전쟁 이후 세워진 것들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성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보니 엘리시아가 아무리 성녀라고 해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렇습니까. 일단 주의해야겠군요.”
신성력을 담은 빛을 발하고 있는 게, 거대 여신상들은 겉보기에도 아주 강력해 보였다.
실제로 아르칸 대마왕군의 공격은 대부분 통하지 않았다.
“젠장, 화살이 안 박힌다.”
“크취익. 내 도끼도 마찬가지다.”
“내 발톱도 안 먹히다니, 이거 재밌군.”
엘프 미네나 오크 로드 나크룸은 물론, 수인족 마왕 볼가의 공격까지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상황을 보고받은 아르칸이 제피로스를 통해 지시를 내렸다.
“아, 저건 신력 때문에 공격이 안 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신력이 소진되면 무너진다. 성전사 부대더러 나서라고 해.”
“신력에는 신력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거군요.”
아르칸의 말을 바로 알아들은 아바로스가 고개를 끄덕인 후, 성전사들에게 전면으로 나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셀레니아 여신의 성기사단을 모티브로 만든, 아르칸 신의 성전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손에는 모두 신성검이 들려 있었다.
출진 준비가 되었다는 보고에, 아르칸이 센시아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다.
“센시아, 성전사 부대를 이끌고 여신상을 최우선으로 공격해.”
“알겠습니다.”
센시아는 아르칸의 목소리를 들은 덕분인지 새로운 힘이 샘솟는 걸 느끼면서 여신상 중 가장 거대한 것을 향해 달려갔다.
그 여신상은 어찌나 거대한지 센시아와 엇비슷할 정도였다.
바로 신전의 본신이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신전에 세워진 여신상이었다.
“이야아앗!”
센시아가 신성검을 휘둘러 후려쳤지만, 여신상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대로 센시아를 붙잡고 자빠트렸다. 그리고 주먹질을 하려는데, 다른 성전사들이 달려들어서 협동했다.
“센시아 님, 도와드리러 왔어요.”
“크취익. 함께 싸우겠다!”
“재미 보는데 이 볼가가 빠질 수 없지.”
성전사들의 총공격이 펼쳐진 지 얼마나 됐을까?
콰직!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리면서 여신상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여신상의 신력이 다 소진된 거였다.
“여신상이 쓰러지고 있어요.”
“크취익! 우리가 이겼다.”
“훗, 재밌군.”
다들 승리에 도취하여 목소리 높여 환호했지만, 주위를 둘러본 센시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가장 큰 여신상을 쓰러트리긴 했지만, 주변의 아군들은 다른 여인상의 공격에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우리도 당할 거야.’
심지어 방금 상대한 여신상이 가장 거대하긴 했지만, 가장 강력한 것 같지도 않았다.
분명한 건 저기 오크군단 한가운데서 무쌍을 펼치고 있는, 인간 크기의 여신상이 가장 강력해 보인다는 거였다.
낡고 투박한 조각상의 모습이, 아무리 봐도 신전이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만큼 쌓인 신력도 많다는 의미.
“저것만은 저희 힘으로 쓰러트리는 게 무리일 것 같군요.”
오웬도 지친 얼굴로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 말에 다른 부하들이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오웬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정말로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럼 어쩌죠?”
“크취익. 그래도 끝까지 싸울 거다.”
“맞아. 지는 게임이라고 포기하면 재미없지.”
엘프 미네는 망설였지만, 오크 로드 나크룸과 수인족 마왕 볼가는 끝까지 싸울 태세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사정을 아는 센시아는 그 반응이 오히려 곤혹스러웠다. 그걸 본 오웬이 나서서 다른 이들을 설득했다.
“일단 당장 무리하지 말고 잠깐 물러서는 게 좋겠군요. 조만간 아르칸님이 오셨을 때 싸울 힘은 남겨 둬야 하지 않을까요?”
“크취이익.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하긴, 그편이 더 재밌겠죠.”
나크룸과 볼가뿐만 아니라, 다른 부하들도 오웬의 설득에 방어에 치중하면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대마왕 아르칸이 등장하길 기다리는 거였다.
***
한편 대마왕성에서 대기 중이었던 아르칸은 여신상이 등장했다는 소식에 놀랐다.
“저런 걸 지금까지 아껴 뒀을 줄이야.”
저런 게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 못 한 데다가, 그것도 아주 강력하다는 게 아닌가.
만약 인간계를 무턱대고 점령하러 나섰다면 그것도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게 쉬웠으면 마신 전쟁 때 마신이 이겼겠지. 어쨌거나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군.”
아르칸은 당당하게 대마왕성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제피로스가 조용히 알렸다.
“근처에서 외눈 박쥐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래, 예상대로군.”
아르칸이 굳이 전장에 나가지 않고 대마왕성을 지키고 있었던 건, 키클로테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외부에 있다면 바로 대마왕성으로 달려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중요하고 급한 용무가 있어서 대마왕성을 나선다면 키클로테스는 그 틈을 노리려 할 게 분명했다.
“어서 가자.”
아르칸은 그대로 바람의 정령을 타고, 전장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그 좌우로 실체를 갖춘 정령왕들도 함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역 경계에 있는 전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상사가 별로 안 나온 것 같네. 다행이다.”
전장을 살펴본 아르칸이 안도했다.
전투에서 피를 안 볼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평화롭게 지내려는 만큼 가능한 한 적게 보고 싶었다.
여신상을 앞세운 마계 원정대의 공세에 못 버티고 밀리긴 했지만,
방어를 단단히 해서 병력 자체는 출정 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피용이 안 나선 것도 다행이야.’
아우리오스까지 나섰을 거라고는 예상 못 했지만, 덕분에 피용이 안 나서도 됐다.
피용이 나섰다면 사방이 초토화될 게 분명했는데, 만약 아우리오스와 싸우기까지 한다?
적을 쓰러트리기 이전에 목숨을 부지할 걱정부터 해야 할 판이였다.
아르칸이 본대에 도착하자마자 제피로스가 전장을 뒤덮을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대마왕 아르칸님이 오셨다! 적은 순순히 항복하라!”
그러자 모두가 움찔하고 아르칸이 나타난 걸 바라봤다.
수만 개의 눈동자가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아르칸은 주눅 들기는커녕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왔다. 얌전히 항복해라. 지금 항복하면 봐주겠다!”
그러자 마계 원정대 측의 성녀, 아벨리아가 외쳤다.
“지금 상황이 안 보이시나요? 당신들의 군대가 지고 있습니다!”
“상관없어. 이제 내가 왔으니 이길 거야.”
“흥! 여신 앞에서 오만하게 굴다니 어리석군요. 곧 후회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벨리아의 말과 동시에 신성력이 터져 나오면서 마계 원정대를 감쌌다.
덕분에 기력을 회복한 원정대들은 아르칸 대마왕군을 향해 한층 기세를 높여 달려갔다.
“끝까지 덤비다니 하는 수 없지. 상대해 주는 수밖에.”
아르칸은 군주의 권능 스킬을 사용했다.
바로 군주의 깃발.
아르칸을 중심으로 주변의 부하들은 갑작스레 기운이 높아진 걸 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
“아르칸님이 우리에게 힘을 내려 주셨다.”
“크취익! 모두 돌격!”
“이때를 위해 전력을 아껴 뒀지. 이제 재미 볼 차례다.”
사기충천한 부하들이 마계 원정대에 다시 맞서 싸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리 나서서 함께 싸워도 됐지만, 아르칸이 참전하기 전까지 가만히 있던 정령왕들도 힘을 발휘했다.
그 힘은 곧바로 거대 여신상에게 집중됐다.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가 불러온 몰아치는 폭풍이 여신상의 발을 붙잡았다.
땅의 정령왕 로카스톤은 지면을 변형시켜 그런 여신상이 넘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무방비해진 여신상을 물의 정령왕 나이어드가 물방울 폭탄을 곳곳에 터트려 너덜너덜하게 했다.
거기다가 불의 정령왕 이그니스가 힘을 쓰자 여신상 하나가 불타오르기까지 했다.
그렇게 여신상들이 손쉽게 하나둘 무너지자, 신도들도 겁을 먹고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오웬마저 쓰러트릴 수 없다고 판단한, 가장 강력한 신성력을 가진 작고 낡은 여신상이 덤벼들었다.
그걸 보고 놀란 아바로스가 외쳤다.
“아르칸님!”
“괜찮아. 저건 내가 막지.”
아르칸은 여신상이 휘두르는 주먹을 가볍게 막아 냈다.
여신상이 강하다고 해 봐야, 대마왕인 데다가 어차피 나설 수 없어 피용으로부터 마력을 공유받은 아르칸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이제 내 차례군.”
아르칸의 마탄이 여신상의 머리통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이럴 수가, 여신상이 부서지다니…….”
아벨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는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문제는 그거로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여신상을 죄다 박살 내 놓은 정령왕들이 후방에서 지원하던 대천사들까지 공격하기 시작한 거였다.
‘이대로라면 지고 말 거야. 그것만은 절대로 안 돼.’
여신님이 직접 일으킨 성전이 패배로 막을 내린다?
성녀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벨리아는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했다.
“여신님, 이 성전에서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그러나.
여신 셀레니아로부터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벨리아의 우려와 달리, 지금 성전에서 밀리는 상황 자체가 셀레니아가 의도한 거였기 때문이다.
아르칸을 대마왕성에서 끌어내고, 아르칸의 주요 전력도 모두 전장에 붙잡는 게 셀레니아의 작전 1단계.
이를 위해서 천사를 부르고 대천사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했다.
거기다가 아껴 둔 여신상까지 모조리 동원했다.
저 위에서 성전을 바라보고 있던 셀레니아가 중얼거렸다.
“지금이야. 키클로테스, 가라.”
아르칸 대마왕성을 공략하는 2단계 작전을 시작할 때였다.
***
저 멀리서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소리를 들은 키클로테스가 중얼거렸다.
“후후, 알고 있다.”
이미 아르칸 대마왕성 주위의 상황은 물론, 마계 원정대와 아르칸 대마왕군이 싸우는 전장의 상황도 외눈 박쥐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금이 아르칸 대마왕성에 침입할 최적의 시점이 분명했다.
“자, 들어가자. 우리의 시간이다.”
키클로테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거기에는 엄선한 악마족 부하들, 열 명이 서 있었다.
아무리 아르칸 대마왕성의 전력이 대부분 나왔다고 해도, 혼자서는 다른 부하들을 상대하기 번거롭기도 하고, 지체될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성공적인 아르칸 대마왕성 공략을 위해 악마족 부하들을 엄선했다.
“알겠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키크롤테스의 의도를 알아들은 악마족이 앞장섰다.
목적지는 아르칸 대마왕성.
얼마 멀지 않은 곳이라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