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1)
여신 셀레니아는 하얀 초대장을 통해 키클로테스가 잿더미로 변하는 걸 똑똑히 지켜봤다.
셀레니아의 첫 반응은 혀를 차는 거였다.
“쯧, 역시나 져 버렸나.”
마치 질 걸 뻔히 알고 있었다는 듯 반응.
사실 셀레니아는 키클로테스가 근성 있어 보여서 신성력을 쓸 수 있게 힘을 불어 넣어 준 건 아니었다.
자신이 다른 수작을 부리는 동안, 최대한 시간을 끌라는 차원에 불과했다.
키클로테스의 분투로 아르칸의 정령왕들까지 대마왕성에 가게 만들었다.
덕분에 셀레니아의 마지막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이대로는 절대 못 끝내.’
셀레니아는 이를 악물었다.
완벽하다고 여겼던 자신의 작전은 사실 아르칸에게 진작부터 간파당했다.
그것만으로 수치스러운데, 아르칸은 대마왕성이 습격당했을 때조차 놀라는 척하면서 끝까지 자신을 속였다.
이 굴욕을 그냥 넘어간다면, 영원토록 이 망신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처음 이 일을 계획한 이유를 생각하니 절대 이대로 끝내지 못했다.
‘신력이 그렇게 빨리 모일 줄이야.’
그 이유란 바로, 아르칸의 신력 때문이었다.
처음 아르칸이 신을 자처하는 걸 허용해 줬을 때, 아무리 애써도 자신을 쫓아오려면 빨라도 수백 년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신도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버린 성녀까지 데리고 가더니, 모이는 게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히는 데 수백 년이 아니라, 앞으로 수년도 안 걸릴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아르칸의 신력이 앞지르게 되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것만은 절대로 용납 못 해.’
그 때문에 아르칸을 반드시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거였다.
“이렇게 된 이상, 작전도 필요 없어. 내 모든 신력을 동원해 정공법으로 쓰러트린다.”
셀레니아가 자신만만하게 중얼거렸다.
***
적이 다시 싸울 준비를 한다는 말에 아르칸은 얼른 대마왕군 본대로 돌아갔다.
후퇴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던 대마왕군은 마계 원정대에 맞서 다시 전투태세를 갖추느라 분주했다.
아르칸은 이번 작전에 대해 아는 오웬과 아바로스, 센시아를 불렀다.
아르칸은 먼저 이들이 가장 궁금해할 소식부터 전해 줬다.
“아버지가 키클로테스를 쓰러트렸다.”
그 말에 부하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바리스탄 님이라면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츠츳. 그 키클로테스를 정말로 쓰러트리실 줄이야.”
“우와! 역시 바리스탄 님이시군요.”
“다들 기뻐하는 건 이쯤 하고.”
그렇게 말한 아르칸이 마계 원정대 쪽을 바라봤다.
“키클로테스만 잡으면 전투가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지시를 요청하려던 차였습니다.”
아바로스의 말에 오웬과 센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칸이 대마왕성으로 향한 후, 전투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때 아바로스가 대마왕군을 일사불란하게 철수시켰다.
은연중에 상대에게도 철수해 전투를 끝내자는 신호를 보낸 것이기도 했다.
마계 원정대 좌·우측을 맡은 왕국군과 귀족 연합군은 그 신호를 알아들었는지 조금씩 병력을 뒤로 뺐다.
그러다 보니 신도들과 성기사들로 이뤄진 본진도 조금씩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김이 새긴 해도 전투는 이대로 끝날 분위기였다.
그런데.
마계 원정대 본진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중앙으로 최대한 밀집하기 시작한 거였다.
그러자 철수하느라 병력이 길게 늘어졌던 국왕군과 귀족 연합군도 다시 병력을 모아서 본대에 붙었다.
그걸 보고, 이쪽도 대응하면서 지켜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저들 대부분은 더 싸우고 싶어 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다들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웬과 센시아의 말에 아르칸도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마계 원정대의 대부분을 이루는 신도들은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신앙의 힘을 빌려 기세를 높여서 싸웠지만, 전투의 흥분이 가시고 사방에 튄 피와 차가운 시체를 보는 순간 겁먹을 수밖에 없었다.
국왕군과 귀족 연합군도 크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전투에 익숙하긴 했지만, 이번처럼 다양한 적에 초월적인 존재가 나오는 전투에 익숙한 건 아니었다.
거기다 치열하게 엎치락뒤치락까지 하는 바람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로가 극에 달했다.
겨우 돌아가나 했는데 다시 불러와 전투를 재개할 낌새니, 불만도 상당해 보였다.
그사이 진영을 내려다본 아르칸은 의아했다.
‘너무 붙어 있는 거 아니야?’
적이 한데 밀집해 있다 했더니, 너무 빈틈없이 바짝 붙어 있는 거였다.
저 안에서는 무기를 들기는커녕, 자칫 잘못 움직이면 압사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전투를 재개하더라도 제대로 싸울 수 없을 텐데,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때 제피로스가 키클로테스가 가지고 있던 하얀 초대장을 가지고 왔다.
“아르칸님, 여기 있습니다.”
“어, 그래. 고마워.”
아르칸이 그걸 건네받자마자, 여신 셀레니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훗. 손에 쥐길 기다렸지.
“셀레니아?”
-그래, 나야.
‘이걸로 통신이 가능할 줄이야.’
뜻밖이었지만, 마침 잘됐다.
아르칸도 셀레니아에게 할 말이 있었다.
“작전에 실패했으면 이대로 돌아가지?”
-그럴 수는 없지. 반드시 끝장을 볼 거야.
“이미 가진 카드는 없지 않아? 무엇보다 그럴 만한 신력이 없을 텐데.”
아니, 정확히는 신력이 없지 않았다.
다만 셀레니아는 이 세계의 여신. 아르칸이 파악한 바로는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일정 이상의 신력을 모아 둘 필요가 있었다.
신력이 없다는 말은 그걸 제외하고 없다는 소리였다.
-후후, 네가 아직 뭘 몰라서 그래. 지켜보기나 해. 이제 다 됐으니까.
“다 됐다고?”
아르칸이 되묻는 순간.
하늘에서 마계 원정대에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여신 셀레니아가 뭔가 한 게 틀림없었다.
‘설마 모두를 광신도로 만들 생각인가.’
듣기로는 전투 초기에 전투 경험이 없는 신도들을 싸우게 만들기 위해 광신도로 만들었다고 했다.
아르칸이 아는 바로는 그 범위나 정도도 조절 가능했다.
만약 신력을 최대치로 쓴다면, 눈이 뒤집혀 자신도 모르는 괴력을 발휘하는 광전사나 다름없게 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잠재된 신체 능력을 완전히 끌어내는 것에 불과했다.
마인족 정도라면 압도할 수 있겠지만, 마력을 바탕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마족만 되어도 광신도는 상대하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숫자가 아주 많다는 것만은 제법 위협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정령왕들에게는 소용없었다.
“이것만으로는 이기기 힘들 거라는 것 정도는 여신도 알 텐데…….”
아르칸의 의문은 이내 풀렸다.
“아아. 아아. 아아아!”
섬광 안쪽에서 수천 개의 탄성이 들렸다.
그 탄성이 모이자 마치 성스러운 노랫소리, 찬송가처럼 들렸다.
마침내 섬광이 완전히 가셨을 때 드러난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 빛 속에 있던 모두의 옷이 잔뜩 해어져서 후두두 떨어졌는데, 그러면서 드러난 속살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뽀얗게 보였다. 더욱 놀라운 건 등 뒤로 새하얀 날개가 돋아났다는 점.
천사가 된 거였다.
“설마, 저 많은 사람을 천사로 만든 건가?”
-딩동댕. 맞아. 마신이 하는 걸 보고 해 봤는데 잘되네.
셀레니아의 말에 아르칸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아르칸이 알기로는 생전에 신성력이 높은 성직자가 사망했을 때, 신이 축복을 내려 천사로 만든다.
그래야 신력 소모를 줄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저 평범해 보이는 인간족을 모두 천사로 만든다?
신력이 얼마나 필요할지 감도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지만.
아르칸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설마 저 사람들을 모두 죽인 거야? 저대로 끝인 거지?”
이 세계의 천사는 모두 사후에 만들어진다. 저들이 산 채로 천사가 됐다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지 않아 한 소리였다.
-죽이다니 말이 심한걸? 그래도 나를 위해 천사가 되었으니 모두 기뻐할 거야.
“이럴 수가. 네가 악신과 뭐가 달라?”
-다르지. 난 이 세계를 수호하는 신이니까.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정도 희생은 당연한 거야.
분노한 아르칸의 외침에 여신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보다 날 비난하고 있을 때야? 저게 끝이 아닌데?
“끝이 아니라고?”
반문하면서 천사들을 보는데, 밀집한 그대로 뭉쳐서 곧장 대천사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 뒤 하늘로 떠오르는데, 하늘에 새하얀 날개가 가득한 게 성스러운 느낌보다는 종말이 도래한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저렇게 대천사가 되면 신력이 다 소진되는 즉시, 그대로 소멸한다.
말 그대로 한 번 쓰고 버리는 패로 만들어 버린 거였다.
“제기랄!”
아르칸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주변에 최대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상급 마족 이하는 모두 후퇴해라! 나머지는 후퇴를 도와!”
셀레니아의 악행에 치가 떨리는 건 둘째 치더라도, 마인족은 물론, 중하급 마족들은 저 대천사 부대와 싸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괜히 나서 봐야 일방적으로 학살당할 뿐이었다.
“모두 들었지? 아르칸님 말씀대로 침착하게 후퇴하도록. 후퇴를 도운 후에 나머지는 모두 나서서 저 대천사를 막는다.”
아르칸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아바로스의 지휘에 따라 마왕과 상급 마족이 전방에 나섰다.
동시에 대천사들이 공격해 오면서 전투가 시작됐다.
아르칸 대마왕군의 주요 전력들은 그래도 대천사를 한 번 상대해 봤다고 나름대로 싸우고 있었지만.
어느새 하늘을 가득 메운 대천사들을 전부 쓰러트리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였다.
‘이런 식으로는 끝이 없어.’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 대천사들을 조종하는 여신 셀레니아를 멈추는 것.
문제는 여신이 저 하늘 위, 정확히는 다른 차원에서 이쪽을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거였다.
아르칸도 신력을 소모하면 그곳으로 갈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곳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아!’
고민하던 아르칸의 눈에 마침 손에 쥔 하얀 초대장이 들어왔다.
아르칸은 대번에 아공간 주머니에서 잠들어 있던 게티아를 꺼내 깨웠다.
“게티아, 일어나!”
“크흠. 5분만…….”
“5분만이 아니야. 중요한 일이라니까. 어서 일어나.”
그러나 게티아는 비몽사몽 한 게, 일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안 되겠다. 나이어드, 게티아에게 차가운 물을 끼얹어.”
물의 정령왕 나이어드는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 얼기 직전의 차가운 물을 끼얹자 게티아가 펄쩍 뛰어올랐다.
“앗! 차가!”
“일어나,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대체 무슨 일…… 아니 저건 뭐야?”
게티아는 하늘에 가득한 대천사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저걸 막아야 하니 이거로 여신의 위치를 찾아 줘. 가능하지?”
아르칸은 하얀 초대장을 내밀며 물었다.
이걸 통해 셀레니아가 말을 걸어온 만큼, 그 위치를 추적할 수 있을 거라고 짐작한 거였다.
“그야 가능한데, 가서 여신을 어떻게 상대하려고?”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다 방법이 있으니까.”
아르칸은 정령왕들과 아공간 주머니를 보며 자신 있게 말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