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2)
하얀 초대장을 감정한 게티아는 곧바로 여신 셀레니아가 있는 위치를 특정해 냈다.
“여기야.”
“알았어. 그럼 바로 간다.”
아르칸은 눈을 감고 게티아가 알려 준 좌표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러자 신력이 깎여 나가는 느낌과 함께 포근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눈을 뜨니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넓고 푸른 초원에 하늘은 청명하고 아름다운 구름이 흘러가고 있는, 아주 평화로운 풍경.
그리고 저 앞에는 하늘거리는 천으로 몸을 감싼,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얼굴은 익숙했다. 이미 신전에서 몇 번이나 봤으니까.
바로 여신 셀레니아였다.
저 멀리 있던 셀레니아는 아르칸이 온 걸 보더니, 순식간에 코앞에 나타났다.
“어머, 여기로 왔네? 어떻게 온 거야?”
“다 오는 방법이 있지.”
아르칸의 대꾸에 셀레니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왔어? 여긴 내 세상인데, 설마 죽으러 온 거야?”
“말리러 온 거야. 지금이라도 저 미친 짓을 멈춰.”
“미친 짓이라니 너무하네. 게다가 어차피 되돌리지도 못해. 그러니 이대로 최대한 써먹어야지.”
“저 사람들을 구할 방법이 전혀 없나?”
“구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저 사람들은 이미 구원받은 거야. 신에게 부름을 받아 천사로 쓰이는 거잖아.”
장난스레 말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말 돌이킬 방법이 없는 듯했다.
아르칸의 표정이 안 좋은 걸 본 셀레니아가 아르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열 내는 거야? 너도 이제 신이니 신처럼 생각해야지.”
매혹적인 모습이었지만, 아르칸에게는 그저 추악하게 보일 뿐이었다.
“구할 방법이 없다면, 멈추게 하겠다.”
“정말 날 상대할 생각이야?”
셀레니아가 재밌다는 듯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기운이 아르칸의 목을 찌르는 듯 파고들었다.
그러나 아르칸은 태연히 대꾸했다.
“그래.”
“잘 생각해 봐. 너를 죽이는 대신, 네 영역을 초토화하고 신도를 몰살시키는 정도로 봐주려고 했으니까.”
그러면 아르칸의 평판이 땅에 떨어질 뿐만 아니라, 앞으로 신도를 모으기 힘들 게 분명했다.
셀레니아 입장에서도 그렇게 되면 굳이 아르칸을 죽일 필요까진 없었다.
‘괜히 그 녀석이랑 껄끄러워지기만 할 테니까.’
그러나 아르칸은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너야말로 잘 생각해. 지금이라도 대천사들을 물려.”
그 말과 동시에 아르칸에게 가해지는 위협들을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가 밀어냈다.
나머지 물과 불, 땅의 정령왕은 셀레니아를 포위했다.
그러나 셀레니아는 재밌다는 듯 정령왕들을 쳐다봤다.
“어이쿠, 정령왕을 믿고 여기 온 거였어? 이 녀석들로는 나를 못 쓰러트린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 말과 동시에 정령왕들이 몸을 떨면서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헉, 이런 힘이…….”
“저희의 생명력을 완전히 차단당했습니다.”
“이대로라면 못 버팁니다.”
“크으으윽.”
그러나 아르칸은 당황하지 않고 냉정하게 대꾸했다.
“그래 정령왕들로는 부족하지. 하지만 내게는 이 녀석도 있거든. 가라, 피용!”
“피잇!”
아공간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피용이 튀어나와 셀레니아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셀레니아가 손을 내밀자 피용이 그대로 멈췄다.
“피핏. 아빠. 안 되겠어.”
“후후후. 귀엽군. 더 꺼낼 카드 없어?”
셀레니아가 여유롭게 물었다.
용아병들이 있었지만, 피용까지 통하지 않은 이상 먹힌다는 보장이 없었다.
아르칸은 자신의 손에 든 게티아를 향해 말했다.
“게티아, 네가 도와줘야겠다.”
“훗. 내 도움이 필요한가? 자신 있어 하더니 내 이럴 줄 알았지.”
잘난 체했지만 도와줄 생각인지, 게티아는 마신의 피를 잔뜩 흡수했을 때처럼 커졌다.
그 모습에 셀레니아가 처음으로 당황했다.
“게티아, 잠깐! 이 녀석 편을 들 거야? 이 세계로 넘어왔을 때 내버려 둔 은혜는 잊은 거야?”
“은혜라니, 그냥 방치해 뒀으면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짐승처럼 살았는지 알아?”
그 말에 아르칸은 게티아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책 속에 잠들어 있다가 자신의 피에 담긴 희미한 마력에 깨어나서 허겁지겁 피를 핥았다.
거기다 마력이 부족해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개처럼 으르릉거렸다.
‘어쨌거나 내 짐작이 맞았군.’
게티아는 여신이 용사에게 내린 권능 전시안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는 감정 능력을 가졌다.
무엇보다 마신의 피에 담긴 막대한 마력을 소화하는 걸 보고, 평범한 마도구가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굳이 캐묻지 않아 정확한 정체는 모르지만, 마신이나 다른 악신처럼 다른 세계에서 온 외신이거나, 적어도 용사나 아르칸처럼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강하긴 아주 강하겠지.’
셀레니아가 저런 반응을 하는 거면 아르칸의 기대 이상일지도 몰랐다.
아르칸이 다시 셀레니아에게 권했다.
“대천사만 물러나면 싸울 필요 없다.”
“그럴 수는 없다니까. 내가 손해 본 게 얼마인데.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가 보자고.”
셀레니아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존재감이 한층 더 커졌다.
어찌나 강력한지 정령왕들은 물론이거니와 피용과 게티아마저 튕겨 나갈 정도였다.
“하는 수 없지. 다들 공격해!”
아르칸의 외침을 시작으로 전투가 시작됐다.
아르칸 측은 각자 마력과 생명력을 끌어올리면서 셀레니아에게 덤볐고, 셀레니아는 신력을 끌어올려 막았다.
그 기운들이 부딪치자 폭죽처럼 터졌다.
그렇게 한 차례 부딪친 뒤, 서로의 전력을 감정한 게티아가 냉정하게 말했다.
“이대로는 우리가 진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게티아는 물론이거니와 피용과 정령왕들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지금 전력 분석은 아직 아르칸이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르칸은 이 난리 속에서도 잠자코 셀레니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낀 셀레니아가 빙긋 웃었다.
“왜 그래? 설레게.”
“한 가지만 더 묻자.”
아르칸의 말에 셀레니아는 물론,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뭔데? 물어봐.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거면 대답해 줄게.”
“만약 여기서 너를 쓰러트리면, 세계는 어떻게 되지?”
이 지경이 되어서도 아르칸이 끝장을 보려고 하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세계의 안위 때문이었다.
꼴에 이 세계의 여신이라고, 셀레니아가 악신이 함부로 이 세계로 넘어오지 못하게 지키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셀레니아를 해치워서 그게 끝나면 악신들에게 이 세계를 침공하라고 개방하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아르칸의 질문에 셀레니아가 감탄했다.
“우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던 거야? 역시 머리 하나는 좋다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대답이나 해.”
“네가 걱정하던 게 맞아. 내가 사라지면 이 세계는 끝장나고 말걸. 마신이 깨어나기 이전에 다른 악신들의 공격을 받을 테니까.”
“그렇군.”
“그러니 얌전히 포기하고 물러가지 그래?”
“너야말로 여신으로 남고 싶으면, 대천사들을 얌전히 철수시켜.”
“싫다는데 계속 질척거릴래? 짜증 나게.”
자신의 엄포가 통하지 않자, 셀레니아가 진심으로 짜증 났는지 잔뜩 인상을 쓰면서 공격해 왔다.
정령왕들이 나서서 그 공격을 막아 냈다.
그사이 게티아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쓰러트려서 제압한다. 날뛰지 못하도록 봉인이라도 해야지. 가능하지?”
“알면서 왜 물어.”
“피피. 아빠, 피용이도 힘낼게.”
“그래, 부탁한다.”
그렇게 말한 아르칸도 본격적으로 전투에 나섰다. 먼저 군주의 권능 스킬 중 군주의 깃발을 사용했다.
그러자 피용과 정령왕들의 힘이 한층 더 치솟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티아, 이거 먹어. 마석이야.”
“마석? 지금 싸우는 거 안 보여? 앗, 잘 먹을게.”
한창 가름끈을 휘두르며 셀레니아와 전투 중이던 게티아는 아르칸의 말에 투덜거리다가 반색했다.
지금 게티아는 마신의 피를 진창 흡수한 상태. 어지간한 마석을 흡수한다고 해서 그 힘이 많이 증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르칸이 내민 건 어지간한 마석이 아니었다.
그동안 아껴 둔 8성급 마석을 건넨 거였다.
게티아는 얼른 받아서 먹어 치웠다.
“여기 다른 것도 있으니까 먹어!”
아르칸은 아예 마석을 넣어 둔 주머니를 던졌다.
그 안에는 8성급은 또 없지만, 최소 5성급 이상의 마석이 가득 들어 있었다.
“크하하핫! 이러면 힘을 안 낼 수가 없지.”
게티아는 신이 나서 셀레니아에게 덤벼들었다.
아르칸의 전투 준비는 그사이 계속됐다.
아공간 주머니 속에 있던 용아병들을 불러내 마력 공유로 마력을 끌어왔다.
“좋아, 어디 한번 싸워 볼까?”
아르칸도 동료들의 틈에 끼어서 셀레니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맹렬한 협공에 셀레니아는 미소를 잃고 막아 내기 바빴다.
“큭, 이 자식들이 치사하게.”
“아르칸, 조금만 더 힘을 빼면 될 거 같다.”
“알았어.”
게티아의 말에 아르칸이 한층 더 기세를 올리려고 할 때, 셀레니아가 외쳤다.
“내가 이대로 당할 줄 알아??”
셀레니아의 외침이 얼마나 강렬한지, 이 공간이 뒤흔들리는 듯했다.
더욱 놀라운 건, 셀레니아 갑자기 거인이 된 것처럼 커진 거였다. 크기만 커진 게 아니라 신력도 한층 강력해졌다.
정령왕들도 이 상황에 질린 듯했다.
“아직도 저럴 여력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저건 도저히 상대가 안 될 거 같아.”
“크윽, 나보다 훨씬 단단해 보이는군.”
“내 불길은 통하지도 않겠어.”
“피핏.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피용이 놀라는 소리에 아르칸이 대꾸했다.
“이 공간을 유지하는 신력까지 끌어와서 그래.”
“그뿐만이 아닌 거 같다. 세계를 지키는 힘까지 거둬들였어.”
게티아의 말에 셀레니아가 목소리를 높여 웃었다.
“호호호홋! 맞아! 내가 질 바에는 세계를 지킬 필요도 없잖아! 그렇게 되는 게 싫으면 얌전히 죽어!”
그러면서 아르칸에게 주먹을 뻗었다.
위험하다고 여긴 정령왕들과 피용이 아르칸의 앞을 막았지만,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그러나.
셀레니아의 주먹은 아르칸이 손을 들어 막았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당황하는 셀레니아에게 아르칸이 말했다.
“‘내가 진다면 세계를 지킬 필요 없다’라……. 맞는 말이야. 그러니 나도 비장의 무기를 쓰는 수밖에 없지.”
“비장의 무기? 어? 으아아아앗!”
셀레니아는 그제야 아르칸이 자신의 공격을 어떻게 막았는지 눈치챘다.
허공에 생긴 검은 블랙홀이 자신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모두 네 개나 됐다.
“이건 설마 차원의 조각?”
“그래, 여기서 질 바에는 이거라도 써야지.”
차원의 조각이 마신의 능력을 봉인하는 데 쓰인다면, 여신의 능력을 봉인하는 데도 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이게 바로 아르칸이 준비한 마지막 비장의 무기였다.
가능하면 쓰지 않았으면 했지만, 셀레니아가 세계를 지키던 신력까지 거뒀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하나 기대할 수 있는 건, 앞으로 쳐들어오는 악신들이 많을 테니 다시 차원의 조각을 얻을 기회도 있을 거라는 정도였다.
“이제 정말 끝이다. 사라져라!”
아르칸은 마력을 모조리 긁어모아 셀레니아에게 마탄을 발사했다.
거기에 맞춰 게티아와 피용, 정령왕들도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