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마신의 눈 (4)
아르칸이 마신의 부하들에게 한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라는 건 바로, 마신의 시신에 대한 거였다.
“마신의 눈을 넘기면, 아버지께 마신의 시신을 없애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할게. 어때?”
그 말에 마신의 부하들이 움찔했다.
이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앞서 대화할 때, 바리스탄이 마왕의 시신을 없애는 걸 걸고넘어졌다.
마신의 부하답게 비록 마신의 시신일지라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고 짐작해 꺼낸 제안이었다.
어차피 바리스탄이 마신의 시신을 없애려는 것도 바로 마신의 부활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현재 바리스탄이 가진 마신의 시신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마신의 유산은 모두 아르칸이 가지고 있는 상황.
아르칸이 마신의 시신을 그냥 두자고 하면 뜻대로 해 줄 게 분명했다.
“흠, 마신님의 시신을 온존시키고, 마신의 눈도 적절히 쓴다고 하면 반대할 이유는 없는 거 같다.”
이번에는 데실론이 나머지 마신의 부하들을 바라봤다.
검은 뚱보, 하얀 미라, 푸른 사신. 셋 다 못마땅한 얼굴을 했지만, 다른 이유를 대진 않았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였다.
잠시 후에야 검은 뚱보가 대표로 엄포를 놓았다.
“푸푸. 만약 약속을 어기면 마신의 눈은 물론, 마신의 시신까지 회수하러 가겠다.”
“그래, 알았어. 그럼 챙겨 간다.”
아르칸은 마신의 눈에 가까이 다가갔다.
아르칸의 키만 한 마신의 눈은 아주 맹렬한 화염에 휩싸여 있어, 보통 악마족이라면 근처에 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불의 정령왕 이그니스와 계약한 아르칸에게는 조금도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다른 마신의 유산과 달리, 이대로 아공간 주머니에 넣을 수는 없어 보였다.
“이대로 들고 가야겠네.”
아르칸이 손을 뻗자, 마신의 눈이 저항하는 듯 눈을 둘러싼 불길이 더욱 커졌다.
어찌나 강렬한지 마신의 부하들도 순간적으로 움찔할 정도.
그러나 아르칸은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마신의 눈을 들어 올리려고 했다.
다만, 마신의 탑과 결합되어 있는 탓인지 쉽사리 들리지 않았다.
“이거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힘 좀 써야겠는걸.”
아르칸은 양손을 내밀어서 최대한 마력을 발휘했다.
그러고도 부족해 피용으로부터 마력을 빌려 오고서야 마신의 눈을 마신의 탑에서 분리할 수 있었다.
들어 보니 놀랍게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했다.
더욱 놀라운 건, 마신의 눈이 작아지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최종적으로 아르칸의 한 손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졌다.
불타오르는 건 여전해 아공간 주머니에 넣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편하게 들고 다닐 정도는 됐다.
“그럼 챙길 거 다 챙겼으니, 이만 갈게.”
아르칸이 몸을 돌리자 검은 뚱보가 물었다.
“그런데 그거 어디에 설치할 건데?”
“이곳처럼 높은 곳에 설치해야지. 내 대마왕성 위에 설치할 테니, 조만간 구경이라도 하러 와.”
아르칸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마신의 부하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푸푸. 조만간?”
“그리 빨리는 안 될 텐데. 꿀꺽.”
“그냥 해 본 소리겠지. 말실수거나. 이 마신의 탑이 만들어지는 데도 몇십 년이 걸렸잖아.”
현재 마신의 탑은 어림잡아도 1백 미터는 족히 될 정도로 아주 높았다.
아르칸의 빙의 전 기억으로도 완공되었을 때 꽤 화제가 됐다. 날개 달린 악마족이 아니었다면, 건설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데실론조차도 아르칸의 말은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대마왕성에 있는 드워프들이 나선다고 해도, 조만간이라고 할 정도로 빨리는 못 만들 텐데.”
그 반응에 아르칸이 피식 웃었다.
“이거 다들 속고만 살았나? 좋아, 그럼 내기할까?”
“내기? 무슨 내기?”
“내가 마신의 눈을 오늘 바로 장착한다면, 여기 키클로테스의 대마왕성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옮겨 줘.”
“정말 그렇게까지 자신 있는 거냐?”
“자신 있다니까. 그래서 내기할 거야, 말 거야?”
아르칸의 말에 데실론이 다른 마신의 부하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다들 내기에 응하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데실론이 정리했다.
“아르칸, 내기를 받아들이겠다. 승부는 네가 마신의 눈을 오늘 중에 이 정도로 높은 곳에 장착하느냐 마느냐로 가른다. 안 되겠다고, 나중에 가서 물리면 안 된다.”
“알았으니까. 잠자코 따라와서 봐.”
그 말에 검은 뚱보가 대뜸 말했다.
“푸푸. 내가 대표로 가서 보고 오지.”
“왜 네가 대표야? 꿀꺽. 나도 궁금하니까 가서 볼래. 꿀꺽.”
“나도 간다. 정말 가능한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마신의 부하들끼리 다투는 걸 본 아르칸이 말했다.
“다 같이 가면 되지, 오래 안 걸린다니까. 알아서 따라와.”
그렇게 말한 아르칸이 마신의 눈을 들고 빠르게 자신의 대마왕성으로 향했다.
바람의 정령을 타고 아주 빠르게 날아간 덕분에, 데실론과 마신 부하들의 눈에는 아르칸이 순식간에 작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음, 늦기 전에 우리도 따라가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신의 부하들은 데실론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아르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아르칸은 자신의 대마왕성에 돌아왔다.
대마왕성을 책임지는 아바로스와 벌써 의식을 차린 오웬이 마중 나왔다
오웬은 아르칸을 보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르칸님, 저를 위해 무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새로운 생명을 한 번 주신 거나 마찬가진데, 또 목숨을 구해 주시다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만 일어서. 나를 위해 싸우다가 무리해서 그런 건데, 당연히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오웬의 정중한 감사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 훈훈한 분위기를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던 아바로스가 말했다.
“아르칸님, 마신의 눈을 가지러 가신 건 어떻게 됐습니까?”
“아, 맞다. 가지러 갔더니 마신성에서 온 마신의 부하들이 먼저 와 있더군. 그래도 어떻게 챙기기는 했는데, 걔들이랑 내기했거든.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줘.”
“내기 말입니까? 대체 어떤 내기를 한 겁니까?”
“마신의 탑 알지? 오늘 내로 그 정도로 높은 곳에 마신의 눈을 설치하기로 했어. 성공하면 키클로테스 대마왕성을 옮겨 주겠다네.”
“키클로테스 대마왕성을 얻는다면 좋긴 합니다만, 당장 마신의 눈을 어디에 설치하시려고요.”
“맞습니다. 지금 저희에게는 마신의 탑만 한 곳이 없습니다. 마신의 눈을 가져와도 한동안은 보관만 하실 줄 알았습니다.”
아바로스의 말에 오웬도 걱정했다.
“괜찮아. 내게 다 방법이 있으니까.”
아르칸은 자신 있게 웃으며 둘에게 자신이 생각한 방법을 알려 줬다.
그러자 두 사람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아, 제가 그걸 생각 못 했군요.”
“그거라면 문제없을 거 같습니다.”
***
한편 데실론과 마신의 부하 3인조는 아르칸을 쫓아 수인족 영역으로 넘어왔다.
원래라면 영역을 넘자마자 경비대가 쫓아와서 막는다.
그러나 아르칸이 미리 알려 놓은 덕분에 영역 경비대는커녕, 한 번도 다른 수인족이나 마인족과 부딪치지 않고 아르칸 대마왕성으로 향할 수 있었다.
조금의 시간도 끌지 않는 아르칸의 모습에 다들 오히려 의심이 생겼다.
검은 뚱보와 하얀 미라, 푸른 사신까지 한마디씩 했다.
“푸푸. 정말 아르칸이 탑을 준비할 수 있을까?”
“나도 안 믿긴다. 꿀꺽. 어쩌면 함정일지도. 꿀꺽.”
“계략이든 함정이든,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베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 대화를 듣던 데실론이 대꾸했다.
“함정으로 꾸몄다기에는, 우리랑 만날 것도 예상 못 한 것 같은데.”
“푸풋. 하긴…….”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된다. 꿀꺽.”
“동의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르칸은 우리 안중에도 없었던 녀석이니까. 망나니 마왕이 저 정도의 거물이 될 줄이야.”
그 말대로 아르칸이 지금까지 해낸 일은 전무후무했다.
아르칸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 마신의 부하들이 아르칸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건 단 하나.
대마왕 바리스탄에게 골칫덩이에 불과한 망나니 막내아들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 막내아들의 마왕성이 반지하 상태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실소했다.
얼마나 엉망진창이면 명색의 마왕성이 그런 꼴이 되도록 내버려 둔단 말인가.
심지어 하얀 미라는 마왕성이 배고파서 괴로워하는데 안쓰럽다며, 아르칸에게서 마왕성을 뺏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데실론은 달래면서, 마왕성의 마력이 바닥나서 활동이 정지되면 돌봐 주라고 했다.
그런데 마왕성이 활동 정지는커녕, 빠르게 번창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어느새 마왕성 랭킹에까지 들어올 정도로 성장했는데, 그 소식에 하얀 미라는 안도하고 데실론도 나름대로 도와줬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대마왕성까지 됐다.
심지어 신을 자처하더니, 아예 여신까지 소멸시켰다.
마신이 해내지 못한 위업.
다만, 데실론을 비롯한 마신의 부하들은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최근 여신의 힘은, 자신들이 느끼기에도 마신 전쟁 때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세계의 존재까지 끌어들여서 마신님을 쓰러트리긴 했지만, 여신도 그 과정에서 힘을 많이 소모한 거였다.
한편 데실론의 대답에 검은 뚱보가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을 더 떠올리고는 물었다.
“푸풉. 혹시 아르칸이 마신의 탑 같은 걸 미리 준비해 두진 않았을까?”
함정이 아니라면, 미리 만들어 둔 탑이 있어 아르칸이 자신만만한 게 분명했다.
“맞아. 꿀꺽. 무슨 낌새를 눈치챈 거 없어? 꿀꺽. 너는 자주 돌아다니잖아.”
“데실론도 내기를 승낙했잖아. 그런 게 있지도, 존재하지도 않아서 이길 수 있다고 여겨서가 아닐까?”
주위에서 억측하는 걸 본 데실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알기로는 없다.”
“푸푸. 그럼 대체 뭐지?”
“가서 보면 알겠지. 꿀꺽. 그러려고 가는 중이잖아.”
“그래, 가자. 일단 가서 보자고.”
“안 그래도 다 와 간다. 아르칸 대마왕성은 저기다.”
데실론이 저 앞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수인족 영역에는 곳곳에 수풀이 높게 자라 있었는데, 대부분의 마왕성 위는 비어 있었다.
마왕성에서 나오는 마력 때문에 어지간한 식물은 살아남기 힘들어서였다.
그 때문에 마왕성 위치를 찾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특히나 아르칸의 대마왕성은 그 크기도 아주 큰 만큼, 수풀이 없는 공백이 컸다.
“푸푸.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게, 오는 길에 특별한 거도 못 봤고, 꿀꺽. 주변에도 안 보인다. 꿀꺽.”
“이러면 우리가 이긴 거 아닌가? 아르칸더러 어서 나오라고 해.”
마신의 부하들이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때였다.
아르칸 대마왕성에서 무언가가 뚫고 지상으로 튀어나왔다.
그건 그대로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나갔는데, 이내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데실론과 마신의 부하들을 깜짝 놀랐다.
“저건 세계수잖아?”
“푸풉. 설마, 세계수에 심을 생각인가?”
“마신의 눈과 세계수 조합이라니…… 상상도 못 했네. 꿀꺽.”
“……정말 예상 밖의 일이로군.”
그런 와중에도 세계수는 쭉쭉 자라, 어느새 마신의 탑 정도로 커졌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