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4
24화 두 마왕과 한 용사 (4)
가노트 마왕성 안.
온갖 뼈다귀와 시체들로 가득한 이곳에 살아 있는 존재는 단 하나, 바로 이 살벌한 풍경을 만들어 낸 장본인인 김용사였다.
용사는 아르칸에게 마왕 둘이 싸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고 이곳까지 단숨에 달려왔다.
덕분에 마왕 가노트는 물론, 한 번 놓쳤던 마왕 드리켈라까지 해치울 수 있었다.
그보다 더 큰 성과도 얻었다.
‘이런 중요한 게 있을 줄이야…….’
용사는 자신의 손에 들린 커다란 보석을 내려다봤다.
이 사과만 한 보석의 겉은 투박했지만, 내부에는 불길한 마기가 감돌고 있었다.
금방 통제실에서 뽑아낸 마정석이었다.
‘내가 이걸 몰랐다니.’
아르칸에게서 마정석에 대해 들었을 때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 마정석은 마왕성의 동력원일 뿐만 아니라, 마인족의 권능을 개화시킨다고 한다.
즉, 마왕을 만들어 내는 보석이라는 소리.
이걸 내버려 두고 마왕을 퇴치한다고 날뛰었으니, 아무리 마왕을 해치고 다녔어도 끝이 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어쨌든 아르칸이 준 정보는 확실히 쓸 만하군.’
마정석의 존재에 대한 건 물론, 마왕의 위치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 줬다.
그래도 마냥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왜 여기에 마왕이 둘이나 있는지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아르칸은 마왕성을 방어하기 위해서 자신을 움직인 셈이었다.
마정석도 부수지 말고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용사는 마정석을 노려봤다.
‘이걸 아르칸에게 주면 더욱 강해지겠지.’
아르칸의 계획은 마계의 정점에 올라 인간족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
그걸 위해서는 마정석을 주는 게 옳았다.
‘하지만 대뜸 주기에는 썩 내키지 않는단 말이지.’
오늘 일이 죄다 아르칸에 도움이 되는 일뿐이었다고 생각하니,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줄 게 아니라, 뭔가 시켜 먹을까? 근데 뭘 시키지?’
용사는 한참을 고민했지만,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에이, 일단 마정석을 얻었다고나 보내자.”
품에서 세계수의 쌍잎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집어넣으려던 용사는 별안간 부탁할 게 떠올랐다.
“아! 맞다. 나 대신 엘프를 구해 달라고 하면 되겠네.”
세계수의 쌍잎은 인간족 노예로 팔려 가던 엘프를 구해 주고 받은 거였다.
당시 엘프는 자신의 친언니도 토돌 백작에게 잡혀 있다며 구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용사는 거절했다.
국왕에게 마왕을 해치우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도 좋다고 들었지만, 엘프를 구해 내기 위해 백작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그 후로도 못 도와준 게 계속 마음에 걸렸던 참이었다.
“마침 잘됐네.”
용사는 추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이 마정석을 가지고 싶으면 자신의 의뢰를 하나 수행하라고 말이다.
‘이러면 나도 아르칸을 이용해 먹는 셈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 * *
아르칸 마왕군은 후퇴하는 클투스군을 집요하게 추격했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멀리까지 가지 않고, 마왕성 바로 앞까지만 쫓았다.
‘이제 게티아의 마력도 거의 바닥났고, 무리할 필요 없지.’
마왕성으로 귀환한 아르칸은 부하들을 칭찬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고생은 아르칸 님이 다 하셨죠. 우리야 아르칸 님이 마법 쓰는 거 쫓아다니면서 쉽게 싸웠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아르칸 님이 대승을 거두신 겁니다.”
트릴과 오웬도 기쁜 얼굴로 대꾸했다.
‘하긴, 말도 안 되는 대승이긴 하지.’
10명 남짓한 병력으로, 5백의 병력을 막아 냈다.
해치우거나 포획한 수인족도 1백여 마리에 달했다.
아르칸도 이 정도 전과를 올릴 줄은 몰랐다.
이건 전적으로 클투스의 공이였다.
한시라도 빨리 마왕성으로 복귀하기 위해 부하들을 내다 버리다시피 한 덕분이었다.
한편 아르칸의 눈에 입과 팔다리가 포승줄로 단단히 묶인 수인족 포로들이 들어왔다.
포로들은 어깨를 늘어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모든 걸 체념한 듯했다.
“그나저나 저것들은 정말 항복할 생각이 없대?”
“네, 그냥 어서 죽여 달라더군요.”
오웬의 대답에 아르칸이 쓴웃음을 지었다.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수인족은 대체로 충성심과 자존심이 강하다.
그런데 우두머리에게 버림받은 데다, 망나니 마왕에게 사로잡혔다.
충격도 받고 수치스러운 와중에, 마왕까지 죽었다는 소식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거였다.
그러면 별 가치가 없었다.
재산이라도 있는 마족이라면 몸값이라도 받고 풀어 줄 수도 있지만.
수인족은 모든 재산이 우두머리. 즉, 마왕이 가졌다.
노예로 팔면 치욕적이라고 십중팔구 스스로 목숨을 끊을 뿐만 아니라, 수인족 대마왕 제니칼이 항의라도 하면 곤란했다.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
“음, 하는 수 없군. 모두 처형한다!”
지시를 내린 아르칸은 통제실로 향하려다가 움찔했다.
막상 좁은 통로로 바뀐 미로로 돌아가려니 여간 난처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덩치가 큰 센시아는 아예 마왕성 바깥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거 당분간은 이대로 지내야 하는데 큰일이네.
당장 원래대로 복구하려면 상당한 마력이 필요한데, 그럴 만한 마력이 없었다.
수인족의 사체를 모두 흡수하면 복구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시일이 걸렸다.
‘용사한테 마정석을 받으면 해결되는데, 좀 빨리 달라고 말해 봐야겠네.’
용사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세계수의 쌍잎을 꺼냈더니 메시지가 더 와 있었다.
-마정석을 갖고 싶으면 내 의뢰를 수행해라.
‘뭐, 그쯤이야.’
마정석의 어마어마한 가치를 생각하면 별거 아니었다.
아르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이어지는 메시지를 읽었다.
‘토돌 백작의 성에 있는 엘프를 구하라고?’
대충 용사가 무슨 생각으로 이 의뢰를 했는지 짐작이 갔다.
이 세계수의 쌍잎은 그 근처를 지나가다 노예로 팔려 가는 엘프를 구해 주고 받은 것.
당시 엘프는 언니를 구해 달라고 했지만, 용사는 불가능하다며 거절한다.
‘그 내용 가지고 댓글에서 난리가 났었지.’
용사가 너무 답답하다, 고구마다.
이런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어차피 동료로 만들 것도 아닌 엘프를 구해서 뭐 하냐는 소리까지 나왔었다.
하지만 아르칸의 생각은 달랐다.
‘굳이 정정당당하게 찾아가서 구할 생각부터 하니까 안 된다고 여기는 거지.’
동료로 못 삼으니 엘프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데도 동의할 수 없었다.
용사가 솔플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엘프들이 전투원으로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건 사실이었다.
‘이 세계의 엘프들은 너무 평화주의자란 말이지.’
세계수의 은혜 속에서 살다 보니 순진하고 투쟁심도 적은 거였다.
‘그래도 이용할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니까.’
당장 세계수의 쌍잎부터 해서 세계수와 관련된 기연이 하나둘이 아닌데, 그걸 수월하게 얻기 위해서라도 엘프와 인연을 맺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용사만 해도 이후 세계수를 위기에서 구하고 얻는 게 많았다.
‘그것도 내가 먹으면 좋겠지.’
아르칸은 용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알았어. 네 의뢰를 받아들일 테니 거기로 마정석을 가지고 와.
* * *
아르칸은 다시 마왕성 밖으로 나와 부하들을 소집했다.
“마왕성을 원복하는 데 생각보다 좀 걸릴 거 같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위기를 넘긴 게 어딥니까? 이제 천천히 힘을 기르면 됩니다.”
오웬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기다리는 동안 원정 나가기로 했다. 인간족의 성을 치러 간다.”
“……??”
뜬금없는 소리에 당황했는지 다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오웬이었다.
“아르칸 님, 무립니다. 현재 전력으로 어떻게 인간족의 성을 칩니까?”
“오웬 님 말씀대로 공성에 병력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데요. 저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저 때문이라면, 괜찮습니다.”
센시아도 얼른 덧붙였다.
센시아는 이번 작전 때문에 마왕성에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중.
그사이에 인근 마인족 마을에 가서 고블린 퇴치 의뢰비를 수령하고 온 뒤로 계속 야영했으니, 제일 고생한 편이었다.
“걱정할 거 없어. 성을 함락시키려는 게 아니니까. 주의를 끈 다음, 보물 창고를 털 작정이다.”
아무리 부하들이라고 해도 용사로부터 마정석을 얻기 위해 엘프를 구하러 간다고 할 수는 없었다.
“보물 창고 말입니까?”
“어, 거기에 마정석이 있거든.”
인간족 성에 있는 마정석을 탈취한다.
새로운 마정석을 얻는 핑계로는 제격이었다.
그 말에 다들 눈빛이 반짝였다.
마정석을 얻으면 단숨에 엄청난 마력을 얻을 수 있었다. 가지고 있는 마력에 따라 아예 새로운 계층까지 늘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오웬이 물었다.
“근데 어떻게 인간족이 마정석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르칸 님은 그걸 또 어떻게 아셨고요?”
“자세한 건 몰라. 예전에 술자리에서 들은 거라서.”
아르칸은 적당히 둘러댔다.
빙의 전 아르칸이 망나니짓한 걸 이렇게라도 이용해 먹어야지 좀 덜 억울할 거 같았다.
“술자리라, 확실한 정보는 아니군요.”
“아, 저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인간족 중에 마정석을 가진 귀족이 있다고요.”
‘그건 다른 곳이긴 한데.’
그래도 트릴 덕분에 오웬도 납득한 듯했지만, 여전히 걱정이 되는 듯했다.
“흠, 그렇다면 한번 시도해 볼 만은 하겠습니다만……. 참, 공격하시겠다는 성이 어딥니까?”
“토돌 백작의 성이야.”
“거기라면 드리켈라 마왕이 원정 갔던 아르헨 성 뒤편에 있는 곳이군요.”
“맞아.”
“거기라면 가능할 거 같습니다. 아마 공격받는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할 테니, 잠깐 공격해서 혼란을 일으켜도 대응 못 하겠지요.”
오웬은 노련한 전사답게 이미 어떻게 공격을 성공시킬지 머릿속으로 그려 본 듯했다.
“그럼 됐지? 센시아와 경비병들은 함께 가고, 오웬은 마왕성을 폐쇄하고 이곳을 정리해 줘.”
“알겠습니다.”
“피, 피.”
그때 잠자코 있던 피용이가 날개를 퍼덕이며 울었다.
“왜? 너는 위험하니까 이번에도 남아 있어.”
피용은 이번 전투에도 통제실에서 계속 머물고 있었다. 수인족 추적 때도 쉬게 했다.
아무리 드래곤의 자식이라고 해도 갓 태어난 새끼. 아직 비늘도 무르고 싸우는 방법도 몰랐다.
소설에서는 용사와 함께 다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싸우고 구르느라 상처투성이인 채로 지내다가 결국 죽었지만.
아르칸은 마룡 크세트카흐과 약속한 만큼 최대한 안전하게 돌볼 작정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끼고 있을 생각은 없지만.’
제대로 된 드래곤답게 자라기 위해서는 성장하면서 전투와 마법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익히고 경험할 필요가 있었다.
“피이, 피잇!”
그런데 피용이 계속 울면서 날개를 퍼덕이는 게 아닌가?
“음? 뭔가 할 말이 있나?”
아르칸은 게티아를 이용해 피용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확인했다.
[훈련을 받고 싶어요.]“훈련?”
“피이, 피이.”
“제가 전에 말한 훈련을 말하는 거 같습니다만.”
오웬이 반갑다는 듯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피용이는 겁먹은 듯 순간 굳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센시아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피용이는 못 본 척했지만.
“많이 힘들다는데 괜찮겠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아르칸의 말에 피용이 슬그머니 게티아에게 다가가 접촉했다.
[조금 두렵긴 해도 아빠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요.]그 순간, 가슴이 찌잉 하고 울렸다.
‘내가 아빠라고 불리다니.’
평생 아빠라고 불리는 일은 어쩌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음, 뭐라고 합니까?”
아르칸의 태도가 심상치 않은 걸 보고 오웬이 물었다.
아르칸은 자랑스레 게티아를 펼쳐 보였다.
“크윽,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가.”
센시아는 주먹을 입에 물면서 몸을 비비 꼬았다.
당장이라도 붙잡고 쓰다듬고 뺨을 비비고 싶었지만, 안 그래도 자신을 두려워하는 피용이가 더 겁먹을까 봐 필사적으로 참는 중인 듯했다.
“호오, 피용의 의지는 잘 알았습니다. 그에 걸맞게 강하게 훈련시켜 드리죠.”
“피, 핏.”
“크르릉.”
감동한 오웬의 말에 피용이 다시 겁을 집어먹은 걸 보고 게티아가 고소한 듯 울었다.
그걸 보며 아르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들 준비하자고. 난 일단 게티아의 마력 보충부터 할게.”
게티아가 언제 고소했냐는 듯 울상을 지었다.
또 그 끔찍한 마력초를 잔뜩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삼 일 뒤.
아르칸의 첫 원정이 시작됐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