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여신의 소멸 이후 (3)
깜짝 놀란 아르칸이 다시 물었다.
“용사가 위험하다고? 악신이 용사를 노린다고 말한 거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제피로스는 수호룡 아우리오스에게 묻는 듯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열었다.
“……네. 아우리오스 님이 악신에게 당했는데, 악신이 이제 용사를 해치울 거라고 말했답니다.”
확실히 인간계는 수호룡과 용사만 제거하면 손에 넣을 수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용사는 지금 어디 있어?”
“안 그래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몬스터를 퇴치하러 나간 것까지는 확인되는데, 어느 순간 감지가 안 됩니다.”
“아무래도 벌써 악신의 영역에 들어갔나 보군.”
아르칸은 그러면서 세계수의 쌍잎을 꺼내서 용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답변이 없는 거로 봐서는 이것도 차단된 모양이었다.
“어떡하실 겁니까?”
“위치를 확인했으니 움직여야지.”
오웬의 물음에 그렇게 대꾸한 아르칸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피로스는 일단 아우리오스 님께 현 위치에 기다려 달라고 전해 줘.”
***
용사 일행은 천장이 없는 마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마차는 천장만 없는 게 아니라, 마차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말이 끌지 않았다. 바닥에서 튀어나온 나무뿌리가 마차를 끌고 있었다.
셀렌이 부른 나무 정령왕의 능력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는데, 전사 키르라가 사제 라일리아를 붙잡고 물었다.
“그래서 어떤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거야?”
“아, 아무래도 좀비 같아요. 갑자기 시체가 움직여서 공격하기 시작했다네요. 그 시체에게 물려 죽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시체가 되어서 움직이고요.”
“더 따질 거 없네. 좀비네, 좀비.”
“동의. 용사도 동의?”
도적 셀렌의 말에 마법사인 아리아도 고개를 끄덕인 후, 용사를 돌아봤다.
“그래, 아무래도 좀비 같군.”
실제로 최근에 나타난 몬스터들 중 절반은 언데드 몬스터이긴 했다.
본앰브로스가 죽은 뒤, 그 제자 중 상당수가 인간계로 돌아와 산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어차피 리치도 될 수 있겠다, 스승이 사라진 김에 혼자 사령 마법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거기다 여신 셀레니아가 소멸한 뒤에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성직자가 줄어들어 퇴치될 걱정도 덜했다.
한 가지 간과한 건, 인간계 전역을 아르칸이 감시 중이라는 거였다.
조용히 숨어 있을 때는 쉽게 알 수 없지만, 실험을 위해 인간이라도 납치하기 시작하면 정령들에게 들켰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인 모양이었다.
한편 좀비라는 말에 키르라가 의욕을 잃었는지 투덜거렸다.
“좀비면 약해도 너무 약하잖아. 우리가 굳이 나설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왜? 쓰러트리는 몬스터 숫자랑 구하는 사람 숫자대로 돈 받기로 했으니까. 오히려 좋지.”
셀렌의 말에 아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동의 못 함. 좀비 지겨움. 동의?”
“내버려 두면 피해가 더 커질 테니까. 다들 조금만 힘내죠. 키르라는 이번 전투 끝나면 대결해 줄게요. 좀비랑은 몸 푼다고 생각해요.”
“정말? 가서 얼른 쓸어버려야지.”
키르라가 의욕을 내는 걸 보고, 용사는 웃으며 아리아에게 말했다.
“이번 전투만 하고 내려가서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앗! 동의. 동의. 동의.”
그 말에 흥분한 아리아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첫 동료들과는 함께 다닌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데다가 그 이후로는 솔플을 고집하는 바람에 내세운 적은 없지만, 용사는 제법 요리를 잘했다.
이번 동료들에게 한번 대접했더니 아주 호평이었다.
특히 아리아 같은 경우에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용사가 만들어 주는 푸딩이나 아이스크림에 환장했다.
용사는 다시 의욕이 생긴 동료들을 보니 뿌듯했다.
‘나도 이제 동료들을 상대하는 데 좀 익숙해지는 거 같은데?’
예전 같으면 싸우기 싫으면 말라고 쏘아붙이고 혼자 싸웠을 터다.
마왕도 혼자 썰어 버릴 정도로 강했기에 적을 쓰러트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혼자 싸우느라 구하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용사가 강하다고 할지라도 근처의 적만 상대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마을이 습격당할 때는 동료의 지원이 절실했다.
전투 후에도 마찬가지.
혼자서는 적만 쓰러트릴 뿐, 다친 사람들을 치유하지 못했다. 그게 내심 마음에 걸렸었다.
그러나 동료와 함께 움직이고부터는 사람들부터 많이 구하는 데다가, 전투 전후로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됐다.
‘그러고 보니. 첫 동료들과도 이랬었지…….’
그들이 죽고 이제 더는 이 세상에서 인연을 맺지 않겠다고 다짐한 뒤, 오랜만에 느껴 보는 안정감이었다.
그때 라일리아가 외쳤다.
“저기에요! 저 마을이에요!”
“확실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는 거 같은데.”
키르라가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곳곳에 화재라도 났는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를 뿐만 아니라, 불길한 기운이 물씬 풍겨 나왔다.
“어, 실베나르 님이 이 이상은 못 들어간다네. 계약자인 내가 있어야 한대.”
실베나르는 나무의 정령왕.
정령왕 정도 되는 존재가 혼자 못 들어간다고 하면 정말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내부에 심상치 않은 마력이 느껴짐. 동의?”
심지어 천재 마법사 아리아마저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동료들의 반응을 본 용사가 말했다.
“이거 상대가 좀비가 아니거나, 좀비라고 해도 아주 강한 녀석이 더 있을지 모르겠네요. 다들 주의합시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는 마차에서 내려 성검을 뽑아 들었다.
“제가 앞장설 테니 다들 경계하면서 따라오세요.”
그때 저 멀리서 비명이 들렸다.
“캬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비명의 주인은 마을 밖으로 뛰쳐나온 소녀였다.
그 뒤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쫓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걸음걸이가 뭔가 이상했다. 하나같이 몸을 비틀거리며 다리를 끄는데, 그동안 많이 봐 왔던 좀비들의 모습과 똑같았다.
셀렌이 다급하게 외쳤다.
“앗! 저 아이, 곧 잡히겠는데?”
그 말대로 좀비들은 걸음걸이는 이상해도 아픔을 못 느끼는 탓에 이동 속도가 보기보다 빨랐다.
전력으로 달리면 못 쫓아오지만, 도망치던 마을 소녀는 지쳤는지 비틀거리면서 뛰고 있어 속도가 나지 않았다.
“내가 마법 씀? 동의?”
아리아가 나서려는 걸 좀비들을 유심히 보던 용사가 말렸다.
“아리아, 잠깐. 라일리아 님, 악령 퇴치의 기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 말에 라일리아가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그걸 보며 셀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좀비 상대로는 신성력이 더 잘 통하지. 마법은 자칫 저 아이가 다칠지도 모르니까.”
“나 천재. 실수 안 함. 동의?”
“그래그래. 어디까지나 그렇다는 거지.”
둘이서 잠시 티격태격하는 사이, 라일리아의 기도가 끝나며 성스러운 빛이 작렬했다.
“꺄앗!”
난데없는 상황에 놀란 소녀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동시에 좀비들도 멈칫했다.
그걸 본 셀렌이 놀라서 중얼거렸다.
“어라? 멀쩡한데?”
그 말대로 좀비들은 신성력에 정통으로 노출되었어도 소멸하지 않았다.
멈춘 것도 일시적일 뿐, 다시 소녀를 노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정작 소녀는 아직 웅크리고 있어 더 위험해진 상황.
“아리아, 지금이야! 셀렌도 도와줘.”
“알았음.”
“물론 도울 거야. 죽으면 내 돈 날아가는 거잖아.”
아리아가 얼음 마법을, 셀렌이 정령술을 썼다.
아이스 스피어가 좀비들을 꿰뚫었으며, 나머지 좀비들은 지면에서 뻗어 나온 나무뿌리에 꿰뚫렸다.
“간단함. 근데 좀 이상?”
“별거 아니네. 참, 실베나르 님도 아리아 말대로 보통 좀비랑은 조금 느낌이 다르다는데?”
아리아와 셀렌이 그렇게 말하는데, 라일리아가 소리쳤다.
“뒤에 더 와요!”
그 말대로 마을 안쪽에서 한 무리의 좀비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숫자만 1백 명은 될 거 같았는데, 마을 대부분이 이미 좀비가 된 듯했다.
“흥! 약한 것들이 많이 와 봤자 소용없다는 걸 보여 주지!”
키르라가 콧방귀를 뀌더니 좀비 떼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런 다음, 대검을 휘둘러 모조리 박살 냈다.
그사이 용사는 소녀에게 다가가 안심시켰다.
“이제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 혹시 어디 다친 데는 없니?”
“아, 네. 괜찮아요. 조금 놀란 것뿐이에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모, 모르겠어요. 갑자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물어뜯는 것만 보고 창고에 숨어 있다가 틈을 봐서 도망쳐 나온 거예요. 저 사람들한테 걸려 버렸지만요…….”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알린 건, 밤사이 마을에서 도망친 생존자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자세한 건 들어가서 조사해 봐야겠네.”
“아무래도 그래야겠는데. 그 전에…….”
용사는 셀렌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이미 쓰러진 좀비를 가리켰다.
“이 좀비들을 한번 조사해야 할 거 같아. 사실 뭔가 이상해서 신성력을 먼저 써 보라고 한 거거든.”
“맞아요. 왜 신성력이 안 통했을까요?”
라일리아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 좀비들 한가운데 뛰어들어 마음껏 도륙한 키르라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건 내가 알 거 같은데. 이 좀비들 몸이 피가 아니라 이상한 거로 바뀌어 있어. 이거 봐.”
키르라는 자신의 몸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녹색을 띠는 뭔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셀렌이 얼굴을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그걸 만졌다.
“크윽, 끈적끈적해. 이거 아무래도 이끼 같은데?”
“맞아. 그거 이끼야. 그것도 아주 특별한 이끼.”
그 말에 대꾸한 건, 소녀였다.
순식간에 이질적인 목소리를 낸 소녀의 전신이 순식간에 이끼로 덮이더니 사방에 이끼를 흩뿌렸다.
“꺄앗!”
“젠장, 다 묻어 버렸잖아.”
“어? 이거 뭐임?”
이미 잔뜩 묻은 키르라를 제외하고 용사와 나머지 동료들도 난데없는 상황에 다들 놀란 상황.
용사가 살벌한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넌 뭐냐? 이 사람들도 모두 네가 조종한 거야?”
“그래, 내 이끼에 묻으면 모두 내 뜻대로 움직이거든. 너처럼 강하면 안 통하지만, 네 동료들은 아닌 거 같군.”
“요, 용사님. 움직일 수가 없어요.”
“크윽. 내 힘으로도 꼼짝할 수 없다니.”
“제기랄, 실베나르 님도 못 어쩔 수 없대.”
“나도 무리임.”
그 말대로 다른 동료들은 좀비들처럼 의식이 없진 않았지만, 속박당해서 꼼짝하지 못했다.
다만, 용사에게 붙은 이끼는 그대로 흘러내린 뒤 사라졌다.
“모두 함정이었나.”
“그래,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은 몰랐지만.”
“쉽게 풀리다니, 나한테는 안 통했는데.”
용사가 성검을 겨누며 말했다. 동시에 예리한 오러 블레이드가 만들어졌는데, 금방이라도 소녀를 꿰뚫을 듯했다.
그러나 소녀는 전혀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너는 안 통하는 건 아쉽지만, 괜찮다. 네 부하는 모두 사로잡았으니까.”
“부하가 아니라, 동료다.”
“후후, 나한테 인질로서 가치만 있다면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다.”
그 말이 의미하는 건 동료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겠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이끼는 점점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지 동료들의 얼굴까지 뒤덮어 가고 있었다.
‘큭, 어떻게 해야 하지?’
“죄송해요. 용사님을 도와드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용사님의 발목이나 잡다니…….”
“야! 우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싸워!”
“하는 수 없지. 나 죽으면 내 돈 우리 엄마한테 주는 거만 잊지 말아 줘.”
“죽을 결심 완료. 동의?”
‘죽을 결심은 무슨. 어떻게든 수를 써야 해…….’
용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럴 때는 여신이 준 권능인 전시안이 아쉬웠다. 전시안이라면 좀비에게 수상쩍은 낌새를 느끼기 전에 그 본질을 파악해서 피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였다.
아르칸에게 받은 협동은 강한 적의 상대로는 좋았지만, 이럴 때는 소용없었다.
그때 용사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울렸다.
[권능 스킬, 협동을 쓰시겠습니까?]‘스킬을 쓴다고?’
용사는 의아했다.
처음 협동 스킬을 얻었을 때, 주위 동료와 함께 싸울수록 강해지는 권능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 때문에 항상 작동하는 패시브 스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
‘그래, 여기에 걸어 보자.’
이렇게 된 이상, 협동 스킬을 쓰고 단숨에 해치우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권능을 쓴다고 생각하자 전신에 푸른 기운이 맴돌았다.
“허튼수작 부리면 알지? 동료들의 목숨은 없다.”
용사의 모습을 본 소녀가 이끼를 더욱 활성화하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동료들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이끼로 뒤덮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앗?”
“이 힘은 뭐지?”
“이끼가 힘 잃었어.”
“휴, 살았음.”
동료들에게 붙어 있던 이끼들이 용사 때처럼 후두두 떨어져 나왔다.
협동 스킬이 용사뿐이 아니라, 동료들도 강화해 주면서 이끼를 떨쳐 낸 거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소녀가 뒷걸음질 쳤다.
“저, 잠깐만. 이건 예상 밖인데…….”
그런 소녀에게 용사의 동료들이 살벌한 기세로 다가갔다.
용사가 나설 필요도 없이 철저한 복수가 시작됐다.
그런 와중에 이곳으로 향해 가고 있는 거대한 녹색 그림자가 있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