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여신의 소멸 이후 (4)
아르칸은 수호룡 아우리오스에게 악신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대마왕성을 나섰다.
곧장 인간계로 향했는데, 평야 지대에서 아우리오스를 만날 수 있었다.
아우리오스는 상처투성이였는데, 기진맥진했는지 그대로 지면에 엎어져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골드 드래곤답게 눈부셨던 황금빛 비늘도 흠집으로 완전히 빛이 바래 있었다.
아르칸은 곧바로 아우리오스에게 다가갔다.
“아우리오스 님, 괜찮으십니까?”
“피핏! 아프면 안 돼요!”
아우리오스의 모습에 피용도 깜짝 놀랐는지 해츨링 모습으로 아우리오스의 주위를 맴돌면서 소리쳤다.
“끙, 시끄럽다.”
아우리오스는 겨우 입을 열었다. 다치고 지친 탓인지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위압감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르칸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용아병들을 꺼내면서 아우리오스에게 말했다.
“아무 말 마시고 회복 포션부터 좀 드세요. 성녀도 치유의 기도를 부탁해.”
아르칸의 지시에 용아병들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회복 포션을 꺼내 아우리오스의 입에 털어 넣었다.
워낙 거대하기에 그래도 한 모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성녀 엘리시아도 그동안 모은 신성력을 모조리 사용해 아우리오스를 치유했다.
덕분에 살짝 기운을 차린 아우리오스가 폴리모프를 써서 인간 형태로 변했다.
그러자 상태가 안 좋다는 게 더욱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아름다운 금발은 지저분했고, 여기저기 찢어지고 짓눌린 상처가 드러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네요.”
아르칸이 추가로 회복 포션을 먹이고서야 아우리오스는 겨우 길게 한숨을 토해 냈다.
“후유. 고맙네! 덕분에 살았다.”
“별말씀을요. 그보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악신이 왕국에 나타난 걸 감지하고 찾기 시작했었다. 너도 알겠지만, 탐색하다가 악신과 마주쳤지.”
그렇게 이야기하던 아우리오스는 자신이 상대하던 악신을 떠올리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용사를 도와주러 가야 한다!”
“너무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지금 용사라면 악신은 손쉽게 이길 테니까요.”
아우리오스의 걱정에도 아르칸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럴 만도 한 게, 현재 아르칸이 용사로 임명한 용사는 게티아의 감정에 따르면 여신 셀리니아가 임명했을 때보다 강했다.
당장 권능 스킬부터 여러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적격이었던 전시안이 아니라, 전투에 관한 권능 스킬인 협동이었다.
‘거기다가 믿음직한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으니까.’
용사의 동료답게 모두 한가락 했다.
먼저 사제 라일리아는 사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는데도, 아르칸교에서 성녀 다음으로 신성력이 높았다.
전사 키르라도 왕국 제일검이었던 로버른 경보다 강했다.
도적 셀렌은 도적으로서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하프 엘프인데도 정령왕과 계약할 수 있을 정도로 정령 친화력이 높았다.
거기다가 마법사 아리아는 어린 나이에 스스로 독학해서 온갖 마법을 익혔을 정도로 천재였다.
거기다가 아르칸이 전폭적인 지원까지 해 줬다.
라일리아에게는 여러 개의 성물과, 위급할 시 자신의 신력을 일부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키크라에게는 길리암이 연구하고 드워프 왕자 도린이 만든 마법 검과 마법 방어구를 줬다.
셀렌에게는 나무의 정령왕과 계약을 맺게 주선했다.
아리아에게는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도록 상급 마석을 장착한 지팡이를 줬다.
‘이 정도면 용사가 아니라, 동료들만으로 어지간한 마왕들은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지.’
아니, 대마왕 키클로테스나 바리스탄은 무리더라도 대마왕 본앰브로스나 제니칼 정도는 상대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거기다가 용사가 협동의 권능까지 발휘한다?
바리스탄이나 최근 만났던 악신들 정도는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다는 게 아르칸의 판단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아우리오스까지 쓰러트릴 수 있을 테고.’
그러나 아우리오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쉽게 볼 게 아니야. 이번 악신은 보통 악신과 다르다.”
“다르다니요?”
“아주 지독했다. 분명 이쯤 하면 쓰러질 거 같은데, 계속해서 강해져. 어느 순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강해진다라…….”
어떤 원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위협적이긴 했다.
그때 아우리오스가 아르칸의 손을 잡았다.
“이대로라면 그 악신이 이 세계 모두를 집어삼키겠지. 그걸 알려 주고 막기 위해 어떻게든 너를 만나러 온 거다. 네가 아니면 못 막을 테니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가만히 있을 수 없겠네요.”
아르칸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저 멀리 용사가 싸우고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
한편, 이끼 소녀가 뿌린 이끼를 떨쳐 낸 용사 일행은 주춤하는 소녀를 공격했다.
먼저 공격한 건 전사 키르라였다.
“먹어라!”
그녀의 대검이 호쾌하게 대각선으로 휘둘러졌다. 어찌나 예리한지 오러 블레이드를 쓰지 않았는데도 소녀를 반 토막 냈다.
소녀의 몸은 대각선으로 양분되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상반신만 남은 쪽은 그 아래로 이끼가 자라나 하반신이 만들어졌고, 하반신만 남은 쪽은 반대로 이끼로 상반신이 만들어졌다.
이끼 소녀가 둘이 된 거였다.
그걸 본 키르라가 당황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냥 공격은 안 통하겠는데?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붙잡는 수밖에. 실베나르 님, 도와주세요!”
도적 셀렌이 나무의 정령왕을 불렀다.
그러자 지면에서 굵은 뿌리들이 튀어나오더니, 둘이 된 이끼 소녀를 휘감았다.
“어?”
“음?”
워낙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이끼 소녀들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못했다.
“후후, 둘로 늘었다고 좋아하더니 꼴좋다. 엇?”
그걸 보며 비웃던 키르라가 멈칫했다.
이끼 소녀들을 휘감은 나무뿌리들이 어느새 이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셀렌은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으윽.”
“왜 그래?”
“저 이끼 때문에 실베나르 님이 괴로워하고 있어.”
“뭐라고?”
키르라는 이해가 안 됐다.
저 이끼가 보통 이끼가 아니라 몸을 속박할 정도로 강하다고는 해도, 나무의 정령왕을 고통스럽게 할 정도라니.
“셀렌 님, 제가 치유해 드릴게요.”
라일리아가 나서려는 걸 셀렌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그보다 저걸 어서 불태워 버려!”
“뿌리도? 괜찮음?”
“괜찮으니까 어서!”
아리아의 물음에, 셀렌이 소리쳤다.
“아, 알았음.”
순간 움찔했던 아리아는 이내 지팡이를 들고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이끼 소녀와 이끼 소녀를 얽매고 있던 나무뿌리까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걸 본 키르라가 감탄했다.
“언제 봐도 대단한 마법이야.”
그 말대로 아리아의 마법은 주문을 영창하지도 않고, 주문이 완성된 후 불이 적에게 날아가지도 않았다.
적은 예측하지도 피하지도 못하는 백중백발의 마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는 사이, 라일리아는 셀렌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괜찮으세요? 치유해 드릴까요?”
“아니, 순간적으로 놀란 것뿐이야.”
“그런데 뿌리를 불태우는 건 괜찮아요? 실베나르 님이 타격을 입으시는 건…….”
“아, 이미 저 뿌리는 뺏긴 거나 마찬가지래.”
“큭, 나도 뺏긴 거 같음.”
“뭐라고? 어!”
“어떻게 저럴 수가…….”
“저런 게 가능해?”
아리아의 대꾸에, 돌아본 셀렌뿐만 아니라 라일리아, 키르라까지 깜짝 놀랐다.
이끼 소녀와 나무뿌리를 불태우고 있어야 할 불길이 어느새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다들 당황에 하는 와중에 이끼 소녀, 아니 이끼 화염은 점점 커지더니 바로 앞의 용사의 동료들을 집어삼키려고 했다.
“후후, 얌전히 내게 먹혀라.”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그때 잠자코 있던 용사가 입을 열었다.
동시에 용사가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거기에 베인 이끼 화염은 반 토막 났지만, 키르라의 공격을 받았을 때처럼 두 덩어리로 나뉜 채 회복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공격이 효과를 발휘하기는커녕, 도리어 적만 늘리게 된 셈이었다.
“아까 못 봤어? 이런 공격은 내게 안 통한다니까.”
이끼 화염이 자신만만하게 용사에게 말했다.
“통하는지 안 하는지는 끝까지 가 봐야 알겠지.”
그렇게 대꾸한 용사는 다시 성검을 휘둘렀다.
“안 통한다니까.”
“안 통한다니까.”
“헛수고하는 거야.”
“헛수고하는 거야.”
“헛수고하는 거야.”
“헛수고하는 거야.”
“이래 봐야 너만 손해지.”
“이래 봐야 너만 손해지.”
“이래 봐야 너만 손해지.”
“이래 봐야 너만 손해지.”
“이래 봐야 너만 손해지.”
“이래 봐야 너만 손해지.”
“……윽! 대체 언제까지 공격할 거야.”
용사의 공격을 받고 토막이 나서 여러 개체로 나뉘면서도 비웃던 화염 이끼는, 용사가 한 번 두 번에 그치지 않고 열 번 스무 번을 넘어 계속 쉼 없이 성검을 휘둘러 대자 당황했다.
“이 상태로도 회복해 보시지.”
용사가 검을 멈췄을 때는 이미 주먹보다 작은 조각에 불과했다.
“누, 누가 못 할 줄 알고.”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주먹만 해진 화염 이끼는 몸이 커지지 않았다.
“이럴 수가, 왜 회복이 안 되는 거야? 이렇게 된 이상 다시 합치는 수밖에.”
화염 이끼는 방법을 바꿔서 흩어진 자신의 신체들을 모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형체를 잃고 재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으아아아아아!”
끔찍한 비명을 지른 화염 이끼는 괴로워하면서 그대로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그걸 본 라일리아가 기뻐했다.
“완전히 사라졌어요, 용사님.”
“그런 무식한 방법으로 퇴치하다니……. 정말 대단하군.”
“나도 놀랐어. 실베나르 님도 감탄했대.”
“용사 천재. 인정함.”
이어지는 동료들의 칭찬에 용사는 쑥스러워하며 대꾸했다.
“다들 함께 싸워 준 덕분이죠.”
단순히 겸손만이 아니었다. 용사가 방금 펼쳤던 격렬한 파상 공세는 예전이었다면 불가능했다.
권능 스킬 협동을 쓰면서 신체 능력이 전체적으로 강화된 덕분이었다.
‘이기긴 했지만, 뭔가 꺼림칙한데.’
용사는 까다로운 적을 떠올리며 동료들에게 제안했다.
“그보다 혹시 모르니까, 마을을 수색하죠.”
“네. 남은 이끼도, 혹시 모를 생존자도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알았어. 실베나르 님께 부탁해서 꼼꼼히 살펴봐 달라고 할게.”
라일리아와 셀렌이 동의하고 움직이려는데, 키르라가 더욱 과격한 제안을 했다.
“찾아본 다음에 아예 싹 불태워 버리는 게 어때?”
“동의. 마법은 언제든 사용 가능함.”
“불태워? 그러면 돈 될 만한 건 내가 좀 챙겨 가도 돼?”
“셀렌 님, 유품을 훔칠 생각이에요?”
“그냥 버려지는 것보다 좋은 곳에 써 주는 게 좋지 않겠어? 좋아, 인심 썼다. 조금은 신전에 기부할게.”
“그러라고 한 말이 아니에요.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아요.”
동료들이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용사가 말했다.
“확실히 지금은 아직 그럴 때가 아닌 거 같군요.”
그러면서 위를 보는데, 거대한 구름이 용사와 동료들 위에 있었다.
그 구름은 금방 용사가 해치웠던 것처럼 녹색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내 부하를 해치우다니, 이 모스록이 가만두지 않겠다.”
수호룡 골드 드래곤 아우리오스를 쓰러트린, 악신 모스록이 도착한 거였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