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격변하는 세계 (2)
아르칸에 대한 인간계의 전향적인 변화를 가장 반기는 건 용사였다.
대마왕인 아르칸의 지원을 받는 걸 계기로, 마계와 인간계가 친하게 지내길 바라서였다.
그러나 이야기는 마냥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우선 왕실 쪽과 귀족들은 왕국의 백성들이 아르칸을 칭송하는 걸 반길 리 없었다.
왕당파, 귀족파 할 거 없이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고, 기어코 모두 모여 아르칸에 대해서 성토했다.
“다들 들었습니까? 수도 곳곳에 아르칸을 칭송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대마왕인데도요.”
“이걸 내버려 뒀다가는 아르칸을 왕으로 섬기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귀족파의 말에 인상을 쓰며 왕당파가 쏘아붙였다.
“어디서 그런 망발을.”
“그래요. 마인족을 왕으로 섬기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허허, 신으로도 섬기는데, 왕으로 못 섬길 이유가 없지요.”
“…….”
귀족파의 말에 왕당파 사람들이 순간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 여신 셀레니아교가 망한 뒤, 그 자리를 아르칸교가 차지하면서 빠르게 교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소멸하기 전 셀레니아님이 허락한 유일한 종교라는 이유로 사이비로 몰아 탄압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왕국의 수호룡 아우리오스도 아르칸이 이번에 악신을 막아 내 이 세계를 지켜 냈다며 공식적으로 인정한 상황.
거기에 괜히 딴죽을 걸었다가는 왕국의 안위가 위태로워질 게 뻔했다.
한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와중에 왕당파 기사 하나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으며 으름장을 놨다.
“계속 불경한 소리를 지껄이면 내 가만두지 않겠다!”
“뭐라고, 한번 해보자는 건가?”
그 말에 뒤에 있던 귀족파 기사가 맞설 기세로 앞으로 나왔다.
그러자 양측 다 소리치면서 장내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이 소란 속에서도 귀를 파고드는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 자, 다투지들 말고. 이쯤에서 정리하지.”
그 목소리의 주인은 귀족파의 수장인 발토르 공작.
다들 거역하지 못하고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시끄러웠던 장내가 금방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러자 발토르 공작이 왕당파 귀족이 모인 좌측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선조들이 피땀 흘려 지키고 일궈 온 왕국을 마인족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는 것은 다들 동의할 거라 믿네.”
그 말에 왕당파 귀족들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중요한 전제가 귀족파의 수장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는 굳은 얼굴이 됐다.
“하나, 현재 아르칸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왕국 내 혼란스러운 상황을 잠재우려면 도움을 안 받을 수가 없지 않겠나? 그러면 왕국 차원에서 보답을 안 할 수가 없지.”
발토르 공작의 방금 말은 마치 아르칸에게 왕권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큰 걸 내어 줘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마계를 제패한 거나 다름없다는 아르칸에게 금은보화가 먹힐 리가 없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었다.
보답으로 줄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참다못한 왕당파 귀족이 쏘아붙였다.
“설마 영토를 더 내주어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요? 안 그래도 평야를 내줬는데, 거기서 더 영토를 양보한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동부의 평야는 그렇다 해도, 서부의 척박한 땅은 내어 줘도 괜찮을 법한데…….”
“그렇다면 귀족파가 가진 땅에서 추려서 내주든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왕국의 위신을 세우는 일인데, 왜 우리가 손해를 봐야 해. 왕실에서 내놓는 게 순리지.”
다들 다시 싸우려고 하는 와중에 발토르 공작이 입을 열었다.
“허허. 내 말을 다들 오해했나 보군. 내가 언제 땅을 주자고 했나. 처음부터 선조들이 피땀 흘려 지키고 일궈 온 왕국을 넘기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내 말은 왕국 차원에서 명예를 주자는 걸세.”
“명예…… 말입니까?”
“그래, 이곳으로 불러서 왕국 제일의 훈장을 수여하자는 걸세.”
다들 어리둥절한 와중에 왕당파 귀족 중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이신지 알 거 같습니다. 받아 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군요.”
정작 발토르에 견주는 귀족파의 공작 매그누스는 우려를 표했다.
“흠, 그거로 만족하겠습니까?”
“만족 안 하겠지. 그래서 훈장 외에 각자들 최대한 보물 같은 걸 내놓게.”
“허허, 그것 때문에 이런 자리를 마련하신 거군요.”
매그누스 공작이 씁쓸하게 웃는 걸 보고, 귀족들은 왕당파 귀족파 할 거 없이 술렁거렸다.
그래도 아까처럼 큰 소란으로 번지지 않았다.
대마왕의 성에 찰 보물이라고 해 봐야 자신들보다는 각 파벌의 수뇌부나 왕국의 보물 창고에나 있을 테니까, 딱히 손해 볼 게 없어서였다.
그 반응의 의미를 아는 발토르 공작은 웃으며 말했다.
“이견 없으면 국왕께 가서 훈장을 주자고 제안하겠네. 어차피 국왕께서도 기꺼워하시면서 수락하실 테지만.”
그 호언장담대로 국왕은 발토르 공작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왕실에서는 아르칸에게 훈장과 보물을 줄 테니, 왕국 수도 셀레스티아에 방문해 달라고 빠르게 초청 서신을 보냈다.
‘여기가 중요해. 아르칸이 제안을 안 받아들이면 끝이니까.’
발토르 공작이 긴장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아르칸이 바로 왕국에 방문하겠다고 전해 왔다.
“됐다. 이러면 됐어.”
발토르 공작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 뒤.
왕국의 수도 셀레스티아에서 축제 준비가 시작됐다.
왕국의 총력을 동원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이 축제는, 악신을 물리친 영웅이자 아르칸교의 신, 아르칸을 맞이하고 칭송하기 위한 거였다.
정작 아르칸은 수도로 와 달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곳으로 날아왔다.
정체를 숨긴 채 왕성으로 향하면서 준비 중인 축제를 살펴봤는데, 쓴웃음이 나왔다.
‘생각하는 게 빤히 보인단 말이지.’
아르칸이 대마왕이라는 부분은 완전히 빼 버리고, 어디까지나 세계를 구한 영웅, 자애로운 신에 초점을 맞춰서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아르칸을 불렀다.
“아르칸, 어때? 괜찮아? 모두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
바로 용사였다.
“글쎄. 이런 건 취향이 아니라서.”
“그래? 그보다 듣기로는 국왕이 왕국 수호 훈장을 준비했다더라. 용사인 나도 그런 건 받아 본 적 없는데. 그뿐만이 아니야. 마계에서도 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보물도 준다더라고.”
아르칸은 평소답지 않게 떠드는 용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시선을 눈치챈 용사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야. 그보다 어서 가자.”
아르칸은 피식 웃고는 왕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용사가 황급히 뒤를 쫓았다.
아르칸은 용사가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왕국에서 훈장과 보물을 받고 아르칸이 기분이 좋길 바라는 거였다.
그래야 아르칸이 전부터 이야기했던 마계와 인간계 사이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할 테니까.
‘걱정 안 해도 그럴 텐데 말이지.’
용사가 이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려는 건 어디까지나 여신 셀레니아와의 약속 때문이다.
이 세계가 평화로워졌을 때,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약속한 셀레니아는 이미 소멸한 상황. 그리고 아르칸은 평화와 상관없이 용사를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다만, 그러기 위해 필요한 신력을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렸다.
용사는 그 전에 나름대로 이 세계에서 목표로 했던 평화를 이루고 싶은 모양이었다.
‘왕국에서는 아마 그러고 싶지 않은 거 같지만.’
아르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용사와 함께 왕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미리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가 파악한 대로, 국왕과 귀족파의 수장인 발토르 공작이 함께 있었다.
아르칸은 놀라지 않도록 문밖에서 투명화를 풀고 말했다.
“아르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뭐라고? 지금 아르칸이 왔다고 했나?”
“근위대는 뭐 하고 있나?”
국왕과 발토르 공작의 말에 내부가 소란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왕성이 돌파당한 거였기 때문이다.
그 소란에 용사가 놀라서 아르칸에게 물었다.
“미리 온다고 연락 안 했어?”
“연락은 했는데, 오늘 온다고는 안 했지.”
“이런.”
혀를 찬 용사가 안쪽을 향해 외쳤다.
“용사입니다! 저도 대마왕 아르칸과 함께 왔습니다!”
그러든 말든 근위병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국왕을 지키기 위해 막아섰다.
아르칸은 자신을 겨누는 창칼 앞에서도 태연히 말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조용히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요.”
그 소리에 국왕이 헛기침하더니 말했다.
“흠, 흠. 모두 물러서라.”
“하지만 국왕 폐하.”
“물러서라고 하지 않았느냐. 초대한 손님이 조금 일찍 도착했을 뿐이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제야 근위병들이 고개를 숙인 뒤, 물러났다.
그 후 국왕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열흘 뒤 수여식이 있으니 미리 올 거라고 짐작했으나,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네.”
“아, 그 수여식 때문에 일찍 온 겁니다. 아무래도 오해를 하시는 거 같은데, 저는 훈장을 받을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뭐라고?”
놀란 국왕은 이내 발토르 공작을 쳐다봤다.
분명 발토르 공작은 아르칸이 대마왕이긴 하나, 아직 어린 만큼 국왕이 훈장을 내리면 아주 기뻐할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발토르 공작은 진땀을 흘리며 달랬다.
“허허, 그러지 말고, 전하께서 공들여 준비하신 거니까.”
그러다가 용사를 보고 뭔가를 깨달았는지 이어 말했다.
“아, 혹시. 용사가 안 받고 혼자서 받는다고 거절하는 건가? 걱정할 거 없네.”
“그래, 나는 괜찮아. 어차피 돌아가면 쓸데도 없고.”
용사도 거들었지만, 아르칸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훈장을 주게 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우위에 서게 하고 싶지 않거든.”
풋, 콜록콜록.
아르칸의 말에 국왕이 당황하면서 기침을 했다.
발토르 공작의 안색도 새파래졌다.
정작 용사만은 영문을 모르겠다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국왕이 내게 훈장을 수여하면서, 나왕 동격, 아니 그 이상이라는 걸 은연중에 보여 주고 싶어 한다는 거지. 반응을 보니 내 예상대로 그런 의도였던 게 맞나 보군.”
“그럴 수가.”
충격을 받은 용사는 이내 국왕과 발토르 공작을 노려봤다.
기껏 아르칸이 평화를 구축하려는데, 저 둘은 아르칸을 자신의 아래에 두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니.
그 살기에 발토르 공작이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그러면 여기에는 왜 온다고 연락하신 겁니까?”
“다른 이야기를 할 게 있어서 왔거든.”
“다른 이야기라고 함은?”
“내가 이끼 괴물을 퇴치하는 데 도움을 주길 바라지?”
“……그렇습니다.”
발토르 공작은 대답하면서, 아르칸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몰라 아주 긴장했다.
현재 괴물 이끼가 왕국 전역에 준동하는 상황.
그 때문에 민심이 흉흉했다.
이번 훈장 수여도 왕국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아르칸이 어떻게든 도와줄 테니 기다리라며 민심을 가라앉히는 의도도 있었다.
그런데 만약 아르칸이 도움 주길 거부한다? 각자도생만이 답이라면서 왕국이 산산조각 날지도 몰랐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었군…….’
발토르 공작이 후회했다.
모든 걸 정치적으로 바라본 자신의 실책이라는 걸 깨달은 거였다.
그때, 아르칸이 지원을 거둔다는 이야기 대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도와주긴 도와줄 텐데, 오크나 마인족도 함께 돕겠다고 왕실과 귀족파들이 공표해 줘.”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