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격변하는 세계 (3)
아르칸이 마계와 인간계의 평화가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는다고 한, 두 번째 이유가 이거였다.
‘다들 내가 부하들을 보내 이끼 괴물을 해치워 주길 원하지만, 오크나 마인족, 수인족 등을 보낸다고 하면 거부한단 말이지.’
아르칸 외에는 못 믿겠다며, 아르칸이 직접 부리는 정령왕만을 보내 주길 원했다.
물론, 원래 마계 소속이 아닌 엘프나 드워프의 지원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엘프나 드워프 들은 그동안 인간족에게 당한 게 너무 많았다.
엘프들은 마신 전쟁 때 세계수를 잃고 세력이 약해졌는데, 인간족들은 그런 엘프들을 도와주기는커녕 노예로 부렸다.
드워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워프 왕국은 건재했지만, 세력이 더 커지는 걸 우려해 불공정한 조약으로 옭아매고 술독에 빠지게 만들어 나라가 엉망이 됐다.
종국에는 드워프 왕국을 멸망시켜 다들 마계로 도망쳐 아르칸 마왕성에 자리 잡게 됐다.
‘그런데 엘프나 드워프 들한테 도움받기를 원한다? 염치없는 짓이지.’
안 그래도 엘프나 드워프 들은 인간계로 가길 꺼렸다.
물론 아르칸을 종족의 은인으로 여기는 만큼 명령하면 도와주러 갈 테지만, 아르칸도 이들을 인간계로 보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어쨌거나 이번 지원을 계기로 서로 교류하면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아르칸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한편 용사는 아르칸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지 되물었다.
“그런 공표가 필요해? 사람들이 오크는 그렇다 치고, 마인족이 도와주는 거까지 싫다고 해?”
“어, 그래. 맞지?”
“…….”
“…….”
아르칸이 국왕과 발토르 공작을 보며 묻는데, 사실이기에 둘은 아무런 대꾸를 못 했다.
“흠.”
그 의미를 알아챈 용사가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배부른 소리 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걸 삼킨 거였다.
현재 마계의 인간계 간에 이뤄진 몇 번의 침공 때문에, 왕국 내 이끼 괴물의 수를 상대할 수 있는 기사의 수가 급감한 상태.
이끼 괴물에 의한 피해가 작지 않고 초토화된 마을도 있을 정도인데도, 오크와 마인족, 수인족을 거부한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왕명이라면 지원을 받아들일 테지. 지원받아 이끼 괴물을 퇴치한 뒤에도 별 탈이 없다면 다들 마음을 열지 않겠어? 그래서 이 제안을 하러 온 거야.”
“아, 그렇군.”
아르칸의 의도를 납득한 용사는 곧바로 국왕와 발토르 공작을 바라봤다.
설마 이런 중요한 제안을 거부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눈빛.
그 부담스러운 눈빛에 국왕과 발토르 공작은 시선을 피하면서 딴청을 피웠다.
“흠, 좋은 제안이군. 다만, 이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결정하긴 힘드니 신하들과 상의한 후에 알려 주지.”
“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겠지요. 명민하신 판단입니다.”
누가 봐도 일단 이 자리만 피하자는 모습. 그걸 눈치챈 용사가 다그쳤다.
“국왕 폐하! 지금 망설이실 때가 아닙니다! 백성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왕명을 내리셔야 합니다.”
빨리 결정하라는 것도 아니고, 아르칸의 뜻대로 왕명을 내리라고 압박한 거였다.
“흠. 흠.”
그래도 국왕은 대답을 피하며 헛기침만 했다. 그 모습을 본 용사가 씩씩거리기 시작하자 아르칸이 나서서 제지했다.
“잠깐, 진정해.”
“하지만…….”
“괜찮아. 왜 저러는지 다 아니까.”
그렇게 말한 아르칸은 국왕과 발토르 공작 쪽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행여나 내 부하들이 마음을 달리 먹고 왕국을 습격할까 봐 그러는 것 같은데, 걱정 안 해도 돼.”
“…….”
그 말에도 국왕은 미심쩍은 얼굴로 바라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발토르 공작이 물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나?”
“내가 마음먹었으면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할 필요 없으니까. 즉시 이 왕성을 날려 버리고 왕국을 점령할 수 있거든.”
아르칸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감춰 둔 마력을 살짝 개방했다.
현재 아르칸의 마력은 드래곤보다 강했다.
그러다 보니 살짝만 개방해도 어마어마한 힘이 뿜어져 나와 일대를 장악했다.
국왕과 발토르 공작은 물론, 주변의 기사나 근위대 할 거 없이 모두 커다란 돌에 깔린 것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다.
“……아, 알겠습니다.”
안색이 창백해진 국왕이 간신히 입을 열어 대답하자, 아르칸이 기운을 거둬들였다.
그제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게 된 국왕이 고개를 숙이며 항복 선언을 했다.
“대마왕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강요하긴 싫었지만, 도저히 못 알아먹으니 하는 수 없지.’
아르칸은 그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봤다.
그래도 아르칸으로서는 왕국을 침략할 마음은 조금도 없는 데다가, 왕국으로서도 도움받은 뒤에도 별일 없을 테니 딱히 문제 될 건 없을 터였다.
심지어 용사도 동의하는지 별말이 없었다.
“내 말대로 하겠다니 이만 돌아가지.”
아르칸이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국왕이 겨우 숨통이 트인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발토르 공작이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르칸 님,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음?”
아르칸이 고개를 돌렸다.
국왕이 왜 돌아가려는데 부르냐고 눈치를 줬지만, 발토르 공작은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 힘이 있으면 차라리 왕국을 점령하시는 게 더 쉽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 아르칸 님이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건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기겁한 국왕이 아르칸을 추켜세웠지만, 발토르 공작은 꼭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 아르칸을 노려봤다.
그 시선에 아르칸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귀찮거든.”
“……귀찮다고요?”
“그래. 마계를 관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이곳까지 관리하라고? 내가 뭐 하러?”
이들은 모르지만, 현재 마계를 관리하는 것도 거의 오웬과 아바로스에게 맡기고 있었다. 이곳에는 그럴 정도로 신뢰할 만한 인재도 없는데, 괜히 손댔다가 골치 아픈 일을 만들기 싫었다.
아르칸이 작가의 의도대로 이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려고 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 세계에 머물면서 편하게 살기 위한 것.
일에 파묻혀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필요할 때만 이렇게 와서 말하면 되지.’
그때 갑자기 발토르 공작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푸아하하하하하핫!”
“자네, 무례하게 왜 이러나.”
아르칸의 말에 내심 기뻐하던 국왕이 발토르 공작을 나무랐다. 괜히 아르칸이 화내기라도 할까 봐 겁먹은 거였다.
발토르 공작은 이내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군요. 이제 신의 반열에 드신 분에게는 왕국을 다스리는 건 하찮은 일이겠지요.”
“뭐, 그렇지.”
“알겠습니다. 저도 왕명과는 별개로 마인족이나 수인족, 오크까지 가리지 않고 몬스터의 지원을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발토르 공작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래 주면 고맙고.”
아르칸이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아르칸이 돌아간 뒤, 얼마 되지 않아 왕명이 전국에 내려왔다.
[‘영웅’ 아르칸의 도움이 어떤 형태든 간에 거부하지 말라.]끝까지 아르칸을 대마왕보다는 영웅에 한정하는 데다가, 아르칸이 마인족과 수인족, 심지어 오크를 보내도 받아들이라는 걸 ‘어떤 형태든 간에’라는 말로 모호하게 표현했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왕명이니만큼 다들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효과는 났기에 상관없었다.
정작 아르칸은 왕명만 믿고 마구잡이로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일단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를 통해 이번 왕명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폈다.
‘이거 나름대로 흥미로운데?’
대마왕 바리스탄 영역과 인접해 마인족과 충돌이 잦았던 서부는, 차라리 수인족이면 몰라도 마인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반대로 평야를 끼고 수인족과 오랜 시간 대립하며 싸웠던 동부에서는, 수인족의 도움은 거부, 마인족이라면 그래도 괜찮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무래도 같은 적이라도 안 겪어 본 적이 반감이 덜한 모양이네.’
아르칸은 반응에 따라 반감이 적은 부하들로 지원을 보냈다.
거기다가 괴물 이끼를 쓰러트린 뒤, 약탈이나 점령을 하지 않고 깔끔하게 철수시켰다.
그걸 몇 번 반복하자 다들 경계심이 누그러졌을 뿐만 아니라, 호감까지 생긴 듯했다.
참고로 어느 쪽도 거부하는 곳은 후순위로 미뤄 뒀다.
‘어차피 지원 보낼 수 있는 병력도 한계가 있는데 잘됐지.’
그러다가 마을의 주민들이 모두 도망치고 멸망했다고 하면 오크 군단을 보냈다.
그 소문이 퍼지자 모두 반대했던 마을에서도 누구라도 좋으니 얼른 와서 도와달라고 요청해 올 정도였다.
한편, 이끼 괴물은 끊임없이 나왔다.
인간계 전역에 퍼져 있는 데다가 증식하는 속도도 예상한 것보다 아주 빨랐다.
만약 아르칸이 전격적인 지원을 받도록 강경하게 말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더욱 늘어나 피해가 훨씬 커졌을 게 분명했다.
‘밀어붙일 때는 밀어붙여야 한다니까.’
이끼 괴물을 완전히 몰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덕분에 아르칸이 도와준 횟수도 아주 많아져 후반에는 아르칸의 깃발만 봐도 환영할 정도였다.
거기다가 셀레니아교에서 아르칸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대부분 공물도 바쳤다.
덕분에 신력이 모이는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방어막을 만들 수 있겠어.’
아르칸은 용사를 돌려보낼 수 있을 정도로 신력을 모았을 때 용사에게 돌아가겠느냐고 물었지만, 용사는 극구 사양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세계가 안전해진 걸 보고 돌아가고 싶어.”
대견한 소리였지만, 그 말을 들은 용사의 동료들은 깜짝 놀랐다.
아마 용사의 동료들은 용사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 뭔가 분위기가 안 좋았지.’
어쨌거나 아르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세계를 다른 세계의 존재들로부터 보호하는 방어막을 발송하기 위한 신력을 모을 수 있었다.
가능하면 차원의 조각을 더 얻고 싶었기에 그사이에 다른 악신이 쳐들어왔으면 했지만, 악신 모스록 이후로는 쳐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앞서 여러 악신을 막아 낸 게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지. 방어막이나 만들어 두는 수밖에.’
결심한 아르칸이 막대한 신력을 소모해, 이 세계에 방어막을 둘렀다.
그런데 방어막이 무색하게도 곧바로 한 악신이 방어막을 뚫고 이 세계에 나타났다.
“쯧, 벌써 뚫리다니…….”
아르칸은 혀를 차면서도 곧바로 악신이 어디로 갔는지 찾았다.
그나마 방어막을 억지로 통과한 악신은 그만큼 약해진다.
빨리 해치우면 쉽게 상대하고 차원의 조각도 얻을 수 있어 꼭 나쁜 상황만은 아니었다.
“인간계는 아니고 마계인데, 그것도 악마족 영역이로군. 제피로스, 악마족 영역을 수색해 줘.”
아르칸은 방어막이 뚫린 위치를 가늠하고는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제피로스가 놀라운 소식을 가져왔다.
“아르칸님, 이번에 침입한 악신이 마신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뭐라고?”
놀란 아르칸은 드물게 식은땀을 흘렸다.
마신성에 들어간 악신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
마신이 재림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