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격변하는 세계 (4)
마신성에 마신이 강림했다.
마신은 인간처럼 머리와 팔과 다리가 있었지만, 대마왕 바리스탄이 염체화를 쓴 것처럼 마기로 휘감겨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마기의 화신 그 자체.
부하들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마신이 나타나자 모두 모여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마신님의 미천한 종이 마신님을 뵙습니다.”
마왕성 랭킹을 담당하는 그레이드 워커 데실론이 이마를 땅에 박은 채 말했다.
말과는 달리, 감히 마신을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검은 뚱보 헤켓과 하얀 미라 칼라마르, 푸른 사신 네르갈도 마찬가지였다.
마신은 따분한 듯 늘어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 그동안 어땠나?”
그 물음에 부하들은 무릎을 꿇은 채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는 차례대로 말했다.
“저 데실론은 마왕성 랭킹을 만들어 마계에 싸움이 끊이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소수의 마왕성에 상당한 마력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저 칼라마르는, 꿀꺽. 마계의 독기를 차근차근 늘려 나갔습니다. 꿀꺽.”
“저 네르갈은, 사령술을 퍼트려 생명을 짓밟도록 유도하고 수많은 죽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 헤켓은……. 마신성을 지켰습니다.”
원래 헤켓의 임무는 이 세계의 모든 존재를 굶주리게 하는 것.
인간계를 그렇게 만들지 못하더라도, 마계라도 배고픔에 고통스러워하게 만들어야 했다. 원래 척박한 마계에서는 그리 어려운 임무도 아니었다.
그러나 본앰브로스가 먹지도 쉬지도 않는 일꾼인 스켈레톤으로 마계 전역에 식량을 공급하는 바람에 전혀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뭐라도 했다고 해야 했기에 마신의 눈치를 보며 마신성이라도 지켰다고 거였다.
정작 마신은 부하들의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마신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데실론이 참다못해 조용히 불렀다.
“……마신님?”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그래서 인간계는 정복했나?”
“죄송합니다. 그리고…….”
데실론이 사죄의 말과 함께 현재 상황, 특히 대마왕 아르칸에 대해서는 보고를 하려고 했다.
현재 마계의 최대 세력을 이룬 대마왕이자, 신을 자처하면서 인간계를 아우르려고 하는 존재.
마신께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멋대로 굴어도 내버려 뒀다. 결과적으로 마계의 부흥을 이끌면 마신께 이로운 일이 될 테니까.
문제는 마신이 그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끊어 버렸다는 거였다.
“이런 한심한 녀석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 말에 입을 열려던 데실론은 물론, 다른 셋도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뭐, 상관없다.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가져온 새로운 힘과 여기에 모아 둔 힘으로 이 세계를 정복하면 된다.”
마신의 힘은 아주 강했지만, 다른 세계로 넘어오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억울하게 마신전쟁에서도 패할 수밖에 없었다.
마신은 그걸 만회하기 위해 패배하면서도 마신성과 그 부하를 남겨서 자신이 돌아왔을 때를 대비해 마력을 모으도록 한 거였다.
한편 마신의 말을 들은 부하들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눈에 이채가 돌았다.
자신들의 주인인 마신이, 돌아오자마자 이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선언한 거였다.
그 말에 부하들의 마음속에는 기쁨과 환희만 가득했다. 그러나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어쨌거나 너희들이 뭘 했는지는 알았다. 그럼 다시 내게 힘을 돌려다오.”
그 말에 다들 움찔했다.
이들은 마신의 힘으로 지금의 존재가 되어 수백 년을 살아왔다.
마신이 힘을 거둬들인다면 존재가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마신의 휘하에서 이 세계를 지배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목도하게 될 거라 여겼다. 그런데 마신이 돌아오자마자 소멸한다니,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이야기였다.
헤켓과 칼라마르, 네르갈이 필사적으로 입을 열어서 애원했다.
“부, 부족하지만 저희가 보좌하겠습니다.”
“마신님 곁에서. 꿀꺽. 싸울 수만 있으면. 꿀꺽. 더 바랄 거 없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마신은 그런 부하들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걱정할 거 없다. 너희는 나와 한 몸이 되어서 나를 보좌하고 싸울 기회를 얻게 될 테니까. 그러면 너희의 부탁을 들어주는 셈 아니냐?”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지만, 부하들은 이에 항변할 수가 없었다.
이미 전신의 마력이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부하들의 몸도 말라비틀어져 갔다.
그렇게 절반쯤 진행했을 때, 마신이 흡수를 멈췄다.
“……?”
부하들은 모두 설마 마신이 마음을 바꾸었나 기대했지만, 마신은 궁금한 게 생겼을 뿐이었다.
“내가 남기고 간 유산은 어찌 됐나? 내 지시대로 모두 나누었느냐?”
그 말에 부하들은 모두 고개 숙인 채 서로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대표로 데실론이 대답했다.
“모두 나누어 놨습니다.”
“그래, 잘했다. 내 몸이 하나 더 있으면 힘이 거기로도 모여서 귀찮아지거든.”
마신은 칭찬과 함께 다시 흡수를 시작했다.
모든 힘을 다시 빼앗긴 마신의 부하들은 미라처럼 변해 껍데기만 바닥에 떨어졌다.
그나마 칼라마르의 붕대 속에 있던 벌레들만 몇 마리 남은 게 전부였다.
정작 마신은 그 힘을 다 흡수하고도 입맛을 다셨다.
“흐음, 역시 모자란단 말이야. 그래도 아직 흡수할 게 잔뜩 있으니 상관없나?”
마신은 그러면서 하늘을 양해 양손을 뻗었다. 자신이 힘을 흡수할 것들을 불러모으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마신성이 거대한 발신기가 되어 하늘로 마신의 마력을 하늘에 퍼트렸다.
그 결과 세계가 격변하기 시작했다.
***
마신의 출현에 아르칸은 대마왕성 밖에서 주요 간부와 마왕 들을 모두 불러모아 회의를 열었다.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마신이 힘을 기르기 전에 최대한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거였다.
다만 처음 마신이 이곳에 왔을 때도 아주 강력했던 만큼, 다른 악신처럼 쉽게 해치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마계의 전력을 동원해서 공격할 수도 없었다.
마인족이나 수인족은 다들 아르칸의 부하나 신도라도 해도 그 이전에 마신을 믿고 모셔 왔다.
마신의 존재를 알게 되면 마신을 따르면 따랐지, 상대하려고 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마신성에는 마신만 있는 게 아니니까.’
데실론을 비롯해 일전에 만난 헤켓과 칼라마르, 네르갈도 위협적인 존재.
아르칸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아르칸은 마신을 상대해야 했다.
나머지들은 아르칸의 부하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데 아무래도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문득 오웬이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습니다. 불길하군요.”
그 말에 밖을 보고 다들 수군거리는데,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와 땅의 정령왕 로카스톤이 나타났다.
“마신성에서 나온 마력이 하늘을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늘뿐만이 아닙니다. 안 그래도 마기로 오염된 지면인데 오염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점점 퍼지는 걸로 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계까지 잠식할 겁니다.”
“역시 그렇게 되나.”
마계도 처음부터 마계가 아니었다.
이 세계에 나타난 마신이 세상에 마기를 퍼트리면서 대지가 오염되고 그 영역이 마계가 된 거였다.
하지만 변화의 충격은 단순히 주변 환경에 그치지 않았다.
마력 연구가 길리암이 회의장으로 난입해 외쳤다.
“아르칸님, 큰일 났습니다! 현재 마계의 마력 농도가 계속 짙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길리암의 손에는 마력 농도를 측정하는 특수한 기구가 들려 있었다.
평소 붉은색이었던 기구는 아예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아르칸도 긴장하면서 물었다.
“어느 정도로?”
“죽음의 물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물은 장기간 노출된 것만으로 동식물이 몬스터화하는 저주받은 물.
그 이상의 마기 농도라면 주변이 몬스터 천지가 되어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식에 아바로스가 물었다.
“혹시 오류가 생긴 건 아닌가? 신중히 검토해 본 결과인가?”
“그렇습니다.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빨리 변화가 생기다니…….”
오웬의 말에 다들 납득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길리암은 다급한 얼굴로 외쳤다.
“이대로라면 몬스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지요. 그것도 아주 강력한 몬스터들이 나타날 겁니다!”
다음 날. 아르칸은 마계 전역에 벌어진 상황을 보고 받았는데, 길리암이 말한 것보다 훨씬 나빴다.
우선 마신성이 있는 악마족 영역에 몇 안 되는 마수를 포함한 동식물들이 경고했던 대로 몬스터화됐다.
외눈 박쥐를 비롯해 온갖 몬스터들도 마기에 영향 탓에 더욱 거대해지거나 강력해졌다.
심지어 악마족마저 박쥐 날개와 이빨이 더욱 커지고 날카로워졌고, 동시에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됐다.
악마족들은 원래 마신의 직속 수하라 이끼 괴물을 소탕할 때도 부르지 않았다.
‘마신에 충성할 텐데도 괴물로 만들어 버린 건가?’
심지어 이런 변화는 악마족 영역에 한정한 것도 아니었다.
죽음의 마기로 뒤덮인, 네크로맨서와 리치 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이 부리는 언데드 몬스터들도 마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거였다.
가장 심각한 건, 대마왕 바리스탄의 영역의 마인족들이었다.
마인족들은 처음에는 늘어난 마력 덕분에 뿔이 커졌다면서 좋아했지만, 점점 피부가 붉어지면서 신체가 기괴하게 변해 갔다.
그런 모습은 마치 악마족 같았다.
이 상태로 내버려 두면 완전히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될 게 분명했다.
‘이래서야 셀레니아 여신과 뭐가 다른가?’
이 참담한 소식을 전해 들은 아르칸은 긴급하게 부하들을 불렀다.
“이대로 있을 게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마계에서 벗어나야 할 거 같다.”
오웬이 곧바로 동의했다.
“말씀대로 마계에서 최대한 멀어져야 할 거 같습니다. 주변 상황을 들어 보니 심상치 않습니다.”
“그러면 마왕성을 모두 버리라고 하시는 겁니까?”
아바로스가 걱정하면서 물었다.
마왕성이 움직일 수 있다고 할지라도, 마계 밖으로 설치하면 주변을 마계로 변화시킨다.
마계 밖으로 도망치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야지. 대마왕성과 오크 로드 나크룸의 마왕성만 옮긴다.”
그나마 그 두 마왕성은 세계수가 심겨 있어서 마계와 생명력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이 난리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나마 인간계를 점령 안 한 게 다행이군.’
아르칸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시를 내렸다.
“모두에게 최대한 빨리 마계 밖으로 나가라고 해!”
***
한편 수많은 마인족과 수인족이 국경을 넘어오자 왕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침략하지 않는다는 건 역시 거짓이었나?”
“믿을 걸 믿었어야지, 대마왕을 믿다니.”
“그런데 왜 인제 와서 침략한단 말이오? 침략할 거면 왕국 곳곳에 지원군을 보냈을 때가 더 나았을 텐데.”
모두 혼란스러워할 때,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가 도착해 아르칸의 말을 전했다.
“현재 마신이 나타났다. 나는 마계 밖에서 마신의 인간계 침공을 저지하려고 한다.”
충격적인 소식에 모두 혼란에 빠졌다.
마신이 나타난 것도 놀라운 소식인데, 대마왕이 마신을 막아선 건 더욱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발토르 공작이 국왕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아르칸이 대마왕이긴 해도 여신 셀레니아님 대신 이 세계를 수호하게 되어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그 말대로야.”
제피로스가 아르칸의 대답을 전하자, 이번에는 제피로스를 향해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영역을 벗어나서 인간계로 오셨는지…….”
“자세한 건 말하면 복잡하지만, 아무래도 마신의 영향에 있거든.”
“그러면 한 가지만 더, 어떻게 마신을 쓰러트릴 생각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전통적인 방식을 쓰려고.”
“전통적인 방식?”
아르칸의 대답을 이해 못 한 발토르 공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