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오크 부족으로 (1)
“나중에 보면 알아.”
다들 무슨 대단한 사업을 하길래 저러나 궁금해하는 것 같았지만, 아르칸은 일축했다.
지금 공개적으로 떠벌리기에는 조심스러웠다.
‘뭘 하려는지 알면 반대할지도 모르니까. 근데 오웬은 어떻게 설득하지?’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오웬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알겠습니다. 뜻대로 하시죠.”
“어, 오웬 님?”
“마정석을 안 팔고 이대로 흡수하게 두신다고요?”
오히려 센시아와 트릴이 목소리를 높였다.
마왕성을 확장하는 대신, 내실을 다지자는 제안을 한 오웬이 바로 수긍해 버리다니.
그것도 뭔지 알려 주지도 않은 사업을 한다는데 말이다.
정작 오웬은 되려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왜들 그리 놀라나? 이 마정석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잊었나?”
“아!”
“하긴, 저희가 뭐라고 할 건 아니네요.”
그제야 두 사람은 오웬이 바로 납득한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들이 함께하긴 했지만, 이번에 마정석을 얻은 건 어디까지나 아르칸.
심지어 직접 인간족의 성에 잠입해서 가져온 거였다.
오웬처럼 의견을 내는 정도면 모를까, 아르칸이 원하는 대로 쓴다고 해도 토를 달 일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이거 큰 착각을 했네요. 아르칸 님이 혼자 얻으신 거나 다름없는데.”
“괜찮아. 다들 나 잘되라고 하는 소리였잖아.”
아르칸은 웃으며 넘겼다.
마왕의 권위를 내세우고 찍어 누르기에는 충분한 힘도 없을뿐더러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권능으로 신하를 늘리려면 호감도가 높아야 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허물없이 지내는 게 좋겠지. 어디까지나 선을 넘지 않는 정도에서의 이야기지만.’
아르칸은 통제실 중앙의 마정석 앞으로 다가가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 든 마정석을 그대로 마왕성 마정석에 얹었다.
마왕성의 마정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마정석을 흡수했다.
몬스터의 사체를 천천히 흡수하는 것과 달리 후루룩 빨아들이는 듯했다.
급하게 먹어 치운 만큼, 변화도 급격하게 이뤄졌다.
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주위가 뒤흔들렸다.
‘음?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이미 반지하를 지하로 끌어내릴 때보다 훨씬 격렬했다.
이러다가 마왕성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될 정도.
‘하긴, 그만큼 큰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니까.’
가노트의 마왕성은 다른 수인족 마왕처럼 1계층이지만, 그 마력은 대략 3계층가량의 마력을 압축한 거라고 봐야 했다.
다만, 마왕성에서 마정석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대체로 절반가량의 마력 손실이 일어난다.
무엇보다 용사가 특별한 도구를 쓴 게 아니라 무식하게 힘으로 분리한 걸 테니 그 손실률은 더 크면 컸지, 작지 않을 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래도 이 마왕성의 마력보다 훨씬 많은 마력을 품고 있을 거라는 거였다.
즉 자기보다 큰 덩치를 삼키는 중, 진통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아르칸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마정석을 흡수하는 경우가 있었나?’
일반적으로 마정석을 흡수하는 건, 강한 마왕이 다른 마왕성을 함락시킨 뒤의 일.
심지어 분리시키는 과정 속 마력 손실까지 감안하면, 마력이 적은 마정석에 그보다 훨씬 많은 마력의 마정석을 흡수시키는 경우는 없었다.
‘설마 이거 탈 나는 거 아니야?’
걱정되는 마중에 주변을 둘러보는데, 센시아와 트릴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웬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해 보인다는 거였다.
아르칸은 겨우 안도했다.
‘오웬이 문제없다고 여기면 괜찮은 거겠지.’
잠시 후.
진동이 멈췄다. 마정석을 온전히 흡수한 거였다.
“끝났나 봅니다.”
“휴, 다행이네. 이거 혹시 마왕성이 무너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센시아와 트릴이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오웬만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 아르칸 님이 어련히 알아보시고 했겠나.”
‘아니, 태연했던 게 나를 믿어서였다고?’
아르칸은 황당했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기에 표정을 관리했다.
동시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나를 너무 믿어도 곤란하네.’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지략가도 한 명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마정석 앞에 앉았다.
“자, 그럼 마왕성이 어떻게 됐나 볼까.”
마정석을 조작하니까, 현재 마왕성의 상태가 나왔다.
“좋아, 마력도 어마어마하게 늘었고, 새로운 계층이 생겨났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개시하면 외부인이 드나들 테니 계층을 분리해 통제실을 멀리 떨어트릴 필요가 있다.
“2계층이 생겼단 말입니까?”
“이야, 이곳이 2계층이 될 줄이야. 이제 한 계층만 더 늘려서 3계층이 되면 마왕성 랭킹에도 오르는 거 아닙니까?”
센시아와 트릴도 마정석을 보며 기뻐하며 김칫국을 마셨다.
그러다 트릴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런데 흡수한 마정석도 심상치 않은데요. 우리 것보다 훨씬 크긴 한데, 방이 하나뿐이라니.”
“아마 수인족 마왕의 마정석이었나 보군. 수인족은 계층과 방의 개수를 최소화하고 방 한 개 크기를 최대한으로 늘려서 무리가 한 군데에서 지내거든.”
“오웬 님, 혹시 어떤 마왕인지도 아시겠습니까?”
“글쎄, 추정하려고 해도 수인족은 부하라도 마왕이 자신보다 약하다고 여기면 덤비니까. 마왕이 교체되는 일이 잦아서 말이지.”
“그렇다면 이 마정석이 어떤 마왕이 가지고 있던 건지는 알 수 없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오웬과 트릴의 대화하는 사이, 아르칸은 마정석을 조작해 하나뿐인 2계층의 방을 생각해 뒀던 대로 나눴다.
조정을 마친 아르칸이 오웬에게 물었다.
“참, 혹시 오크 로드가 마왕과 싸워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나?”
“어, 그건 어떻게 아십니까? 그동안 인간계에 계셨잖습니까?”
오웬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마왕이 놓치지 않도록 마계의 중요한 사건을 파악해 보고하는 건 집사의 임무 중 하나.
관련 있거나 긴급한 사건은 아니기에 나중에 보고서로나 올릴 생각이었는데, 아르칸이 대뜸 그 이야기를 꺼낸 거였다.
당연히 소설에서 읽은 거였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댔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 소란스럽던데? 드디어 오크 중에서 마왕이 생기나 하는 와중에 실패했다고.”
“아, 하긴 그렇죠.”
마계의 마왕은 대부분 마인족, 그 외에는 수인족이 대다수다.
그러나 마정석만 있으면 몬스터는 물론, 심지어 인간족도 마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인간족 마왕도 소수나마 있다.
그 때문에 어느 정도 지능이 있고 집단을 이루는 몬스터들은 마왕을 꿈꾼다.
하다못해 고블린마저도 기회만 있으면 마왕이 되려 한다.
당연히 위대한 전사라고 자처하는 오크들이 마왕을 노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문제는 마정석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것.
마계 4대계파 수장인 대마왕 바리스탄 정도 되니까 자식에게 마정석을 턱 하니 쥐여 주고 마왕으로 만들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도 망나니짓을 해 댔으니…….’
아르칸은 새삼 자신이 빙의한 몸의 원래 주인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최근 몇 년 사이, 오크 부족을 통합한 오크 로드가 나타났고.
그 오크 로드는 당연히 마왕을 목표로 했다.
노린 건 마왕 차르메인.
마계 4대계파의 수장 중 하나인 대마왕 리치킹 본앰브로스의 제자 중 하나였다.
다만, 차르메인은 무슨 연유인지 리치킹의 영역에서 한참 벗어난 수인족과 마인족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왜 거기에 자리 잡았는지 알고 있지만.’
여러 파벌에 노출된 위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치킹을 등에 업고 있는 차르메인을 치겠다고 쉽게 나서는 마왕이 있을 리 만무했다.
반면에 앞뒤 없는 오크 로드에게는 최적의 사냥감이었다.
오크 로드는 전 부족의 정예를 모아 차르메인의 마왕성을 공격했다.
그 공격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무엇보다 상성이 나빴다.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오크 로드와 달리, 차르메인은 후방에서 언데드 몬스터들을 부렸다.
심지어 오크들이 싸우다 죽으면 차르메인의 사령 마법에 의해 언데드 몬스터가 되어 버렸다.
아군이 적이 되어 나타나다 보니 심리적으로나 수적으로나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크취익! 감히 내 부하를 모욕하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오크 로드는 분노하면서 전진했지만, 통제실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후퇴했다.
오히려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체만은 어떻게 지켜 내 오크 로드마저도 언데드 몬스터가 되는 것만은 막았다는 거였다.
‘그마저도 얼마 안 지나서 뺏기지만.’
“그런데 그 일은 왜 물어보셨습니까?”
“아, 거기에 조문을 다녀오려고.”
“조문이요?”
“거기를 왜…….”
의아해하는 센시아와 트릴과 달리, 오웬은 한층 더 격렬하게 반응했다.
“아, 안 됩니다! 마왕이 어떻게 일개 몬스터의 죽음을 위문하러 갑니까!”
“안 되나?”
“네, 난리가 날 겁니다. 마왕 체면에 무슨 짓이냐고요.”
“그 정도야 별일 아니지. 망나니 마왕에게 챙길 체면이 어딨다고.”
“크음…….”
아르칸이 자조하자 할 말을 잃은 오웬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덩달아 머쓱해진 아르칸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어쨌든 내가 나가 있는 사이에 이대로 준비해 줘. 아무래도 오웬이 신경 써 줘야 할 거야.”
종이를 읽은 오웬의 눈에 의문이 가득했다.
“이건…….”
“어, 정확히는 조문한다기보다는 그거 영업하러 가는 거야.”
센시아와 트릴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영업?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 * *
오크의 장례식은 간단했다.
부족 한가운데에 사체를 두고, 고인이 생전에 얼마나 용맹했는지 목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가 오크 전사의 신 마음을 울리면 전사의 천국에 간다고 믿었다.
전사의 천국이야말로 오크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 후 시체가 썩으면 근처의 계곡에 갖다 버린다.
영혼이 전사의 천국에 가는 게 중요하지, 육신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거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오크 로드가 과연 전사의 천국에 갈 정도로 용맹했냐는 거였다.
당연히 대부분의 오크는 오크 로드가 용맹하다고 믿었다.
마왕에게 싸움을 거는 건, 보통 용맹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끝까지 싸우지 않고 마지막에 후퇴한 것을 가지고 트집 잡는 오크들도 일부 있었다.
겁먹었으니 후퇴한 게 아니냐는 거였다.
주로 오크 로드에게 흡수당한 부족장들이 하는 이야기였지만, 아예 일리가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겁먹을 이유도 충분했다.
아무리 오크가 용맹하다고 해도 언데드 몬스터가 되면 그 용맹이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전사의 천국에 간 오크도 언데드 몬스터가 되면 그 영혼이 더럽혀져 전사의 천국에서 쫓겨난다는 게 오크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였다.
그걸 되돌리려면 언데드 몬스터가 된 육신을 파괴해야 했다.
그나마 보통 오크 전사들은 쉽게 부서질 테니 문제없지만, 오크 로드쯤 되면 마왕도 애지중지하면서 수백 년을 언데드 몬스터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크 로드는 언데드 몬스터가 되길 더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게 빌미가 되어 오크 로드의 자식이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중이었다.
대체로 오크의 자식은 부모의 용맹을 이어받았다고 여겨진다. 오크 로드가 용맹하지 않다면 그 자식도 그럴 거라고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오크의 대부족이 쪼개질지도 몰랐다.
오크 로드의 아들, 나크룸은 그걸 우려하고 있었다.
오크가 강하다고 해도 마계의 마족보다도 약하다. 그러니 뭉쳐야 한다고 아버지가 생전에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나크룸도 거기에 동의했다. 그러려면 다른 부족장들에게 용맹을 증명해야 했다.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그렇게 난감해하는 와중에 마왕이 조문한다고 찾아온다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반가웠지만, 알아보니 망나니 마왕으로 유명한 마왕이라고 했다.
‘설마 조롱하러 오는 건 아니겠지?’
조문객과 싸우는 건 원치 않았지만, 조롱한다면 아무리 마왕이라도 참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아르칸을 만난 뒤 오해였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덕분에 오크 로드의 진의를 알 수 있어 고맙기까지 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아르칸의 계획대로였지만.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