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3
3화 차려 놓은 밥상
따지고 보면 마왕이면서 권능이 없는 게 더 이상했다.
권능은 마정석으로 마왕성을 활성화했을 때 생겨난다.
특수 능력을 가졌을 경우 그게 강화되고, 없는 경우에도 새로이 각성하게 된다.
그런데 마왕이 못 된 거면 모를까, 마왕이 됐는데도 아르칸만 권능이 없을 리가 없었다.
‘아마 바로 눈에 띄는 권능이 아니라서 없는 줄 알았겠지.’
그 추정이 맞았다.
‘그나저나 군주의 권능이라. 이름만 봐서는 그럴싸한데, 무슨 능력일까?’
기대하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군주의 권능] [레벨 : 0] [신하 : 없음.] [신하들의 마력에 따라 군주의 마력이 강화됩니다.] [호감도가 100인 상대를 신하로 임명할 수 있습니다.] [신하는 군주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군주 스킬] [*주의 : 현재 권능 레벨이 0으로, 사용 가능한 군주 스킬이 없습니다.]‘오, 신하의 마력에 따라 군주의 마력이 강해진다고? 나한테 꼭 필요한 능력이잖아?’
마력이 없는 아르칸에게 제격이었다.
‘이걸 몰라서 삐뚤어지다니.’
아르칸의 잘못이 컸다.
권능이 없다고 착각할 수는 있다.
다만 그걸 핑계로 망나니짓만 했으니 권능을 알아챌 기회조차 얻지 못한 거였다.
술 마시고 행패나 부리는데 누가 호감을 느끼고 충성을 바치겠는가?
‘문제는 그동안 망나니짓을 한 여파를 내가 다 감당해야 한다는 건데.’
덕분에 바로 권능을 사용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당장은 이걸 얻었으니까.’
아르칸은 게티아를 펼쳤다.
“먼저 어떤 마법을 얼마나 쓸 수 있는지부터 볼까?”
[마법스크롤 작성] [작성 가능 마법 : 홀드(1써클, 필요 마력 10)] [현재 마력 : 2]‘지금 쓸 수 있는 건 홀드뿐인가? 그나마도 지금은 못 쓰는군.’
최후의 마력을 방금 전 홀드 마법을 쓰는 데 사용한 모양이었다.
‘우선 게티아 마력부터 회복시켜야겠네.’
아르칸은 주위에 산더미같이 쌓인 책을 둘러봤다.
“여기 다른 마도서가 있다고 해도……. 네가 다 먹어 치웠겠지?”
“…….”
정말인지 게티아가 시선을 피했다.
아르칸이 씩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어떻게 해서든 네 마력을 회복시켜 줄 테니까.”
“크릉?”
마력을 회복시켜 준다니 기뻐해야겠지만, 게티아는 왠지 모르게 저 아르칸의 미소가 불길했다.
* * *
보물 창고 밖으로 나가니 오웬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뭐 하나 궁금했나 보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르칸은 이곳에 오자마자 보물 창고 안에 책밖에 없는 걸 확인하고 실망하다 못해 기겁했다.
그대로 보물 창고를 닫아 버리고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르칸은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오웬에게 대뜸 지시를 내렸다.
“마침 잘됐다. 마력초가 필요하니까, 하인들에게 눈에 띄는 대로 채집해 오라고 해.”
“마력초 말입니까?”
마계의 잡초라 불리는 마력초는 이름 그대로 마력이 깃들어 있지만, 대부분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력도 미미한 데다, 아주 쓴 맛이 났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에 쓰시려는 거지?’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용도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금주하는 데 쓰시려는 건가?’
마력초는 아주 쓴 만큼 입맛이 달아나게 만든다. 이를 이용해 체중 감량이나 금주하는 데 쓰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그래, 꼭 뿌리까지 뽑아 오라고 해.”
심지어 가장 쓴 부분인 뿌리를 강조하기도 했다.
‘정말 술을 끊으시려는 건가.’
금방도 술병을 들고 들어간 것치고는 마신 것 같지 않았다.
내심 기대한 오웬이 힘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많이 뽑아 오라고 하지요.”
* * *
그날 저녁.
아르칸은 마력초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들고 마왕실로 들어갔다.
“게티아, 일어나. 마력 회복해야지.”
“크릉?”
숙취로 고양이처럼 침대에 퍼질러 있던 게티아가 그 말에 반응해 몸을 일으켰다.
“자, 마력이다. 먹어!”
아르칸은 펄쩍 뛰어오는 게티아에게 마력초를 하나 집어 던졌다.
게티아는 가름끈으로 마력초를 멋지게 낚아채고는 곧바로 집어삼켰다.
덥석.
우물우물.
“……!”
뿌리째 마력초를 씹던 게티아는 눈을 부릅뜨며 경직됐다. 그 쓴맛에 충격을 받은 거였다.
“크르르릉.”
마력초를 퉤! 하고 뱉어 낸 뒤, 아르칸을 향해 으르릉거렸다.
“흠, 너도 쓴맛을 느낄 줄이야.”
마도서인 만큼 마력초의 쓴맛을 못 느끼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참이었다.
‘쓴맛을 느끼든 말든 먹일 거였지만.’
마석을 살 형편이 안 되는 처지에 이것만이 유일한 마력 회복제였다.
“조금만 참아. 마력 회복하려면 이거라도 먹어야 해.”
“크릉. 크르릉.”
“뿌리는 안 먹으면 안 되냐고? 그럼 효력이 너무 약해서 안 돼.”
항간에 알려져 있진 않지만, 설정상 마력초는 뿌리까지 먹어야 그나마 유의미한 효과가 나타났다.
“참고 하나만 먹어 봐. 바로 삼키면 좀 나을 거야.”
“……크릉.”
아르칸이 계속 어르고 달래면서 권유하자 게티아는 마지못해 마력초를 집어 들었다.
덥석.
꿀꺽.
이번에는 씹지 않고 바로 삼켰다.
“……괜찮나?”
아르칸이 묻는 순간, 게티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소화시켰는지 겨우 떨림이 멈췄다.
“어디 보자.”
아르칸은 게티아를 넘겨서 상태를 확인했다.
[마력 : 3]“좋아! 올랐다.”
그 쓴 걸 먹고 올린 건 겨우 1에 불과했지만, 올랐다는 게 중요했다.
‘내가 먹는 게 아니니까.’
신난 아르칸이 마력초를 들고 권유했다.
“자, 잔뜩 있으니까 어서 더 먹어!”
오늘 하인들이 뽑아 온 마력초만 해도 50개는 됐다.
정작 게티아는 몸을 절레절레 흔들며 거부했다.
“왜? 이제 더 못 먹겠어?”
끄덕끄덕.
“마력인데도? 평생 그렇게 살 거야?”
“…….”
잠깐 망설이던 게티아는 결심한 듯 결연한 눈빛으로 마력초를 하나 집어 물었다.
덥석.
꿀꺽.
털썩.
다시 마력초 하나를 더 삼킨 게티아는 그대로 쓰러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무 써서 괴로워 죽을 맛이었지만, 아르칸은 웃는 얼굴로 마력초를 또 내밀었다.
“옳지. 참 잘 먹네. 앞으로 30개만 더 먹자?”
“……!”
아르칸의 말에 게티아가 움찔했다.
동시에 그런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보물 창고에 유폐된 채로 있었을 때가 나았나?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아르칸의 부름에 오웬이 통제실을 찾았다.
하인의 전언을 받은 오웬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시간에 부른다고? 어떻게 된 거지?’
보통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겨우 곯아떨어질 시간이었다.
깨어나는 건 항상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그런데 지금 얼굴을 보니 취한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그 멀쩡한 얼굴로 뜬금없는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닌가?
“오웬, 하인들더러 무기 챙겨서 집합하라고 해.”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주위의 고블린을 소탕할 생각이다. 마왕성을 계속 이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고블린 소탕이라…….’
확실히 현재 마왕성은 위태로웠다.
문을 닫고 버티고 있지만, 언제 마정석의 마력이 다할지 몰랐다.
당장 몬스터를 잡아 와서라도 마정석에 마력을 채워 넣어야 했다.
무엇보다 아르칸이 나서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뭔가 하려는 건 기뻤다.
다만, 방금 지시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아르칸 님, 고블린이 아무리 약한 몬스터라 할지라도 비전투원인 하인들이 상대하기에는 버겁습니다. 차라리 바리스탄 님께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게 어떻습니까?”
“아버지께 도와달라고 해도 도와주실까?”
단언하는 아르칸을 보니 오웬은 기가 차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바리스탄 님이 쉽사리 도와주실 거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외면하게 만든 원인이 아르칸이었기 때문이다.
“……하인들에게는 장비는커녕 쓸 만한 무기조차 없습니다.”
“괜찮으니까, 식칼이라도 들고나오라고 해.”
“아무리 그래도 하인들만으로는…….”
“하인들만 보낼 생각은 없다. 나도 함께 싸울 거다.”
“정말입니까??”
오웬이 깜짝 놀랐다.
‘저 망나니가 같이 싸우러 나간다고 하다니.’
“그래. 그러니까 어서 하인들이나 모아!”
“아, 알겠습니다.”
오웬은 대답하면서도 이해가 안 갔다.
‘근데 마력도 없는데, 대체 무슨 힘으로 같이 싸운단 말인가?’
* * *
잠시 후.
모인 하인들을 본 아르칸이 탄식했다.
“우리 사정이 많이 열악하긴 열악하군.”
하인들이 든 무기들이 하나같이 부실했다.
어디 후미진 데 처박혀 있었던 것 같은 녹슨 검과 창은 그나마 양호한 편.
앞서 말한 대로 정말 식칼을 들고 있거나, 심지어 프라이팬을 들고 오기도 했다.
하인들도 서로의 무기가 불안한지 수군거렸다.
“자! 조용히!”
아르칸의 말에 하인들이 움찔하며 입을 닫고 눈을 내리깔았다.
“다들 너무 걱정할 거 없다. 아무도 다치지 않을 테니까.”
“야, 들었어?”
“들었어. 아무도 안 다친다는데, 정말일까?”
“말도 안 되지. 우리가 마왕님 하루 이틀 봐? 어떻게 믿어?”
“하긴, 차라리 굶어도 배가 안 고프다는 말을 믿지.”
“조용히 해. 또 얻어맞을라.”
하인들이 속삭이는 걸 들으니 안심하기는커녕 불신하는 듯했다.
‘그동안 한 짓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왜 그런지 이해한 아르칸이 못 들은 척하며 돌아보니, 오웬이 어느새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서 있었다.
‘여차하면 도와줄 생각인가 보군. 몸도 성치 않으면서…….’
아르칸은 짐작하면서도 물었다.
“너도 가게? 어디 원정 가는 것도 아니니 좀 쉬지?”
“아닙니다. 저는 마왕님의 시중을 들어야죠.”
오웬의 대답에 하인들까지 나서서 만류했다.
“아무리 그래도 연로하신 오웬 님까지 나서서는 안 되죠.”
“마왕성에서 쉬십시오.”
“저희가 오웬 님 몫까지 싸우겠습니다.”
아르칸은 가소로웠다.
아무리 다치고 아프다고 해도 모두 동시에 덤벼도 못 이길 사람 몫을 대신하겠다니.
그래도 당장에 하인들을 진정시킬 필요는 있었다.
“오웬은 나설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구경이나 해.”
“알겠습니다.”
오웬의 대답에 겨우 납득한 하인들이 진정됐다.
그렇게 고블린 원정대가 출발했다.
* * *
후다닥!
수풀을 가르는 소리에 하인들이 움찔했다.
“엇!”
“무슨 소리지?”
그 대답은 수풀 저쪽 편에서 들려왔다.
“케륵! 마인족이다!”
“도망쳐!”
이쪽을 본 고블린들이 비명을 지르며 와르르 도망쳤다.
첫 전투를 앞두고 잔뜩 긴장하던 하인들은 오히려 고블린들이 도망쳐 버리자 얼이 빠졌다.
“어?”
“도망치는 거야?”
“어쩌지…….”
당연했다.
이쪽은 모두 열이고, 저쪽은 넷.
고블린들이 아무리 덜떨어져도 자신들보다 많은 숫자를 보고도 무작정 덤벼들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도망치게 내버려 둘 생각도 없었다.
아르칸은 게티아를 내밀면서 외쳤다.
“마법스크롤 작성. 홀드!”
게티아가 펼쳐지면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기다랗게 늘어지더니 도망가는 고블린들을 모조리 휘감았다.
“케르륵! 뭐야?”
“못 움직이겠어!”
빛의 고리에 속박당한 고블린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하인들은 그걸 보며 깜짝 놀랐다.
“어엇, 고블린을 잡았잖아.”
“저거 뭐야?”
“마왕님이 하신 건가?”
웅성거리는 하인들을 향해 아르칸이 호통쳤다.
“뭐 해? 그만 떠들고 가서 해치워야지!”
아무리 그래도 차려 놓은 밥상까지 못 떠먹진 않겠지.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