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30
30화 오크 부족으로 (2)
아르칸은 오크 부족 앞에 도착했다.
함께한 건 센시아와 아르칸의 어깨에 몸을 두르고 있는 해츨링 피용이 전부.
반면에 오크들은 이쪽을 보고 잔뜩 몰려와 있었다.
‘정말 둘, 아니 셋이서 이곳에 오다니.’
센시아는 긴장됐다.
오크와 싸우는 건 두렵지 않았다. 다만 혼자서 저 많은 오크로부터 아르칸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인원이 더 필요한데…….’
센시아는 속으로 투덜댔다.
출발 전부터 이야기했지만, 아르칸은 고개를 저었다.
적은 인원으로 어설프게 구색을 갖출 바에는 최소 인원만 데려가는 게 낫다는 거였다.
안 그래도 불안한 와중에 아르칸이 한술 더 떴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앞장설게.”
“위험합니다.”
“괜찮대도. 여차하면 약속한 대로 마법을 써서 혼자서라도 탈출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래도 오크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센시아는 아무래도 걱정되는지 신신당부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는데.’
연락할 때 대마왕 바리스탄의 자식이라고 밝혔다.
오크 로드라도 살아 있으면 모를까, 어지간해서는 먼저 공격할 엄두도 못 낼 게 분명했다.
“일단 오크 로드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텐데……. 아, 저기 누가 마중 나오나 본데?”
다른 오크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큰 덩치의 오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여 있던 오크들은 그 오크가 지나갈 수 있도록 좌우로 길을 비키기까지 했다.
바로 앞까지 온 덩치 큰 오크가 자신보다 키가 큰 센시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크췩! 난 나크룸이다. 네가 아르칸인가?”
“아니다. 아르칸 마왕님은 이분이시다.”
센시아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아르칸을 소개했다.
나크룸은 아르칸을 슬쩍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크취익? 이게 마왕이라고?”
“무엄하다!”
센시아가 폭발적인 기세를 일으키며 소리쳤다.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만 같았다.
“아니, 나더러 조심하라고 해 놓고 네가 흥분하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아르칸의 말에 센시아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반면에 나크룸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무엄? 지금 나를 욕했나?”
“욕한 게 아니다. 너무 용맹하다고 한 말이다.”
아르칸이 웃으며 수습하려 했지만, 나크룸은 곧장 반박했다.
“췩! 나를 바보 취급 하지 마라! 저 마족은 분명 화를 내며 말했다!”
무식할지는 몰라도 완전 바보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루는 방법이 다 있지.’
아르칸은 천천히 풀어서 설명했다.
“정말이다. 센시아가 화낸 건 마왕인 나를 어려워하지 않고 무례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마왕을 어려워하지 않는다니, 그것이야말로 용감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아, 그런가. 그렇군!”
잠깐 생각하던 나크룸은 납득했는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손을 치켜들었다.
“크취익! 나는 무엄하다!”
“우오오오! 나크룸은 무엄하다!”
주변의 오크들도 신나서 따라 외쳤다.
기분이 좋아진 나크룸이 말했다.
“따라와라. 오크 로드께 가자!”
“그러지.”
나크룸의 뒤를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오크들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그 중앙에는 나크룸보다 큰, 센시아만 한 오크 시신이 놓여 있었다.
바로 오크 로드였다.
시신 주위로 깨끗한 돌멩이를 몇 겹으로 깔아 뒀는데, 그 제일 바깥에는 오크들이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곡소리 대신 오크 로드의 용맹함을 칭송하는 거였다.
시장통을 방불케 할 만큼 시끄러워 무슨 소리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지만.
“크췩, 저기서 우리 아버지의 용맹함을 칭송하라!”
“우리 아버지? 오크 로드의 자식이었나.”
그제야 나크룸의 정체를 눈치챈 센시아가 중얼거렸다.
이미 알고 있었던 아르칸은 놀라지 않고 오크 로드의 시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주변의 오크들이 피하면서 자리를 마련해 줬다.
어느새 이 일대의 시선이 아르칸에게 모였다.
저 마왕이 오크 로드를 칭송하기 위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서였다. 정작 아르칸은 고개를 숙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어깨 위에 있던 피용도 아르칸을 쳐다보더니 아르칸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크취익? 뭐야?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설마 오크 로드를 칭송할 가치가 없다는 건가?”
까득.
오크들의 수군거림에 분노한 나크룸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뜬금없이 마왕이 와서 조문한다는 소식에 놀라는 한편으로 매우 기뻤다.
마왕을 꿈꾸던 아버지의 장례식에 마왕이 조문 온다는 건, 어떤 의미로는 마왕에게 인정받는다는 거나 마찬가지.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대마왕 바리스탄의 자식이기까지 하단다.
그런데 조금 알아보니 기대가 우려로 바뀌었다.
마왕은 마왕이지만, 대마왕 바리스탄이라는 배경이 없으면 마왕이 되지도 못할 망나니.
심지어 마왕성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란다.
오크 로드가 차르메인을 공격하지 않고 아르칸의 마왕성을 먼저 공격했으면, 진작에 마왕이 되고도 남았을 거라고 다들 말했을 정도였다.
그런 아르칸이 조문하러 온다니 불길한 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설마 조문이 아니라 조롱하러 오는 건 아니겠지.’
오크가 아무리 날뛰어 봤자 마왕이 되지 못한다고.
헛된 꿈을 꾸었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눈앞에서 고개만 숙이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 우려가 현실이 된 게 틀림없었다.
‘아버지를 모욕한다면, 절대로 가만 안 두겠다.’
그때 아르칸이 고개를 들었다.
‘어?’
나크룸은 주춤했다.
막상 화내려고 하니 그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했기 때문이다.
나크룸이 당황하고 있을 때, 아르칸이 아련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이거면 오크의 신도 만족했을 테니, 오크 로드를 전사의 천국에 들여보내 주겠지.”
그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나크룸이 소리쳤다.
“오크 로드의 용맹을 칭송하지도 않았으면서,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너는 싸울 때 입으로 싸우나? 아니면 주먹을 휘두르나?”
“크췩! 당연히 주먹이다!”
“나도 그렇게 했을 뿐이다.”
“……?”
“이해가 안 가나? 입으로 용맹을 칭송하는 게 아니라, 마왕인 내가 고개를 숙였다. 그거면 오크의 신도 오크 로드를 인정하지 않겠는가.”
“음, 확실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나크룸을 본 아르칸이 쐐기를 박았다.
“거기다가 여기 아직 어리긴 해도 드래곤도 고개를 숙였다! 어떤 오크가 드래곤의 고개를 숙이게 했는가.”
“아.”
나크룸의 눈이 해츨링, 피용에게 향했다.
피용은 영문을 모르는 듯했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피피 하면서 입을 벌리며 위협했다.
움찔.
오크와 드래곤은 격이 다른 종족.
아직 피용이 해츨링이다 보니 제대로 된 드래곤 피어를 발산하진 못했지만, 격이 다른 존재의 분노에 나크룸은 몸이 굳는 걸 느꼈다.
그런 존재가 고개를 숙인 거였다.
오크 전사의 신도 인정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으리라.
“푸하하핫! 이제 알겠다. 최고의 칭송을 해 줬는데 내가 오해했군.”
호탕하게 웃은 나크룸이 오크들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다들 봤지? 오크 로드께서 마왕과 드래곤의 인정을 받았다!”
“와아아아아아아!”
“역시 오크 로드의 용맹은 최고야!”
“오크 로드! 오크 로드!”
오크들은 하늘이 들썩일 정도로 함성을 내질렀다.
‘후, 이 정도면 거의 다 넘어왔군.’
그 광경을 보며 아르칸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아르칸은 넌지시 말했다.
“다만 아무래도 한 가지가 부족한 것 같군.”
“뭐가 부족하단 말인가?”
“오크 로드 같은 위대한 전사를 보내기에는 이 장례식이 너무 초라한 거 같지 않나.”
“크취이익. 뭘 모르는군.”
코웃음을 친 나크룸은 턱을 치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오크는 그런 겉치레에 집착하지 않는다.”
“영혼만 전사의 천국에 갈 수 있으면 그만이라 이건가.”
“그렇다.”
“근데 아무래도 이 장례식을 오크의 신이 보면 오크 로드의 용맹을 의심할 것 같다만.”
“크췩? 의심하다니?”
“장례식이 초라한 이유가 주변에 그 용맹을 인정받지 못해서라고 여기지 않을까? 난 그게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야.”
“크취이익.”
나크룸은 침음성을 냈다.
여태껏 상관없다고 여겼지만, 막상 그 말을 들으니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 거였다.
나크룸은 미혹을 간신히 떨쳐 내며 대꾸했다.
“그러나 오크들은 늘 이렇게 죽은 전사를 보냈다.”
“늘 그랬으니까 이번에는 특별하게 보내 드리자는 거지. 그만큼 오크 로드는 특별한 오크 아니겠어?”
“특별한 오크…….”
솔깃할 수밖에 없는 울림이었다.
안 그래도 나크룸은 오크 로드의 자식. 오크 로드가 제대로 대접받을수록 후계자로서 자신의 입지가 튼튼해졌다.
“근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내 마왕성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게 어때?”
“크췩? 마왕성에서?”
“그래, 오크 로드를 추모하기 좋은 분위기로 꾸며 뒀거든. 마음에 들 거야.”
장례를 도와주는 상조 사업!
이번에 늘린 2계층에서 추진한다는 사업이 바로 이 상조 사업이었다.
마왕성에서 오크의 장례를 치러 주고, 그 시신을 그대로 마왕성이 흡수하는 방식이었다.
‘현재 고블린의 사체를 받는 것의 확장판이랄까.’
물론, 사업이니만큼 장례비도 받을 예정이었다.
“크취익. 확실히 그러면 아버지께서도 좋아하실 거 같군.”
‘됐다!’
오크 로드의 장례식을 성공적으로 치러 내기만 하면 다른 오크들도 앞다퉈서 맡길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오크의 사체에서 마력을 얻을 뿐만 아니라, 유사시에 어느 정도 동원 가능한 방어 병력이 생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왕성이 공격받으면 당장 자신의 부모 형제 장례식이 망쳐질 뿐만 아니라. 그간 해 왔던 장례식의 권위도 무너진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오크들이 나서서 막아 줄 게 분명했다.
“말이 나온 김에 바로 옮기는 게 어때?”
아르칸의 제안에 나크룸이 처음으로 곤란하다는 얼굴이 됐다.
“크취이이익. 나도 그러고 싶지만, 부족장들과 상의해야 한다.”
아르칸은 귀를 의심했다.
‘부족장과 상의라고?’
오크 로드는 상의 같은 걸 하지 않는다.
“아직 차기 오크 로드로 확정은 안 됐나 보군.”
“그렇지. 그렇다면 내가 왜 나크룸이라고 소개했겠나.”
나크룸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의 오크 대부족은 여러 부족을 오크 로드가 정복해 합친 것.
아무리 오크 로드의 힘을 물려받은 자식이라고 해도, 차기 오크 로드가 되려면 다른 부족들의 인정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여유롭게 웃는 걸 보니 그리 어려운 상황은 아닌 듯했다.
그때 오크 한 마리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나, 나트룸!”
“크취익? 무슨 일이냐?”
“부족장들이 부른다.”
“마침 할 말이 있었는데, 잘됐군.”
나크룸이 그렇게 말하는데, 소식을 전한 오크가 경고했다.
“조심해야 한다. 마왕성 전투에 참여했던 오크 중 하나가 깨어났는데, 오크 로드가 후퇴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뭐라고!!”
오크가 전투에서 후퇴하라 지시를 내렸다는 건, 오크 세계에서는 겁쟁이나 하는 짓이라고 여긴다.
실제로 오크들은 한번 싸우러 나서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기에, 패전에 참여한 전사들은 대부분 사망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절반이 넘게 생존했다고 하니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했다.
문제는 오크 로드가 겁쟁이로 몰리면 나크룸은 그 정통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는 점이었다.
자칫하면 장례식 이전에 오크 로드가 통합한 부족은 분열될지도 몰랐다.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나크룸은 소설 속에서 차기 오크 로드로 등장했다.
이번 문제는 힘을 쓰든 오해를 풀든 어떻게든 극복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아르칸은 어차피 극복할 시련에 살짝 도와줘서 나크룸의 호감을 얻을 작정이었다.
“크췩. 미안하다. 가 보겠다.”
그렇게 말한 나크룸은 대답도 듣지 않고 가 버렸다.
그걸 보며 센시아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무례하기는. 아르칸 님,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따라가야지.”
아르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크룸의 뒤를 쫓았다.
‘그럼 어디 숟가락 한번 얹어 볼까?’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