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오크 부족으로 (3)
성큼성큼 걸어가는 나크룸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넓은 움막이 나왔다.
그 안에서는 오크들이 빙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들이 부족장들인가 보군.’
나크룸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들 큰 덩치에 얼굴과 몸에 온갖 문신을 새겨 놓고 뼈로 만든 장신구를 차고 있었다.
문신은 전적을 나타내고, 뼈 장신구는 전리품이었다.
즉, 수많은 전투를 겪은 베테랑 전사라는 의미였다.
‘강한 자가 오크의 부족장이 되니까 당연한 거지만.’
부족장들의 뒤에도 건장한 오크들이 눈을 부라리며 호위하고 있었다.
‘이거 나크룸의 기를 꺾어 놓으려고 모였나 보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센시아도 느낀 듯 굳은 얼굴이 됐다.
‘그러고 보니 센시아는 상조 사업 한다는 말을 듣고도 별 반응이 없네.’
하긴 나크룸이 오크 로드의 후계자가 못 되면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엎어질 판이니, 지금 따질 때가 아니긴 했다.
나크룸이 움막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에 있던 부족장이 웃으며 맞았다.
“흐흐, 나크룸 왔는가.”
“취익? 보면 모르나.”
“오크 로드처럼 내뺄 줄 알았다.”
“뭣이?”
나크룸이 눈을 치켜떴지만, 오히려 옆의 부족장들이 나무랐다.
“크취익, 왜 그리 화내나?”
“맞아. 카라퀴가 없는 소리 한 것도 아닌데.”
“저 오크가 자네에게도 말해 줄 걸세.”
“저 오크?”
부족장이 턱짓했다.
거기에는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있는 오크가 앉아 있었다.
그 오크를 알아본 나크룸의 눈이 커졌다.
“너는…….”
“아는 얼굴이지? 오크 로드 가까이에서 싸운 용맹한 전사잖나.”
“……안다.”
“오늘 겨우 정신을 차렸더군. ”
“다행이군.”
“자네한테는 다행이 아닐걸. 저 전사가 오크 로드가 후퇴하라고 명령했다는 걸 확인해 줬거든.”
카라퀴가 이죽거리는 걸 무시하고, 나크룸은 상처 입은 오크에게 다가갔다.
“부족장들에게 한 말을 내게도 다시 해 다오.”
“……한창 싸우는데, 오크 로드가 갑자기 후퇴 명령을 내렸다.”
“들었지? 오크 로드가 겁쟁이처럼 후퇴하라 했으니 오크 로드라 할 수 있겠나.”
놀랍게도 다친 오크가 항변했다.
“겁쟁이라니, 오크 로드는 겁쟁이가 아니다! 끝까지 후방에 남아 싸웠다!”
“그래도 후퇴하라고 했다며?”
“무슨 이유가 있는 듯했다.”
“무슨 이유인지 너도 모르는 거 아니냐? 어디 저기 누워 있는 오크 로드한테 물어볼까?”
“크윽.”
대꾸할 말을 잃은 오크가 이를 악물었다.
이미 죽은 오크 로드에게 물으라니.
죽은 자의 진의를 따질 수 없으니, 후퇴하라는 행위만 남은 상황이었다.
카라퀴가 비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겁쟁이 오크 로드는 전사의 천국에 들지 못할 것이다!”
“크취잇, 오크 로드가 겁쟁이라니.”
“쯧, 따라가 죽은 오크들만 불쌍하게 됐지.”
다른 부족장들도 동조하며 비아냥거렸다.
거기에 발끈한 나크룸이 쏘아붙였다.
“크췩! 그럼 너희는 그런 겁쟁이한테 패배한 것이로군.”
“뭐라고?”
카라퀴가 얼굴을 붉히며 벌떡 일어났다. 옆의 부족장들도 인상을 쓰며 따라 일어섰다.
금방이라도 싸울 거 같은 험악한 분위기였다.
‘슬슬 끼어들어야겠네.’
막상 결투가 벌어지면 끝이었다.
소설에 따르면 나크룸은 오크 로드보다 더 강했다. 오크 로드에게 패배했던 부족장들쯤은 쉽게 제압해 버릴 게 분명했다.
아르칸은 더 늦기 전에 외쳤다.
“잠깐!”
“아르칸 님??”
센시아가 놀라서 불렀지만, 아르칸은 대꾸하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나크룸과 부족장들은 물론이고 주변 모든 오크의 시선이 몰렸다.
“크췩? 저건 누구야.”
“이번에 오크 로드 조문 온다고 했던 마왕인 거 같은데?”
“아, 망나니 마왕이라고 소문난?”
“그 뒤의 마인족 전사가 더 강해 보인다. 싸워 보고 싶다.”
“근데 저 어깨에 무서운 눈빛의 파충류는 뭐지?”
“드래곤 새끼다. 역시 마왕은 마왕인가.”
현실이었다면 험상궂고 우락부락한 덩치들의 주목을 받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렸겠지만.
지금은 마룡의 가호 덕분에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오크 로드는 용맹할 뿐만 아니라, 지혜롭기까지 했던 거 같군.”
그 말에 오크들이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멈췄다.
“방금 들었어?”
“오크 로드가 지혜롭다고 했지?”
“용맹한 건 이해되는데, 지혜롭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다들 궁금증 가득한 눈빛으로 아르칸을 쳐다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걸 느낀 카라퀴가 소리쳤다.
“쓸데없는 소리! 어차피 너는 오크 로드의 시신을 노리고 온 거 아니냐. 기다렸다가 그거나 얌전히 받고 돌아가라.”
“취익? 시신을 노려?”
나크룸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카라퀴가 실소를 흘렸다.
“모르는가. 저 마왕은 오크 로드의 시신을 마왕성에 흡수시켜서 마력을 늘리는 데 쓸 작정이다. 마왕 차르메인처럼 시신을 이용하려는 거야!”
“정말 그 때문에 장례식을 거기서 하자는 거였나?”
배신감을 느낀 나크룸이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노려봤다.
아르칸은 왜 화내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어차피 시신은 중요한 게 아니라며?”
“취익.”
나크룸은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이 됐다.
아르칸은 그 기세를 몰아 반문했다.
“오크 로드의 시신을 탐내는 게 나쁜가? 오히려 오크 로드에게도 좋은 일일 텐데.”
“크취익! 그게 무슨 소리냐.”
“마왕이 탐낼 정도의 시신이라는 건, 생전에 그만큼 강하다는 게 증명된다는 말이다!”
“어,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군.”
납득이 됐는지 나크룸이 표정을 풀었다.
다른 오크들도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자신의 무릎을 쳤다.
그런 와중에 나크룸이 재차 물었다.
“그런데 오크 로드가 지혜로웠다는 건 무슨 말인가?”
“그건 내가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좋겠지. 나크룸, 시신을 버리는 곳이 어디 있나?”
“저쪽 끝에 있는 죽음의 계곡이다. 내가 안내하겠다.”
나크룸이 몸을 돌렸다.
나크룸에게 시비 걸던 부족장들도 궁금했는지 별말 않고 내버려 뒀다.
그때 카라퀴가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제정신인가. 그곳에 외부인을 데려가겠다고?”
“못 데려갈 건 뭔가?”
“신성한 곳이지 않은가.”
“신성한 곳? 언제부터 죽음의 계곡이 신성한 곳이 됐나? 그냥 썩은 시체를 버리는 곳인데.”
이번에는 다른 부족장들이 나크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크취익. 딱히 신성한 곳은 아니긴 하지.”
“자기네 부족이 관리한다고 그렇게 붙인 건가.”
“이해해야지. 카라퀴가 좀 허세가 있잖아.”
그러나 카라퀴는 물러서지 않고 버텼다.
“어, 어쨌든 난 허가 못한다.”
“크췩! 오크는 어디를 가는 데 누구의 허락이 필요치 않다.”
“그래, 그게 오크지.”
“카라퀴! 막지 말게. 나도 오크 로드가 왜 지혜롭다는지 궁금하니까.”
“대체 왜 막는 건지 이해가 안 가는군.”
모두 반대하는 분위기였지만, 카라퀴는 포기하지 않고 아르칸을 물고 늘어졌다.
“그, 그래도 저자는 오크가 아니지 않은가! 나크룸이 가는 건 몰라도 저자는 안 된다!”
그러나 다른 부족장들은 무슨 상관이냐는 얼굴이었다.
나크룸은 더 상대할 필요 없다는 듯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아르칸, 가자.”
아르칸은 그 뒤를 따르며 부족장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와서 봐.”
“크췩! 따라간다.”
“당연히 가 봐야지.”
“크취익, 별거 아니면 가만 안 둘 거다!”
부족장들은 곧장 아르칸의 뒤를 따라나섰다.
* * *
“크취익. 여기다.”
앞장서던 나크룸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
그 아래는 시커먼 안개로 뒤덮여 있어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물씬 풍겼다.
오크는 시신이 썩어 강인한 전사였던 생전의 모습이 사라지고 뼈다귀만 남았을 때, 여기다 버린다.
“으스스하군요.”
센시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래에 해골이 잔뜩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런 느낌이 들 만했다.
반면에 여기까지 따라온 부족장들은 약간 놀란 기색이었다.
“허, 여기가 원래 이랬나.”
“취익? 나도 처음이라 잘 모르겠군.”
“뼈다귀가 잔뜩 쌓여 있을 줄 알았더니만, 아무것도 안 보이네.”
“그렇지? 뭐 보이지도 않는데 이만 돌아가자고.”
다급하게 말하는 카라퀴를 무시하고 나크룸이 물었다.
“여기에서 오크 로드가 지혜롭다는 걸 어떻게 찾는다는 거냐.”
“내려가면 알 수 있어.”
“크췩. 저기를 내려가라고?”
나크룸이 시커먼 안개밖에 안 보이는 절벽을 내려다봤다. 용맹과 별개로 뼈다귀만 가득할 게 분명한 곳에 가자니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은 안 내려가려나? 뭐라고 구워삶지?’
“피. 피이.”
망설이는 나크룸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피용이 날개를 퍼덕이며 울었다.
“왜 그래?”
“피이. 피이.”
“네가 내려갔다 오겠다고?”
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웬과의 훈련 덕분인지 자신감이 넘쳤다.
‘아래에 크게 위험할 만한 건 없으니까 괜찮겠지.’
아르칸은 피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내려가서 한 마리 잡아 와.”
“피피!”
힘차게 대답한 피용은 위로 높이 날아오르더니 빠르게 하강했다.
곧 순식간에 검은 안개를 뚫고 모습을 감췄다.
“지, 지금 무슨 짓인가!”
당황한 카라퀴가 따지려는데, 피용이 곧바로 검은 안개를 뚫고 다시 나타났다.
피용의 입에는 뼈다귀가 물려 있었다.
“큭, 개도 아니고 뼈다귀를 물어 온 거야?”
비웃는 카라퀴와 달리 다른 부족장들의 표정은 심각했다.
“취익? 저것 봐! 뭔가 이상한데?”
“어, 그냥 뼈다귀가 아니라 전신이 통째로 붙어 있잖아. 어떻게 된 거지?”
“어, 저거 버둥거린다!”
실제로 피용이 물고 온 뼈다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합쳐져 있어 한눈에 오크의 뼈다귀인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부족장의 외침처럼 피용의 입에서 벗어나고 싶은지 버둥거렸다.
뼈다귀가 움직이다니. 그걸 지켜보던 나크룸과 부족장들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언데드 몬스터?’
“피피.”
피용이 아르칸의 앞에 물어온 스켈레톤을 내던졌다.
“크췩! 언데드 몬스터가 감히 이곳에 있었다니!”
카라퀴가 먼저 나서서 스켈레톤을 박살 냈다.
두개골 안쪽의 눈 부분의 빛이 흐려지면서 마기가 흩어졌다.
하지만 눈앞의 스켈레톤이 소멸했다고 해서 끝낼 사안이 아니었다.
“크취이익, 어떻게 이런 일이…….”
“대체 여기에 저 더러운 것이 왜 있는 건가.”
“왜 우리 전사가 언데드 몬스터가 된 것이오?”
“아니, 그게…….”
카라퀴가 제대로 대답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나크룸이 굳은 얼굴로 나섰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 오겠다.”
그러더니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려가 버리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아니, 나크룸!”
“저기에 뭐가 있을 줄 알고.”
“크췩! 이거 구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니오?”
당황한 부족장들에게 아르칸이 여유로운 얼굴로 대꾸했다.
“괜찮을 테니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나크룸이 안개를 뚫고 절벽의 틈과 틈 사이로 뛰어 올라왔다.
부족장들이 나크룸을 보고 안도했다.
“크취익. 무사해서 다행이다. 아래는 어땠나?”
“스켈레톤들이 오크들의 뼈다귀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차르메인 마왕성으로 옮기는 듯했다.”
차르메인은 오크들이 시체를 버리는 옆, 죽음의 계곡에서 언데드 몬스터의 소재를 모으고 있던 거였다.
‘마왕 차르메인이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지.’
오크들이 방치하는 이곳에서 소재를 마음껏 가져다 쓸 수 있기에 힘을 키우기 유리하다고 판단한 거였다.
“아르칸, 아버지는 이걸 눈치챈 건가?”
“그래, 전투 중에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뼈다귀가 본래 같은 오크 전사였다는 걸 눈치채신 거다. 이대로라면 계속해서 오크 전사들이 언데드 몬스터가 될 테니, 일단 물러나서 죽음의 계곡부터 막아야 한다고 판단하신 거지.”
“그렇게 깊은 뜻이, 확실히 지혜롭다는 말이 어울린다.”
나크룸이 감탄하는 와중에도 카라퀴가 딴죽을 걸었다.
“크취익. 그래도 후퇴한 건 사실 아닌가?”
“후퇴하면 겁쟁이라고 몰릴 걸 감수하고도 대의를 위해 후퇴를 결정한 거다. 그거야말로 용기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지. 안 그래?”
아르칸이 쏘아붙였다.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크취익! 마왕의 말대로다.”
“오크 로드는 용맹했다.”
부족장들이 모두 납득한 걸 본 아르칸은 이대로 넘어가기 전에 꼭 집어 지적했다.
“근데, 저 카라퀴라는 부족장 좀 수상한데? 왜 여기 오는 걸 막았지?”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카라퀴에게 쏠렸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