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오크 로드 vs 마왕 차르메인 (1)
차르메인은 실패할 수 없었다.
아니, 실패해선 안 됐다.
그의 스승이자 대마왕인 본앰브로스에게는 자신 말고도 수백에 달하는 제자가 존재한다.
차르메인은 그 수백 중 재능을 인정받아 마왕이 될 수 있었지만, 당연히 다른 제자들의 온갖 시기와 질투도 받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집 잡을 거리가 생긴다?
다른 제자들이 물어뜯으며 자신이 차르메인을 대신하겠다고 나설 게 분명했다.
실제로 어떤 제자의 경우 마왕이 된 지 3년이나 됐는데 마왕성 랭킹에 못 들었다며 스승이 마정석을 압수한 적도 있었다.
그걸 아는 차르메인은 최대한 빠르게 마왕성을 육성하고자 했다.
고민 끝에 과감하게 수인족의 영역에 진출해 오크 부족 영역에 자리를 잡았다.
오크들이 대충 버리는 시체를 노린 거였다.
지금까지는 순조로웠다.
죽음의 계곡을 관리하는 오크 부족장을 꼬드겨 뼈다귀를 잔뜩 가져다가 마력을 흡수하고, 남은 거로는 스켈레톤을 잔뜩 만들었다.
또 오크 로드의 공격을 유도해 해치우는 데도 성공했다.
이대로 가면 오크 부족을 집어삼키는 것도 머지않아 보였다. 그러면 마왕성 랭킹에도 오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아르칸이 갑자기 끼어들어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렸다.
죽음의 계곡을 들쑤셔 놔서 귀중한 부하들을 박살 내 놓지 않나, 내통하던 오크 부족장도 죽었다.
무엇보다 점찍어 뒀던 오크 로드의 사체를 장례식을 치른다고 가져다 버린 데다, 죽음의 계곡에 있던 뼈다귀들까지 차례차례 옮기고 있었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화가 났지만, 그동안 얻은 것도 많으니 포기하고 다른 먹잇감을 찾아본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다만, 아르칸의 악명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마계에 소문난 망나니 마왕 아르칸.
그 망나니한테 당했다면 다른 제자들의 비웃음을 살 뿐만 아니라, 스승도 개망신이라며 3년은커녕 당장 마왕직을 박탈시킬지도 몰랐다.
‘스승님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한 방 먹여야 해.’
차르메인은 아르칸 마왕성을 정벌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길 자신도 넘쳤다.
아직 남아 있는 오크 내통자들에게 듣기로는 아르칸 마왕성의 전력은 형편없었으니까.
당장 마왕인 아르칸만 해도 권능이랍시고 홀드 마법을 쓰는 게 전부.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니는 해츨링도 한참 어린 새끼였다.
거기다 경비병도 10여 명 내외인 데다, 제대로 싸울 수 있어 보이는 건 커다란 덩치의 경비대장뿐이라고 했다.
‘저런 상태로도 마왕성을 유지할 수 있던 건 주변에서 대마왕의 자식이라고 쩔쩔매서였겠지.’
게다가 아르칸 마왕성에 갖다 둔 시신과 뼈다귀들도 언데드 몬스터의 소재나 마찬가지.
여차하면 그걸로 언데드 몬스터를 추가로 소환하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대대적으로 원정에 나선다고 하면 아르칸이 자기 아버지한테 일러 지원군을 부를지도 몰랐다.
게다가 마왕성을 드나드는 오크 로드와 그 부족까지 나서면 승산이 떨어졌다.
승리를 위해서는 차르메인이 직접 나서야 했다. 단순한 언데드 몬스터들을 제대로 싸우게 하려면 차르메인이 지휘해 줄 필요가 있어서였다.
‘자아를 가진 고위 언데드 몬스터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새삼 오크 로드의 시신을 놓친 게 아쉬웠다.
게다가 마왕성을 비우는 동안 방비에도 신경 써야 했다.
빈집 털이를 방지하려면 조용히 아르칸 마왕성을 친 다음, 재빨리 돌아와야 했다.
‘그러려면 아르칸과 오크 로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주시하고 있어야 해.’
차르메인은 자신의 앞에 있는 오크를 보며 말했다.
“혹시 무슨 다른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알려 다오.”
“알았다. 대신 나를 새 오크 로드로 만들어야 한다.”
“알고 있다.”
차르메인은 시큰둥한 얼굴로 대꾸했지만, 오크는 그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 * *
전 오크 로드의 장례식을 치른 이후로 아르칸의 마왕성에는 오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전투 때 사망한 오크들의 가족들도 모두 이곳에서 새롭게 장례를 치르기 원해서였다.
덕분에 센시아를 비롯한 경비대원들까지 접대에 나섰고, 하인들도 먹성 좋은 오크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 소문이 슬슬 퍼지는지 다른 지역의 오크들도 문의해 올 정도였다.
쉴 틈 없이 바쁜 나날에 마왕성 내의 모두가 지쳐 가는 와중에도 오웬의 입꼬리는 귀에 걸렸다.
매일 흡수하는 마력만 해도 수천!
오크들이 장례비라고 주고 가는 금은보화도 잔뜩 쌓여 갔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던전 운영비는 걱정할 필요 없겠군요. 상조 사업이라는 게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고인의 마지막을 기리는 거니까.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성대히 보내 주고 싶은 거지.”
특히 이 정도 대접은 받아야 누가 보기에도 용맹했다고 인정받고, 전사의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한 게 통했다.
또 고인을 위한 장례식을 잘 치러야 나중에 자신이 죽었을 때도 다른 오크들이 성대히 장례식을 치러 줄 거라고 한 것도 제대로 먹혔다.
그때 오웬이 심각한 얼굴이 됐다.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일손이 부족한데, 하인으로 들어오겠다는 이가 없습니다. 전보다 급여를 더 준다고 하는데도요.”
“안 그래도 망나니 마왕의 기행 때문에 꺼려지는 곳인데, 오크까지 드나드는 곳에서 일하기는 불안하다는 거겠지?”
“크흠,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아르칸이 대놓고 이야기하자 오웬이 멋쩍어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때 트릴도 한마디 했다.
“병사들도 마찬가지로 안 모입니다. 갑자기 오크들이 돌변해서 공격하면 어쩌냐고 하네요. 용병들도 계약하길 꺼리고요.”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네.”
“느긋하게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아, 맞다. 조만간에 차르메인이 쳐들어올 거라고 하셨죠? 그러면 지금 마왕성에 있는 전력으로는 방어하기 힘들 텐데요.”
부하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아르칸은 진작에 경고했다.
죽음의 계곡을 털린 데다, 오크 로드부터 오크들의 사체가 모두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차르메인이 원한을 품고 공격해 올 거라고.
거기서 여기까지 공격해 오기에는 다른 마왕성도 존재하고 거리도 제법 됐다.
그래도 그간 아르칸이 무시 못 할 통찰력을 보여 준 덕분에 다들 공격해 올 거라고 믿고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그건 통찰력이라기보다는 차르메인이 언급된 부분을 기억해서 그런 거지만.’
언데드 몬스터로 만든 오크 로드를 앞세워 오크 부족을 습격한 차르메인은 운이 나쁘게도 용사와 마주친다.
다행히 차르메인은 일방적으로 당하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면 피할 법도 한데, 차르메인은 자신의 위대한 여정에 오점을 남겼다며 용사에게 원한을 품고 용사를 쫓는다.
‘용사의 시체로 또 강력한 언데드를 만들고 싶었다는 속셈도 한몫했겠지.’
압도적인 병력으로 용사가 묵고 있는 성을 초토화하는 데 성공한 차르메인은 분노한 용사에게 목이 잘린다.
‘그게 끝이 아니었지만.’
차르메인은 부활했지만, 한번 원한을 품으면 끝장을 낸다면서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집요하게 용사를 노렸다.
이번에도 손해를 끼쳤으니 끝까지 원한을 품고 덤벼들 게 분명했다.
“혹시 무슨 좋은 수라도 있으십니까?”
오웬이 내심 기대하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글쎄.”
제일 간단한 건 용사로 상대하는 거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지만, 국왕이 불러서 수도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럴 때마다 용사로 해결할 마음은 애당초 없었다.
용사와 내통하는 사실이 드러나면 곤란할 뿐만 아니라, 마정석 외의 다른 전리품은 모조리 포기해야 했으니까.
‘차라리 공격해 오게 만드는 게 낫지.’
이곳에 쳐들어온 적이 모조리 마력이 될 테니까.
무엇보다 차르메인의 경우 직접 잡을 필요가 있었다.
“딱히 없으시면 이번에야말로 대마왕님께 지원 요청을 하시지요.”
“괜찮아, 오크들을 이용할 생각이니까.”
“여기에 있을 때 적이 쳐들어오면 싸우긴 할 텐데, 그걸로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여기 와서 지켜 달라고 하면 말을 안 들을 텐데…….”
트릴의 우려대로 오크들은 전투를 좋아하지만, 남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건 질색했다.
오직 자신보다 강한 오크의 명령만 따랐다.
예를 들면 부족장이나 오크 로드.
그리고 아르칸은 현 오크 로드 나크룸과 아주 친했다.
“나크룸에게 말하면 될 거야.”
무엇보다 전대 오크 로드를 해치운 차르메인은 나크룸의 철천지원수.
원수에게 복수하는 것만큼 용맹스러운 일이 없다며, 그 복수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면 분명 좋다고 나설 게 분명했다.
“일단 언제 쳐들어올지는 알 수 없으니 차르메인 마왕성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도록.”
“알겠습니다.”
* * *
며칠 뒤.
“크릉! 크릉!”
흥분한 게티아가 부산스럽게 날아다녔다.
아르칸은 그 낯선 모습에 겁먹고 등 뒤에 숨은 피용을 달래며 말했다.
“진정 좀 해. 애가 겁먹었잖아. 마법서 금방 꺼내 준다니까?”
게티아가 흥분한 건 바로 아르칸이 들고 있는 상자 안에 든 마법서 때문이었다.
전부터 오웬에게 구해 달라고 했는데, 드디어 하나 가져온 거였다.
이것도 상조 사업 덕분이었다.
상조 사업이 잘되면서 필요한 물품이 늘어나 자연스레 여러 상인이 드나들었는데, 그 상인 중 하나가 구해 준 거였으니까.
‘그래 봐야 1써클 마법이지만.’
아르칸은 얇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표지에는 1써클 마법 ‘파이어 볼트’라고 쓰여 있었다.
파이어 볼트는 마력으로 만든 화염을 쏘아 내는 초급마법.
그래도 아르칸은 기뻤다.
‘드디어 공격 마법을 얻었네!’
지금 쓰는 마법은 홀드와 할루시네이션이 전부였다.
홀드는 처음부터 유용했고, 마룡 크세트카흐에게서 얻은 할루시네이션은 환영 마법의 극치였다.
그래도 공격 마법이 없으니 아쉬울 때가 많았다.
“자, 먹어.”
날름.
아르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게티아는 가름끈을 뻗어 마법서를 집어서 위로 던졌다. 그리고 책을 양옆으로 펼친 뒤 그대로 꿀꺽 삼켰다.
‘마력초 먹을 때랑 완전 다르잖아. 그나저나 마법이 생겼는지 확인해 볼까? ……어?’
게티아를 펼쳤던 아르칸은 깜짝 놀랐다.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쓰여 있어서였다.
[권능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새로운 신하를 얻은 것도 없는데 왜?’
게티아가 친절하게 알려 줬다.
[피용의 마력이 4성으로 상승했습니다.]‘벌써 4성이라고?’
아직 해츨링인 만큼 빠르게 성장할 것 같았지만, 벌써 마력이 1단계 오를 줄이야.
어쨌든 덕분에 권능 레벨도 오른 모양이었다.
‘그러면 권능 스킬도 하나 생겼으려나.’
[권능 스킬, 마력 공유가 해금되었습니다.]정말 스킬이 하나 해금되어 있었다.
‘마력 공유 효과는 이름 그대로네.’
[마력 공유] [군주와 신하 간에 마력을 공유합니다.] [공유하는 마력은 소유자의 마력의 절반에 한합니다.]현재 아르칸의 군주의 권능 효과로 신하들의 마력 일부를 받는데, 이걸 더욱 많이 받아 오거나 반대로 줄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스킬이 생긴 건 좋지만, 당장에는 쓸 일이 없겠군.’
아르칸은 입맛을 다셨다.
당장 아르칸의 마력을 공유하기에는 아르칸의 마력이 약했다. 그 절반을 최대한 공유한다고 해도 미미한 수준.
반대로 신하들의 마력을 공유받아도 당장 아르칸이 쓸 방법이 없었다.
마력으로 신체는 다소 강화할 수 있겠지만, 직접 나서서 싸우지 않는 판에 그럴 필요는 없었다.
현재로서는 게티아를 이용해 마법을 쓰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래도 나중에 쓸 일은 있겠지. 게티아, 쓸 수 있는 마법 좀 보여 줘.’
[마법스크롤 작성] [작성 가능 마법 : 홀드(1써클), 할루시네이션(5써클), 파이어 볼트(1써클)] [현재 마력: 2,512]파이어 볼트 마법이 제대로 생겼다.
오웬이 어련히 알아서 구했을까 싶지만, 만약을 위해 확인한 거였다.
‘그럼 한번 써 봐야지.’
아르칸이 마왕성 밖으로 나가 시험해 보려는데, 오웬이 찾아왔다.
“아르칸 님 혜안대로 차르메인이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
“그래? 나크룸과 이야기해야겠군.”
“안 그래도 연락을 보내 뒀습니다. 금방 도착한답니다.”
아무래도 마법을 시험해 보는 건 미뤄야 할 듯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