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35
35화 오크 로드 vs 마왕 차르메인 (3)
“에잇, 공격하라.”
“크취익. 오늘 오크 로드의 복수를 하겠다!”
마왕 차르메인과 오크 로드 나크룸의 외침으로 전투가 시작됐다.
그러나.
수적 우위가 무색하게도 나크룸과 부족장들은 오크 스켈레톤들을 일방적으로 박살 냈다.
그걸 본 차르메인은 당황했다.
“아니, 왜 이렇게 밀리는 거야!”
전대 오크 로드보다 나크룸이 훨씬 강하기도 하고, 한가락 하던 오크 부족장들만 데려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전에 함께 싸워 보니까 이들만 있으면 충분히 싸워 볼 만하겠더라고.”
아르칸의 말에 나크룸과 오크 부족장들의 전의는 한층 더 높아졌다.
어차피 많은 오크를 마왕성에 숨겨 두기도 힘들뿐더러, 괜히 죽기라도 하면 차르메인의 언데드 몬스터로 부활할 뿐이라 정예만 데려온 거였다.
죽음의 계곡에서 가져온 뼈다귀들도 같은 이유로 차르메인이 오기 전 빠르게 마왕성 밖에 치워 뒀다.
거기다가 아르칸의 뒤로 센시아를 비롯해 나머지 경비병들 다섯도 나타나 아르칸을 지켰다.
차르메인은 패색이 짙다는 걸 깨달았다.
‘크윽,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했지만, 상대가 망나니 마왕이라고 은연중에 얕본 게 이런 결과를 낳은 거였다.
‘우선은 물러나는 수밖에 없겠군.’
후퇴를 결심한 차르메인은 몸을 빼내기 위해 오크 스켈레톤을 전면으로 내보내는 한편, 아르칸에게 으름장을 놨다.
“오늘은 운이 좋은 줄 알아. 다음번에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까!”
“너한테는 다음이라는 게 없을 텐데?”
“끝까지 이죽대기는. 어디 두고 보자!”
차르메인은 이를 갈았지만, 이내 아르칸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오크 스켈레톤을 방패로 내세우면서 뒤로 빠지는 속도보다 나크룸과 오크 부족장들이 전진하는 속도가 빨랐다.
차르메인의 예상을 벗어난 건 후방에 있던 아르칸이 적극적으로 돕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쪽은 걱정하지 말고 차르메인을 잡아! 차르메인만 잡으면 끝난다!”
“크취익. 알았다!”
대답한 나크룸은 크게 숨을 들이켜며 전신을 부풀리더니 돌격했다.
단숨에 오크 스켈레톤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주변을 휘저었다.
그러자 전방에 있던 오크 스켈레톤들은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졌는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센시아와 병사들이 공격했다.
아르칸도 뒤편에서 홀드 마법과 파이어 볼트 마법을 난사하며 지원했다.
덕분에 나크룸과 오크 부족장들이 거침없이 차르메인을 향해 다가갈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저 무식한 전투 도끼에 목숨을 잃는 건 피할 수 없어 보였다.
“크취익, 죽어라! 아버지의 복수다!”
금방 바로 앞까지 도달한 나크룸이 전투 도끼를 휘두르려는 순간.
차르메인은 아르칸을 노려보며 허공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나 혼자 죽진 않는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만은 죽이고 가겠다!”
그 직후, 전투 도끼가 차르메인의 목을 쳤다.
털썩!
바닥에 떨어진 차르메인의 목이 지면에 데구루루 굴렀다.
그러나 차르메인의 손끝에서 나온 시커먼 마력이 아르칸을 향해 날아갔다.
저주 마법은 이미 시전되었던 것.
“아르칸 님??”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센시아가 돌아봤지만, 화살처럼 빠른 저주 마법은 이미 아르칸을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아르칸도 속으로 혀를 찼다.
‘젠장, 이런 수를 쓸 줄이야.’
최후의 일격은 예상치 못했다.
소설에서는 차르메인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용사가 대뜸 차르메인의 목을 쳤기 때문이다.
용사가 왜 문답 무용으로 공격하는지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저 마법을 견딜 수 있나? 안 되겠지?’
자신보다 마력이 강한 마왕이 최후의 순간 목숨을 걸고 내린 저주.
아르칸은 직감적으로 저 저주에 걸리면 죽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였다.
“피, 피!”
아르칸의 어깨 위에 있던 피용이 박차고 날아오르더니 자신에게 날아온 자주 마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 잠깐만!”
당황한 아르칸이 뒤늦게 피용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허공에 뜬 피용의 몸은 순간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그대로 힘없이 추락했다.
“앗.”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아르칸이 간신히 받아 냈지만, 피용은 시커먼 피를 토했다.
“켁. 켁.”
“피용아, 괜찮아? 정신 차려!”
놀라서 소리치는 아르칸을, 피용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피이…… 피, 아……. 아……빠……. 아빠.”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떨궜다.
“피용아. 피용아, 정신 차려.”
아르칸이 몇 번이나 부르며 흔들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숨이 끊어진 듯했다.
“이럴 수가…….”
아르칸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심지어 마지막 모습은 소설에서 용사를 지키다가 죽었을 때랑 비슷했다.
‘용사와 있을 때와 달리 죽지 않도록 지켜 주려고 했는데, 지켜 주기는커녕 보호받다니…….’
문득 힘든 오웬의 훈련을 받겠다며 피용이 게티아를 통해 의사를 전달했을 때가 떠올랐다.
-조금 두렵지만, 아빠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때는 감격스러웠다.
평생 누구를 아빠라고 불러 본 적이 없고, 어쩌면 누군가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이 세계에 빙의되길 잘했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자식이 자신을 지킨다고 몸을 던져 막다가 죽는 꼴을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어마어마한 상실감이 밀려오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괴롭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고통에 심장이 따끔거렸다.
그저 이 모든 게 후회스러웠다.
피용과의 인연도.
새로운 기회라 여겼던 빙의도.
모든 것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었다.
그때 차르메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크, 내 마심장의 마력을 모조리 쥐어짠 이 저주의 손길은 해츨링이라도 못 버티나 보군. 그나저나 네 녀석이 죽는 꼴을 봤어야 했는데 아쉽게 됐어. 아니, 네 절망하는 모습을 보게 됐으니 잘된 건가.”
목이 잘려 얼굴이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차르메인은 죽지 않고 주절거리고 있었다.
쾅!
차르메인이 더 말하기 전에 화염에 휩싸였다.
화난 아르칸이 파이어 볼트를 날린 것.
그제야 오크 스켈레톤들도 모조리 움직임을 멈췄다.
차르메인의 목숨은 완전히 끊어진 거였다.
나크룸은 여전히 피용을 끌어안고 있는 아르칸에게 다가가 위로했다.
“죽음의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고 희생하다니! 피용이야말로 진정한 전사다!”
센시아도 눈물을 흘리며 몸을 숙여 피용을 내려다봤다.
차라리 평소처럼 질색하며 뛰어올라 도망쳤으면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게티아도 자신의 몸을 펼쳐 피용의 몸 위를 덮으며 슬피 울었다.
“크르릉.”
“아.”
그 모습을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르칸은 문득 게티아를 통해 봤던 또 다른 메시지를 떠올렸다.
“아르칸 님?”
“잠깐, 시도해 볼 게 있어.”
아르칸은 게티아를 옆으로 옮겨 두고 피용의 가슴 쪽에 손을 얹었다.
‘분명 차르메인이 마력을 모두 쥐어짜 냈다고 했지. 마력을 불어 넣어 준다면 살아날지도 몰라…….’
일말의 희망을 걸고 최근에 얻은 군주 스킬, 마력 공유를 사용했다.
‘최대한 많이 보내야 해.’
아르칸의 마력이 많지는 않았지만, 하는 수 없었다.
‘제발!’
두근!
피용의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케릉?”
게티아도 뭔가 느꼈는지 몸을 일으켜 눈을 크게 뜨곤 피용을 내려다봤다.
“돼, 됐다.”
“됐다고요?”
“마력을 전했더니 심장이 뛰었어.”
“케르릉!”
“잠깐만.”
게티아가 다시 확인하라는 듯 소리쳤다. 아르칸은 손에 감각을 집중해서 피용의 심장을 확인했다.
다시 뛰긴 했지만, 금세 박동이 미약해지고 있었다.
“아, 안 돼.”
급하게 다시 마력 공유를 썼다.
두근! 두근!
심장 박동이 조금 더 강해진 걸 느낀 아르칸은 더 약해지기 전에 재차 마력 공유를 썼다.
“크윽.”
갑자기 머리가 핑 돌더니 머리가 아팠다.
군주의 위엄을 무리하게 썼을 때와 비슷했는데, 마력을 최대한 끌어다가 몇 차례나 공유한 부작용인 모양이었다.
“케릉.”
게티아가 아르칸의 상태를 펼쳐서 보여 줬다.
안 그래도 적은 마력이다 보니 금세 바닥났다고 나와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센시아, 네 마력 좀 가져다 쓸게.”
“네? 네.”
아르칸은 그대로 센시아의 마력을 공유받아서 다시 피용에게 전달했다.
체내에 마력을 채웠다가 내보냈다가 이 작업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나중에는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였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피이……?”
피용이 울면서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위험한 고비를 넘긴 건 확실해 보였다.
“아, 정말 다행이야.”
아르칸은 그 말을 남기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할짝. 할짝. 할짝.
아르칸이 정신을 차렸을 때 피용이 얼굴을 쉴 새 없이 핥고 있었다.
“피용아, 무사했구나. 정말 다행이야.”
아르칸은 피용의 턱을 긁어 주며 미소 지었다.
그때 오웬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흠, 흠.”
옆을 보니 피용뿐만 아니라, 오웬을 비롯해 나크룸, 센시아, 트릴까지 모두 있었다.
“저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미안, 어떻게든 피용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조금 무리를 해 버렸네.”
그때는 정말 앞뒤 가릴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대단하셨어요. 그 저주에서 피용을 구하다니.”
“크취익. 목숨을 바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한, 피용을 또 목숨을 바쳐서 구하다니……. 음?”
말을 하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졌는지 나크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쨌든 나 용맹하다는 뜻이지? 알아들었어.”
“그, 그래. 아르칸은 정말 용맹하고 똑똑하다. 취익. 무엇보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걱정해 줘서 고맙다.”
“고맙기는, 아버지의 복수를 이루게 해 줘서 내가 더 고맙다.”
“아직 끝난 건 아니야.”
“끝난 게 아니라니?”
“그 녀석, 죽어도 부활하거든.”
“크취익. 부활한다면 리치인가?”
나크룸이 이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사령술의 대가인 대마왕 본앰브로스부터 인간이었다가 엘더 리치가 된 존재.
차르메인은 그의 제자이니만큼 마찬가지로 리치가 되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소설에서도 용사에게 죽은 뒤, 리치가 되어서 나타났다.
“근데 어떻게 부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리치는 못 될 거야.”
“크취익? 왜 그런가?”
“리치가 되려면 ‘라이프베슬’이라는 게 필요하거든. 그리고 여기 있는 오웬이 그 라이프베슬을 차르메인이 쓰기 전에 가져왔을 테니까. 가져왔지?”
“네, 여기 있습니다.”
아르칸의 물음에 오웬이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크췩? 어? 어째 안 보인다 했다. 그걸 찾으러 갔었나?”
차르메인이 마왕성을 침공하던 때, 오웬은 아르칸이 맡긴 극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 극비 임무란 바로 차르메인의 라이프베슬을 탈취하는 것.
차르메인의 목숨이 끊어지면 자동으로 리치화 마법이 발동한다.
그러면서 생명력과 영혼이 마력화하는데, 그 액화된 마력을 보관하는 그릇이 이 라이프베슬이었다.
대마왕 본앰브로스가 하사한 이 라이프베슬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된 리치가 될 수 없기에, 평소에는 아주 애지중지 보관했다.
어디 활동할 때도 들고 다니면서 신경 써서 숨겨 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위치는 아르칸의 눈과 귀가 된 고블린들이 알려 줬고, 오웬이 그곳을 습격해 라이프베슬을 탈취해 온 거였다.
아르칸은 상자 안을 살폈다.
안에는 금속 테두리가 둘러진 유리병이 들어 있었는데, 속은 비어 있었다.
‘오웬이 가로챈 걸 뻔히 아는데 들어오지 않겠지.’
리치가 되면 이 라이프베슬은 목숨 줄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영혼으로 떠돌면서 기회를 노리면 모를까, 목숨 줄을 남의 손에 맡긴 채 리치로 부활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크취익, 철저하군. 그럼 이제 안 쳐들어오는 건가?”
“그럴 리가.”
곧바로 부정한 아르칸은 오웬을 돌아봤다.
“또 수고하게 해서 미안하지만, 아버지께 지원 요청을 보내야겠다.”
“……지금 말입니까?”
“……?”
“크취익! 적은 다 막아 낸 거 아닌가?”
모두가 의아해하는데, 아르칸이 라이프베슬을 들어 보였다.
“이게 내 손에 들어왔으니 대마왕 본앰브로스가 되찾으려고 찾아올 거거든.”
그 말에 다들 굳은 얼굴이 됐다.
아르칸이 허튼소리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였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이 라이프베슬은 본앰브로스가 익힌 사령술의 정수.
아끼는 제자에게만 줄 만큼 철저히 관리해서 유출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지도 모르니까, 반드시 뺏으려고 들겠지.”
그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대마왕 바리스탄의 힘이 필요했다.
‘그 힘을 쓸 일은 없겠지만.’
아르칸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라이프베슬을 원래대로 상자 안에 넣었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