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37
37화 블랙마켓 (2)
“푸히이익, 드디어 도착했다.”
포그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블랙마켓에 무사히 도착했기 때문이다.
마왕 가노트를 찾아간 포그밀은 아르칸 마왕성을 공격하라고 부추기는 데 성공했다.
이제 아르칸이 망하겠구나 하고 좋아하는 와중에 난데없이 마왕 드리켈라가 쳐들어온 게 아닌가?
억울하게도 이 공격을 계획했다는 의심을 받아 통제실에 억류됐다.
그 상태로 지켜보는데 또 웬 인간족이 혼자 나타났다.
멍청한 인간이 개죽음당하러 왔구나 했는데, 아주 강했다.
두 마왕을 해치워 버릴 정도로.
남은 마인족들은 복수하겠다며 덤비거나, 상대가 안 됨을 깨닫고 도망쳤다.
둘 다 공평하게 인간족의 검에 쓰러져 선택의 의미는 없었지만.
육중한 몸으로 도망치려던 포그밀은 그걸 보고 꾀를 냈다.
구석에서 온몸에 피를 묻히고 죽은 척한 거였다.
‘다행히 그 인간족은 눈치 못 챘지.’
구사일생의 순간에도 아쉬웠던 건 그 인간족이 마정석을 뽑아 가 버렸다는 거였다.
그때 포그밀의 능력과 처지로는 당장 뽑아 갈 수 없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마왕성 밖으로 나가려고 보니 가노트 마왕성 밖에 있어서 무사했던 생존자 몇이 다가왔다.
괜히 그들과 마주쳤다가는 곤란해지겠다 싶어 다시 죽은 척한 뒤, 몰래 빠져나와 몸을 숨겼다.
당연히 짐을 되찾는 건 불가능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포그밀에게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르칸에게서 받은 드리켈라 마왕의 명의로 된 골드 지급 보증서였다.
드리켈라 마왕은 죽었지만, 마왕성만 건재하면 환전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돈을 가지고 뭘 하느냐는 거였다.
“푸히익. 그래, 결정했다! 블랙마켓에 가서 한탕 해서 재기하는 거다!”
마계의 온갖 물건이 거래되는 블랙마켓에서 저평가된 물품을 매입해서 비싸게 되팔 생각이었다.
마침 하급이긴 해도 초대장도 있었다.
다만, 블랙마켓까지 가는 게 난관이었다.
싸울 만한 몸이 아니었기에 고블린 무리라도 마주치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포그밀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동해 간신히 마을에 도착했다. 아쉽게도 이곳에서는 3천 골드라는 거액을 교환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괜찮아. 블랙마켓에서는 교환할 수 있으니까.’
포그밀은 블랙마켓에 가서 환전하면 돈을 주겠다며 용병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마계 곳곳에 있는 블랙마켓으로 통하는 통로 중 하나를 찾아 도착한 거였다.
“이야, 고용주 덕분에 블랙마켓도 구경하네.”
“여기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더니만. 전국의 산해진미가 다 여기 있다며.”
“음식이 중요해? 난 온 김에 쓸 만한 무기나 하나 사야겠다.”
“무엇을 하든지 돈이 있어야지. 어서 돈이나 정산해 줘.”
“푸힉. 먼저 출입증부터 끊어야지. 그런 다음 바로 환전해서 줄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시끌벅적한 용병들을 달랜 포그밀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쯧! 사람들 앞에서 채근하기는, 어련히 알아서 해 줄까. 이래서 하찮은 것들이랑 어울리면 안 돼.’
출입구를 지키고 있는 직원 앞으로 간 포그밀은 배가 접히는 부분에 손을 넣어 검은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푸힉. 여기 초대장입니다.”
블랙마켓 초대장이었다
험한 일을 겪는 와중에도 뺏기지 않도록 거기에 숨겨 둔 거였다.
직원은 그걸 보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퉁명스레 물었다.
“여긴 처음입니까?”
“푸히힉. 그렇다.”
직원은 검은 종이를 확인한 다음 상자 안에서 넣고, 거기서 구리색 금속판 두 개를 꺼내 줬다.
“여기 출입증입니다. 둘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세한 건 여기 쓰여 있는 주의 사항을 보세요.”
그러면서 턱짓으로 옆에 글자가 빼곡히 쓰여 있는 팻말을 가리켰다.
포그밀은 직원의 불친절함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블랫마켓 초대장은 상중하로 나뉘어 있는데, 그 급에 따라 참가 가능한 경매가 제한된다.
포그밀이 가지고 있는 건 그중에서 하급.
이곳에서 대우를 받으려면 최소한 중급은 되어야 했다.
게다가 행색도 초라한 데다 용병들에게 치이고 있는 처지.
‘하긴, 나라도 막 대하겠다.’
포그밀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배가 접히는 부분에서 골드 지급 보증서를 꺼냈다.
“여기 골드 지급 보증서를 교환하려는데, 어디서 하면 됩니까?”
“음, 여기서 됩니다. 일단 확인 좀 하고요.”
직원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골드 지급 보증서를 손가락 끝으로 잡았다.
그러고 확인하려고 하는데, 포그밀이 한마디 덧붙였다.
“별문제 없을 거요. 드리켈라 마왕님이 보증하신 거니까.”
“드리켈라 마왕?”
직원의 얼굴이 굳었다.
마왕이 발급한 골드 지급 보증서인 걸 보고 놀란 게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보자 포그밀은 속이 좀 풀리는 기분이었다.
‘푸히히, 하찮게 보인 내가 마왕과 거래하는 걸 보면 안 놀랄 수가 없겠지. 이제 좀 알아 모시려나?’
사실 드리켈라에게 직접 받은 게 아니라 망나니 마왕, 아르칸에게 받은 거였지만. 직원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심각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 직원은 다른 직원과 함께 상의하더니 포그밀에게 다가와 골드 지급 보증서를 내밀었다.
“이건 돌려드리겠습니다.”
“푸힉? 대체 왜…….”
이어지는 직원의 설명에 포그밀은 기절초풍했다.
“드리켈라는 내통 죄로 마왕직을 박탈당했습니다. 마정석을 비롯해 모든 재산도 압수됐으니 이 골드 지급 보증서도 효력이 상실되었습니다.”
“내, 내통 죄라뇨!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말 그대로 인간족과 내통한 죄를 물은 겁니다. 마계에서 활동하는 인간족 하나가 잡혔는데, 그 인간족이 다 불었거든요.”
“그럴 수가…….”
다리의 힘이 빠진 포그밀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애지중지하며 숨겨서 들고 왔던 골드 지급 보증서도 바닥에 떨어졌다.
“다른 곳에서 내통 죄로 처벌받은 마왕의 골드 지급 보증서를 내밀면 공범으로 의심받겠지만. 여기는 치외법권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어쨌든 유감입니다.”
“허…….”
직원의 말에 포그밀은 허탈한 얼굴로 골드 지급 보증서를 내려다봤다.
한편 옆에서 듣고 있던 용병들은 난리가 났다.
“뭐야? 그럼 우리 돈은 어떻게 된 거야?”
“지금은 돈 없으니까 그거 바꿔서 주기로 한 거였잖아.”
“내 돈 내놔, 어서!”
“푸, 푸히이…….”
포그밀은 할 말이 없었다.
이것만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무용지물이 된 거였다.
“와, 여기까지 고생해서 왔는데 돈도 못 받는 거야?”
‘고생하기는, 여기까지 오는 데 전투 한 번 안 했는데.’
포그밀은 불만스러웠지만, 험악한 인상으로 노려보는 용병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어떻게든 위기를 피해야 했다.
“비, 빌려서 갚을 테니까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주게.”
“빌리기는 어디서 빌려?”
“누굴 호구로 보나.”
“야, 여기 노예 시장도 있다며? 아예 이놈을 가져다 팔자.”
“노, 노예로 판다고?”
포그밀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마계의 노예는 대부분 전사. 주인의 명령에 따라 나가 싸우다가 헛되이 죽는 운명이었다.
별다른 재주가 없는 포그밀이 노예가 된다?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좋은 생각인데?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야지.”
“푸히익! 아, 안 돼. 여기 좀 도와주시오. 그래도 블랙마켓의 초대장을 가진 손님 아닙니까.”
포그밀이 사색이 된 얼굴로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직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제가 도울 일이 아닌 거 같습니다만.”
“들었지? 얌전히 팔려 가라고.”
“내 어떻게든 두 배로 쳐줄 테니까. 한 번만 봐주게.”
애원했지만, 포그밀을 팔아먹기로 한 용병들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금세 꽁꽁 묶이고 말도 못 하게 재갈까지 물린 포그밀은 그대로 끌려갔다.
‘상단을 이끌던 내가 이런 꼴이 되다니……. 이게 다 드리켈라의 골드 지급 보증서를 준 아르칸 때문이야. 아르칸 이 자식! 내 평생 저주하겠다!’
포그밀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도 끝까지 아르칸을 욕했다.
* * *
한편 용병들이 포그밀을 끌고 간 뒤, 한 미남자가 용병 하나를 데리고 나타났다.
“여깁니까?”
“아마도.”
“아마도라니요. 아니면 어쩝니까?”
“나도 말만 들었지, 직접 와 보는 건 처음이라고.”
“이거 참…….”
투덜대는 용병을 본 직원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수준 떨어지는 손님이 많지? 초대장을 너무 남발하는 거 아닌가.’
둘 다 뿔이 나 있긴 한데, 하나같이 작은 게 별로 대단한 신분 같지는 않았다.
그때 저 멀리서 사두마차가 달려왔다.
마차 장식도 몇십 년 동안 이곳을 지키면서 본 것 중에 가장 화려했다.
그사이 가까이 다가온 미남자가 물었다.
“여기 처음 와 봐서 그런데, 초대장 어디다 보여 주면 됩니까?”
하지만 직원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두마차도 뒤이어 도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대로 통로를 지나쳐 갈 기세였다.
“아, 안 됩니다! 들어가시려면 초대장을 입장권으로 바꿔야 합니다!”
직원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러자 사두마차가 천천히 멈추더니 마부석에 있던 하얀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말했다.
“책임자를 불러오면 초대장을 보여 주겠다.”
“제, 제가 이곳의 책임자입니다.”
“흠, 그래?”
기사는 육중해 보이는 판금 갑옷이 어색할 정도로 가벼운 몸놀림으로 뛰어올라 직원 앞에 섰다.
“어, 인간족?”
용병이 당황하자 미남자가 설명했다.
“놀랄 거 없어. 블랙마켓에는 인간족도 드나들 수 있으니까.”
“아.”
그사이 기사는 품속에서 검은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여기 있다.”
“헉! 상급 초대장.”
검은 종이를 확인한 직원은 깜짝 놀랐다.
블랙마켓이 열릴 때마다 딱 20장만 뿌린다는 상급 초대장을 꺼낸 거였다.
그때 용병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근데 우리가 먼저 왔는데, 새치기 아니야?”
“새치기라니, 나를 모욕하는 건가?”
기사가 눈을 부라리면서 용병을 노려봤다.
동시에 기세를 끌어올리며 압박하자, 용병이 움찔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
그 와중에도 미남자는 태연한 얼굴로 마차를 쳐다봤다.
“그쪽도 금방 처리해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직원은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에 얼른 초대장을 상자 안에 넣고 기사에게 황금판 두 개를 건넸다.
“여기 입장권입니다.”
“왜 두 장이지?”
“초대장으로는 두 명만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니, 마차도 불가합니다.”
“뭐라고?”
기사는 다시 기운을 일으켜 이번에는 직원을 위협했다.
직원은 굳은 표정으로 저항했다.
“어, 억지를 부리셔도 안 됩니다. 소란 피우시면 경비가 올 겁니다.”
실제로 직원 뒤에는 시커먼 기운이 어른거렸다.
그때 마차에서 문이 열리며 금발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렌돌프 경, 그만하세요. 이곳에 소란 피우러 온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마리엘 님을 걷게 할 수는…….”
“괜찮아요. 이 정도 난관이야 각오한 바입니다.”
“무슨 걷는 정도로 난관이래…….”
용병이 투덜대자 렌돌프가 째려봤다.
“가죠, 렌돌프 경.”
“네, 네.”
마리엘이 먼저 가 버리자 렌돌프가 얼른 기운을 거두고 쫓아갔다.
그걸 본 직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아직 기다리고 있는 미남자와 용병을 쳐다봤다.
‘저런 강자에게 시비를 걸다니, 간덩이가 부은 자들이군.’
심지어 아직도 투덜거리고 있었다.
“아르칸 님이 새치기당하고 그대로 계시다니…… 성질 많이 죽었네요.”
“뭐 어때. 경매도 노예 시장도 내일부터고, 오늘은 들어가 봐야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아르칸? 들어 본 적이 있는데. 누구지?’
직원이 기억해 보려고 애쓰는데, 아르칸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자, 초대장. 입장권으로 바꿔 줘.”
그 초대장을 본 직원은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
‘서, 설마 블랙코인??’
블랙코인은 블랙마켓의 주인이 아주 귀한 손님에게 직접 발행하는 것. 즉, 블랙코인을 들고 있는 손님은 주인을 대하듯 대해야 했다.
‘아, 아니 어떻게……. 정말 블랙코인이 맞아?’
직원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블랙코인을 받아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사실 이 상자는 초대장이 위조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거로 봐서는 진품이 확실했다.
“확인했습니다. ”
그렇게 말한 직원은 상자에서 다시 블랙코인을 꺼내 돌려줬다.
감히 블랙코인을 자신이 맡아 보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직원은 황금판 입장권을 두 개 건넨 뒤 허리 숙여 인사했다.
“블랙마켓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
“우와! 블랙코인의 위력이 대단하긴 대단하네요. 저 문지기 태도가 돌변하다니.”
트릴이 감탄했다.
“이곳의 주인이 직접 준 거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아르칸이 웃으며 밖을 쳐다봤다.
마차 창문 너머로 주변의 풍경이 보였다.
아직 준비 중이라 그런지 어수선하고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했지만, 중요한 건 앞서 들어갔던 인간족들과 달리 아르칸은 마차에 타고 있다는 거였다.
입구를 지키던 직원은 아르칸이 블랙코인을 건네자 확인 후 벌벌 떨면서 돌려주더니.
황금판으로 된 입장권은 물론, 편하게 모시겠다며 어디선가 마차를 불러왔다.
심지어 최고급 여관에도 연락했고, 거기서 최고의 대접을 해 드릴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일단 여독을 풀기 위해 여관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걸 아까 그 새치기한 기사랑 아가씨가 봤어야 하는데.”
투덜거리는 트릴에게 아르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조만간에 마주칠 거야.”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