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41
41화 하급 경매장 (2)
달아오른 경매장의 분위기에 진행자가 기뻐하며 말했다.
“분위기가 좋으니, 이 분위기를 이어 가기 위해 마지막 경매 물품을 좀 일찍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탁자 위에 초록빛의 유리병이 올라왔다.
“이번 경매품은 신체 강화 포션입니다. 말 그대로 섭취하면 신체를 강화해 주는 포션인데요. 특히 내일 있을 투기장에서 승리하려면 이런 거 한 병쯤 노예 손에 쥐여 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신체 강화 포션? 마지막 경매품이라길래 뭔가 대단한 게 나오나 했더니 별거 아닌데요? 이거면 입찰해도 저쪽에서 안 따라오지 않을까요?”
트릴의 말에 아르칸은 고개를 저었다.
“신체를 강화하는 만큼 전신으로 보내는 마력을 다른 곳에 쓸 수 있잖아. 그걸 생각하면 마력 강화 포션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아, 그렇군요.”
참가자들도 그런 이점을 아는지 웅성거렸다.
무엇보다 투기장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도 치열한 결승전이 벌어지면 비싸게 되팔 수 있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열띤 경매가 될 것을 감지한 진행자가 입을 열었다.
“입찰가는 바로 5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단위는 5천입니다.”
“5만!”
“5만 5천!”
“6만!”
순식간에 가격이 올라갔다.
그걸 보며 트릴이 질겁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포션 한 병이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희소성도 높고 필요도 하지만, 효과도 좋아서 그래. 순간적으로 등급까지 올라갈 정도라니까.”
“우와! 등급까지 올려 준다고요?”
트릴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신체 강화 포션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럼 우리는 상관없겠네요? 이 친구는 마력을 못 쓰지 않습니까?”
“아니, 힘의 성질은 달라도 충분히 통할 거야.”
“엇. 그러면 필요한 거 아닙니까? 이번 경매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야 들어가야지.”
아르칸은 그렇게 대꾸하며 팻말을 들어 올렸다.
“7만! 바로, 7만 5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리엘이 쫓아왔다.
이번에는 다른 참가자들도 붙다 보니 금방 10만까지 입찰가가 치솟았다.
“10만! 10만 나왔습니다! 앞으로는 1만 단위로 입찰하시게 됩니다! 네, 11만! 12만!”
“아니, 이게 이렇게 비싸요?”
트릴은 계속 입찰가가 올라가는 걸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며 아르칸이 웃으며 말했다.
“못해도 20만까지는 무난히 올라갈걸. 최고 기록이 30만이던가.”
“헉, 그런…….”
아르칸의 말대로 순식간에 20만까지 올랐다. 그때 아르칸이 일어나서 말했다.
“25만.”
단숨에 5만을 높이자 다들 순간적으로 술렁였다. 그러자 마리엘이 지지 않고 일어났다.
“30만!”
“35만.”
“40만!”
둘이서 재차 경쟁이 붙자 다들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45만.”
“50만!”
“55……까지는 안 되겠네. 너무 갖고 싶어 하시는 거 같으니 양보해야겠네요.”
아르칸이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 앉아 버렸다.
“50만, 50만! 더 없으십니까? 축하드립니다! 낙찰받으셨습니다!”
진행자가 목소리를 높이며 선언했다. 그러자 주변에서도 손뼉을 치며 축하해 줬다.
“어?”
정작 마리엘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옆에 있던 렌돌프도 마찬가지.
‘크크, 슬슬 무리라는 건 렌돌프의 표정을 보며 짐작하고 있었지.’
입찰가가 30만이 넘어가자 렌돌프가 안절부절못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앞서 5만에, 추가로 30만이 넘는 골드를 물건 한두 개 사는 데 쓰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백작 본인도 아니고, 그의 영애. 쓸 수 있는 돈이 정해져 있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이제 경매 첫날. 둘째, 셋째 날 경매를 생각하면 돈을 아껴 둬야 했다.
마리엘도 그걸 인지하고 있기에 이번에는 어느 정도 가격만 올리고 빠지려고 했는데, 아르칸이 선수 친 거였다.
“크크, 잘하셨습니다. 저것들 표정 보니 아주 곤란한 거 같은데요?”
실제로 둘은 심각한 얼굴로 소곤거렸다.
“마리엘 님, 지금이라도 낙찰 취소하시는 게…….”
“창피해서 어떻게 그래요.”
“하지만 백작님이 부탁한 물건이랑 공작님께 보낼 선물도 사야 되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으로는 돈이 모자를 겁니다.”
“그래도 싫어요. 정 안 되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낙찰받은 거 팔아 버리면 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손해가 너무 큽니다.’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래 봐야 이 제멋대로인 아가씨가 자신의 말을 듣기는커녕 자기에게 반감만 가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제 더 쓸 돈은 없습니다.”
“끙, 아버지도 참. 돈 좀 넉넉하게 주시지. 겨우 1백만 골드가 뭐람. 이만 돌아가겠어요.”
“아직 마지막 경매가 남았습니다만.”
“더 쓸 돈 없다면서요? 돌아가서 돈이나 더 보내 달라고 해 봐야겠어요.”
“…….”
인간족인 자신들이 지금 이곳에서 나가서 돈을 더 가져오는 건 불가능했지만, 렌돌프는 묵묵히 마리엘을 뒤쫓았다.
“오랜만에 흥분되는 경매였습니다. 그럼 흥분을 가라앉힐 겸, 마지막 경매품을 꺼내 볼까요.”
진행자가 올려 둔 건 장갑이었다.
“장인 길리암의 특수 기술이 들어간 시제품으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회귀한 장갑입니다.”
특수 기술이라고 해도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도 슬슬 돌아갈까?”
“이 특수 기술이라는 게 체내의 마력을 발산하는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났던 아르칸은 이어지는 설명에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마력을 발산하는 장갑이라고?’
“말만으로는 감이 잘 안 오시죠? 제가 시범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진행자는 장갑을 끼고는 검지를 좌측 벽 쪽으로 내밀었다.
“이렇게 이 손끝에 마력을 집중하면…….”
우웅.
손끝에 희미한 빛을 맺히더니, 그 빛이 벽으로 발사됐다.
하지만 별다른 호응은 없었다.
딱 봐도 위력이 낮았기 때문이다.
싸늘한 반응에 진행자가 멋쩍어하면서 장갑을 벗었다.
“아직 연구 중이라 마력 전환 효율은 낮지만, 마력 훈련용으로는 충분히 쓸 만합니다. 그럼 1만 골드부터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다들 그다지 쓸모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눈치만 볼 뿐 딱히 입찰에 나서지 않았다.
‘잘됐어. 이러면 싸게 낙찰받을 수 있겠는데?’
아르칸도 고민되는 듯 망설이는 척하다가, 다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연달아 물 먹었는데 저거라도 기념으로 하나 사 갈까?”
그 말에 진행자가 화색을 띠며 물었다.
“오! 입찰하실 겁니까? 그렇게 되면 단독 입찰 하시게 되겠는데요?”
“단독 입찰을 무슨. 좀 깎아 주지?”
“네?”
진행자가 어리둥절한 것과 달리, 참여자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핫! 경매 와서 깎아 달라니 그것참 대단하네.”
“이거 첫날부터 대단히 재밌는 걸 보는군.”
“그래, 진행자! 1만은 비싸니까 좀 깎아.”
“죄송합니다. 시작가는 제가 정하는 게 아니라…….”
“농담이야, 농담! 내가 단독 입찰 하지.”
아르칸은 호기롭게 말하고 원하는 장비를 얻었다.
‘마침 나한테 딱 맞는 장비가 나오다니 잘됐어.’
아르칸은 신하를 얻을수록 마력이 늘어나지만, 군주 스킬 외에는 딱히 마력을 쓸 곳이 없었다.
그 마력을 활용할 방법이 생긴 거였다.
무엇보다 게티아와 떨어져 마법을 못 쓰게 된 상황에서도 쓸 만한 무기를 손에 넣은 셈이었다.
‘제작자가 길리암이랬지? 쓸 만한 게 더 있는지 나중에 찾아가 봐야겠어.’
그렇게 첫 번째 경매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데시무스가 실실 웃는 게 아닌가?
“뭐야, 너 기분 좋아 보인다?”
“저 여자 허영이 더 심해진 것 같은데, 헤어져서 잘됐다 싶어서요. 거기다가…… 주인님이 보기 좋게 한 방 먹여 주셨고요.”
트릴과 나누는 대화를 듣고는 호감도를 확인했다.
[호감도 : 90]‘이제 올릴 만큼은 다 올린 건가?’
전부터 느낀 거였지만 호감도는 일정 이상은 잘 올라갔지만, 신하가 되는 조건인 100이 되려면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했다.
‘얼마 안 지나 그 계기는 충분히 생기겠지만.’
그렇게 생각한 아르칸은 직원에게 말했다.
“내일 결투에 대비해야겠다. 훈련소로 안내해 줘.”
* * *
훈련소에 도착했더니 또 직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여러 노예가 한창 연습하고 있었다.
아르칸이 다른 이의 눈을 피해 훈련할 곳이 필요하다고 하자, 직원이 곧장 외곽에 조용한 곳으로 안내했다.
“신경 쓰이지 않으시도록 이 앞부터 출입 금지 해 놓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직원은 공손히 인사하고 나갔다.
“대접 하나는 제대로군. 그럼 이제 훈련을 시작해 볼까?”
물론, 아르칸이 직접 훈련에 나설 생각은 없었다.
트릴과 데시무스가 대련하기로 했다.
참고로 트릴은 마력 2성.
데시무스는 오러 1성.
어느 정도 타고나는 마심장에서 나오는 마력과 달리, 오러는 어렵게 익혀야 하는 데다 서로 동급일 때도 마심장이 더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단순한 출력만으로는 트릴이 월등히 앞서는 상황이지.’
실제로 트릴도 전투력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이거 제가 나갈 수만 있으면 제가 나가는 게 낫겠는데요?”
“볼가를 이길 자신은 있고?”
“하핫, 그건 아니지만요.”
하얀 호랑이 수인인 볼가의 마심장은 어림잡아도 4성.
마력만 해도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그럼 시작해.”
아르칸의 지시에 연습용 검을 든 트릴이 손바닥을 까닥거리면서 도발했다.
“먼저 덤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데시무스는 곧장 지면을 박차고 덤볐다.
캉!
“응?”
트릴이 검을 막아 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사이 데시무스의 공격이 이어졌다.
캉! 캉! 캉! 카캉!
연거푸 이어진 공격을 손쉽게 받아 낸 트릴이 검을 휘둘러 반격하자 데시무스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런 데시무스를 보며 트릴이 혀를 찼다.
“어, 약해도 너무 약한데요?”
“그 녀석의 능력은 그게 아니니까.”
만약 트릴 정도를 가볍게 이길 정도로 강했더라면, 처음부터 볼가를 찾아가지 않고 데시무스부터 영입하려 했을 거였다.
애당초 아르칸이 마련해 둔 데시무스의 역할은 투기장에서 싸우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여기 투기장의 규칙이면 해볼 만하지.”
“투기장 규칙이요?”
“어, 일대일이 아니거든. 그리고 약하다고 방심하면 안 돼.”
“네? 엇.”
순간 데시무스의 기척을 놓쳤다는 걸 깨달은 트릴이 몸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데시무스의 검이 자신의 목 앞에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데시무스는 저래 보여도 암살자 기술을 가지고 있거든.”
아르칸의 설명에 데시무스가 놀란 눈을 했다.
“제 비밀을 어떻게…….”
“아, 이거로 감정해서 아는 거야.”
아르칸은 게티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데시무스는 안도했다. 암습 능력을 가졌다는 게 소문이라도 난 거면 상대가 경계하기에, 능력을 쓰기 여러모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암살 기술이라……. 투기장에서는 쓰기 어렵지 않을까요?”
“두고 봐, 쓸 기회가 있을 테니까.”
암살이라는 게 꼭 밤과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혼란스러운 전장은 암살자가 활약하기 충분히 좋은 무대였다.
“무엇보다 데시무스의 능력은 그게 전부가 아니거든.”
아르칸은 데시무스를 쳐다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 * *
블랙마켓 2일 차.
점심 무렵, 투기장이 먼저 열렸다.
룰은 간단했다.
출전한 노예 전사들을 3개 조로 나뉘고, 조별로 투기장에서 한꺼번에 싸운다.
이번에는 대략 한 조당 1백 명 전후.
한 조에서 최후의 10인 안에 들면 내일 치러질 결선전에 진출하게 된다.
한마디로 배틀로얄이었다.
투기장 규칙을 들은 트릴이 갸웃거렸다.
“일대일로 싸우는 게 아닌 건 다행이지만, 이런 식이라도 데시무스가 불리하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노예 전사들은 대부분 마인족. 인간족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적인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만만한 인간족부터 제거하려 들 게 빤했기 때문이다.
“데시무스가 어떻게 하는지 보면 알아.”
아르칸의 대꾸와 동시에 진행자가 소리쳤다.
“자, 그럼 투기장 1조 예선을 시작합니다! 먼저 선수 입장!”
노예 전사들이 사방의 문에서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 1조에 배정된 데시무스의 모습도 보였다.
“어, 저기 있네요. 두리번거리는 게 아무래도 불안해 보이는데요?”
“두고 보라니까.”
“전투 개시!”
진행자의 선언으로 예선전이 시작됐다.
그러나 노예 전사들은 하나같이 눈치만 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누굴 먼저 공격했다가는 되레 표적이 되기 쉬웠다.
그때 데시무스가 소리쳤다.
“살아남고 싶은 녀석들은 내게 붙어라! 선착순 9명!”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