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42
42화 블랙마켓 투기장 (1)
데시무스의 말에 다른 노예 전사들이 수군거렸다.
“야! 방금 저 인간족이 뭐라고 한 거야?”
“살아남고 싶으면 자기한테 붙으라던데.”
“선착순으로 받는다고? 웃기는 놈이군.”
떠들기만 할 뿐 아무도 안 움직이자, 데시무스가 다시 외쳤다.
“다들 귀가 막혔어? 10명까지 살려 준다니까 같이 힘을 합치자고! 딱 9명까지만 받는다!”
“어, 힘을 합쳐도 되나?”
“되면야 뭉치는 게 이득이긴 하지.”
“근데 인간족 주제에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노예 전사들은 데시무스의 말에 혹하면서도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잠깐, 뭉칠 거면 만만한 인간족 쪽에 끼는 게 나을지도 몰라.”
“함정이면 어떡하려고?”
“딱 봐도 약해 보이잖아. 허튼수작 부리면 죽여 버리면 되지.”
“하긴, 나중에 결선에서도 제치기 쉬울 테고.”
“그렇지? 난 저 녀석한테 붙는다.”
그러나 이내 하나둘 데시무스 곁에 서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트릴이 감탄했다.
“이야, 자신이 인간족이라고 먼저 공격받기 전에 선수 쳤네요.”
“저걸로 예선전에서는 충분히 살아남을 거야.”
아르칸은 소설 속 데시무스가 노예 전사들을 선동해서 싸우는 걸 읽었기에 이번에도 충분히 그러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친구까지 9명. 이제 끝이다! 더 다가오면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겠다!”
데시무스가 마검을 들고 위협했다.
그러자 곁에 섰던 9명도 사방을 경계했다.
확실히 10명이 뭉쳐 있으니 쉽게 덤벼들 엄두를 못 냈다.
다만, 그걸 고깝게 보는 녀석도 있었다.
“흥! 약한 녀석들끼리 뭉치는 꼬락서니라니. 너희부터 뭉개 주마!”
센시아처럼 거인족의 후예인지 여기서 제일 덩치가 큰 마인족이 쿵쿵거리며 다가왔다.
“헉, 문토다!”
“젠장, 저 녀석도 1조였어?”
“뒈졌네. 우승 후보 중 하나잖아!”
문토를 알아본 노예 전사들이 긴장하자, 데시무스가 다그쳤다.
“다들 저 녀석부터 해치우자! 몇십 명이 저거 하나 못 해치우겠어?”
“이 자식이 또 무슨 수작을.”
문토가 달려들면서 거대한 방망이를 휘둘렀다.
맞으면 피떡이 될 것 같은 무시무시한 공격에 다들 허겁지겁 피하기 바빴다.
문토는 그대로 데시무스에게 달려들었다.
“야! 뭐 해? 피하지 않고!”
“그러다 죽어!”
주변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데시무스는 꼼짝하지 않았다.
“설마 겁먹어서 굳어 버린 건가.”
누군가 중얼거리는 순간, 문토의 방망이가 데시무스를 내리쳤다.
퍽!
하지만 데시무스는 피떡이 되기는커녕 방망이를 피해 문토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마검을 휘둘렀다.
“크윽, 아파!”
문토가 비명을 질렀다.
데시무스가 문토의 두꺼운 허벅지를 베고 뒤로 돌아 나오는 데 성공한 거였다.
생채기에 불과한 상처지만, 상처를 입혔다는 게 중요했다.
다들 놀란 얼굴을 하는데, 데시무스가 외쳤다.
“봤지? 이 녀석도 칼에 찔리면 다쳐. 함께 공격해서 쓰러트리자!”
“정말 통했잖아.”
“좋았으. 일단 저 녀석부터 해치우자!”
“위험한 녀석이니 죽일 수 있을 때 죽이는 게 맞긴 하지.”
노예 전사들은 다 같이 문토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이, 다 죽여 버린다!”
분노한 문토는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거기에 휘말려 얻어맞고 쓰러진 노예 전사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
지친 문토는 노예 전사들의 공격에 쓰러졌다.
“크으, 치사한 녀석들…….”
문토는 그 말을 끝으로 숨이 끊어졌다.
이 전투로 10여 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쳤다.
“흠, 우리 편들 어서 좀 모여 봐.”
데시무스가 얼른 자기편에 섰던 노예 전사들을 확인했다.
모인 건 7명뿐이었다. 2명은 죽은 모양.
숫자를 확인한 데시무스가 외쳤다.
“선착순 2명!”
이번에는 길게 말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만으로도 눈치 빠른 몇 명이 데시무스 쪽으로 달려왔다.
데시무스는 칼같이 2명만 받고 나머지는 위협해서 쫓아냈다.
“새로운 동료는 환영하고. 이제 슬슬 다른 녀석들 해치우자.”
“어, 굳이 우리가 나서서 싸워야 해?”
“맞아. 두고 봐도 될 거 같은데, 다들 겁먹고 우리 근처에 얼씬도 못 하잖아.”
“시간 끌면 저것들끼리 뭉칠 거야. 그 전에 최대한 숫자를 줄여 둬야 해.”
데시무스는 그렇게 말하며 동료들을 이끌고 본격적으로 전투에 나섰다.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자 순식간에 숫자가 30명 내외로 줄었다.
그때쯤 남은 노예 전사들도 위기감을 느꼈다.
“이거 우리끼리라도 힘 합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자. 이대로는 위험해.”
“아직은 이쪽이 더 많다. 많을 때 뭉쳐야지.”
그렇게 새로운 무리가 생기려고 할 때, 그 낌새를 눈치챈 데시무스가 소리쳤다.
“그럼 너희 중에 누가 살아남는 10명이 되는 건데?”
“그거야…….”
새로운 무리를 만들려고 하던 노예 전사가 다른 이들을 슬쩍 바라봤다.
누굴 남길지 평가하는 듯한 눈빛에 노예 전사들이 하나둘 볼멘소리를 냈다.
“뭐야? 나를 빼려고?”
“그, 그게 아니라. 내가 왜 널 빼겠어.”
“야! 그럼 날 빼려고 쳐다본 거야?”
남은 노예 전사들은 목소리를 높이더니 본격적으로 다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제법 체격이 좋은 노예 전사 한 명이 데시무스에게 다가갔다.
“나, 나 좀 끼워 줘. 나 제법 강하거든. 거기서 약한 놈 한 명 쳐 내면 되잖아.”
“싫다. 우리 10명은 끝까지 간다.”
데시무스의 단호한 말에 동료들의 사기가 치솟았다.
“크, 멋진데?”
“인간족치고는 의리가 있군.”
“우리도 끝까지 함께하는 거다! 빠질 녀석은 지금 빠져!”
그렇게 똘똘 뭉친 데시무스 외 9인은 결국, 예선전에서 승리했다.
도중에 또 한 명이 사망해 멤버 교체가 이뤄지긴 했지만.
* * *
“이 전략이면 결선도 무난하겠는데요?”
데시무스가 최후의 10인에 든 걸 보고 트릴이 감탄했다.
정작 아르칸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으로 힘들어. 결선에서는 30명 중에 3명을 뽑는 거니까.”
“음, 확실히 강하지 않으면 힘들겠네요.”
그사이 투기장 내부 청소가 끝난 듯, 예선 2조 경기가 시작됐다.
데시무스가 한 걸 봤는지 몇 명이 무리를 이루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자기 팀을 꾸리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결국, 피가 터지게 싸운 끝에 최후의 9인이 결정됐다.
마침 데시무스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아르칸이 있는 곳으로 올라왔다.
“잘했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데시무스는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그러는 사이, 대망의 3조 예선이 시작됐다.
“오, 볼가다! 저 녀석 3조였나 보네요.”
“아무래도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다 보니 제일 마지막에 배치한 거겠지. 그 밖에도 치열하게 싸울 수 있도록 강자들을 여럿 배치했을 거야.”
“아하. 아, 맞다. 데시무스. 2조 때는 네가 했던 대로 서로 포섭하려고 했어. 하나같이 잘 안 됐지만.”
“그렇습니까.”
데시무스의 여유롭던 얼굴이 굳었다.
다들 자신의 작전을 따라 하면 작전이 쓸모없어진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3조는 10명까지는 아니지만 작게는 둘부터 많게는 여덟까지, 여러 무리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2조가 어영부영하다가 엉망이 된 걸 보고 배운 거였다.
하지만 얼마나 무리를 지었든 상관없었다.
“재미없게 굴다니, 모두 죽여 버리겠다!”
볼가가 그렇게 외치며 가장 많은 숫자의 무리에게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젠장, 볼가다!”
“모여 있으면 쉽게 공격 못 하는 거 아니었어?”
“1조 때 못 봤어? 문토도 덤볐잖아. 한꺼번에 덤비면 돼!”
그 말에 모두 무기를 들고 볼가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공격에 성공하기는커녕 볼가가 갈고리처럼 손톱을 세운 팔을 휘두를 때마다 찢겨 나갈 뿐이었다.
“으악, 너무 강하잖아!”
“저걸 어떻게 이기라고!”
“야, 안 되겠다. 일단 저 녀석부터 해치우자!”
위기감을 느낀 노예 전사들이 합심해서 볼가와 싸우기 시작했다.
거의 1 대 99의 싸움이었지만, 1이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날뛸 때마다 하나씩 쓰러지니 나중에는 대적하는 걸 포기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미쳤어.”
“저 녀석 지치지도 않아?”
“무슨 마왕을 상대하는 거 같군.”
일방적인 악살 끝에 어느덧 9명밖에 남지 않았다.
볼가 혼자서 90명 가까이 해치운 거였다.
“잠깐만, 이제 10명 남은 거 아니야?”
“어, 그러면 살아남은 건가?”
“젠장, 뒈지는 줄 알았네.”
3조의 노예 전사들은 남은 숫자를 세고는 안도했다.
볼가를 포함해 딱 10명이 남은 거였다.
하지만 그 숫자는 금방 9명으로 바뀌었다.
“으아악!”
볼가가 제일 가까운 노예 전사를 공격한 거였다.
“야! 볼가, 뭐 하는 거야? 진정해.”
“이제 끝이라고, 끝!”
정작 볼가는 무슨 소리 하느냐는 듯 되물었다.
“재미없게 누구 마음대로 끝이야? 나는 끝까지 싸울 생각이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설마 다 죽일 생각이야?”
“어, 그럴 건데?”
“미, 미친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어차피 여기서 죽으나 결선에서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냐? 그러니까 최대한 날 즐겁게 해 주고 죽어라!”
그렇게 말한 볼가는 하얀 섬광이 되어 노예 전사들을 덮쳤다.
볼가가 노예 전사를 모조리 해치우고 최후의 1인이 됐을 때, 관객들은 투기장이 떠들썩하도록 환호했다.
반면에 데시무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안 그래도 자신의 작전이 안 먹히게 생겼는데, 볼가가 예상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하는 짓을 봐서는 결선에서도 최후의 3인으로 끝내지 않고, 마지막까지 모두 죽여 혼자만 우승하려 할 게 빤했다.
트릴도 걱정했다.
“아르칸 님, 어쩌죠? 도저히 답이 없어 보이는데.”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
그렇게 대꾸한 아르칸은 데시무스에게 조언했다.
“1조에서 결선에 함께 올라간 녀석들에게 혼자서 싸운다고 해. 그러면 길이 보일 거야.”
“네? 데시무스가 혼자서 싸운다고요? 바로 죽을 텐데요.”
트릴이 깜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데시무스도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끝까지 혼자서 싸우라는 건 아니고, 혼자 있다 보면 볼가와 친해질 기회가 생길 거야. 그 방법은 너라면 찾을 수 있겠지.”
“친해질 기회라…….”
아르칸의 말에 데시무스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다가 이내 뭔가 깨달은 듯 눈빛을 반짝였다.
“어떤 의도로 말씀하셨는지 알겠습니다.”
“알겠어??”
트릴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두고 보면 알아.”
“에이, 또 그러신다. 알려 줘요. 네? 아, 맞다. 네가 알려 줘. 답답하단 말이야.”
트릴이 아르칸에게 매달리다가 데시무스를 휙 돌아봤다.
데시무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알려 주니, 트릴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 그게 그렇게 잘될까?”
“그러니까 두고 보라니까.”
아르칸이 웃으며 대꾸했다.
* * *
그 후 중급 경매장이 열렸다.
차르메인은 제일 앞 열에 앉아 있는 아르칸을 노려봤다.
“두고 보자, 아르칸 녀석.”
투기장의 예선이 끝난 후, 블랙마켓에 도착한 차르메인은 그간 아르칸이 쓴 돈을 검사했다.
그러고 이후 경매장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보고서 이후로 하급 경매장에서 인간족과 입찰 경매를 하다가 싸구려 경매품을 하나 산 게 전부였지.’
본앰브로스의 돈을 아낀다고 그런 건 아닌 게 확실했다.
직원들의 말로는 자신이 산 인간족 노예와 원한 관계인 인간족을 곤란하게 만드느라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물 먹은 건 인간족이라고 했다.
몇만 골드밖에 안 되는 값어치의 경매품을 5만 골드에 낙찰받지 않나, 신체 강화 포션을 낙찰받는 데만도 50만 골드를 썼다고 했다.
“그걸 50만 골드에 사? 아르칸이 그걸 50만 골드에 샀다고 하면 당장 뺏었을 텐데. 쓸모없는 인간족.”
어쨌든 어제 하급 경매장에서는 돈을 거의 안 썼으니 오늘은 중급 경매장에서는 펑펑 쓸 작정일지도 몰랐다.
그러기 전에 막아 내서 아르칸을 골탕 먹이고, 스승의 신뢰를 되찾을 생각이었다.
“뭐라도 사기만 해 봐. 바로 블랙코인을 정지시켜 주마.”
그런데 아르칸이 아무것도 안 사는 게 아닌가?
“젠장, 설마 내가 노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나?”
차르메인은 이제 있지도 않은 이를 갈았지만, 정말로 아르칸은 딱히 살 게 없어서 잠자코 있는 것에 불과했다.
심지어 데시무스가 쓸 만한 무장도 하나 없었다.
만에 하나 쓸 만한 물건이 나올까 지루하게 지켜본 아르칸은 실망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상급 경매에는 살 게 많으니까.”
그래도 아예 성과가 없진 않았다. 경매소 직원이 일전에 부탁한 마법사들을 구매해서 가져온 거였다.
‘좋아. 이거면 데시무스를 도와줄 수 있겠군.’
반면에 아르칸이 사들이 마법서 목록을 본 차르메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쩝. 이미 산 거 가지고 딴죽 걸기는 좀 그렇지. 근데 하급 마법 강화는 그렇다 치고, 라이트? 이런 마법은 대체 어디다 쓰려고 산 거지?’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