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44
44화 블랙마켓 투기장 (3)
파앗!
“크악! 뭐냐.”
갑자기 터져 나온 섬광에 볼가가 괴로워하며 주춤했다.
그리고 데시무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파고들어 볼가의 심장을 찌른 거였다.
푹!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마검이 볼가의 몸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커억!”
볼가가 검은 피를 토했다.
“크윽, 내가 졌다.”
“목만 안 베면 되지?”
“…….”
데시무스의 말에 볼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 자이데나가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죽더라도 저 인간족은 해치워야지!”
그 말대로, 볼가는 치명상을 입긴 했어도 아직 움직일 힘은 남아 있었다.
현재 데시무스는 볼가의 품속으로 파고든 상황. 손만 까닥 움직이면 함께 죽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이 상황에서도 아르칸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일부러 목을 베지 말라고 데시무스한테 말한 게 바로 아르칸이었기 때문이다.
볼가의 성질이 포악하긴 해도 나름대로 의리가 있는 녀석이라는 걸 잘 알았다.
“흥! 너 따위에게는 지킬 의리는 없다!”
자이데나 쪽을 향해 소리친 볼가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원래 진행자가 그걸 보고 차르메인을 채근했다.
“차르메인 님! 뭐 하십니까? 어서 승리 선언을 하셔야죠!”
“아니, 방금 객석에서 마법 썼잖아. 그래도 되는 거야?”
“투기장에 직접 사용하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아니, 그러면 불공평하잖아. 무효야, 무효.”
“안 됩니다. 이곳의 주인께서도 원하는 선수를 우승시키기 위해 종종 마법을 사용하셨던 터라…….”
“…….”
본앰브로스를 거론하자 차르메인의 말문이 턱 하니 막혔다.
확실히 자신도 예전에 본 적 있었다.
‘아는 마왕이 산 노예 전사를 이기게 해 준다고 바닥에서 뼈다귀 손을 불러내 발목을 잡았었지.’
“그보다 어서 진행하십시오! 다들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차르메인은 투기장을 돌아봤다.
볼가가 우승하는 데 큰돈을 건 일부 관객들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항의했지만, 진행을 멈춘 것에 의아해하는 관객들이 더 많이 보였다.
“크윽, 하지만 이대로 데시무스가 우승하면 인공 마심장이 모조리 저 녀석한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꼴만은 보기 싫었다.
“가,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다. 나머지는 알아서 마무리해. 알았지?”
“네?”
“그럼.”
진행자가 반문했지만, 차르메인은 대꾸하지 않고 곧바로 자리를 피했다.
유체다 보니 벽을 뚫고 가 버려서 쫓아가지도 못했다.
“이런 무책임할 때가…….”
진행자는 차르메인이 사라진 벽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지만, 곧 다시 확성기를 잡았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방금 최후의 1인이 결정됐습니다. 축하합니다. 인공 마심장을 가져갈 분은 데시무스의 주인 아르칸 님입니다! 모두 아르칸 님께 박수를!”
그 선언에 놀란 마리엘이 렌돌프를 잡고 물었다.
“정말 데시무스가 우승인 거야? 볼가가 진 거고…….”
“…….”
그러나 렌돌프는 대꾸할 기운도 없었다.
경매로 돈을 마구잡이로 쓴 마리엘이 이번에는 볼가가 우승하는 데 남은 돈을 다 걸었다.
그런데 데시무스가 단독 우승 하는 바람에 그것마저 다 날리게 생긴 거였다.
렌돌프는 머리를 부여잡고 속으로 절규했다.
‘마, 망했다!’
* * *
경기 직후, 투기장의 직원이 아르칸을 찾아왔다.
“아르칸 님,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어, 고맙다.”
“우승 상품은 묵으시는 곳으로 보내 드릴까요?”
“잠시만, 저 시체는 어떻게 되나?”
아르칸은 쓰러져 있는 볼가를 가리켰다.
마력을 품은 시체는 마왕성에 흡수된다.
그러나 몬스터는 흡수시키더라도, 마인족의 경우에는 존중의 차원에서 대부분 마신의 제단에서 장례식을 치르기에 흡수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노예는 달랐다.
돈을 내고 산 만큼 끝까지 써먹기 위해서라도 마왕성에 흡수시키고는 했다.
“음, 자이데나 님의 의향에 달렸습니다만. 마왕성이 조금 멀긴 해서 번거롭게 안 가져가고 이대로 판매하실 가능성도 있습니다.”
“내가 구매하고 싶다고 전해 줘.”
가능하면 조용히 매입하고 싶지만, 괜히 다른 이가 사 가 버리면 낭패였다.
그 소식을 들은 자이데나는 쫓아와서 버럭 화를 냈다.
“뭐야? 볼가의 시체를 사겠다고? 지금 나 약 올리는 거야?”
붉은 피부의 자이데나는 양 관자놀이에 굵어 휘어진 뿔을 가진 마왕으로, 체격도 아르칸보다 훨씬 컸다.
그 특이한 외형은 마신의 영향을 짙게 받은 탓이었는데, 현실의 악마와 비슷하게 피부가 붉고 훨씬 흉포했다.
그래서 악마족이라고도 불렸는데, 악마족은 대부분 마계 제일 깊숙한 곳에서 자리 잡은 대마왕 키클로테스 파벌 소속이었다.
그 파벌의 마왕들은 아르칸의 아버지인 대마왕 바리스탄을 아주 싫어하기까지 했다.
아르칸은 자이데나의 위협에도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히 대꾸했다.
“아니, 내가 필요해서 그래.”
“필요하다라……. 혹시 궁금한 게 있는데 너 설마 그거 맞아? 그 망나니…….”
“뭐? 망나니 마왕으로 유명한 아르칸이 맞냐고? 맞아.”
아르칸은 어깨를 으쓱하며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군. 왠지 소문과 달라 보이는데 말이지.”
“많이 달라지신 겁니……. 커억!”
옆에 있던 트릴이 평소처럼 넉살 좋게 한마디 하다가 대뜸 자이데나에게 목을 잡혔다.
“하찮은 것이, 마왕의 대화에 끼어들어?”
“크윽, 컥.”
트릴은 얼굴이 뻘게진 채로 대꾸할 여력도 없어 보였다. 그대로 뒀다가는 숨이 넘어갈 지경.
“실례했군. 말을 재밌게 해서 데리고 다니는 친구야. 그러니 이쯤 하지?”
“아, 그래? 사과까지 받았으니 용서해 주지.”
자이데나가 돌연 빙긋 웃으며 손을 놨다.
아르칸 마왕성이 분위기가 느슨한 탓에 트릴이 부담 없이 말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이데나의 반응이 딱히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겨우 살아난 트릴이 뒤로 물러나서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아르칸은 다른 일이 더 벌어지기 전에 재차 물었다.
“그래서, 나한테 팔 거야?”
“흠, 가격만 제대로 쳐준다면 못 팔 건 없지. 내가 듣기로는 마력이 부족해서 반지하 마왕성이 되었다면서? 그래서 마원석도 그렇게 사들였나 보군.”
아르칸에 대해서 나름대로 알아본 모양.
‘아직 반지하 마왕성이라고 아는 걸 보니 옛날 정보긴 하지만.’
아르칸은 자이데나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가격이라, 인공 마심장을 하나 주지.”
“뭐?? 정말?”
인공 마심장은 돈을 떠나서 블랙마켓 외에서는 구하기 힘든 물건.
그 때문에 자이데나도 제법 큰 돈을 들여 투기장의 노예 전사로 볼가를 영입한 거였다.
볼가를 잃은 건 아쉽지만,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한 거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반응을 본 아르칸이 피식 웃었다.
“그럼 거래하기로 한 거다?”
“아, 알았어.”
자이데나의 확답을 들은 아르칸은 직원을 돌아봤다.
“들었지? 한 개는 이분께 드리기로 했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직원이 정중하게 인사하고 물러나는 걸 보고 자이데나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너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 같아, 소문과 달리 말이야.”
“좋게 봐 줘서 고맙군.”
“뭐, 소문과도 같은 부분은 있지만.”
자이데나는 아르칸의 얼굴을 보며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돌아갔다.
자이데나가 사라지자마자 트릴이 다가왔다.
“아니, 그 귀한 걸 그렇게 주면 어쩝니까?”
“잠시 맡기는 것뿐이야.”
“잠시 맡긴다고요?”
“그래, 그보다 내려가자. 볼가 시체를 회수해야지.”
“저희가요? 그러고 보니 데시무스 얘는 왜 안 올라오지?”
“내가 있으라고 했어.”
아르칸은 그렇게 대기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사이 투기장 직원들이 볼가 시체를 대기실로 끌고 와 눕혀 뒀다.
아르칸은 먼저 데시무스를 칭찬했다.
“볼가를 이기다니, 고생 많았다.”
“아르칸 님이 틈을 만들어 주신 덕분이죠.”
“에이, 틈이 있어도 이런 녀석을 해치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트릴도 칭찬하더니 볼가 시체를 꾹꾹 눌렀다.
“아르칸 님, 이걸 마왕성에 가져가실 거죠? 무거워 보이는데, 짐꾼을 구해야 하겠는데요?”
“괜찮아. 제 발로 갈 테니까.”
“제 발로요?”
“그래. 아직 멀었나? 한번 봐야겠네.”
아르칸은 볼가를 툭툭 건드려 보다가 게티아로 감정했다.
[볼가] [마력 : 4성] [특성 : 부활] [호감도 : 10] [*주의 : 사망해 부활 절차에 들어갔습니다.]볼가는 사망했지만, 그가 가진 부활이라는 특성대로 회복 중이었다.
단, 팔다리가 잘리면 그 부분까지 새로 돋아나지는 않는다.
머리도 마찬가지.
그 때문에 데시무스에게 머리를 베면 안 된다고 당부해 뒀다.
‘부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특성 : 부활] [부활에 걸리는 시간은 사망 시 입은 피해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다릅니다.] [빠르게 회복할수록 부활 특성이 활성화되는 시간이 늦어집니다.] [*주의 : 사망해 부활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부활까지 남은 시간 : 4시간 19분.]‘아직 4시간 넘게 남았잖아? 일부러 늦게 부활하려는 모양이네.’
설명에 나와 있듯이 부활하는지 볼가는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아르칸이 알기로는 최대한 빠르게 부활하면 1분도 안 걸렸다.
그만큼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막상 상대하면 부활이 아니라 순식간에 회복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라고 했다.
‘볼가도 한창 전투 중이었다면 빨리 회복했겠지.’
다만 어차피 우승해 봐야 우승한 노예일 뿐이라, 이 기회에 아예 죽은 척하고 늦게 부활해서 기회를 노려 보려 한 듯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회복 포션 좀 구매하고 싶은데, 좀 사다 줘.”
아르칸은 직원에게 말하자 트릴이 놀라서 물었다.
“회복 포션은 갑자기 왜요? 설마 여기 시체에 쓰시려고요?”
“맞아.”
“크음, 사다 드리는 데는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이미 사망이 확실해 보입니다만…….”
직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아무래도 귀한 손님인 만큼 헛돈을 쓰게 하지 않게 도와주려는 거였다.
“괜찮으니까, 일단 가져와.”
“아, 죄송합니다.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직원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직원이 회복 포션을 한 가방 가득 채워 가져왔다. 모두 10개나 됐다.
그걸 본 트릴이 깜짝 놀랐다.
“10개나 사 왔어?”
회복 포션은 효능이 좋은 만큼 하나에 1만 골드나 하는 아주 고가의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마왕성 랭킹 안의 마왕이 아니면 쓸 엄두를 못 냈다.
“남는 건 샀던 가격 그대로 환불 가능합니다.”
“아, 그렇다면 다행인가……?”
“고맙네.”
어리둥절해하는 트릴을 내버려 둔 아르칸은 직원에게 인사하고 회복 포션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걸 볼가에게 붓자 부활 시간이 대략 한 시간 줄어들었다.
“크으, 커억.”
포션 네 개를 부었을 때, 볼가가 검은 피를 토하더니 눈을 번쩍 떴다.
“어, 정말 살아났잖아!”
트릴이 깜짝 놀라는 사이, 볼가는 옆에 있던 데시무스와 아르칸을 차례대로 보며 상황 파악이 됐는지 피식 웃었다.
“예상대로 내가 부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군.”
목만 안 베면 되냐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이 가진 부활의 특성을 안다고 눈치챈 덕분이었다.
그러다 창밖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아직 밝군. 생각보다 부활이 빨리 된 건가?”
아르칸이 포션으로 부활 시간을 당긴 걸 몰라서 생긴 오해였다.
아르칸은 그런 볼가를 내버려 두고 직원에게 물었다.
“이렇게 되어도 시체를 산 내가 이 노예의 주인이 되나?”
“아, 물론입니다.”
아르칸은 알면서도 물은 거였다.
이는 본앰브로스가 남겨진 시체를 가지고 언데드 몬스터를 만들어도 문제없도록 규칙을 만들어 둔 거였다.
“들었지? 이제 내가 네 주인이다.”
“흠, 알겠다.”
순순히 인정한 볼가는 데시무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녀석의 주인이라면 그렇게 재미없진 않겠지.”
“재미없진 않을 거라고? 네가 나와 편을 먹은 것도 아르칸 님의 작전대로인데도?”
“뭐라고?”
볼가가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아르칸을 바라봤다.
사실 볼가와 한편이 되는 것도 데시무스라면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충분히 생각해 낼 만한 계획이었지만, 이렇게 생색내려고 일부러 말해 준 거였다.
‘덕분에 호감도가 좀 올랐으려나.’
아르칸은 내심 기대하며 게티아를 슬쩍 봤다.
[호감도 : 15]‘……어차피 내 노예인데 호감도야 천천히 올리면 되지.’
* * *
한편 그 시각, 블랙마켓 직원들 사이에서는 아르칸의 정체를 두고 소란이 벌어졌다.
“망나니 마왕 절대 아니라며? 근데 자이데나 님한테는 자기가 그 망나니 마왕이라고 밝혔다는데.”
“완전 속은 느낌이야.”
“근데 전혀 망나니처럼 안 보였잖아. 소문대로라면 훨씬 제멋대로에다가 폭력적이어야 할 텐데.”
“맞아, 너무 멀쩡해 보이던데. 술도 일체 손 안 대고.”
“아, 아니다. 첫날에 마원석 잔뜩 사들이긴 했어. 그게 도박이지 뭐겠어.”
“그것 때문에 차르메인 님이 감시하러 오신 거잖아.”
“그런 거치고는 별로 도움이 안 되던데. 결승전 때 갑자기 특별 규칙 어쩌고 하다가 가 버리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그때 한 직원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대, 대박이야! 대박!”
“무슨 일이게 그렇게 호들갑이야?”
“이번에 정제한 마원석 중에 7성급 마석이 나왔대!”
“뭐라고??”
안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7성급 마석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희귀했다.
그 가치는 쉽게 측정하기 어려웠는데, 어림잡아도 1천만 골드는 받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크. 7성급 마석이라니, 완전 부럽다!”
“진짜 대박 터졌네!”
“근데 누가 맡긴 건데?”
“어, 그게 아르칸 님이 맡긴 거라던데?”
그 말에 직원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금방 자신들이 떠들던 아르칸의 도박이 대박 난 거였다.
이제 아르칸이 망나니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았다.
아르칸은 마계에 손꼽히는 부자 마왕이 된 셈이었으니까.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